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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0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32. 벚꽃

32. 벚꽃

 

마산의 자랑으로서 벚꽃을 뺄 수 없다. 더욱 밤의 벚꽃 말이다.

타지방의 벚꽃나무 위치를 살펴보건대, 대개가 내()를 끼지 않은 평지로서 진해가 그렇고, 서울 근교의 우이동 같은 곳도 그러하며, 창경원이나 진해 해군 통제부 영내의 벚꽃 터널도 또한 평지다.

이런 곳들에 비하면 마산은 신마산 경교교반(京橋橋畔)을 중심한 천변양안(川邊兩岸)에 즐비한 벚꽃나무와 장군천 양안(兩岸) 및 마산 신사 앞 급경사 진 표리삼도(表裏參道 /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지만 원문 그대로 옮긴다)의 벚꽃나무들은 4월 중순경이면 만개된다.

이 외에 마산 중포병대대 영내 전역과 마산 부청(창원군청, 지금의 경남대 평생교육원) 경내와 부윤관사(마산시립 보육원, 지금의 마산종합사회복지관) 주변 등에 하루밤 사이의 기온에 따라 개화가 늦어지고 빨라지는데 수백 주의 벚꽃을 멀리서 조망하면 아무리 청징(淸澄)한 날이라도 아지랑이 같기도 하고, 저녁노을이 아니면 산 넘어 화재 같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의 신마산 경교교반(京橋橋畔, 지금의 대곡천변) 벚나무>

 

마산은 대체로 지세가 바다로 향해서 경사진 관계로 지방에서 오는 사람과 마산만으로 입항하는 상춘객들은 요염한 벚꽃에 황홀하다.

천변(川邊)의 벚꽃 장에는 일인들이 자기들 공장에서 생산하는 특주의 직매장을 설치하여 마치 주류 품평회를 연상케 하는데, 이 시기에는 출장식 음식점은 물론 이동식 흥행장이 가설되어 도비(都鄙)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앵객(觀櫻客)과 더불어 안비막개(眼鼻莫開)로 붐빈다.

한때는 경부선 특별 전세 열차편으로 약 8백여 관객이 하루 코스로 들이닥쳐 교반천변(橋畔川邊) 꽃밭에서 직매한 마산 명주와 가져온 도시락으로 담소화락(談笑和樂), 번잡을 이룬 때도 있었다.

벚꽃 구경은 뭐라고 해도 밤이다.

꽃철이 되면 주변에 사는 동민들은 각색 작은 전등을 가설하는데 일인들은 한자로 설등(雪燈)이라 하여 본보리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의 신마산 밤 벚꽃>

 

야경은 참으로 백화요란(百花燎爛)하여 남녀 마음도 요란하게 된다. 만개기의 밤 천변에는 아무리 도학자요, 금주론자일지라도 퍼져 앉아서 한 잔 않을 수 없으리만치 흥에 취하게 되는데,

개화해서 하루 이틀 지나면 바람 한 점 없건마는 한잎 두잎 떨어지기 시작한다.

으레 술자리나 어깨 너머로 꽃이 붙는데 어쩌다 술잔에 떨어지면 술 흥취는 더욱 솟구친다.

경교(京橋) 옆에 자리 잡은 동운(東雲), 망월루(望月樓), 탄월(呑月)같은 고급 요정 예기(藝妓)들의 가냘픈 가요에 애조를 담뿍 실은 삼매선(三昧線) 소리가 기루(妓樓)에서 흘러나릴 때 마음 없는 길손들에 일말의 애수를 느끼게 한다.

한편 천변 북쪽에는 이와 정반대로 벚꽃나무 대신 실실 늘어진 수양버들가지가 냇물에 뻗었는데 이곳은 전등이 없는 덕(?)으로 이때를 놓칠세라 밤 어둠을 타서 남녀 쌍쌍이 밀회를 즐기는데 행인들은 냉소를 머금고 통과한다.

이렇듯 즐기고 상춘객들로부터 상탄(賞歎)을 받던 꽃도 불과 며칠 지나면 차차 추한 빛을 띠우면서 낙화시가 닥쳐오면 애완객들의 발길에 짓밟히며 쓰레기로서 천대를 받는다.

유독 벚꽃만은 다른 종류의 꽃과 같이 개화 낙화의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동일 동시에 피었다가 거의 같은 시간에 떨어지는 꽃이라서 일본인들이 일인(日人) 국민성이라고 자칭하는 자도 있지만 어쩌다가 일진의 바람이나 일조(一條)의 비에 흔들리면 수만우(數萬羽)의 호(/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지만 원문 그대로 옮긴다)이가 마치 광무하는 듯한 광경을 보여준다.

이때에 경교천(京橋川)으로 낙화하는 꽃잎은 냇물의 등에 업혀 쏜살같이 멀리 또 멀리 바다로 흘러간다.

실로 낙화유정 유수무의(落花有情 流水無意) 그것이 아닌가. 나는 그대를 정이 있어 왔건마는 그대는 어이하여 무심하게 흘러 가노

한때 유명했던 마산의 벚꽃도 수령 근 50에 접어든 노목들로 약품을 뿌려 가꾸는 사람조차 없이 해방의 여독으로 무지한 폭한들의 도끼()질에 지금은 폐허가 되어 버렸다. <<<

※ 아래는 지금의 문화동 대곡천변 벚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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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1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4) - 강점제3시기

오늘부터는 1930년대 이후 마산 도시변화와 관련한 신문보도를 기사와 함께 소개하겠습니다. 간단한 기사가 대부분이지만 꽤 볼만한 기사도 있습니다.

 

1. 먼저 1931년 7월 23일자 동아일보 3면에 게재된 돗섬 관련 기사입니다.

제목은 「納涼村施設 마산 저도에」이며 기사는 「마산부에서는 여름 동안의 피서지(避暑地)로 마산부 저도리(猪島里, 돗섬)에 납량촌(納凉村)을 신설할 터이라 한다」로 되어 있습니다.

부민들을 위해 돗섬에 어떤 피서시설을 만든다는 내용인데 건물을 짓는다는 건지 해수욕 시설을 조성하는 건지 이 기사만으로는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겠습니다.  

 

2. 1933년 11월 19일자 동아일보 3면에 게재된 몽고정 관련 기사입니다.

제목은 「馬山 蒙古井 大谷博士 證明」이며 기사는 「지난 14일 성대교수 대곡(大谷)박사가 사적 연구차 내마(來馬)하여 부내(府內)의 고적을 시찰한 후 구마산 신정(新町, 현 추산동) 진주선 철교 밑에 있는 몽고정(蒙古井)을 보고 중년에 민간에서 판 것이 아닌 것을 단언하였다한다. 몽고정의 유래는 신사(辛巳)7년(일본홍안4년) 원세조 홀필열(忽必烈)이 고려국을 침략하고 일거 일본은 정약하고자 동정군(東征軍)을 금일의 마산, 당시 합포에 주둔케 하였을 때에 병졸의 음료수로 이 몽고정을 팠다고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 고려시대에 판 몽고정의 조성시기 진위여부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었나 봅니다.

 

 

3. 1934년 4월 3일자 동아일보 5면에 게재된 벚꽃 관련 기사입니다.

제목은 「南國의 花信 馬山川畔의 앵화 칠팔일경에는 만개」이며 기사는 「같은 남조선에서도 화도(花都)로 유명한 마산의 앵화(櫻花, 벚꽃)는 만개가 예년보다 7,8일 일찍 필 모양으로 금월 7,8일 경이 보기 좋으리라 하는바 금년에도 부산 대구 진주 방면의 화객들을 위하여 철도국에서는 임시열차를 운행하리라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남조선에서 화도(花都)로 유명한 마산의 벚꽃,,, 그 시절로 돌아 가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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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2 01:00

술과 꽃의 도시



《유장근교수의「도시탐방대」에 참여해, 한 때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마산의 술 공장과 벚꽃 휘날렸던 창원천을 둘러보니 일제기 ‘술과 꽃의 도시’로 명성이 높았던 ‘그 옛날 마산’이 생각나 이 글을 포스팅한다


특정한 도시를 한두 가지 단어로 정확히 규정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도시건 그 도시 특유의 자연조건과 문화조건을 이용해 한마디로 규정하기도 한다.
부산하면 항구, 진해하면 벚꽃, 춘천하면 호수 등과 같은 의미다.
이런 관점에서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경의 마산은 ‘술과 꽃의 도시’였다.


- 술의 도시 마산 -

개항 직후인 1904년 최초로 아즈마(東)양조장이 설립된 이후 꾸준히 성장했던 마산의 양조산업은 1928년에 부산을 제치고 이윽고 국내 지역별 주조생산량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현 마산의 무학소주도 일제기였던 1929년 설립한 소화(昭和)주류주식회사에 그 뿌리가 닿아, 일전에 창립8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29년에 설립된 소화주류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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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마산의 일본인 양조장>

당시 주조방식을 생각해 보면, 술의 질은 물맛과 기후 그리고 양질의 쌀이라는 세 가지로 결정되었을 텐데 마산은 그 중 하나도 모자람이 없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전부터 일본에는 각 지역마다 유명한 전통주가 많았다.
그 중 일본 효고켄(兵庫縣)의 나다(灘)지방에는 14세기경에 시작된 최고급술 나다자케(灘酒)가 있었다.
명실 공히 당시 일본 최고(最高) 최고(最古)의 술이었다」


1931년,
우리로서는 기억도 하기 싫은 만주사변을 일제가 일으켰다.
전장에 나섰던 조선과 일본의 젊은이들을 위해 공급된 술은 주로 조선 땅에서 담당했고, 조선 각지에서 생산되던 모든 술들이 공급되었다.
그런데
그 많은 술들 중 마산 술의 향과 맛이 최고라면서 마산 술을 ‘조선의 나다자케’라고 부르면서 즐겨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마산 술이 만주에 까지 명성이 높았던 것이다.                  


‘술의 도시’라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말기 바란다.
그것은 곧 마산이 맑은 물의 도시요, 기후가 좋은 도시요, 좋은 쌀이 생산되는 비옥한 땅이라는 뜻이다.
한 때 마산이 그렇게도 살기 좋은 도시였다는 자랑스러운 말이다.


- 꽃의 도시 마산 -

‘꽃의 도시’는 무슨 말인가.

그 옛날,
마산의 봄은 지금의 문신미술관 부근 환주산 일대를 비롯해 시내 전역에 벚나무가 만개하여 장관을 이루었다.
흔히 일본인을 통해 이 땅에 벚나무가 들어왔다는 속설이 있지만 그 이전부터 마산에는 벚나무가 많았다.

시내의 가로수는 경술국치 이전인 1908년에 마산이사청(현재 의미로는 시청)에서 심었는데 그 중 창원천변의 벚꽃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한다.
창원천은 대곡산에서 내려오는 하천으로 전 마산시장 관사 앞을 흐르는 하천이다.
현재 문화동인 이 일대의 지명을 사쿠라마찌(櫻町, 벚나무동네)라 불렀으니 벚나무의 위세를 알만하지 않은가.

‘술과 꽃의 도시’ 마산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자료로 1937년 마산부가 만든 관광홍보용 리플렛 「관광 마산」의 표지가 있다.

거기에는 마산을 둘러싸고 있는 무학산과 마산앞바다, 그 가운데 두둥실 떠있는 돝섬, 그리고 마산만을 통해 일본을 오가던 큰 배들이 그려져 있다.
바로 그 옆에 명주(銘酒)라고 적힌 일본식 술통과 함께 흐드러지게 만개한 벚꽃을 묘사하여 마치 마산을 꿈의 이상향처럼 소개하고 있다.


                    <1937년 마산부가 제작한 리플렛 '관광의 마산'>


일제기 마산에서 활동을 많이 한 일본지식인 추방사랑(諏方史郞)은 당시 마산의 술과 꽃을 찬양하며 노래하던 시구(詩句)를 기록으로 남겼다. 일본인들이 부른 노래라 달갑지는 않으나 당시 마산의 분위기를 알 수 있어 소개한다. 번역은 경남대 배대화교수가 하였다.

꽃의 마산이냐 마산의 꽃이냐            花の馬山か 馬山の花か
가을 깊어가는 달의 포구                  秋は冱えたる 月の浦

술의 마산이냐 마산의 술이냐            酒の馬山か 馬山の酒か

꽃도 술술 피어나고 물은 용솟음치네  花もさけさけ 水はこんこん


                            <1929년경 창원천가에 만개한 벚나무>

『마산현세록』이라고, 일본인이 쓴 책이 있다.
1929년에 간행되었는데 그 목차에「술의 마산」과 「꽃의 마산」이라는 항목이 들어있어 ‘마산의 술과 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
당시 창원천 벚꽃은 4월 7일경부터 피기 시작하여 10일-11일에 70% 개화(開花)하고 13일-14일부터 만개하여 17일-18일경까지가 절정이었다.
특히 창원천의 맑은 물 위에 떨어져 흘러내려가는 낙화가 일품이었다고 적혀있다.

이 절경을 구경하기 위해 매년 4월 10일을 전후해 부산 대구 대전 서울 등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임시열차까지 운행되었다고 한다.
1930년대 마산의 봄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시내 전역이 붐볐다.
진해 벚꽃보다 수 십 년 전의 일이다.

맑은 물, 맑은 공기, 아름다운경치.
이 도시의 자랑은 영원히 지나가버린 한 순간의 우연이었을까?
다시 되돌릴 수는 없을까?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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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03 20:1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잘 읽었습니다.

    • 허정도 2009.11.03 23:21 신고 address edit & del

      방문 감사합니다

  2. 노상완 2010.03.22 20:5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그곳이 창원천이라는 걸 오늘 알았습니다...하천 상류에 있는 다리가 月見교 경교 월남교
    마산교 순으로 되어 있던데...(중간에 다리가 하나 더 있나? )

    지금 하천 주변의 벚꽃은 너무 초라하게 생명을 이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도심의 쌈지터를 많이 사랑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허정도 2010.03.23 08:31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창원천 외에 대곡천 등 명칭이 몇개 더 있었습니다.

  3. 우의영 2012.06.10 23:3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간장도 유명하죠??

    • 허정도 2012.06.11 14:17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럼요, 간장도 유명했습니다. 지금의 몽고간장도 일본인이 경영하던 야마다장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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