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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4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66. 마금산 온천 67. 행려병자 수용소

66. 마금산 온천

 

창원군 북면은 멀리 문창군(文昌郡) 관할, 그 다음으로 회산군(檜山郡)으로 개칭하였다가 이조 말엽에 창원부에 속한 곳이다.

여기에 마산 근교의 유명한 온천이 있었는데 이조 초에는 약수온천이라 하여 환자의 왕래가 부절(不絶)함에 따라 여인(旅人)을 수용할 숙소가 없던 그 시절이라 부득이 무료 민박의 폐단이 심한 관계로 지방민들과 상의 끝에 온수구(溫水口)를 매몰하여 버렸다.

이것을 안 엿장수 한 사람이 극히 소규모의 수원(水源)을 발굴하고 엿을 사는 환자에 한하여 목욕과 음복수(飮服水)를 제공해 왔다.

여기에 착안한 마산부 선정(扇町, 현 반월동)에서 치과의 겸 총포화약상을 하던 일본인 여창(與倉) 모가 엿장수에게 대단히 헐값으로 권리를 인수하여 정식으로 수원을 착굴하여, 얼마 안가서 마산병원을 경영하던 구대의학사(九大醫學士) 덕영오일(德永吾一)이 재인수하였다.

1924년 경 총독부 기술자를 초청하여 극비리에 다른 곳에는 수원이 절무(絶無)하다고 선포하고, 외인의 침투를 방어하기 위해 온천 근거리의 수만 평을 매수하여 종전까지 독점 경영해 왔던 것이다.

 알고 보면 과거에도 온천이 몇 군데 있었다 하니, 지금이라도 전문기술자로 하여금 시굴(試掘)하여 수맥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를 상상하면, 마금산 일대는 일약 온천부락으로서 급속히 번영될 것이며, 뜻이 있는 자라면 절호의 기회가 아닐는지?

당시 총독부 기술자의 수질 성분을 발표한 것을 보면 라디움, 망간, , 유황 등 수종의 원소가 함유되어 있다고 했다. 효능에 있어서는 신경통, 루마티스, 마비, 피부병, 부인병 등에 특효가 있다고 하며,

온천은 그 당시엔 38.9도로서 약간 미온(微溫)한 흠이 있었으나 수년 전에 지하 깊이 보오링을 한 결과, 지금은 섭씨 41도라고 하는데 종전 2년 전에는 일본 해군당국에서 상이해군 수용소로서 접수 계획까지 세웠던 것이라 한다.

거리는 마산-온천간 22, 온천-창원역간 14, 온천-진해간 32, 온천-부산간 72이다.

 

<1937년 발간된 '관광의 마산'에 실린 마금산온천장>

 

 

67. 행려병자(행려병자) 수용소

 

돈도 없고 병까지 난 행려병자를 수용 보호하기 위해서 마산부 자선사업의 하나로 중학교(현 마산고교 뒤 완월 공동묘지) 입구 양지 쪽에 온돌방을 들인 목조 단층건물을 지었다.

그런데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할 행려병자는 가뭄에 콩나듯이 극히 드물고 걸인과 부랑배들이 진을 치고 우글거리기도 했다.

무료한 수용소지기는 수용소가 인가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기화로 도박꾼을 불러들여 노름판을 벌인다, 데라를 뜯는다 법석이더니 끝내는 개도독들의 집단처가 되고 말았다.

남의 집 개를 밀살(密殺)하여 시내 소위 보신탕을 한다는 개장국 집과 늘 은밀히 거래를 하여 애견가들을 노하게 만들어 지탄을 받던 것으로서 지금은 무엇을 하는 곳이 되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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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4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3) - 강점제3시기

'관광 마산'에 소개된 사진 중 마지막 석장입니다.

53. 자안지장(子安地藏)

자안지장에 대해서는 처음 접하는 분이 많을 것 같아서 우선 관련 글 한편 소개합니다. 『약진 마산의 전모』에 실린 글입니다. 

"구강(마산 팔용산 수원지 내지 산호리 일대) 광천 쪽으로 가는 왼쪽으로 상당한 급경사의 산길을 약 1시간 가량 올라가면 자안지장을 안치해놓은 곳에 다다르는데, 거암 아래의 안쪽에 안치된 지장불 근처에는 송송 맑고 정결한 물이 샘솟는다. 전설에는 이 거암을 '상사암'이라 부르는데, 남녀가 서로 연모하였으나 결국은 부부가 되지 못했다면 뱀으로 변하여 연인을 마음대로 희롱하기 때문에 이 바위 위에 앉혀서 주문을 외우게 했고, 그렇게 해보아도 효과가 없을 때에는 두 사람 모두를 공물로 바친다고 전한다. 이곳을 다녀온 사람은 이 바위를 쳐다보고서 당시의 감회를 노래한다고도 전한다."

이 글과 사진의 암벽 형태를 보면 아마 팔용산 상사바위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부산일보(지금의 부산일보와 다른 일본어 신문임) 1934년 9월 28일자「盤龍山 子安地藏の供養」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는 걸로 보아 상당히 유명한 기도처 였던 것 같습니다. 자안지장은 임산부의 순산이나 아이를 축복하는 불교의 보살인데 일본사람들이 많이 찾습니다.

아래 사진은 팔용산 상사바위와 그곳에서 암벽등반 훈련을 받는 장면입니다.

 

54. 봉암리 온천 봉선각

지금은 잊혀진 일이 되었지만 당시에 마산 봉암동 일대에 광(鑛泉)이 있었고, 몇 채의 여관이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곳이 봉선각이었는데, 이곳에서는 마산만 전경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었다합니다. 해방 이후까지 존속했던 여관니다.

이와 관련한 목발(目拔) 김형윤 선생의 『마산야화』기록입니다.

"오래 전 이곳에 사기그릇을 굽는 곳이 있었다 하여 이곳을 사기점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근방에는 옛날부터 약수터가 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즐겨 마셨는데, 어느 날 등천(藤川)이라는 일본인이 불법 점령한 후 엉터리 분석표를 제시하며 거기다가 불로관(不老館)이라는 여관을 짓고 신령광천(神靈鑛泉)이라는 이름으로 약물 한 잔에 얼마씩 돈을 받기도 했다. 그후 일본식 여관 구주관(九州館)과 요정이자 여관이기도 했던 선각(蓬仙閣)도 들어섰다. 가장 나중에까지 남아있었던 것은 봉선각이었다."

 

55. 마금산 온천장

지금의 창원 북면 온천장입니다. 이 온천의 경영자는 당시 마산병원 원장이었던 덕영오일(德永吾一)이었습니다. 사진에 나오는 이 건물은 2-30년 전까지 존재했었습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마금산 온천수는 류마치스, 신경통, 외상, 피부병, 자궁병 등에 효험이 많았다고 합니다. 수온은 약 42도 였으며 전국에서 이용객들이 많이 왔다고 합니다.

『마산야화』에 의하면, "이곳은 부터 약수온천이라하여 이름있는 온천수가 나왔지만 온천수를 찾는 환자들이 묵을 수 있는 숙박시설 등이 없어서 민박을 하게되었고 이로 인한 민폐 때문에 부득이 온수구를 매몰하였다. 이 사실을 안 한 엿장수가 다시 조그마한 수원을 찾아내 엿을 사는 환자들에게 목욕과 음복수로 제공하였다. 이 소문을 마산 반월동에서 치과의원과 총포화약상을 하던 일본인 여창(與倉)이 전해 듣고 헐 값으로 권리를 인수하여 본격적으로 수원을 발굴하였으며 그 시설 모두를 마산병원 원장 덕영오일이 인수하였다. 1924년 총독부 기술자를 초빙하여 이곳에만 온천수가 나온다는 독점권을 보장 받아 경영하였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난개발된 북면온천의 지금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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