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5.02.04 00:00

에딘버러도시이야기 33. '애딘버러 뉴타운'

♣ 소개 순서가 늦긴 했지만 애딘버러의 위치를 살펴보면 스코틀랜드 남동부에 있으며, 포스 만(灣)의 남쪽 해안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2세기경  에든버러 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곳이 지금의 지금은 올드타운에 해당됩니다. 마일로드를 중심으로 중세분위기가 물씬 나는 곳입니다. 지리적으로는 캐슬록이라고 하는 현무암 절벽이 우뚝 솟아 은 곳과 에딘버러 성을 양축으로 형성된 고도입니다. 반면 뉴타운은 조지아 시대, 18세기말과 19세기에 캐슬록의 기슭에 위치한 노스 호가 배수되면서 세워진 곳입니다. 조지아 풍을 잘 음미할 수 있는 곳이 뉴타운입니다.

(가운데 웨이벌리역 건물의 동서축을 기점으로 하부가 올드타운입니다. 하단에 에딘버러성이 우뚝 솟아있으며, 상부에 원형광장과 네모광장을 기점으로 잘 정비된 곳이 올드타운입니다. 좌측에 사롯데 광장(Charlotte Square)과 오른쪽 앤드류 광장(St. Andrew Square) 사이의 가로경관이 볼만하였습니다.)

- 로얄 라이시엄 극장(Royal Lyceum Theater) : 에딘버러 성에서 뉴타운으로 가는 중에 본 극장입니다. 1883년 설립된 극장으로 형태는 박스형 매스에 원통이 조합된 단순한 형태입니다.

 

- 어셔 홀(Usher Hall) : 에딘버러의 메인 콘서트홀이라고 합니다.

(출입구 부분은 웅장한 중세풍 양식으로 뉴타운의 상징이 될 만한 디자인입니다.)

(주출입구 부분은 고전전인 양식이, 유리면은 최근에 증축된 부분으로 신구 형태가 조화로운 모습입니다.)

♬ 건물 및 가로풍경

 

 

- 기념비 : 1차대전에 참전하여 사망한 클럽의 축구선수를 기리기 위한~~

- 성 메리 대성당 : 서쪽 끝 단에 위치한 성당

(장미창과 첨탑, 첨두 아치 등 고딕양식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군요)

- 뉴타운의 '마일로드' '조지 스트리트'(George Street) : 샤롯데 광장에서 앤드류 동상이 있는 광장까지 500미터에 이르는 중심가로입니다. 교차로마다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약 30미터 정도의 가로는 보행자 중심으로 정비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차로와 인도의 구분이 없는 도로, 가로벤치에 한가한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며, 멀리 올드타운의 에딘버러 성이 보입니다.)

(교차로에는 어김없는 동상들~~)

(가로변 건물은 중세풍으로 통일되어 있으며, 길 가운데는 자전거 베이, 그리고 주차장이, 멀리 앤드류 동상이~)

- 조지안양식의 공동주택 :  연립주택으로 특이한 점은 인접지와 측벽을 붙여서 합벽형태로 건축을 합니다. 그래서 층고의 높이와 디자인이 어는 정도 통일성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또 한가지 옥사에 인접건물과의 경계에 우뚝 솟은 굴뚤과 수많은 연돌이 특징입니다. 아마 방화벽의 역할과 주거별 개별 연돌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여집니다.)

- 인간 중심의 가로 : 차를 밀치고 점유한 노천 테라스 카페

Trackback 0 Comment 0
2015.01.16 00:00

에딘버러도시이야기 28. 올드타운의 역사가로 '로얄마일(The Royal Mile)'

마일로드(Mile Road) : 애딘버러 구 시가지내에 1마일에 이르는 역사가로입니다.

♣ 구시가지 배치도 : 가운데 기차역을 기점으로 상단지역은 반듯하게 정비된 신시가지이며, 하단에 자연발생적 형태로 조성된 곳이 구시가지입니다. 우측 상단이 앞서 소개한 칼톤힐입니다. 로얄마일(Royal Mile)은 서쪽(왼편) 끝에 있는 에딘버러성에서 길을 따라 내려가 동측(오른편) 네모난 형태의 홀리루드(Holyrood)궁전에 이르는 가로을 말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거리의 풍경이 16, 17세기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홀리루드 궁전은 1671년 찰스2세에 의해 재건되었다고 한며, 지금은 왕실의 공식적인 스코틀랜드 거주지로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 가로 전경

♣ 독특한 건물들

♣ 동상들과 가로시설물

(아담스미스 동상 : 국부론의 저자, 이 동네 사람인가 봅니다.)

♣ 거리의 예술가와 풍경들

♬ 마일로드 가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중세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역사가로로서 인정을 받은 것이지요.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이 이 가로에 공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유한하고, 결국 역사만 무한히 남겠지요.

Trackback 0 Comment 0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4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4 아파트의 대중화는 주거설비의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아파트 사용자들은 첨단시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주방시설에서 비롯되었다. 주부의 가사노동을 줄여줄 뿐 아니라 세련된 디자인과..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3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3 2002년 말 우리나라 주택 보급률은 100%를 넘었다. 1인 가구를 포함하는 신주택보급률 역시 2008년에 100%를 상회(100.7%)함에 따라 주택의 양적 공급이 부족한 상태는 아니라고 볼 ..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2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2 오늘날 우리나라 도시들을 뒤덮고 있는 아파트 홍수의 시작은 1988년에 시작한 ‘주택 2백만 호 건설’이다. 이 사업은 전년도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내놓은 공약이었다. 2백만 호..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1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1 1960년대 이후 계속된 인구의 도시집중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에 비해 택지가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을 낳았다. 이런 현실은 필연적으로 주거의 집단화와 고층화를 요구하였고 그 해답으로 등장한 것이..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0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2 농촌 주택개량사업은 새마을운동 시작 다음 해인 1972년부터 전개되었으며 담장이나 지붕 등의 부분적 보수와 개량으로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관리들은 초가지붕이 비위생적이고 아름답지 못..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9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1 196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농촌은 전쟁으로 입은 농토의 피해와 농촌인구의 감소 등으로 아직 근대화의 영향을 받지 못한 채 재래식 농경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거환경 또한 전쟁피해..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8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3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주택 시장은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개발과 성장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지어진 단독주택은 대부분 도시 한옥과 양식이 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7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2 1960년대는 한국사회의 큰 전환기였다. 4·19혁명과 5·16쿠데타에 따른 정치적 격변을 겪었고, 소위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제반 개발이 계획적으로 유도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6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1 1945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주체적인 주거문화를 창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지만 경제 사회적 제반 여건이 불비하여 주체적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5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 2 일제하의 중·상류계층의 주택 유형으로는 양식주택과 절충식(개량식)주택·개량 한옥·문화주택·공동주택·영단주택 등을 들 수 있다. 양식주택은 서양식주택을 말하며, 절충식 주택은 과도기적 상황에..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4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시기까지 - 1 구한말(舊韓末)까지도 조선 사람들이 살았던 보편적인 주거 유형은 한옥이었다. 1882년 그리피스(W. E. Griffis)가 쓴 한국에 관한 역사서 『은자의 나라 한국』에는 당시 전통 한옥을..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3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3 조선시대는 우리나라 주거문화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기이다. 반상(班常)을 철저히 구분한 신분사회였기 때문에 신분에 따라 주택의 크기나 형태를 규제하는 가사규제(家舍規制)가 있었다. 신..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2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2 주거사(住居史)에서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지표는 구들의 시작이다. 한국 주거문화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구들은 난방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인 동시에 지상주거로의 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 / 조선시대 이전

오늘부터는 <경남지역 주거변천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6~7년 전에 『경남도사』에 싣기 위해 간략히 쓴 글인데 출판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블로그에 올립니다. 어차피 공유하기 위한 글이니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동남부에 ..

기억을 찾아가다 - 25 (마지막 회)

25. 3·15의거에 대한 기억 「그날 나는 ‘극장 구경 시켜주겠다’는 주무돈이란 동네친구의 호의에 끌려 10리 가까이 되는 길을 걸어 ‘시민극장’으로 갔다. 그때 나는 대학입시에 낙방한 직후라 의기소침해 있던 상황이었다.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