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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7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01) - 강점제3시기

<도로망패턴 정리 및 분석>

원마산의 도로는 1910년까지 자연발생적 세도 밖에 없었으나 1910년대 들어서 근대식 도로가 격자형으로 조성되기 시작하였고, 이와 함께 해안에 매립도 시행되어 짧은 기간 동안 급격한 도시구조변화가 진행되었습니다.

도로망의 패턴은 매립을 하면서 조성된 도로와 자연취락 내에 신설된 도로의 축(軸)이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서로 상이하였습니다. 도로망의 패턴이 일정한 체계를 갖추어 발달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도로를 확장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또한 초기의 도로망에 비해 후기에 갈수록 도로망 개설 영역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으며 강점 말기에는 기존 원마산 시가지 전체가 격자형 도로망 구역 내의 영역으로 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해안의 매립지는 직사각형 격자형 도로망이 뚜렷이 그 형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음은 도시 전체의 중심가로망 변화를 나타낸 그림이다.

개항 직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신마산의 격자형도로가 마산에 나타난 최초의 근대식 도로였으며 부정형의 세도(細道)밖에 없었던 원마산에는 1910년대 중반에 격자형도로가 개설되었습니다.

그러나 강점기 동안 지속적으로 시행된 도로 개설 사업으로 1945년 당시에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도로망과 유사한 패턴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마산의 도시구조는 남북으로 긴 세장형의 해안지역이라는 자연조건, 즉 단축 경사면과 장축 해안평지의 조건과 공간적으로 남북 단부에 두 도시가 자리 잡은 탓에 위 그림처럼 두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가 중심가로를 이루는 선상구조로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10년 직후 원마산과 신마산을 연결하던 도시의 중심가로인「장군로」가 개설된 것과 1930년대 들어서 해안을 따라 남북축을 잇는 제2의 중심가로인「해안로」, 그리고 산지의 허리를 지나는「고운로」가 모두 이 영향으로 조성된 것입니다.

위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듯이 1945년 기준으로 마산의 도로망 패턴은 두 도시중심부를 연결하는 두 개의 강력한 중심가로와 동일 축의 보조가로까지 조성되어 모두 세 개의 남북축 가로로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 중「해안로」는 원마산과의 접점에서 도로의 축성(軸性)을 상실하였으나 내륙의「장군로」는 도로의 방향성은 변경되지만 노선(路線)의 흐름은 북쪽 방향으로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마산의 중심가로망은 마타(Soria Y. Mata)가 주장한 선상(線狀)도시(Linear City)로 적용할 수 있는 세 가지의 예 중 ‘두 도시를 연결하는 형’의 구조와 유사한 형태입니다. 따라서 도시의 교통체계, 즉 중심가로의 패턴으로 그 유형을 구분해 본다면 마산은 선상(線狀)도시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 ; 1882년 스페인의 실업가이자 기술자였던 마타(Soria Y. Mata, 1844-1920)는 도시의 교통문제에 관심을 두고 독자적인 ‘선상도시(Linear City)’를 제안하였는데, 그의 계획목적은 교통시간을 단축하여 도시의 교통문제를 해결하고 다이내믹한 개발과 기능적인 성장을 도모하며, 공정한 토지분배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형태의 적용 예로서 ①기성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환상형 ②두 도시를 연결하는 형 ③미개발지역에 건설하는 신도시형 등 3가지로 구분하였는데 1892년에는 마타가 설립한 마드리드 도시개발회사에 의해 마드리드 교외에 궤도와 주택지의 경영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선상도시가 실제로 건설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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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3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9) - 강점제3시기

<도로망 패턴>

도시는 교통망, 즉 도로를 중심으로 배치․형성되며 이들 도로의 얽힘 상태를 일컫는 것이 바로「도로망 패턴」입니다.

도시의 형태 구성은 크게 방형상형(方形狀型)․대상형(帶狀型)․방사환상형(放射環狀型)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들 세 가지 도시의 도로망 구성을 보면 방형상형은 격자(格子)와 장방형(長方形), 대상형은 선상(線狀), 방사환상형은 방사동심원형(放射同心圓形)입니다.

다음 그림은 현대도시계획의 선구자로 불려지는 소리아 이 마타 (Soria Y. Mata)가 1882년 제안한 선상도시입니다.

 

 

도시의 형태가 특정한 양식으로 결정되는 과정은 그 도시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성인(成因) 및 입지조건이 작용합니다. 특히 자연조건은 도시형태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어느 요소보다도 능동적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도시구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위적인 구조는 도로와 철도 등의 교통망 체계와 상하수도․전력․통신 등의 도시의 기반구조(infrastructure)체계 등입니다.

글에서는 교통망체계인 도로망 중 마산도시의 중심가로(中心街路, areal main street)를 중심으로 당시 도로망 패턴의 특징이 각 시기별로 어떻게 나타났는지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중심가로(中心街路)란「도심부 도로의 공간적 특성과 유형을 파악하기 위하여 설정한 가로(街路)로서, 가로 양변의 공간이용과 도시 활동에 따라 형성되는 가로의 특성을 파악하기가 비교적 용이한 주가로(主街路) (김선범, 도시공간론, 1996)」를 말합니다.

1) 개항기(1899년-1910년)

개항 이전 원마산(마산포)의 도로는 시가지 내의 위치에 따라 마산창 주변에는 격자형이 그 외의 지역은 세도(細道)가 얽혀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보면 자연발생형의 세도가 복잡하게 얽혀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음 그림은 1908년 제작된 마산전도의 원마산 도로모양입니다.

 

원마산의 외방과 연결되는 도로는 북쪽으로 창원가도(昌原街道)가, 남으로는 진주가도(晋州街道)가 외길로 연결되어 남북으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도로의 폭은 2m-3m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개항이 되어 일본인들에 의해 신마산이 조성되면서 마산에는 그 때까지 없었던 근대적 직선상도로(신작로)가 설치되었습니다.

그 형태는 남북방향의 중심가로를 중심으로 변형된 격자형의 도로망이었습니다. 변형된 격자형이란 격자의 형태가 일정한 형태가 반복되거나 격자의 각이 90도가 아니라 자연조건, 즉 하천과 해안선의 형태에 따라 격자의 변형되었다는 것을 뜻입니다.

신마산 지역에만 형성된 이 남북축의 주 도로는 마산 역 부근에서 기존의 진주가도와 연결하기 위해 사형(斜形)으로 꺾기도 했는데, 이렇게 된 것은 다음 시기에 원마산과 직선으로 연결할 것을 염두에 둔 조치였습니다.

따라서 합방을 앞두고 이 도로를 북쪽의 원마산과 직선으로 연결하기 위한 도로개설공사가 본격 시작되었습니다.

1905년 철도 마산선도 도시의 남북방향으로 설치되었는데 이 철도의 방향성도 이후 마산의 도로망 패턴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마산의 도로망이 선상(線狀)의 형태를 갖춘 것은 자연적 조건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철도의 축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강점 제1,2,3 시기는 다음 회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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