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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3 00:00

러시아 탐방기 1. - 러시아의 征東行省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러시아 탐방기 1. - 러시아의 征東行省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여행 개요

지난 7월 15일부터 25일까지 창원지역에서 도시건축에 관계하는 분들과 러시아 동부권을 여행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사실은 세부일정도 잘 모르고, 막연하게 시베리아 대륙횡단 열차를 탄다는 것에 대한 엉뚱한 환상(?)을 가지고 합류하게 되었다.

전체 일정은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2일 정도 시티투어를 하고, 시베리아 대륙횡단열차를 3일간 타고 러시아 동부 시베리아의 중심도시인 이르쿠츠크까지 4108Km를 타는 여정이었다. 이르쿠츠크에서는 바이칼 호수에 접근하기 좋은 곳으로 시베리아 횡단철도 전 구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바이칼 호수 내의 올흔(Olkhon Island)에서 2일을 걸쳐 바이칼 호수를 관광하고 다시 이르쿠츠크에서 시티투어를 3일 하는 코스로 진행되었다.

이번 탐방기는 크게 4개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소개하려고 한다.

러시아 탐방기 1. - 러시아의 征東行省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러시아 탐방기 2. - 체험 삶의 현장 시베리아 대륙횡단열차

러시아 탐방기 3. -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호수

러시아 탐방기 4. -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블라디보스토크 도시 현황 및 개요

- 입지 및 도시현황 : 블라디의 위치는 북한지역 동북단 경계지역인 두만강 경계에 면한 러시아 영토로, 행정권역상 연해주(프리모르스키)의 행정중심도시이다. 또한 대륙에서 동해에 면하여 남측으로 반도형태로 돌출되어 있으며, 외해는 포트르대제만에 면해 있으며, 반도의 좌우측에 아무르만(Amur Bay)과 우수리만(Ussuri Bay)의 내해에 면한 지역이다. 반도를 통과하는 중간지역에는 율리시스만(Ulysses Bay)으로 부르고 있다.

- 율리우스만에서 다시 북측방향으로 깊숙한 곳에 면한 곳이 중심시가지 다운타운이며, 이곳을 금각만(Golden Horn Bay)라고 부른다. 중심시가지는 이 만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현수교에 의해 남북지역에 나누어져 있는데, 남측만은 주로 항만시설 위주이며, 북측만에는 연안여객터미널과 철도역(시베리안 대륙횡단열차 출발점) 및 중앙광장 등 주요 공공시설들이 밀집해 있었다.

 

 <도시개요> : Loney Planet 시베리아 횡단철도. 주)안크라픽스. 2016

- 러시아 극동의 군사기지이며 프리모르스키 지방(연해주)의 행정중심지이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시발점이며,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의 문호이다. 인구는 2013년 기준으로 60만3천명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중화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 세 나라의 국경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며 개인 사업과 국제 무역, 관광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 도시의 첫 인상은 ‘러시아의 샌프란시스코’이다. 만이 펼쳐져 있고 그 위로는 산이 높이 솟아있는 굉장히 매력적인 도시이다. 특이 부두가 늘어서 있는 金角灣(Golden Horn Bay)이 아름답다. 새로 지은 아파트, 100년이 넘은 대저택, 구소련 시대의 주택단지 등이 공존하는 이곳을 자세히 둘러보면 다소 음울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여정을 시작하거나 마무리하기에 매우 좋은 곳이다.

- 1860년 건설된 블라디보스도크(동방정복 : Rule of East이라는 의미)는 1872년 해군기지가 되었다. 1891년 니콜라이 2세 황태자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착공식을 위해 이곳에 방문했다. 전 세계에서 온 상인, 투자자, 선원 등으로 북적였던 20세기 초의 블라디보스토크는 모스크바 보다는 홍콩과 더 비슷한 도시였다. 시민의 5분의 4가 도시 건설에 동원된 한국인과 중국인이었다.

- 1904~1905년 러일전쟁 때 아서항(Polr Arthur)이 일본에게 넘어간 후, 블라디보스토크의 전략적 중요성이 더욱 증대되었다. 볼세비키가 유럽러시아을 장악했을 때 제정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일본, 미국, 프랑스, 영국에서 이곳으로 지원군을 보냈다. 반혁명세력의 최후의 보루였으나 1922년 10월 22일 소비에트 군대가 도시를 장악했다. 1958년부터 1992년까지 폐쇄되었다가 1990년대 다시 큰 주목을 받으며 개방되었다.

- 중앙러시아와 블라디보스독 항만도시를 연결하는 시베리아철도가 개통(1891~1916)되면서 도시의 경제적 역할이 증대하였다.

 

여행 스케치

7월 14일 금요일 합성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인천공항행 심야버스를 탔다. 새벽 0시 20분에 출발한 버스는 새벽 5시도 채 되기 전에 도착하였다.

대합실에서 잠시 눈을 부치고 보니 7시쯤에 일찍 발권을 하고, 공항대합실의 모닝캄 회원 전용 라운지에서 아침과 목욕을 마치고 10시 10분발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동해를 거쳐 3시간 정도 경과하여, 동토의 땅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게 되었다.

위도가 높아 추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더운 날씨다. 긴장된 마음도 같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사진을 통해 여행스케치를 풀어보려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 도착 기념 촬영, 설레는 기분이 표정에 잘 드러나고 있다.>

(주요 도시경관) 

< 남북섬을 연결하는 현수교가 이 도시의 랜드마크!>

< 건너편 남항일대에는 주로 항만시설만 배치되어있다.>

<북항의 동측부분은 여객터미널, 역사와 같은 공공시설이 주로 배치되어 있다.>

(공동주택들)

 

< 건물의 길이 제한이 없는 것 같다. 성벽처럼 큰 블럭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에 지은 고급아파트 :  고층건물에 외벽면이 적벽돌로 마감되어 있다. >

(극동대학교, Far Eastern Federal University) :  2012년 에이펙(APEC) 정상회담이 열렸던 장소로 유명한 곳입니다.

<본관건물 : 건물 디자인이 별로~~, 셰계화 영향으로 어디서 본듯한 느낌>

<캠퍼스 배치도 : 하나의 대학도시를 형성하고 있는 엄청난 규모>

(잠수함 박물관) : 해군기념 성당 앞에 설치된 실제 잠수함

<썩어도 준치라는 말은 잠수함에 딱! 어울림 : 죽어서는 박물관으로~~>

<실내 공간은 예상보다 큰 편임 : 생전의 전과에 대한 기록들이 정리되어 있음>

<조정실에서 : 뭔가 신중하게 물어보고 설명하고 있음>

(해군성당 : Naval Church-Cathedral) : 러시아 정교회는 로마카톨릭과 달리 동로바 정교(동방정교)를 받아들여 러시아 정교로 토착화한 종교이다.

<외관 : 지붕에 양파모양의 돔이 러시아 정교회의 특징이다. 규모에 커지면 돔의 개수도 다양한 형태로 늘어난다.>

< 미사 중인 실내 모습 :  좌석없이 서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규모가 적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니콜라이 2세 순행기념상 앞에서 : 대륙횡단철도 기공식에 참석차~>

(소비에트 광장에서 : 어디든 광장과 동상은 제국주의의 산물인 듯~  )

 

(율부린너 생가 앞 동상에서) : 폼은 율부린너 처럼~, 어째 포스가 부족 ~

 <꽃 단장한 조랑말. : 알록달록한 장식이 얘들을 대상으로 한 듯~>

< 완벽한 조합 : 보드카와 맥주 폭탄주와 러시아산 킹크렙의 만남>

● 블라디보스토크 이미지

: 해군 군항에서 최근에 개방된 항구도시로서 우리의 진해와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대체적으로 도시시설들은 쇠락한 편이었으며, 최근에 건립한 현수교가 인상적이었다. 곳곳에 남아있는 광장, 동상, 군 관련시설들을 보며 제정러시아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으나, 가장 좋았던 것은 러시아산 킹크렙의 가격이 아주 괜찮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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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3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137. 노·일(露·日) 마산포 경영

 

137. ·(·) 마산포 경영

 

 

·(·) 양국인의 마산포 경영에 대하여서는 일본 외교문서 제33권에 당시 마산 일본 영사 판전중차랑(坂田重次郞)이 일본 외무대신에게 한두 가지의 보고 즉 마산포에 있어서 노국간의 경영 비교의 건(19001130일자)에 있다.

 

여기서는 이를 중심으로 기타를 참고하면서 노일 양국 간의 마산포 경영을 비교해 본다.

 

노국 측이 조선 측과 율구미호약(栗九味互約)’을 맺고 율구미 소유지 교환문제로 노일 외교가 무르익어가고 있을 때 노국 상인들의 마산포 진출과 아울러 그 상업 경영도 한창이었다.

 

190081일 현재 노인(露人) 또는 노국 세력을 배경으로 한 사람들과 기타 외국인이 마산포에 온 지주 또는 상인들로서 그 상업 자본가는 우라지밀 미센코, 도부잔산스키, 긴스불그 상회, 휴우고 아이 두우벤, 원빈(原彬), 마릭크스 베히틴, 리푸렌치프 및 멤스 기타 외국인 지주로는 렛스나(墺人. 오스트리아인) 1(), 보헤팅 하우스(獨人) 4, 영국상회 홈링가 2, 구레이(美人) 1구 등이 있었다.

 

<현 월포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던 마산 러시아 영사관>

 

 

이 같은 사람들의 마산포의 상업적 활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라지밀 미센코 ; 마산 각국 조계지에 있어서 대지주의 한 사람으로 처음은 12구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를 점차 노국(露國) 상인에게 전매하여(190081일 현재) 7구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밖에 월영동 배후 지대에다 조선인으로부터 3만 평방미터의 산지를 250원으로 구입했다. 이가 토지를 구입하는 목적은 자가 부지 외에는 오로지 전매를 목적으로 하는 투기적인 것이었다.

자가로는 각국 조계지에 아연 함석의 지붕으로 된 가옥 1동을 건축하여 처자와 함께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의 목적은 토지 전매와 아울러 노국 군함에 대한 용달(用達)과 승무사관(乘務士官), 수병들에 잡화와 음식물의 소매를 하였고, 그 외 조계지의 토목건축 공사 청부에도 야심을 갖고 있었다.

 

도부잔산스키 ; 월영동과 자복동과의 중간인 작진등(鵲津嶝) 언덕에 있는 노국의 매수지를 빌려 중국인 직공을 고용하여 벽돌 제조업을 시작했다. 이때 주택도 없이 천막 내에 기거하며 경영은 어려웠다. 전기(前記) 미센코로부터 조계 내 3지구를 매수하고는 집을 세울 양으로 있었다. 그는 중국인 직공의 증고(增雇)를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 가 있었다.

 

긴스불그 상회 ; 이 상회의 본사는 일본 장기(長岐)에 있었는데 동청(東淸) 철도회사(부산) 아젠트 호버라는 자가 대리인으로 일을 보았다. 이 상회는 조계지에 있었으며 대지주였다.

 

휴우고 아이 두우벤 ; 오국인(墺國人)이나 동청철도(東淸鐵道) 회사(부산) 사람으로 그 계통은 노국(露國)에 속했다. 그는 마산포 각국조계지 지구의 총 중매인이라 일컬을 수 있어, 처음부터 사들인 지구는 무려 36가구에 달했다.

그 뒤 노국 또는 그 계통인에게 26구를 팔아넘기고 8구는 자기 명의로 남아 있었다. 그는 늘 부산에 머물고 있었으나, 수지가 맞는다고 느껴 쌀을 사들여 여순(旅順)이나 블라디보스토크에 보내고 생우(生牛)를 사서 판매도 하는 한편 노국 상인들에게 석탄도 판매했다.

그는 또 부산-마산 사이의 정기 항로를 계획하는 등 무척 돈벌이에 몰두했었다.

 

마릭크스 ; 불국인(佛國人)이나 노국 세력으로 장기(長岐) 신디게이트의 중견인이었다. 그도 조계지 내의 토지를 사들인 대지주였다.

 

라프렌치프 ; 동청철도(東淸鐵道, 원산)로 마산 각국 조계지 내에는 겨우 1구를 갖고 있었는데 일본인 소유구를 매수하려고 애썼으며 가옥 건축도 계획하고 있었다.

 

이상은 190081일 현재 노국을 비롯한 기타 서구 상인들의 마산포 경영 상황이다.

다음은 일본 상인의 마산포 진출과 경영 상황을 보련다.

 

일본 당국 매입한 지소(地所) 11구와 우편국 부지 6구를 제외하면 그 소유는 겨우 12구에 불과했다.(서구측 소유는 총 50)

이때 그들 손으로 조계지 내에 세운 건물은 두 집뿐이었다.

 

조계지의 토목공사청부인 팔두사직길(八頭司直吉)이란 자가 가진 20평짜리 단간 집과 또 한 집은 노국 군함에 용달상(用達商)을 하던 강본 용(岡本 勇)이라는 자가 가지고 있는 2층 집이다.

 

이 무렵 일본 거류민 중 십중팔구는 소자본으로 잡화의 소매인들이었다. 이들은 조선인과 어울려서 살려고 조계지에서 10리나 떨어진 구마산포에 있었다.

 

이 같은 노·일 양국 상인들의 마산포 경영 상황에서 일본 영사 판전중차랑(坂田重次郞)은 일본 외무대신에게 보고하면서 자기 의견을 아래와 같이 구신(具申)한 것이다.

 

……의당 경제상으로 보면 무역으로는 아직 볼만한 것이 없고, 거기다가 세관(稅關)까지도 옮기지 않아 오늘의 마산포에서 조급한 계획으로 부질없이 거액의 자본을 들여 지소를 매입하며 가옥을 건축하여 물건을 진열한다 해도 도저히 수지가 맞을 리 없다.

그런데 지금 노인(露人) 거류지에서 하고 있는 바를 보면 언제 이용할 수 있을지도 예측하기 어려운 토지에 대해 대단한 돈을 뿌리는데 원가 백원인 토지에다 무려 1만원의 거액을 의심치 않고 투자하고 있다.

또 무인(無人)의 마산포에 속속 가옥을 건축하고 벽돌 제조업을 개시하는 등 그 행위는 의심할 바가 많다. 그들은 거액을 들여 얼마간의 이익을 볼 때까지 앞으로 얼마만한 자본을 어느 때까지 투입할지 예측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1(一厘)도 수입을 못 보면서 단순히 지출뿐으로 수년을 계속하는데 앞으로 얼마를 지탱할지 보통의 정리(定理)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어떤 특수한 이유가 있을 것인즉 그들의 마산포 경영에 대하여는 자연히 두 가지의 추정을 하는 것은, 기일(其一)은 노국 정부의 보호이며 기이(其二)는 이들이 마산포에 상업상의 중요성을 둔데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 점 모두(冒頭)에 기술한 본년(本年) 311일자 기밀 반공신(半公信) 및 동원 22일자 기밀본(機密本) 26호에 있어 진언한바 있거니와 노국은 마산포 또는 그 부근에다 군사적 대 계획을 완성할 것을 기하는 동시 이와 관련하여 마산포를 노국 이익선(利益線)의 기점으로 하려는 것으로 생각한다.

 

즉 조선해협에 있어 부산이 가지는 역사와 상업은 도저히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마산 방면에다 조영물(造營物)의 수요품 매도를 시작하면서 조계지에 상업을 육성하고 한편으로는 무비(武備)를 강구하는 동시에 장차 여기를 근거지로 삼고 부산에 대항하고 그 이익선의 확장을 도모하려 한다.

그들은 제1회 공매 때에 조계지에 있어 적지 않은 토지를 매입한 것과 같은 것은 오로지 이런 의미에서의 준비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이 같은 사실은 노국 상인들이 정부 당국에서 직접 간접 보호를 받을 뿐 아니라, 군사적 성공을 빌면서 마산포의 미래의 상업적 번영을 마치 블라디보스토크이나 여순(旅順)과 같이 알고 있는 것이니 즉, 현재의 엄호(掩護)와 희망을 믿고 자본을 투입하는데 의심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할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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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9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 - 개항기


<마산개항의 배경>

한국 개항의 효시인 부산에 일본단독조계가 설치된 이후 전국의 여러 도시에 조계(租界)가 계속 설치되었습니다.

1876년 부산에서 시작된 조선의 개항은 1880년대에 원산·인천·서울(*)·용산(*)·경흥(*), 1890년대에는 진남포·목포·평양(*)·마산·군산·성진, 1900년대에 들어 의주(*)·용암포·청진까지 모두 15곳을 개방하였습니다. (*)표는 개시장(開市場)입니다.

아래 그림은 전국개항장의 위치도(1890년대 이전 , 1890년대 , 1900년대 )입니다.



다음 사진은 대표적인 개항도시였던 인천개항장의 근경(위) 및 부산개항장의 원경(아래)입니다.




1890년대에 접어들자 조선은 강대국들의 이권쟁탈외교 각축장이 되어갔습니다.
특히 철도․광산․은행․통신․어업 등에서 이권을 독점하기 위한 경쟁이 격렬했고, 이러한 왜곡된 외교정세 때문에 국내 사정은 점차 악화되어 갔습니다.

대한제국 정부는 이런 상황을 조정하는 한편 경제적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강제로 개항장이 된 부산․원산․인천과 달리 1897년에 자발적으로 목포와 진남포를 개방하였습니다.
단독조계를 두었던 과거와 달리 목포와 진남포에는 각국공동조계지 만을 두어 열강들의 상호견제로 인한 세력균형 속에서 실익을 도모했습니다. 
하지만
대한제국 정부의 이런 의도와는 달리 목포와 진남포에 설치된 공동조계에서 러시아와 일본의 토지이권다툼이 노골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마산포는 그로 부터 2년 뒤인 1899년에 군산․성진과 함께 개항되었습니다.
마산.군산.성진
 개항은 앞의 목포․진남포와 같이 외견상으로 자발적이었고 그 형식과 절차도 목포.진남포와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개항이 결정되기까지 마산포를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의 세력다툼은 목포와 진남포보다 더욱 치열했습니다.

개항직후인 1900년에 제정러시아 대장성이 발행한『조선에 관한 기술(記述)』에서 ‘마산포와 군산을 일찍이 영국에서도 장래성 있는 항구라고 평가했다’ 고 하면서 군산만(群山灣)은 자연적인 조건이 편리하지 못한데 반해 마산포는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마산항의 상세(商勢)와 입지를 극찬하고 그들이 일본보다 마산항을 선점해야하는 당위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산포는 부산에서 서쪽으로 60베르스트(verst, 핀란드의 옛단위, 1베르스트는 0.6641마일 또는 1.069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래 전부터 조선의 남쪽에서 가장 활발한 상업지였다.
외국상업을 위해서 개방되자 이로 인해 현저한 타격을 받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부산과 함께 상당한 양의 무역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조건이 우세하여 개항 이후 현재 부산항에 위협을 주는 경쟁지로 되었다.
만약 부산에 커다란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일본인들이 지금의 우세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다면 심지어 부산의 모든 상업상 가치를 빼앗아 버릴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각은 단지 러시아뿐만 아니라 19세기말 모든 제국주의국가들에 깔려있었던 마산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마산 개항에는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이를 견제한 '일본의 대륙정책'이 많은 작용을 했습니다.

'러시아 남하정책'은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한반도 남쪽에 부동항(不凍港)을 건설하여 자국의 블라디보스토크과 중국 요녕성의 여순을 해상으로 연결하려고 했던 정책입니다.

'일본의 대륙정책'은 이와 같은 러시아의 해양세력 확장계획에 대한 견제와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향한 자국 세력 확장을 위한 거점으로서 마산포를 수중에 넣으려한 정책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러시아와 일본 두 나라 각축의 먹잇감이 마산이었습니다.<<<



2010/04/0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여는 글)
2010/04/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 - 통일신라 이전
2010/04/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 - 통일신라시대
2010/04/2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 - 통일신라말기
2010/05/03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4) - 고려시대
2010/05/10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 - 고려시대
2010/05/1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 - 고려시대
2010/05/2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 - 고려시대
2010/05/31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 - 고려시대
2010/06/0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 - 고려시대
2010/06/1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 - 조선시대
2010/06/21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 - 조선시대
2010/06/2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 - 조선시대
2010/07/05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 - 조선후기
2010/07/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 - 개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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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연재하는 포스팅은 마산 봉암동(현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에서 태어나 청년기까지 살았던 박호철 선생님의 기억 속에 있는 도시 이야깁니다. 한 개인의 삶에 투영된 도시의 흔적을 통해 이미 사라져 버린 우리의 과거를 찾..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 9. 신고리 5,6호기 시민참여단에게 드리는 글

원자력발전의 경제성을 이야기하면 사용후핵연료 처리비용 과소계상, 원전 해체비용과 환경 복구 비용 과소 계상 등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사고 보험 문제입니다. 자동차를 운행하면 ..

일제 강점기 신마산 혼마치(本町)

오래된 사진 한 장을 소개한다. 아래 것은 같은 장소에서 찍은 현재 사진이다. 위 사진을 현재와 비교하기 위한 사진이다. 1910년대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산 월남동 1가(현 3.15대로) 사진이다. 당시에는 혼마치(..

마산해양신도시, 대통령 말씀대로

계륵 꼴이 된 가포신항이 구체화된 것은 2001년이었다. ‘마산항 제2차 무역항기본계획’에서 20년 후 마산항 물동량이 54만 TEU가 될 것으로 예측해 성사된 사업이었다. 환경문제를 걱정하며 매립을 반대했던 시민들에게는 ‘일..

고지도로 보는 창원 27. - 칠원현 지방지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7. - 칠원현 지방지도 ● 칠원현 地方地圖/ 필사본(회화식)/ 1872 - 19세기 중반 이후 집권한 흥선대원군에 의해 1872년 제작된 지도이다. 흥선대원군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6. - 진해현 지방지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6. - 진해현 지방지도 ● 진해현 地方地圖/ 필사본(회화식)/ 1872 - 19세기 중반 이후 집권한 흥선대원군에 의해 1872년 제작된 지도이다. 흥선대원군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5. - 웅천현 지방지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5. - 웅천현 지방지도 ● 웅천현 地方地圖/ 필사본(회화식)/ 1882 - 19세기 중반 이후 집권한 흥선대원군에 의해 1882년 제작된 지도이다. 흥선대원군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