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5.03.16 00:00

마산 창원 역사 읽기 (43-마지막 회) - 매립의 도시, 마산

5. 삶과 문화로 보는 마산·창원의 역사

5-8 매립의 도시, 마산

 

19세기 말, 동성리(현 동성동)에 김경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개항된 해인 189910월, 마산포 조창에 들어있던 창원감리서에 ‘서성리에서 오산리(현 오동동)에 걸친 간석지 50파(把, 1파는 양팔을 벌린 길이)를 매립하여 선창의 혼잡을 덜고 지역을 발전시키겠다’는 내용의 청원서를 제출하여 정부로부터 매립허가를 받은 사람이다.

당시의 상황으로 항만건설과 매립사업을 생각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일본상인 히로시 세이죠(弘淸三)에게 15,000량의 공사비를 차용하여 매립공사에 착공했으나 안타깝게도 사망하여 그의 꿈은 사라지고 말았다.

1906년 히로시는 김경덕의 매립인허장을 저당 잡을 때 작성한 전집표에 ‘차용금을 갚지 못하면 매립권은 채권자에게 귀속된다’는 것을 근거로 권리의 승계를 요구했고 창원감리서 주사 김병철은 이를 허가했다.

그러나 이 보고를 받은 의정부 참정대신은 가볍게 처리할 문제가 아니니 빨리 취소하라고 엄명했고 창원감리 이기(李琦)가 히로시에게 즉각 사정을 통보했지만 히로시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성통감부를 통해 매립 사업을 하게 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고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은 창원감리에게 사건의 재조사를 명했다.

이에 대해 창원감리는 ‘만약에 마산포 해안을 타인이 매립하게되면 마산포는 입이 틀어 막힌 목구멍이나 문이 잠겨버린 집과 같이 되어 마산포 수천호 주민은 결국 생업을 잃고 흩어져 비참하게 될 것이라’ 는 내용으로 보고했다.

그리고 기왕 매립을 하려면 마산포 주민들의 힘으로 해야 된다고 덧붙였는데, 이때 마산포의 자본가 15명이 4만원을 모아 공동으로 매립을 청원하였다.

그러나 이 공동매립 청원은 신청한지 1년이 넘도록 정부로부터 아무 해답을 못얻었으며 시간이 흘러 1910년 한일합방이 되었다.

결국 김경덕도 히로시도 마산포 해안을 매립하지는 못했다.

 

<매립 전의 월포 해수욕장>

 

-사라진 마산포 선창-

하사마 후사다로(迫間房太郞)라는 일본인이 있었다.

하사마는 부산 제일의 땅부자로 유명한 동래별장의 주인이며 부산 경제를 좌우한 자다.  경남 도내 소작지의 3.5%를 소유하고 소작농을 자그마치 2,000여호나 거느린 대지주였다.

러시아와 일본이 마산 율구미를 두고 각축을 벌인 마산포 사건 때 조선인 지주들을 꾀어 토지를 매수, 러시아의 마산 진출을 막은 공로로 일본정부로부터 서훈을 받기도 한 자다.

합방 후 부산·경남 일대를 호령하던 이 하사마가 오래 전 김경덕이 꿈꾸었던 마산포 남성동 해변을 매립하게 되었다. 김경덕이 매축권을 얻은지 12년만의 일이다.

대지 8,000평 도로 3,600여평 합11,600여 평의 대규모로 1911년 착공, 19147월 준공하였다.

전주(錢主)는 하사마(迫間)였지만 이 사업을 마산에서 직접 시행한 이는 합방 전 김경덕의 매립권을 얻기 위해 날뛰던 히로시 세이죠(弘淸三)였다.

매립이 끝나자 이중 극히 일부를 제외한 모든 토지가 하사마의 소유가 되었으며 19362월 그의 아들로 추정되는 하사마 히데오(迫間秀雄)에게 상속되어 해방 때까지 전부를 소유하고 있었다.

매립 후부터 마산의 중심상권이 되었던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 내내 마산포 상권의 요충지였다. 그리고 이 매립지 전체를 일제시대 내내 하사마에게 모든 상인들이 대지와 혹은 건물을 임대하여 영업하였다.

이 매립으로 마산포 중심상권이 크게 변했다.

일찍이 두개의 굴강과 네개의 선창을 중심으로 발전한 마산 어시장은 전국적 규모로까지 성장하였다.

그러나 하사마의 토지가 모든 해안을 차지하게 되어 굴강과 선창은 없어지고 마산포는 젖줄인 바다와의 연결이 끊어지게 되어 그 중심상권이 새로 조성된 매립지 쪽으로 옮겨진 것이다.

<마산포 가로망(점선으로 표기된 길 주변이 변화한 곳이었다)>

 

마산만 최초의 매립은 1905년 현 중앙동 해안이 일본 군부에 의해 철로정차장 건설을 구실로 시행된 것이며 두 번째는 19097월 진해에 있던 육군중포병대대가 월영동(현 월영동 아파트 단지)쪽으로 이전되면서 이 일대 일부를 군용지 확보를 이유로 매립한 것이다.

그러나 민간인에 의한 매립은 하사마의 것이처음이었다.

일본군부에서 시행한 앞의 두 매립은 그 특수성 때문에 매립의 규모와 위치 등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없다. 단지 해안선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여러자료와 철도 및 육군중포병대대 이전에 관한 기록을 보고 추정할 뿐이다.

남성동 매립 후 해안에는 석축안벽(石築岸壁)과 석축돌제(石築突堤) 등 항만시설이 조성되었고 선박의 접안·정박시설과 물량장이 갖추어졌으며 통영, 거제 등지를 비롯한 남해안 일대를 운항하는 연안 여객선 부두로 사용되었다.

 

-직선으로 변해버린 천혜의 해안-

1920년 조선회사령이 폐지되었다.

그 동안 뜻을 이루지 못했던 마산의 일본자본가들이 회사를 설립하기 시작했고 한국인도 일부 창업하면서 1920대 마산 도시는 변화를 맞는다.

마산은 한국과 일본을 손쉽게 연결할 수 있는 입지조건과 철도로 내륙까지도 손쉽게 연결되므로 타 지역에 비해 공업도시로서의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마산만과 무학산이라는 배산임수의 자연조건 때문에 대규모 산업시설을 수용할 수 있는 가용부지가 부족했다.

마산과 부산 혹은 본국에 있던 일본 자본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부지조성방법으로 폭 70m에서 200여m의 간석지가 있는 마산 해안의 매축에 눈을 돌렸고 이들에 의해 시행된 마산의 매립은 해방 때까지 지속되었다.

마산이 끼고 있던 해안의 간석지가 일본자본가의 입장에서 볼 때는 손쉽게 큰 돈을 쥘 수 있었던 투자의 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산 도시의 역사는 매립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립과 함께 도시가 바뀌고 매립과 함께 교통과 산업도 변화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한 마산매립은 마산부나 조선총독부가 전체적인 도시의 균형발전을 위해 일관되게 계획, 시행되었던 것이 아니라 오직 매립 주체인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필요에 의해 시행되었던 것이다.

 

<매립 전의 마산만>

 

1920년대 말부터 시작된 마산매립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1927년 : 남성동 어시장 너른 마당 일대 252평이 마산부에 의해 매립되었다.

2) 1928년 : 신마산에오래 동안 살아온 일본인 목재상 메가다 헤이자브로(目加田平三郞)가 우리나라 철도건설에 참여한 후 이름이 알려진 서울의 토건업자아라이(荒井初太郞)에게 의뢰하여 본정(本町,현월남동) 앞 해면을 매립했다. 현재의 경남은행 신마산지점 남쪽 건너편 일대와 옛 진일기계, 유원산업주변 10,500여 평의 넓은 면적이었다. 해안선은 석축안벽으로 시공되었고 유원산업 앞에는소규모의 선착장이 마련되었다.

3) 1929년 : 오동교에서 해안을 끼고 남쪽으로 2,100여평이 매립되었다. 이곳은 당시 야마다(山田)장유(현 몽고간장)의 사주 야마다 노부스케(山田信助)에 의한 것이었다.

4) 1935년 : 남성동 건어물시장 일대 1,000여 평이 마산부에 의해 매립되었다.

5) 1935년 : 신포동 삼익아파트, 대우백화점, 대한통운 일대에 대지 48,000여평, 도로17,000여평, 총65,000여평의 대규모 매립이 있었다. 이 사업에 참가한 일본인은 모두 여섯 명으로 그 중 두 명은 부산, 한 명은 일본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 일을 추진하기 위해 마산매축주식회사라는 새로운 토목회사까지 설립하였으며 자산동 임야를 매입하여 그곳의 흙을 파 매립토로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 마산의 도시형태는 몽고정 부근에서 해안은 깊고 환주산은 돌출해 나와 가용대지가 잘록해서 마산포와 신마산 두 도시를 지형적으로 단절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매립으로 노선(路線)만으로 연결되던 두 도시가 하나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 마산 최대의 매립이었다. 이 곳은 원래 북에서 남으로 2㎞이상이나 되는 아름다운 백사장 때문에 전국으로 널리 알려져 있던 월포해수욕장 부근으로 알려져 있다.

6) 1931년 ~ 1942 : 창포동과 월남동 일대 13,700여 평이 7차례에 걸쳐 매립되었다. 좁게는 4~500평, 넓게는 3~4,000평 규모로 진행된 이 매립은 여러 명의 일본인들에 의해 시행되었는데 주로 자신들의 공장이나 조선소 부지를 확보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7) 1942년 : 마산 수협 자리와 동양공업, 신기사 등이 있던 11,800여 평이 부산의 토건업체 다케모토 구미(竹本組)에 의해 매립되었다. 일제기 마산포의 매립공사는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8) 1944. 12 : 마산의 명승지 월포해수욕장이 매립된 이후 고노에가하마(近衛濱) 해수욕장이란 이름으로 이용되던 해운동 일대(전 마산화력발전소자리)의 해변 12,200여 평이 일본인 나까무라 시게오(中村繁夫)에 의해 매립되었다. 그러나 완공된 지 8개월 만에 일제가 패망하여 해방 당시 공터로 버려져 있었고 시기를 잘못 선택해 크게 실패한 나까무라는 후에 마산에서 그이름이 회자되기도 했다.

9) 이 외에 1935년부터 1945년까지 제2부두, 제1부두, 중앙부두 등을 건설하면서 총 4차례 42,000여평이 매립되었다.

 

해방 당시, 아름답기로 소문났던 천혜의 마산 해안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직선형 호안으로 바뀌어 있었다.

해방된 지 40년, 창포동에서 월영동까지의 서항과 오동동에서 서성동에 이르는 구항 일대의 매립공사가 1985년 착공 후 1993년 준공될 때까지 일제에 의해 조성된 이 해안은 수십년 동안 존속하였다.<<<

허정도 / 건축사, 창원대 건축학부 겸임교수

-----------------------------------------------------------------------------

이 글로써 43회 연재한 <마산·창원 역사 읽기>는 전부 끝났습니다.

애당초 계획대로라면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의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시작해야 합니다만 아직 준비가 다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부터는 다시 마산 도시의 근대기 이야기를 다룬 책, 목발 김형윤 선생님의 『마산야화 소개하겠습니다.

김형윤 선생님은 마산지역의 원로 언론인이셨고, 소개드릴 책 『마산야화』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마산의 지난 세월을 알게 해준 고마운 유산입니다.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13.04.29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9) - 강점제3시기

<원마산(마산포)의 도로변화>

먼저 1945년 원마산 상황과 1930년 상황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위의 두 그림에서 보다시피 1930년부터 1945년까지에 원마산에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변화의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정리한 번호는 위 1945년 그림에 표기되어있는 번호와 일치합니다.

① 1935년에 지금의 신포동 일대 매립으로 원마산과 신마산이 지형적으로 하나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② 같은 해 기선권형망수협지소와 그 인근 건어물 시장 주변 매립으로 동성동과 오동동의 경계까지의 해안이 직선으로 변했습니다.

③ 1937년에는 수성동, 즉 시민외과 앞 도로가 부림시장과 이어져 신포동 매립지와 연결되었습니다.

④ 같은 해 현 오동동 네거리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도로가 개통되었습니다.

⑤ 같은 해 ④의 도로가 새로 매립된 지역의 도로망과 연결되는 도로가 개통되어 오동동에서 해안으로 바로 연결될 수 있는 도로가 되었습니다.

⑥ 1935년에는 1913년에 생긴 부림시장 쪽의 직선도로에 서쪽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개통되었고 오동동 파출소에서 동쪽으로 오동교로 향하는 길도 같은 해 개설되었습니다.

⑦ 1937년 추산동 정법사에서 문신미술관으로 오르는 길이 확장되었습니다.

⑧ 1939년에는 1923년 개통된 삼성생명에서 대신증권으로 내려오는 남북간의 10m 도로가 20m로 다시 넓혀졌습니다. 이 도로 확장공사는 도시적 필요에 의해 계획도로가 생긴 후 그 폭이 좁아 다시 넓히는 마산 최초의 확장공사였습니다. 이를 통해서도 이 시기 원마산의 도시규모가 급격히 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⑨ 1942년에는 원마산 매축지 동쪽 해변의 매축공사가 준공되었습니다.

⑩ 1943년 현 프라자 일번가 건물에서 해안 쪽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개설되어 1940년부터 1942년까지 죽본조(竹本組)가 매립한 토지와 연결되었습니다.

이상에서 보다시피 1945년 기준으로 완성된 원마산의 도로는 1970년경에 개설한 합포로 외에 현재의 도로 구조 그대로입니다. 일제강점기 동안 원마산의 도시 골격이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되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가하면 매립을 하면서 생겨난 신설도로로 인해 도로율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다음 그림은 강점제1시기, 2시기, 3시, 각 시기별 원마산의 도로망 확산 범위를 그려본 그림입니다.

 

 

한편, 1945년 당시 원마산의 도로율은 26.18%에 달했습니다. 물론 이 글에서 대상지역으로 설정한 범역은 일제강점기 말기에 확산된 원마산 전 지역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므로 원마산 전 지역 평균율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만 1945년 마산포의 도로율(26.18%)은 1910년의 14.57%, 1920년의 21.42%, 1930년의 23.24%에 비해 급격히 증가한 면적입니다.

1910년 당시 원마산에 자연발생도로만 있었을 때의 도로율이 14.57%였던 것을 감안해 볼 때 원마산 지역이 매립으로 확대되면서 과거보다 폭이 상대적으로 넓은 도로로 인해 증가한 도로율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원마산의 도로 개설은 20년대에 비해 많지 않았으나 외곽으로는 그 영역이 더욱 넓어졌으며, 특히 이미 개설된 도로의 폭을 확장하는 등 이 시기 원마산의 범역이 매우 넓게 확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 그림에서 나타내고 있는 지역의 현재 모습입니다.<<<

 

신고
Trackback 0 Comment 1
  1. 창동공화국 2013.04.29 09:5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항상 좋은글 잘보고있습니다.

    저번 창동에서 열린 도시재생에 관련하여 열릳토론회에 참석하고싶었습니다만 시간이여이치않아 가지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도시재생에 있어서 더많은 시민들과의 소통이 필요로할것으로보입니다

2013.04.22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158) - 강점제3시기

<원마산(마산포)의 변화 - 시가지의 확산>

오늘부터는 1930년~1945년의 마산포(원마산)의 변화에 대해 올리겠습니다. 이 시기 마산포는 대규모 매립이 시행되어 규모도 커지고 근대식 도로망도 확산되는 대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시가지가 확산되었습니다.

1930년~1945년 사이의  원마산에는 한국인 상인들에 의해 부림동 시장과 남성동 해안 일대에 걸쳐 곡물․면사포 등의 포목류․식료품․고무화․기타잡화 등 생활필수품을 판매하는 소점포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또한 일본상인들도 원마산에 많이 진출하여 건축자재․철물․과자․서적과 문방구․가구․의복․주류․육류․연료․선구(船具) 등을 판매했습니다. 대금업자도 10여명에 달했으며 건축 붐을 타고 토건청부업도 호황을 누렸습니다.

1931년에 간행된『경상남도 통계연보』에서는 당시 마산 토지 중 대지․논․밭을 종류별로 나누어 매매가격과 임대가격을 기준으로 등급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대지중 상등지는 남성동 141번지(현 남성동 파출소 앞 네거리의 대각선 방향 토지)였으며 그 다음은 남성동 187번지(현 남성동 지하도와 연결되는 속칭 돼지골목 주변)와 두월동 1가5번지(현 식당 함흥집의 옆 대지)였습니다.

토지가격으로 보나 이 지역이 마산에서 가장 상업적 가치가 높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 이 시기에 원마산은 범역이 확산되어 북쪽으로 상남동․교방동․오동동을 넘어 산호동 일부까지 시가지가 연결되었습니다.

이런 변화에 따라 서원곡으로 올라가는 구 성호동사무소 앞 도로가 1938년 개설되는 등 도시변화 때문에 필요해진 도로도 개설되었습니다.

해방기에 이미 산호동의 마산용마고등학교(전, 마산상고)로 가는 직선도로 등이 개설되어 있었으나 등기상으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1930년 이후 원마산의 도시구조 변화를 지적도와 관련자료 등을 통해 확인한 후1945년의 도시구조를 복원한 것이 다음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1930년 토지이용도를 기준으로 그 이후 15년 동안 시행된 매립과 도로의 개설 및 폐쇄, 대지의 분할과 합병, 소유 변경 등의 변화를 지적도와 토지대장을 이용하여 실증한 것입니다.

그림을 보면 매립지역의 도로 축과 기존 원마산에 개설된 도로의 축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매립지역은 최초의 남성동 매립지역 도로와 동일한 축을 형성하며 도로가 개설된 반면 기존 원마산의 도로는 1910년대에 개설된 최초의 도로축에 따라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두 지역의 도로 연결은 일정한 체계 없이 기존 지역과 매립지역간의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동안 조성된 원마산의 해안은 해방 후 수십 년 동안 사용되어 1985년 매립공사(오동동에서 서성동 해안까지의 구항 297,512㎡와 창포동에서 월영동까지의 서항 382,069㎡의 매립공사. 1985년 11월 23일 착공하여 서항은 1992년 10월 13일, 구항은 1993년 10월 4일에 준공)가 착공되기까지 원형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도로 역시 1968년 현재 간선도로인 합포로가 매립지역의 도로 축에 맞춰 건설된 것 외에는 별 다른 변화 없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위 그림의 직전 상황, 즉 1930년의 마산포(원마산) 도면이며 그 밑은 1920년, 제일 아래가 1910년 매립과 도로개설이 있기 전 원래 모습입니다.<<<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13.04.15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7) - 강점제3시기

<강점기 매립 글 정리>

일제강점기 마산만 매립 관련 글은 지난 번까지였습니다.

개항기 9회, 강점 제1시기 2회, 강점 제2시기 3회, 강점 제3시기 15회로 총 29회였습니다. 하지만 개항기 매립 중 5회는 계획으로만 끝났기 때문에 실제로 시행된 매립 횟수는 총 24회였습니다. 매립 면적은 모두 325,000여 평이었습니다.

매립 주체를 유형별로 나누어 보면 조선총독부․마산부․기업․개인 혹은 공동매립과 단독매립 등이 있었으며, 1회 매립 면적도 최소 100여 평에서 최대 10만 평 가까운 면적까지 다양하였고 일거에 수만 평의 매립을 했는가 하면 한 사람이 세 번에 걸쳐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매립의 목적도 다양했습니다. 항만건설을 비롯해서 농지로 사용하기 위한 매립이 있었는가하면 군용지 혹은 철도용지를 목적으로 매립한 것도 있었고 기업과 개인에게 분양을 목적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임대를 목적으로 매립하기도 했고 자신의 사업장을 확대하기 위한 매립도 있었습니다. 반면 사실상 매립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도 매립이 완료된 것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위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마산의 매립은 그 내용과 형식에서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단 한 가지 공통된 점이 있었다면 그 주체가 모두 일본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일제 강점기 마산에서 이루어진 매립공사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산의 매립은 마산부나 조선총독부가 마산 도시의 전체적인 균형과 발전을 위해 거시적으로 일관되게 계획되어 시행되었던 것이 아니었고 오직 매립 주체인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필요에 의해 시행된 것이었습니다.

마산이 끼고 있던 해안의 간석지가 일본자본가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저비용으로 고수익을 올려 손쉽게 큰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던 원시적 축적의 한 방편이었고 때를 맞춰 일기 시작한 국내 공업시설 확충 붐이 이런 조건들을 부추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립된 부지 중 어느 곳도 공공용지로 사용되었거나 도시의 균형발전을 위한 도시기반시설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단지 눈앞의 이익만 생각한 일본자본가들의 투기성 경제활동의 수단으로서 매립공사가 시행되었던 것입니다.

식민지 시대가 끝난 뒤에도 많은 매립이 있었습니다. 자유무역지역, 한국중공업 등을 비롯해 엄청난 양의 매립이 해방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매립이 서항이라 부르는 신마산 지역의 매립과 구항이라 부르는 어시장과 신포동 일대 해안도로 매립입니다.

그러면 일제 식민지시대 매립과 해방후 한국정부 때의 매립은 뭐가 달라졌을까요?

아닙니다. 일제 때의 매립과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매립의 주체가 한국인 혹은 한국정부라는 것뿐이었습니다.

눈앞의 이익만 생각한 자본가들의 투기성 경제활동의 수단이었던 것은 일제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은 지금 시행되고 있는 가포신항만 25만평, 해양신도시 19만 평 매립도 본질은 마찬가지입니다. 

근세기 백 년 동안 진행된 마산만의 매립은 일제강점기 32만 평, 해방 후 160만 평, 진행 중 46만 평, 모두 238만 평 정도입니다. 이 규모는 마산만 내만의 50% 정도의 면적입니다.

정말 엄청난 양의 바다를 지난 백 년 간 없앴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포신항, 해양신도시 , 방재언덕 등 마산만 매립문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매립에 대한 인간의 탐욕은 언제쯤 끝이 날까요?

다음 그림은 지금까지 소개한 일제강점기 매립의 전체를 그려본 도면입니다.

녹색, 회색, 적색, 황색 네 가지 색으로 그려 넣은 부분이 일제강점기 매립이고 희미하게 바다색으로 덮혀있는 도시지역이 해방 후 매립된 부분입니다. 번호는 매립된 순서입니다.<<<

 

 

2012/07/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0) - 강점제3시기

2012/08/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1) - 강점제3시기

2012/08/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2) - 강점제3시기

2012/08/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3) - 강점제3시기

2012/08/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4) - 강점제3시기

2012/09/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5) - 강점제3시기

2012/09/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6) - 강점제3시기

2012/09/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7) - 강점제3시기

2012/09/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8) - 강점제3시기

2012/10/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9) - 강점제3시기

2012/10/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0) - 강점제3시기

2012/10/1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1) - 강점제3시기

2012/10/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2) - 강점제3시기

2012/10/2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3) - 강점제3시기

2012/11/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4) - 강점제3시기

2012/11/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5) - 강점제3시기

2012/11/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6) - 강점제3시기

2012/11/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7) - 강점제3시기

2012/12/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8) - 강점제3시기

2012/12/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9) - 강점제3시기

2012/12/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0) - 강점제3시기

2012/12/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1) - 강점제3시기

2013/01/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2) - 강점제3시기

2013/01/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3) - 강점제3시기

2013/01/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4) - 강점제3시기

2013/0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5) - 강점제3시기

2013/01/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6) - 강점제3시기

2013/02/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7) - 강점제3시기

2013/02/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8)- 강점제3시기

2013/02/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9) - 강점제3시기

2013/02/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0) - 강점제3시기

2013/03/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1) - 강점제3시기

2013/03/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2) - 강점제3시기

2013/03/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3) - 강점제3시기

2013/03/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4) - 강점제3시기

2013/04/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5) - 강점제3시기

2013/04/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6) - 강점제3시기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13.04.01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5) - 강점제3시기

-부두의 건설-

부두 역시 매립으로 건설되었지만 그 목적이 항만건설이라는 점에서 일반 매립과 구분하여 다룹니다.

일제강점기 마산에는 부두를 건설하기 위한 네 번의 매립이 있었습니다.

모두 강점 제3시기(1930년 이후)에 이루어 졌으며 조선총독부 혹은 마산부가 시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국내 사정 및 권력 체제로 보아 마산부는 명의만 제공했을 뿐, 모두 조선총독부의 의도가 개입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같은 시기에 급속히 대규모로 시행된 이 항만공사는 마산을 상업무역항으로 키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일본의 침략전쟁을 돕는 병참기지로의 역할 수행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 태평양전쟁(1941)로 이어지는 일제의 전쟁 광란에서 마산의 섬유산업과 장유산업 그리고 주조산업은 전쟁의 필수보급품이었던 겁니다.

 

<마산부가 시행한 제2부두 공사>

마산매축주식회사에서 신포동을 매립할 때 시행되었던 공사( )입니다.

1935년 4월 25일에 2,900평이 조성되었고 나머지 1,650평은 같은 해 6월 7일 마산부의 개간사업으로 건설되었습니다.

이 자리는 매립을 하기 전까지 아름다운 백사장으로 그 이름이 전국에 널리 알려진 월포해수욕장이었습니다.

여름 피서 철이 되면 서울에서 마산까지 정기 피서특별열차가 운행되던 명승지였기 때문에 당시의 각종 자료집에는 월포해수욕장의 사진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다음 사진이 월포해수욕장입니다.

매립지의 위치는 수년 전까지 존속하고 있었던 대한통운 창고가 있었던 곳으로 지금은 하이마트가 자립잡고 있는 곳입니다.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제1부두 1차 공사>

1936년 10월 총독부가 발주하고 경성의 토건업자 삼택조(三宅組)가 맡아 중앙부두와 함께 착공하였습니다.

함께 착공하면서 이 곳을 제1부두로 구분하여 공사했던 것으로 보아 2차공사를 착공하면서부터 계획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3,460평의 공유수면을 매립하여 1939년 5월 19일 제1차 준공된 부두입니다.

매년 가을이면 열리는 가고파국화축제 장소의 입구부분이 바로 이곳입니다.

위의 두 매립지 위치도입니다.<<<

 

2012/07/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0) - 강점제3시기

 2012/08/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1) - 강점제3시기

2012/08/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2) - 강점제3시기

 2012/08/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3) - 강점제3시기

 2012/08/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4) - 강점제3시기

 2012/09/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5) - 강점제3시기 

2012/09/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6) - 강점제3시기

2012/09/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7) - 강점제3시기

2012/09/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8) - 강점제3시기

2012/10/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9) - 강점제3시기

2012/10/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0) - 강점제3시기

2012/10/1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1) - 강점제3시기

2012/10/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2) - 강점제3시기

2012/10/2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3) - 강점제3시기

2012/11/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4) - 강점제3시기

2012/11/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5) - 강점제3시기

2012/11/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6) - 강점제3시기

2012/11/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7) - 강점제3시기

2012/12/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8) - 강점제3시기

2012/12/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9) - 강점제3시기

2012/12/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0) - 강점제3시기

2012/12/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1) - 강점제3시기

2013/01/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2) - 강점제3시기

2013/01/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3) - 강점제3시기

2013/01/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4) - 강점제3시기

2013/0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5) - 강점제3시기

2013/01/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6) - 강점제3시기

2013/02/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7) - 강점제3시기

2013/02/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8)- 강점제3시기

2013/02/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9) - 강점제3시기

2013/02/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0) - 강점제3시기

2013/03/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1) - 강점제3시기

2013/03/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2) - 강점제3시기

2013/03/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3) - 강점제3시기

2013/03/25 - [오늘의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4) - 강점제3시기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13.03.18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3) - 강점제3시기

<죽본웅차(竹本熊次)의 남성동, 동성동, 오동동 매립>

 

1940년부터 1942년 9월 5일까지 부산 토건업체인 죽본조(竹本組)의 사주였던 竹本熊次(부산부 수정동 116번지 거주)가 시행된 매립공사입니다.

원마산(마산포) 매축지 동쪽 해변일대로서 마산시 수협이 있던 오동동 251-3을 비롯하여 동일제빙․동양공업․신기사 등이 자리했던 곳입니다. 지금은 복어거리와 탑마트 그리고 웨딩그랜덤 건물이 있는 일대입니다.

총 11,860여 평이었으며 이중 대지로 사용한 면적이 8,885평, 도로는 2,539평, 하치장이 436평이었습니다. 이 외에 물양장이 254평 있었고 방파제 153m도 함께 시공했습니다.

다음 그림은 정부기록보존소가 소장하고 있는 「매립준공인가관계서류」에 첨부된 본 매립공사의 설계도입니다.

 

 

시간을 되돌려 보면 이 매립지의 위치는 오랜 세월 동안 마산포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같이했던 옛 오산선창 앞 해면으로, 이 매립를 끝으로 오산선창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런가하면 마산포 쪽에 이미 완료해놓은 매립지와 오동동 다리 쪽에 완공해 놓은 매립지(아래 그림에서 초록색과 분홍색 매립지)가 연결되어 버려 이 매립 후 마산포의 해안이 현 오동동 다리까지 직선호안으로 변했습니다.

이 공사에 사용된 흙은 처음에는 용마산 북쪽 비탈을 깎아 사용했으나 사람이 죽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자 노비산 북쪽으로 옮겨 취토했다고 합니다.

본 매립지의 위치를 표시한 그림입니다. 푸른색으로 에어브러시 효과를 준 부분이 매립지입니다.

오산선창은 그림에서 붉은 점 옆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입니다.<<<

 

 

 

2012/07/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0) - 강점제3시기

2012/08/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1) - 강점제3시기

2012/08/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2) - 강점제3시기

2012/08/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3) - 강점제3시기

2012/08/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4) - 강점제3시기

2012/09/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5) - 강점제3시기

2012/09/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6) - 강점제3시기

2012/09/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7) - 강점제3시기

2012/09/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8) - 강점제3시기

2012/10/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9) - 강점제3시기

2012/10/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0) - 강점제3시기

2012/10/1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1) - 강점제3시기

2012/10/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2) - 강점제3시기

2012/10/2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3) - 강점제3시기

2012/11/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4) - 강점제3시기

2012/11/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5) - 강점제3시기

2012/11/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6) - 강점제3시기

2012/11/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7) - 강점제3시기

2012/12/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8) - 강점제3시기

2012/12/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9) - 강점제3시기

2012/12/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0) - 강점제3시기

2012/12/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1) - 강점제3시기

2013/01/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2) - 강점제3시기

2013/01/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3) - 강점제3시기

2013/01/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4) - 강점제3시기

2013/0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5) - 강점제3시기

2013/01/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6) - 강점제3시기

2013/02/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7) - 강점제3시기

2013/02/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8)- 강점제3시기

2013/02/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9) - 강점제3시기

2013/02/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0) - 강점제3시기

2013/03/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1) - 강점제3시기

2013/03/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2) - 강점제3시기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13.03.11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2) - 강점제3시기

이번 포스팅에서는 강점 말기에 시행된 네 곳을 소개하겠습니다. 매립지 모두 공장부지로 사용한 사례입니다.

지금은 경남대 앞 상업용지로 도시 한복판인 이 땅들이 불과 7-80년 전에는 바다였으니 정말 세지감입니다.

 

<국전암시(菊田岩市)의 창포동 3가 매립>

1938년 1월 28일 창포동 3가 5-12 전 심건(心建)조선소 자리 594평을 앞의 국전암시(菊田岩市)가 자영 국전(菊田)조선소 용지로 매축 준공하였습니다.

총 세 번에 걸쳐 매립을 한 국전암시(菊田岩市)는 1909년에 마산으로 이주해 와서 국전(菊田)조선소를 경영했던 일본인입니다.

위치는 현 경민 아파트 자리로 그림의 A입니다

 

<교본육삼랑(橋本六三郞)의 창포동 3가 매립>

1940년 2월 15일 창포동 3가 5-14번지인 전 심건조선소(心建造船所) 건너편 주택지 437평을 교본육삼랑(橋本六三郞)이 매립하였습니다.

위치는 역시 경민 아파트 자리로 위의 국전암시(菊田岩市)의 매립지와 붙은 자립니다. 위치는 그림의 B입니다.

 

<마산조면공장의 창포동 3가 매립>

1942년 6월 16일 창포동 3가 8-1번지 4,585평을 당시의 마산조면공장이 매립하여 공장용지로 사용한 매립입니다.

상당히 큰 규모의 매립이었으며 위치는 현재 롯데마트 부지입니다. 그림의 C입니다.

 

<마산수산주식회사의 월남동 5가 매립>

위의 마산조면공장 매립과 동시에 이루어졌으며 창포동 3가 5번지에 위치한 마산수산(주)에서 시행하였습니다.

앞에서 포스팅한 지전원차(池田源次)와 영삼구간(永森久幹)의 창포동 3가와 월남동 5가를 매립한 부지 중 <2013/02/1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9) - 강점제3시기>  월남동 5가의 부지 전면 해안에 위치하였으며 면적은 812평이었습니다. 1944년 마산조선철공유한회사로 소유권이 변경되었습니다.

위치는 현 메가박스 영화관 자리로 그림에서 D 부분입니다.

위 네 곳의 매립지를 현재 위성사진에서 나타낸 그림입니다.<<<

 

 

 

2012/07/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0) - 강점제3시기

2012/08/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1) - 강점제3시기

2012/08/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2) - 강점제3시기

2012/08/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3) - 강점제3시기

2012/08/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4) - 강점제3시기

2012/09/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5) - 강점제3시기

2012/09/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6) - 강점제3시기

2012/09/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7) - 강점제3시기

2012/09/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8) - 강점제3시기

2012/10/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9) - 강점제3시기

2012/10/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0) - 강점제3시기

2012/10/1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1) - 강점제3시기

2012/10/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2) - 강점제3시기

2012/10/2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3) - 강점제3시기

2012/11/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4) - 강점제3시기

2012/11/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5) - 강점제3시기

2012/11/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6) - 강점제3시기

2012/11/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7) - 강점제3시기

2012/12/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8) - 강점제3시기

2012/12/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9) - 강점제3시기

2012/12/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0) - 강점제3시기

2012/12/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1) - 강점제3시기

2013/01/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2) - 강점제3시기

2013/01/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3) - 강점제3시기

2013/01/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4) - 강점제3시기

2013/0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5) - 강점제3시기

2013/01/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6) - 강점제3시기

2013/02/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7) - 강점제3시기

2013/02/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8)- 강점제3시기

2013/02/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9) - 강점제3시기

2013/02/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0) - 강점제3시기

2013/03/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1) - 강점제3시기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13.02.18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9) - 강점제3시기

<경남대 앞 삼우상가 일대 매립>

1933년 1월 25일 준공된 매립입니다.

위치는 현 경남대 앞 삼우상가와 월드프라자 빌딩 사이의 부지와 그 뒤쪽 횟집이 많이 있는 삼각형 블록입니다. 아래 그림에서 노란색으로 표시한 땅입니다.

 

면적은 속칭 번개시장 옆 삼각형으로 남아있는 부지 창포동 3가 7-1번지의 589평과 그 주변 일대에 해당되는 월남동 5가 4-1번지 23평, 월남동 5가 4번지 일대 1,596평을 합쳐 총 2,185여 평이며 도로까지 합친 면적은 3,300여 평입니다.

매립을 추진한 이는 일본 문사(門司 / 모지)에 거주하던 지전원차(池田源次)와 창포동에 거주하던 영삼구간(永森久幹) 두 사람입니다.

처음 매립권을 취득한 자는 경성에 살던 고영경일(高榮京一)과 영삼구간(永森久幹)이었지만 자금사정 때문에 고영경일(高榮京一)의 매립권을 지전원차(池田源次)가 인수하여 시행하였습니다.

정부기록보존소가 소장하고 있는 「공유수면매립준공인가서 / 문서번호87-1259 / 필름번호87-1095」에 의하면

매립의 목적은 주조 및 정미공장 부지조성이었고 다른 매립과 마찬가지로 도로․구거․호안석원은 국유지로 하였습니다.

매립설계 도면입니다.

 

 

부등변사각형인 이 매립지는 처음 신청할 때만해도 가운데 도로가 없었는데 중간에 설계를 변경하여 중앙에 도로를 내어 사각형과 삼각형의 두 대지로 나누어졌습니다.

매립 설계도를 보면 배수용 암거의 기초 부분은 나무말뚝으로 보강되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매립설계도에 현재의 경남대 정문 앞에 있던 월영천과 창원교란 이름의 교량이 함께 표시되어 있다는 점과 그 주위에 호장(戶張)정미소와 원전(原田)주조장이 표기되어 있어서 당시 상황을 잘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전(原田)주조장은 1904년 마산 최초로 설립된 아즈마(東)라는 일본청주회사가 그 전신입니다. 술이름은 한목단(寒牧丹)이었고 위치는 경남대 앞, 옛 일성펌프 자리였습니다.<<<

 

2012/07/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0) - 강점제3시기

2012/08/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1) - 강점제3시기

2012/08/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2) - 강점제3시기

2012/08/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3) - 강점제3시기

2012/08/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4) - 강점제3시기

2012/09/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5) - 강점제3시기

2012/09/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6) - 강점제3시기

2012/09/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7) - 강점제3시기

2012/09/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8) - 강점제3시기

2012/10/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9) - 강점제3시기

2012/10/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0) - 강점제3시기

2012/10/1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1) - 강점제3시기

2012/10/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2) - 강점제3시기

2012/10/2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3) - 강점제3시기

2012/11/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4) - 강점제3시기

2012/11/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5) - 강점제3시기

2012/11/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6) - 강점제3시기

2012/11/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7) - 강점제3시기

2012/12/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8) - 강점제3시기

2012/12/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9) - 강점제3시기

2012/12/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0) - 강점제3시기

2012/12/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1) - 강점제3시기

2013/01/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2) - 강점제3시기

2013/01/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3) - 강점제3시기

2013/01/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4) - 강점제3시기

2013/0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5) - 강점제3시기

2013/01/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6) - 강점제3시기

2013/02/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7) - 강점제3시기

2013/02/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8)- 강점제3시기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13.02.11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8)- 강점제3시기

-강점 제3시기의 매립-

192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마산 해안의 매립은 1930년대 들어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하이라이트가 1929년에 착공하여 6년 간 시공한 후 1935년 완공한 신포동의 중앙마산지역 매립인데 이 매립으로 그 동안 둘로 나누어져있던 마산의 도시공간이 지형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국전암시(菊田岩市)의 창포동 3가 매립>

1931년 12월 4일 창포동 3가 1-1번지 801평이 매립되었습니다. 일본인 조선업자로 창포동 3가 5번지에 살던 국전암시(菊田岩市)에 의해 조선공장 부지조성을 목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정부기록보존소에 보존된 「공유수면매립준공인가서 / 문서번호 87-969」에 의하면 토지소유권 취득자 통지서에 토지 취득 일자가 1932년 3월 25일로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비고란에는 도로․구거 및 호안석원(護岸石垣)은 국유지로 한다고도 기재되어 있습니다.

위치는 현재 창포동 광신아파트 자리이며 아래 매립과 동 시기에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국전암시(菊田岩市), 천야도추(天野都搥)의 창포동 2가 매립>

창포동 경남아파트 부지의 매립입니다.

1932년 8월 20일 옛 아주방직(당시에는 마산조면공장)과 그 주변인 창포동 2가 2번지에서 10번지까지의 3,213평이 강점3시기 두 번째로 매립되었습니다. 기록마다 면적이 조금씩 다른데 여기서 적용한 3,213평은 사정지적도와 토지대장을 확인한 것입니다.

위의 국전암시(菊田岩市)와 목재상 천야도추(天野都搥) 두 명이 공동으로 매립하여 준공하였습니다.

매립공사 준공인가신청서(정부기록보존소,「공유수면매립준공인가서 / 문서번호87-969」)에 따르면 매립의 목적은 택지조성이었습니다. 준공인가와 동시에 세관잔교 옆 모퉁이(매립도면에서는 A구역이라 칭함, 창포동 2가 7번지) 163평 및 도로․구거․물양장․호안석원 등을 국가에 귀속시킨다고 되어 있었는데 사정토지대장을 확인한 결과 국가 소유로 되어 있었습니다.

1899년부터 자리 잡고 있던 마산세관이 이 매립으로 해안을 접할 수 없게 되었지만 부잔교(浮棧橋)만은 남아있었다고 하며, 1928년에 준공한 목가전평삼랑(目加田平三郞)의 매립 터와 해안도로에 나란히 호안하여 도로를 개설하였습니다.

아래 그림이 당시에 매립된 부지입니다. 노란원이 표시된 작은 땅이 국전암시의 창포동 3가 매립이고 흰색원으로 표시된 큰 땅이 국전암시와 천야도추가 함께 시행한 매립지입니다.

그 밑의 그림은 당시 이 매립과 관련한 설계도입니다.<<<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12.04.18 00:00

마산만 매립해서 땅 장사하려는 기업들

성동산업 마산조선소가 취득한 마산 앞바다 공유수면 16,000평 매립권을 두고 장사꾼들의 농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작은 수년 전부터였습니다. 마산만 내만에 자리를 잡은 성동조선이 "사업을 일으키려면 바다에 접한 땅이 더 필요하다"고 요구하면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오염총량제 실시 이후 마산만의 매립은 더 이상 없을 것이었지만 성동조선의 요구에 대해서는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당시 마산에는 내놓을만한 기업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동조선이 사업을 일으키면 고용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매립을 해서라도 지역경제를 살려보라고 여기저기서 지원했습니다.

마산지역의 상공계를 대표하는 마산상공회의소가 직접나서서 “공유수면매립이 완료되면 연 매출액 1조원에 2천명의 고용이 발생할 것”이라면서 “기업이 투자시기를 놓치면 모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고 항만청에 매립승인을 독려했습니다.

성동조선과 마산시와 체결한 약정서에는 “이곳에 선박건조시설을 갖추어 고용창출을 이바지 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마산시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약속에 따라 마산시도 성동조선 매립을 위한 각종 인허가 절차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마산만의 매립을 절대 반대하는 시민단체도 매립 자체는 문제가 있지만 당시 상황을 고려해 어쩔 수 없이 반 보 양보했습니다. 지역사회의 여론도 성동조선의 요구를 이해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마산지방해양항만청이 성동조선에게 승인한 매립허가는 이러한 과정을 거친 결과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당시와 많이 다릅니다.

성동산업은 경영상태가 나빠 이미 휴업상태입니다.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체불과 하청업체들의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쳐 지역경제에 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걸로 압니다. 사정이 이런 탓에 통영에 있는 본사는 몰라도 마산조선소는 재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중론입니다. 2천명 고용도 1조원 매출도 모두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매립할 이유도 매립할 필요도 없어진 셈입니다. 그것이 상식입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매립 목적이 기업의 땅 부족 때문이었는데, 휴업에 들어간 기업이 무슨 땅이 더 필요한지 매립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매립허가권은 소위 대원개발이라는 SPC(특수목적법인, Special Purpose Company)로 이미 넘어 갔고, 이 회사의 명의로 법적 만료일인 지난 3월 29일 항만청에 착공신고를 해 법절차를 밟았습니다.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시민단체가 항만청에 매립을 막아야한다고 하소연하자 마산해운항만청에서는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말만 반복하였습니다. 심지어 시민단체 더러 “법적기관인 항만청에서 임의로 만든 시민단체의 동의를 받을 필요는 없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본말이 전도되어도 한참 전도된 일입니다. 설령 그것이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 하더라도 매립허가과정에서 거친 지역사회와의 중요한 합의에 반하는 것입니다.

매립면허승인 과정에서 “해양환경의 보전과 지역경제의 활로 개척이라는 두 개의 중대한 공익이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정점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매립공사 착공 전까지 환경단체 및 시민단체와 지속적인 대화와 협의를 통하여 마산만 해양환경보전을 위한 실효성 있는 결과물을 제출하여야 한다”고 합의하였는데 지금에 와서 나 몰라라하는 식의 항만청 입장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 눈에는 항만청이 합법을 내세우며 특정 기업에게 공유수면 매립을 빌미로 땅장사를 인정해주는 특혜로 보일 뿐입니다.

대원개발이라는 회사는 현대자동차 계열회사인 엠코라는 건설회사가 주도한다고 합니다. 하이브리드니 뭐니하면서 친환경기업임을 내세우는 대기업이 마산 앞바다를 메워 돈벌겠다고 나선 꼴입니다.

탐욕스러운 기업과 공직자의 합작으로 ‘내 고향 남쪽바다’는 또다시 찢기고 밟히게 되었습니다. 자연이 이익의 수단으로 전락한 우리 사회의 막장돈벌이는 언제 쯤 끝이 날까요?

바다를 보호관리해야할 해운항만청이 팔짱낀 구경꾼이 되었으니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저 바다와 함께 살아야할 시민 스스로 나서서 막아낼 수 밖에.<<<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기억을 찾아가다 - 6

6. 한국전쟁기의 봉암동 Ⅳ - 징병, 피난 귀향 전쟁 나고 열흘 쯤 되었다. 낯선 얼굴을 보기 어려운 시골마을에 낯선 복장에 낯선 체형의 사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린 아직 어려 잘 인지하지 못했으나, 어른들이나 형들의 ..

건축의 외형 - ‘각뿔’ (Pyramid)

오늘의 주제는, 어쩌면 '각뿔' 이라는 우리말 보다 피라미드 (pyramid) 라는 영어 단어가 더 익숙한, 옆면의 형태가 삼각형인 입체도형을 소개합니다. - 기자 의 대피라미드 (Great Pyramid of Giza, 이집..

기억을 찾아가다 - 5

5. 한국전쟁기의 봉암동 Ⅲ - 미군들 우리들은 예사로 ‘할로’를 외치곤 했지만, 어른들이 인식은 많이 달랐었다. 특히 처녀들과 젊은 아녀자들에게 미군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어느 새댁은 야산에 끌려가 윤간당한 후 소나무에 목을..

건축의 외형 - '나선' (Helix or Spiral)

지난주의 주제였던 '구' (sphere) 에 이어 또 다른 3차원 형태 인 '나선' (Helix or Spiral)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나선 형태는 자연 속에서 규모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며, 직,간..

기억을 찾아가다 - 4

4. 한국전쟁기의 봉암동 Ⅱ - 미군들 미군들에 대한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필자의 졸저 『상식의 서식처』에서 빌어 오고자한다. 「피난처에서 돌아온 날부터 나는 참 신기한 것들을 많이 보았다. 귀를 막아야 할 정도의 굉음을 내며..

건축의 외형 - '구' (sphere)

<오늘부터 매주 목요일은 재미있게 디자인된 건축물들을 포스팅해볼 계획입니다> 건축을 이루는 요소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건축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쉽게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외형'에 ..

기억을 찾아가다 - 3

3. 한국전쟁기의 봉암동 Ⅰ- 좌익과 피난 내 초등학교 일이학년 때 팔룡산 상사바위 근처나 불암사 근처 산먼뎅이들에 봉홧불이 올라 있는 광경을 종종 보았다. 그리고 새벽에 한길에서 붉고 푸른 삐라들도 주워보았다. <팔룡산 ..

기억을 찾아가다 - 2

2. 봉암동 형성 Ⅱ 팔용산에 수원지가 건설된 것은 1930년이었다. 처음 만들었을 때는 일인 1일 급수량 170리터 기준으로 인구 16,000명을 예상하고 만들었다가 증축을 하기도 했다. 광역상수도 확장사업이 완료된 1984..

기억을 찾아가다 - 1

오늘부터 연재하는 포스팅은 마산 봉암동(현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에서 태어나 청년기까지 살았던 박호철 선생님의 기억 속에 있는 도시 이야깁니다. 한 개인의 삶에 투영된 도시의 흔적을 통해 이미 사라져 버린 우리의 과거를 찾..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 9. 신고리 5,6호기 시민참여단에게 드리는 글

원자력발전의 경제성을 이야기하면 사용후핵연료 처리비용 과소계상, 원전 해체비용과 환경 복구 비용 과소 계상 등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사고 보험 문제입니다. 자동차를 운행하면 ..

일제 강점기 신마산 혼마치(本町)

오래된 사진 한 장을 소개한다. 아래 것은 같은 장소에서 찍은 현재 사진이다. 위 사진을 현재와 비교하기 위한 사진이다. 1910년대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산 월남동 1가(현 3.15대로) 사진이다. 당시에는 혼마치(..

마산해양신도시, 대통령 말씀대로

계륵 꼴이 된 가포신항이 구체화된 것은 2001년이었다. ‘마산항 제2차 무역항기본계획’에서 20년 후 마산항 물동량이 54만 TEU가 될 것으로 예측해 성사된 사업이었다. 환경문제를 걱정하며 매립을 반대했던 시민들에게는 ‘일..

고지도로 보는 창원 27. - 칠원현 지방지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7. - 칠원현 지방지도 ● 칠원현 地方地圖/ 필사본(회화식)/ 1872 - 19세기 중반 이후 집권한 흥선대원군에 의해 1872년 제작된 지도이다. 흥선대원군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6. - 진해현 지방지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6. - 진해현 지방지도 ● 진해현 地方地圖/ 필사본(회화식)/ 1872 - 19세기 중반 이후 집권한 흥선대원군에 의해 1872년 제작된 지도이다. 흥선대원군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5. - 웅천현 지방지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5. - 웅천현 지방지도 ● 웅천현 地方地圖/ 필사본(회화식)/ 1882 - 19세기 중반 이후 집권한 흥선대원군에 의해 1882년 제작된 지도이다. 흥선대원군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