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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6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6) - 개항기


<가포에 똬리 튼 러시아>

마산포는 러시아와 일본이 서로 식민야욕을 불태웠던 각축장이었습니다. 시기는 개항 전후였고 그 절정이 「마산포사건」입니다.
「마산포사건」은 러시아가 부동군항(不凍軍港)을 얻기 위해 마산포를 점령하려했던 사건입니다. 사건개요를 요약합니다

러시아는 군사적 목적의 부동항을 얻기 위해 우선 조선정부와 마산포 저탄소(貯炭所) 설치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를 간파한 일본이 러시아가 목적한 토지를 미리 매입해버림으로써 러시아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1900년 때 일입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단념하지 않고 마산포 남쪽의 율구미(현 마산시 가포동의 국립결핵병원에서 MBC 송신소에 이르는 바다 쪽으로 돌출한 지역)를 얻어
1900년 6월 4일 30여 만평의 러시아 단독조차지를 설치하였습니다.
이에 질세라 일본도 1902년 5월 17일을 기해 자복포(구 한국철강과 월영동 아파트단지, 구 국군통합병원 일대)에 일본 전관거류지 30여만 평을 설치하였습니다.

이미 설치된 신마산 각국공동조계지 인근 두 곳에 러·일 단독조계지가 추가되는 기현상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두 나라 각축이 있었지만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러시아 단독조계는 사라져버렸습니다. 러시아 단독조계가 없어지니 일본도 굳이 단독조계를 설치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결국 일본은 각국공동조계지를 그들의 전관거류지처럼 사용하고 자복포의 단독조계는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상황 몇가지 소개합니다.

당시 마산의 분위기가 그랬던 만큼 강대국 군함의 마산 입출항도 많았습니다.
1899년 4월부터 1900년 11월까지 러시아와 일본을 비롯한 외국 군함의 마산항 출입 상황은 러시아가 가장 많은 28척, 일본이 10척, 영국이 4척, 독일이 1척이었는데 이 배는 모두 병함(兵艦) 혹은 수뢰정(水雷艇)이었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러시아는 가포 인근인 율구미에 군대까지 주둔시켰습니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의미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 그림 두 장은 당시 러시아 해군이 율구미에 주둔했던 사진입니다. 
먼저 것은 ‘율구미 주재 러시아 사관 및 부영사 가족’ 사진입니다. 사택으로 보이는 뒷 건물에 사용된 재료는 형태를 보아 조선 현지에서 구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에서 조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은 ‘율구미 주재 러시아 군대 체조장의 사관 및 수병’들 사진입니다. 수병들이 아직 소년 티를 벗지 못했습니다.


개항 나흘 후인 1899년 5월 5일, 러시아 고위공직자들이 마산포에 왔습니다. 주(駐)조선 러시아공사 파블로프가 일행과 함께 만추리아호를 타고 마산포에 도착합니다.
일행은 율구미라 부르는 자복봉 능선을 따라 30여만 평의 토지에 표석 500본, 표목 500본을 꽂아 임의로 그곳이 자신들의 영역임을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국기가 달린 5.4m의 표간(標杆)을 자복포 배후의 구릉과 가포에 인접한 해안에 각각 12개를 세웠습니다.
이곳이 나중에 러시아 단독조계지가 됩니다.


위 그림 왼쪽에 그려진 것이 바로 그 표간입니다.
미의회 도서관자료인데 마산포사건과 관련한 일본해군대신 관방서류에 수록되어 있는 자료입니다.
이 도면에는 율구미 능선을 따라 늘어선 표석과 표목의 위치와 함께 러시아 국기가 달려있는 표간의 상세한 도면이 그려져 있으며 표시물의 위치와 숫자는 이 도면을 설명하는 보고서에 별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구미 일대에 꽂힌 표석과 표목 각각 500개, 그리고 율구미 능선과 가포해안에 선 5.4m 높이의 24개 깃발을 상상해 보십시오. 러시아의 위세가 당시 어떠했는지,,,,
표목과 표간은 이미 썩어 없어졌겠지만 표석 500개는 땅 밑 어딘가에서 아직 잠자고 있겠지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표석 발굴에 나서 보면 어떨까요?

이러한 러시아의 행동은 호시탐탐 마산포를 넘보던 일본을 자극하였습니다.
일본은 마산포의 당시 상황을 일일이 본국 정부에 보고하면서 마산포를 러시아보다 선점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 결과 러시아에 이어 일본도 자복포에 전관거류지를 설치하게 되었던 겁니다.

다음 그림은 그 시기에 첩보용으로 율구미를 촬영했던 사진입니다.
일본 해군소속 군함 '대도(大嶋)'의 첩보주임 이집원후(伊集院後)가 1900년 5월 1일에 촬영한 것입니다. 가운데 높은 봉이 갈마봉인가요?


마산포로 진출할 의사를 가진 나라가 러시아와 일본, 영국뿐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도 석탄하역장과 해군병원의 부지로 사용하기 위해 마산포 부근에 진출을 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은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 1885-1913년 외교보고서』 중 마산관련 자료입니다. 

No 65
1901년 9월 17일, 동경
조선에서의 프랑스와 러시아

존경하는 백작각하!
제가 이미 이전의 보고에서 자주 말씀드렸던 바, 조선 내에서의 프랑스의 활동은 일본신문에 계속 표제화되고 있습니다․․․․․․․․
신문들에 의하면 이전의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이제 프랑스도 석탄하역창과 해군병원의 부지로 사용하기 위해 마산포 부근에 위치한 작은 항구를 양도해 줄 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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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석 2010.07.29 20:1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사장님 건강하시지요? 옛 마산...이젠 통합창원시...
    왠지 통합창원시와 마산...되게 어색하네요...
    앞으로 마산 도시변천사 자주 구독하겠습니다.

    • 허정도 2010.07.29 20:53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간사님, 아니 의원님.
      늦었지만 당선 축하드립니다.
      화상경마장 싸움할 때 이미 알아 보았습니다만 지역이 지역인지라 어쩔까 했는데 역시나 당선되더군요.
      지역 위해 더 큰 일, 더 좋은 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2009.12.11 08:25

즐거웠던 밤 - 서익진 교수의 출판기념회


마산시의회가 마산을 창원 진해와 통합시키기로 결정한 3일 후인 어제,
12월 10일 목요일 밤.

‘마산을 살리자’는 책의 출판을 축하하기 위해 경남대 평생교육원에 사람들이 모였다.
서익진 교수의 신간 『마산, 길을 찾다』의 출판기념회 이야기이다.

이 책은 서 교수가 그 동안 마산도시재생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남겨 놓은 글들과 마산도시재생과 관련한 각종 토론회 등에서 주장한 내용들을 재정리하여 엮은 것이다.

'리아미디어'에서 기획한 '리아프리즘문고 제1호' 출판이었다.
리아프리즘문고는 지역 도시영역, 문화 예술영역, 인문 사회영역의 세 분야에 걸쳐 지속적인 출판을 구상하고 있다.
지역 연구자들을 발굴하고 지원하겠다는 포부도 보였다.
도서출판 불휘를 운영하는 우무석 김리아 부부의 아름답고 원대한 시작이었다.
경남대의 김남석(언론정보학), 김재현(철학), 배대화(문학), 서익진(경제학), 유장근(사학) 다섯 교수가 기획에 참여, 일을 진행시킨다.



사람들이 모이자 분위기를 이끄는 대화는 역시 ‘마창진통합’이었다.
“통합이 되면 마산은 어떻게 되는고?”
“통합이 어쩌고 저쩌고”
답은 없었다. 지나가는 말들만 있었다.

사회를 맡은 정규식 씨의 첫 인사에서도,
발간취지를 설명한 유장근 교수의 말에서도,
마산에 대한 진한 애정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흘러나왔다.

책을 펴낸 「리아미디어」김리아 대표의 발행인 인사는 특별했다.
수줍은듯하면서도 자신 만만,
낮고 고운 목소리로 지나온 일과 다가올 일들을 설명하는 중년 여인의 차분한 인사가 시선을 집중시켰다.

서 교수와 인연이 깊은 세 분이 차례로 나와 축사를 한 후,
마산MBC 사장을 지낸 박진해 경남람사르환경재단 대표가 저자를 소개했다.
학력 경력 저서 등 빤한 소개가 아니라,
소개하는 사람과 소개 받는 사람 사이에 있었던 사건과 사연을 이야기로 엮으면서 저자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켰다.
특별하고 인상 깊었던 소개였다.
오래 전 작고하신 서 교수 아버님의 운명에 얽힌 이야기에서는 울컥거리는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순수를 보여주기도 했다.
청중들은 숙연했고 즐거워야할 출판기념회가 순간 무거워졌다.

소개를 받은 서 교수가 친구로 부터 출판축하 선물로 받은 개량한복을 입고 나와 인사를 했다.
고마움에 대한 감사인사에 이어 책을 쓴 의도와 과정에 대한 감회를 피력했다.

부족하지만 내가 서평을 겸한 강연을 했고,
가수 하동임 씨(서 교수 처제)의 노래로 출판기념회는 끝났다.

뒷자리는 막걸리로 유명한 ‘심소정’에서 열렸다.
후배 정성기 교수는 감회를 밝혔고,
친구 최갑순은 서익진을 자랑했고,
아내 하효선은 남편 서익진이 고맙다고 했다.
후배 윤치원은 선배들이 자랑스럽다고, 서 교수의 얼굴이 자신의 아버지와 닮았다고도 했다.

막걸리에 술기가 약간 오른 서 교수는 마지막 인사에서 ‘세계와 국가와 지역의 연관성’에 대해 진지하게(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았음) 이야기 한 후 오래된 노래 한상일의 '애모'를 불렀다.
남 앞에서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 서 교수로서는 파격적인 감정표현이었다.

의미 있고 재미있었던 한 경제학자의 출판기념회는 여기까지다.
토론 없는 사회, 형식에 젖은 사회에서 오랜만에 즐긴 자유로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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