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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6 00:00

스페인 도시이야기 12. 바르셀로나. 구엘공원

구엘과의 만남, 친구이며 후원자 : 가우디와 구엘의 만남은 건축가와 의뢰인의 만남으로 시작되어 평생 동반자이며 친구이자 후원자관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의 첫만남은  1878년 파리에서 개최된 발람회에서 가우디가 설계한 곤잘로 코메야(Gonzalo Comella)의 장갑 진열대를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던 구엘이 가우디의 작업실에서 그가 디자인한 책상디자인을 보고 뽕갔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가우디에게 가구디자인을 의뢰하고, 주변에 소개하는 과정에 진한 우정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후1883년에 구엘가문의 건축가로 임명된 가우디는 구엘과 그의 집안을 위한 건축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시작합니다. 구엘궁정, 콜로니아 구엘성당의 납골당, 구엘공원, 가라프의 구엘 포도주저장고 등 구엘 가문에 속한 모든 건축에 설계 및 시공에 관여하게 됩니다. 1910년에 구엘은 자신의 비용으로 파리의 그랑팔레에서 '가우디 전시회'를 개최할 만큼 그에 대한 변치않는 후원자로 지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구엘공원(Parc Guell) : 멀리 지중해와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구엘공원은 마치 동화 속 나라에 들어온 것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공원입니다. 가우디 특유의 형형색색 모자이크로 장식된 건물과 자연이 어우러져 초현실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원래이 프로젝트는 가우디의 후원자 구엘이 영국풍의 조용한 주택가를 만들고자 계획된 곳으로 1900년대부터 1914년가지 14년에 걸쳐서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당시 택지 60필지 중에 2개만 팔리는데 그쳐서 망한 사업으로 남겨져 있었답니다. 현재의 공원은 1922년 바르셀로나 시에서 매입하여 시민들의 공원으로 개방하고 있다고 합니다. 건축물뿐만 아니라 공원주변시설들의 디자인이 독특하여 1984년에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되어서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디자인 개요 :

- 정문 디자인 : 가우디에게는 장인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집안 내력을 살펴보면 대장장이의 집안으로 구리와 솥과 그릇을 만드는 구리 세공업을 증조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세습된 장인집안이었습니다. 가우디의 어머니 또한 장인 집안의 딸이었으므로 가우디는 부모 부두에게서 장인의 피를 물려 받은 셈이다. 가우디는 아버지로부터 불을 다루는 방법, 구리를 제련하는 방법, 무쇠를 녹이는 방법 등을 배워 훗날 가우디의 상상력과 결합하여 새로운 예술적 조형체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금속공예기법은 가우디의 건축 곳곳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정문에 나타난 나뭇잎 모양은 철물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기에 가능한 디자인이라고 봅니다.

- 정문 부속건물 정문으로 들어서면 일곱 난쟁이가 살것 같은 앙증맞은 집이 나오는데 수위실입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가우디가 디자인한 가구와 그가 사용했던 침대들이 보존된 가우디의 집이 있습니다. 수위실은 기념품 샵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가우디가 생전에 살던 집은 현재 가우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정문 좌우에 있는 두 건물을 보노라면 가우디가 구사할 수 있는 다양한 재료에 대한 이해와 함께 조형적 감각, 색체감각들을 총체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당초 경비실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특이 첨탑부분 디자인이 압권입니다. 사용된 재료는 잡철, 타일, 돌맹이와 같은 것을 재료로 사용하였습니다.- 원래 관리사무소용도로 지어졌으나, 가우디가 만년에 살던 주택입니다. 외벽은 단순한 곡선형태이지만, 지붕의 파동형 곡선은 도면으로 표현할 수 없는 역동적인 곡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전면마당 : 공원 정문을 지나 제일 처음 만나는 계단에는 예쁜 타일로 장식된 도마뱀 분수가 있습니다. 거기에 조금만 올라가면 시장용도로 계획된 다주실 공간이 있읍니다. 그리고 그 위로 중앙광장이 있으며, 주변으로 자연과 인공조형물이 어울려 만들어진 공원시설물들을 볼 수 있읍니다.- 전면마당에서 상부로 올라가는 계단주변의 시설물이 온통 모자익타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정면 중앙부에 다주실 공간이 있고 지붕 상부가 중앙광장에서 시내를 조망하는 공간과 모자익벤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 분수대 모습, - 분수조형물의 모자익타일장식들

- 분수대에서 주둥이를 내밀고 있는 동물의 이름은 너무도 다양합니다. 용, 도룡뇽, 도마뱀, 이구아나, 개구리 등으로 불립니다. 암튼 이 주둥이에서 12톤의 저수통의 물이 흘러나온다고 합니다. 이는 그리스 산화에 등장하는 지하수의 수호신 푸톤의 역할을 한다고 하네요!

- 다주실 : 주거 단지내 상점으로 사용하기 위한 커뮤니티 공간입니다. 형태는 기둥에 의해 비워진 피로티 공간에서 시장이 형성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인데, 현재에는 그냥 비워진 공간으로 남아있습니다. 무심히 보면 그냥 비워진 공간인데, 기둥과 천정면을 보노라면 가우디는 건축을 수공예품 취급하는 것처럼 정성을 다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지하 형태의 공간입니다. 상부는 중앙광장의 벤치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외관상 주열의 배치에서 기둥 상단의 모습의 장식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또한 기둥 하단부의 원형 석재, 상단부의 세로선형줄이 있는 기둥, 그리고 주두의 장식, 그리고 화반처럼 내민 장식으로 마감된 모습입니다.- 다주실 내부의 모습입니다. 기둥의 간격이 다소 좁고, 내부는 어둡기 까지 합니다.- 천정면의장식이 압권입니다. 천정면이라 작업하기 힘들었을 텐데, 색상과 타일의 정교한 조합이 예술입니다.- 하부 계단에서 본 모습니다. 기둥 상단의 장식이 물결처럼 퍼지는 원형에서 팔각형, 그리고 세로 홈에 의한 면분할, 그리고 내민 바닥, 그리고 돍출된 장식물

- 당초에 전원주택 단지의 시장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다주실은 무려 90개가 넘는 기둥들에 의해 신전을 연상케 합니다. 도리아식 기둥에 비해 기둥의 직경을 크게하고, 반대로 세로줄눈의 수는 줄였으며, 기둥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주두(柱頭)를 크게 만들고, 주두들의 사이공간은 오목한 공간은 모자익으로 장식된 천정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기둥의 간격이 좁기도 하고, 기둥의 크기가 큰 이유는 천정면의 조형적 형태를 고려할 경우 구조적으로 보가 없는 무량판 스라브를 구성하기에 적합한 구조 모듈을 기둥간격으로 정하고 주두와 오목한 스라브의 비례를 고려하여 기둥크기를 고려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 중앙광장 및 토석기둥 : - 지반정리공사 부분에서 석축벽위의 돌맹이와 흙으로 조성된 열주, 그리고 그 위에는 용설란 식재- 마치 나무를 심기 위한 식재기둥, 하단에 큰돌, 그리고 중간크기의 돌맹이 그 위헤 적은돌맹이와 흙을 섞은 흙미장으로 하나의 흙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흙벽 상단에 내민듯환 조경박스, 그리고 하단에 식재를 하여 상하단에 나무와 흙더미가 자연스럽게 얽혀져 있는 모습- 흙기둥으로 공중보도까지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단 흙돌멩이 중간에 콘크리트를 넣어 구조보갇을 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공성을 감안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었을듯---- 터널같은 토석기둥 상단을 보면 종유석같은 내민돌을 볼 수 있습니다.- 통로에 설치된 흙돌멩이 벽면과 기둥 그리고 개미갑옷처럼 생긴 출입문, 우리가 현대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직선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 석화된 자연 : 땅을 정리하기 매우 까다로운 장소라서 값비싼 토목공사를 피하기 위해, 다양한 높이에다 세 개의 다리를 건설하였다고 합니다. 가장 낮은 장소에 위치한 다리는 안쪽으로 비스듬히 기운 두줄의 기둥들로 받치게 하고, 기둥이 위로 갈수록 넓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포물선 형태를 이루는 천정을 받치게 하였읍니다. 이러한 기둥은 자연스럽게 마치 나무가 땅에서 솟아나온 것처럼 보이게 한 것입니다. 기둥에 부착된 돌맹이들은 마치 종려나무의 가지들이 나무껍질이 벗겨진 채로 솟아 있는 모양을 하고있다. 기둥을 구성하는 돌들은 납작하다. 그리고 제일 높은 다리의 비스듬한 기둥들 옆에는 다듬지 않은 돌맹이들로 만든 조형물들을 세워놓아 자연과 조화를 이루게 한다. 조형물들이 화석화된 나무의 실루엣처럼 봉지만, 그 위에 용설란을 심어 전체적으로 생명력이 느껴지게 하였습니다. 자연적 형태과 조형적 형태가 서로 교감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급적 토목공사를 하지않고 있는 지형과 재료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 만든 토석 열주기둥은 통로의 역할과 함께 그늘을 제공하는 쉘터의 기능, 그리고 또 하나의 자연이 되어 그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 중앙광장 모자익 벤치와 바르셀로나 전경 : 아름다운 타일로 모자이크 장식을 한 이곳의 벤치는 마치 파도가 넘실거리는 것 같습니다. - 소용돌이 치는듯한 모자익 타일의 형태와 색상의 조화가 실내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예술품 수준입니다.- 중앙광장에서 바라본 바르셀로나 전경, 그너머 지중해 연안의 수평선이 보입니다.

● 구엘공원을 사랑한 가우디 : 구엘공원은 가우디의 손길이 구석구석 남은 곳으로 가우디가 몹시 사랑한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이 프로젝트에 10여년간 열과 성을 다하였기에 전원주택사업은 실패로 끝나도 가우디 자신은 정문옆에 있었던 관리동 건물에서 자기 아버지와 죽은 누이의 딸, 조카와 함께 이곳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가우디는 구엘공원을 신을 위해 만든 지상의 천국으로 생각하고, 그런 자신의 작품 속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가장 사랑한 아버지와 신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복도 잠시 아버지마저 하느님 품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건축가의 재능을 몰려주었던 그런 아버지를 잃자 가우디는 더욱더 작업에 몰두하게 됩니다.

곧 성가족 성당 공사에 몰두하게 됩니다. 1916년 작업실을 아예 성가족성당 현장 작업실로 옮겨 인부들과 숙식을 함께 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극도의 슬픔을 이겨내어야 했습니다. 속세에 미련을 버린 듯 성당을 건설하면서 생을 마무리 하게 됩니다.

1926년 6월 7일 오후 5시반경, 그날도 가우디는 성당을 나와 늘 하던 대로 산책길에 나서기 위해 길을 나서다가 한 대의 전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마무리하지 못한 성가족 성당의 지하 납골당에 안치되어 자신의 걸작이 완성될 날을 지켜보고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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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7 00:00

스페인 도시이야기 11. 바르셀로나. 성가족 성당

성가족 성당의 건립기

- 1866 : 카탈루냐 지방의 서적상이자 출판인 '호세 보카베리야'에 의해 성가족 봉헌 성당을 짓기로 결정          - 1881 : 일부 기금을 모아서 에이삼플 구역 외곽에 땅을 매입하고, 교구건축가인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빌랴르'에게 설계의뢰                                                                                                                - 1882 : 신고딕 양식의 교회를 설계하여 1882년 성요셉 대축일에 초석을 놓음                                    - 1883 : 지하 납골당 기둥이 반 정도 건립될 무렵, 설계자 빌랴르와 교구와 마찰로 가우디가 공사를 맡으면서 초기의 디자인은 폐기되고, 완전히 새롭게 시작 (당시 가우디 나이 31세) 지하 예배당을 마무리 하는데 4년이 걸렸다.                                                                                                                     - 1906 : 예산사정으로 공사가 지연되는 가운데 성당의 계획이 마무리 되어 지금의 모습인 예수의 '탄생',과 '수난'과 '영광'을 의미하는 세 개의 정면을 기본안이 마무리됨                                                 -1916 :   최종 설계도는 가우디의 협력자인 '후안 루비오 이 벨베르'(1870-1952)가 1915년에 완성하여  (길이 90M,넓이 15M,  높이 45M에 달하는 가운데 홀, 좌우 날개 회랑 높이 30M, 좌우 날개 접점에 높이 170M의 종탐), 1917년에 최종 설계도 발표. 이 때부터 가우디는 작업실을 현장으로 옮겨 인부들과 숙식을 함께 하며 작업                                                                                                                          - 1926 : 가우디 사후, 스페인 내란의 여파로 탄생의 문에 설치된 조각상 훼손 및 지하 가우디 무덤까지 훼손됨                                                                                                                                          - 1936 : 스페인 내전중에 약탈과 방화로 작업을 위한 사진, 석고모형, 문서 등 소실                             - 1938 : 내전이 끝난 후 '프란시스코 데 칸다라' 지휘하래 지하예배당 재건축이 시작                           - 1985 : 건축가 '조르디 보네트'가 감독으로 지명되어 공사 진척이 빨라짐                                          -  2026: 가우디 사후 100주년에 완공예정임

성가족 성당의 구글지도 사진입니다. 건물 좌우측에 공원이, 아래쪽에 상가가 있읍니다. 가장 중요한 아래쪽 출입구는 현재 공사중이며, 좌우측 문으로 출입이 가능합니다. 그나 저나 주출입구앞 계단과 마당이 확보되려면 아래측 상가부지가 통채로 철거되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 평면입니다. 우측출입구가 탄생의 문, 좌측 출입구가 수난의 문, 아래쪽 출입구는 영광의 문으로 이름이 붙어있읍니다. 건물의 평면은 전통적인 십자형태입니다. 상부의 원형이 제대가 놓이는 부분이고 주변에 부속실들이 배치됩니다. 현재 설치된 첨탑은 우측 출입구 부분 4개의 탑이 완성되어 있으며, 좌측은 공사중이며, 중앙부는 외부 골조공사중입니다. 

- 우측면 출입구 부분입니다. 아래의 사진은 1960년에 찍은 사진입니다. 비교해 보면, 좌측의 성당부분 외벽이 추가로 지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거의 100년전에 붙이 석재와 지금의 석재는 세월의 때의 농도가 다른 것을 돌의 색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 모형사진입니다.  기념품 코너에서 찍은 겁니다. 앞으로 지어질 중앙부 출입구 모양을 예상할 수 있읍니다. 좌우측 문에 비해서 폭과 높이가 더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우측면에서 본 모형입니다. 현재의 첨탑은 출입구 상단을 장식하는 4개의 첨탑입니다. 그러나 최종 모형에서 중아부에 설치되는 첨탑과 제대 상단에 설치되는 첨탑이 규모나 높이면에서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교차부에 설치되는 첨탑을 중심으로 주변에 배치된 4개의 첨탑, 다음으로 제대 원형부 첨탑, 출입구 3개소에 설치된 4개씩의 첨탑을 합하면 18개의 첨탑이 완성될 것입니다.

- 후면, 제대부분 모형사진

성당의 공간별 명칭 : 성가족성당은 내외부가 몹시 복잡한 구조이기 때문에 공간별로 구분해서 보는 것이 전체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먼저 외관의 경우 동측에 있는 탄생의 문을 중심으로 하는 우측면을 그리고 좌측의 수난의 문 중심으로 서측면을 그리고 주출입구에 해당하는 영광의 문은 현재 공사중인 관계로 딱히 설명드릴게 없을 것 같읍니다. 실내공간에 들어서서는 평면에서 남북방향으로 주심이 되는 축 방향의 공간을 신랑, 주랑(身, 柱, Nave)라고 합니다. 가장 중심이 되는 축으로 북측면에는 제대가 있는 곳을 앱스(Apse, 後陣)라고 합니다. 성가족 성당은 아래의 평면처럼 내진이 없이 바로 앱스에 제대가 있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신랑 좌우로 측랑(側, Aisle)이 2칸씩 있읍니다. 즉 남북방향으로 5개의 공간이 나란히 있는 것입니다. 좌우 측벽은 외측랑에 해당되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남북축에 직교하는 가로축이 있읍니다. Transept이라고 하며, 굳이 해석을 하자면 익랑(翼廊), 수랑이라고 합니다. 이부분이 좌우 출입구가 설치된 것입니다. 우측이 탄생의 문, 좌측이 수난의 문이 해당됩니다.

1. 탄생의 문 : - 현재 주출입구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3개의 출입구 위에 예수님 탄생을 알리는 조각상들이 즐비해 있습니다.- 첨탑을 올려다 봅니다. 색상과 형태의 이미지가 대자연의 한부분을 보는 기분입니다.- 3개의 출입구 상단을 동시에 본 모습입니다. 실제 아치 상단에 있는 조각상의 모습은 사진을 통해서 확인했습니다.- 중앙 기둥 상부에 예수탄생의모습이 그리고 상하좌우에 이를 축하하기 위한 천사와 연주자들의 모습입니다.- 중앙 기둥에 있는 예수탄생상입니다. 아마 밑에서 보여지는 것을 감안하여 실제 인체스케일을 고려하여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왼쪽 출입구 상단의 조각상입니다. 배경의 동식물 문양이나 인체의 곡선, 옷의 실루엣 등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아치위의 아치을 장식하는 동물의 이빨모양의 형상, 그리고 그 위레 있는 해초모양 즉물적 디자인

2. 수난의 문 : - 좌측의 수난의 문은 현재 열심히 공사중입니다.- 얼핏 보아도 재료의 질감이 '탄생의 문과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처마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가우디가 남긴 수난의 문 스케치입니다. 특별히 처마를 설치한 이유는 남서측의 석양에 조각상이 너무 밝게보이므로 인하여 수난의 의미가 퇴색될 것을 우려한 것이 아닌지---

- 중앙부의 조각상입니다. 수난의 문 조각은 스페인의 현대조각가인 수비라치가 전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왼쪽 출입구 부분은 현재 공사중입니다.- 오른편 출입구 부분입니다. 처마가 깊은 곳의 조각상은 잘 보이지 않는 군요  

예수님의 수난과정을 표현한 조각상들

- 예수님의 수난과정을 표현한 조각상들

 

 

 

 

 

 

  - 탄생의 문 조각이 사실적인 것에 반하여 '수비라치'의 조각은 너무나도 비구상적이어서 묘한 대비를 이루게 합니다. 어쩌면 수난을 과정을 사실적으로 표현보다는 비구상적 표현이 더욱 참혹한 상황을 묘사하기에 적합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3. 주랑(Nave)

- 중심부 천정의 모습입니다. 고측창에서 내려온 빛이 하얀 대리석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려고 합니다.- 제대를 바라본 모스입니다. 중앙부 높이 40미터의 깊이감에 의해 목을 젖혀지게 합니다.- 남측방향의 주랑은 빛이 가득합니다. 해바라기 모양의 천정과 다발기둥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듭니다.- 주랑에서 측랑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측랑의 스테인드 그라스의 노란빛과 주랑의 흰색빛이 묘한 대비를 이룹니다.- 외측랑의 발코니 부분입니다. 유감없이 파동형의 물결이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4. 제대(Apse) : - 중심공간이 제대부분입니다. 저층부분은 후진부분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붉은색, 노란색, 적색의 빛깔고 고창에서 내리쬐는 하얀 빛의 조화가 빛의 향연을 보는듯 합니다.- 제대 옆의 기둥입니다. 최고높이 170미터를 지지할 기둥이니까 크게 당연하겠지요, 지름 2미터 이상은 될 듯--

5. 익랑(Transept) : 탄생의 문에서 들어서서 본 천정의 모습입니다. 정면이 수난의 문 방향입니다.- 천정면의 색상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 보이네요, 흰색에서 갈색으로 변하는 듯, 창문이 격자형이라 약간 이질감이 ---- 문은 청동에 글자 디자인으로 장식되어 있읍니다. 아마 조각까지 통채로 수비라치가 디자인 한듯 합니다. 여러모로 모던한 느낌이 납니다.

6. 측랑(Aisle) : - 주랑 옆의 측랑입니다. 주랑보다 낮지만 주랑의 깊이감을 더해주는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측랑의 외벽부분입니다. 스테인드 그라스의 정연한 모습이 유선형의 천정과 대비를 이룹니다.- 남측 주출입구 옆에 설치된 돌음계단입니다. 계단 주변의 디테일이 볼만합니다.- 외측랑은 복도기능을 합니다. 그리고 발코니부분의 디자인 역시 범상치가 않습니다. 삐죽 뻗은 뿔의 모습, 미역을 널어 놓은 듯한 난간의 모습.

7. 지하전시장- 성당 지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가우디 생전에 현장사무실입니다. - 현장에서 실험한 모형들을 전시라고 있습니다.
- 지하 한켠에 건축가 가우디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가우디의 생애 : 가우디는 31살의 나이에 성가족 성당의 설계를 맡은 후 74살에 세상을 떠나기 까지 성가족 성당과 43년을 함께하였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하루 일과는 일정하여 미사, 아침묵상, 삼종기도, 산책, 고해성사로 이어지는 수도자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천재 건축가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손세관 교수의 표현대로 '아름다음을 건축한 수도자'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 가우디 초상스케치, 그리고 조각상들, 우측 두상은 수난의 문 조각을 맡은 수비라치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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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류창현 2014.02.27 10:2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잘봤습니다. 사진과 설명이 생생하여 마치 제가 다녀온것 같네요.

    • 삼식 2014.02.28 13:44 신고 address edit & del

      읽을만 하다니 다행입니다.
      ㅎㅎ

  2. 박진섭 2014.03.12 12:0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성가족 성당에 대한 미적, 구조학적 가장 훌륭한 자료인 것 같습니다. 문외한인 제가 보아도 즐겁게 느껴집니다. 다음에 시간날 때 좀 더 천천히, 꼼꼼히 볼 생각입니다.

    • 삼식 2014.03.14 09:48 신고 address edit & del

      저가 정리가 않되어서 구분설명하였는데
      보기 좋았다니 다행이네요

2013.08.23 00:00

스페인 도시이야기 1. 코르도바, 알 안달루스의 신부

정열의 나라. 스페인을 가다.

금번 여름휴가 때 스페인의 주요도시를 탐방할 기회가 있었읍니다.

스페인하면 연상되는 것은 참 다양한 것 같습니다.

우선 투우의 나라, 그리고 열정적인 집시들의 춤사위인 플라멩고, 그리고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생각나는 것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중세기사와 충성의 상징인 '엘시드' 라는 로드리고 장군도 생각날 것입니다.

예술가로는 천재화가 피카소,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 성가족 성당을 설계한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를 꼽을 수 있읍니다.

특히 스포츠에서는 유럽의 축구명문가인 레알 마드리드 구단, 바르셀로나의 메시를 다들 기억할 것입니다. 특히 20세기 들어 36년간 군사 독재정치를 한 프랑코 역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스페인의 이미지를 종합해 보건데, 유럽에 속하기는 하지만 유럽과 또 다른 에너지가 넘치는 반도적 기질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이베리아 반도의 지정학적인 요인과 시대별로 다양한 문화가 섭렵되어진 다양성에 있는 것 같습니다.

도시의 소개는 지역별, 문화별로 나뉘어 소개할까 합니다. 우선 이슬람도시부터 둘러보겠습니다.

● 스페인 속의 이슬람세계 : 코르도바, 세비야, 그라나다는 이슬람교도 지배 하의 스페인은 세도시가 중심을 이루었다. 711년에서 1010년까지는 코르도바, 1010년부터 1248년까지는 세비야, 그리고 1248년에서 1492년까지는 그라나다에서 이슬람 문화가 꽃을 피웠다.

'알 안달루스의 신부' : 코르도바

- 안달루시아 : 코르도바는 스페인 남부 해안지역에 면해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도시이다. 안달루시아는 지정학적으로 북아프리카의모로코와 가장 근거리에 접한 지역으로 이슬람교도들이 북아프리카를 통해 이베리아반도(스페인)로 접근하기 좋은 교두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안달루시아비방의 이름은 '알 안달루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알 안달루스'는 '반달족이 건너온 곳'이라는 뜻의 '반달루스(vandalus)'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al)'은 아랍어 관사이다. 즉 안달루시아는 반달족이 건너온 곳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이다.

- '알 안달루스의 신부' 라는 말은 코르도바의 아름다움을 두고 이슬람의 작가는 ‘알 안달루스의 신부’라고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 그녀는 모든 아름다움을 다 갖추고 있다. 왕후로서의 오랜 가계가 그녀의 영광된 관을 만들고 있다. 그녀의 목걸이는 시인이 언어의 바다에서 채취한 진주를 이어 놓은 것이며, 그녀의 이상은 학자들이 교모하게 짠 학문으로 지어져 있다.”

● 스페인 역사 :

- 기원전4500년경 동부연안에 최초의 집단부락이 출연, 이후 기원전 1천년경 아프리카에서 동부연안에 진출한 햄족 기원의 이베로족과 기원전 600년경 피레네 산맥을 넘어와 반도 중앙부와 서북부에 정착한 켈트족이 합쳐져셔 셀티베로족이라는 새로운 종족으로 변해 스페인의 직계조상

- 켈트족은 기원전 2천년부터 기원전 1세기까지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 살았던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던 종족으로 매우 호전적인 종족으로 현재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지역에 아일랜드인과 유사

- 페니키아와 그리스인들(기원전11-3세기) : 기원전 11세기 무렵 이베리아반도 남부 연안에 카디스를 건설하여 식민거점으로 활용하였다. 오늘날 베이루트 북쪽 20마일에에 있는 페니키아는 도매상의 교역로로 아프리카 북부와 이베리아 반도 남부지역에 공장을 건설하여 방해한 해상교역망을 구축, 이후 카르타고의 번영으로 쇠토

- 카르타고인들은 페니키아인들의 뒤를 이어 식민도시를 건설, 그 거점이 바르셀로나로 기원전 3세기 이후, 로마제국과 1세기 이상 치렀던 포에니 전쟁에서 패함으로 지중해 패권을 로마제국에 양도

- 이베로라는 말은 오늘날 에브로(Ebro)강의 옛 이름인 이베르 강지역에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 기원전 1200년에서 서기 400년(로마제국 지배)까지 스페인의 많은 문명이 발달, 기원전 19년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인들은 이베리아 반도를 완전히 점령 이때 반도에 카톨릭과 라틴어가 도입

- 게르만족의 대이동(서고트족의 침입409년) : 북방인종으로 키가 크고 금발에 파란눈이 특징으로 원래 거주지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남부에서 지금의 북독일에 걸친 지역이다. 이들의 이동은 훈족이 볼가강을 건너 동고트 족을 정복함으로써 376년 로마 영토안으로 이주, 476년 로마는 게르만족의 오토아케르에 의해 폐위되엇으며 그로서 로마는 멸망

- 이베리아 반도에서 서고트족은 전체 약 400만의 주민 중 10만명 정도로 세고비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정된 지역에 거주했고, 나머지는 중요한 각 지방의 도시에 군대와 관리들만 주둔시켰다. 711년 이슬람의 침공으로 붕괴되었다

- 이슬람교도의 반도 침입(711년) : 서고트의 왕 위티사가 710년 죽자 로드리고가 왕위에 오르자 아들의 추도세력은 북아프리카의 회교 통치자 무사에게 용병을 요청, 타리크를 보냈다. 그의 부대는 스페인 남부 코달레테 강가에서 싸워 이겼다. 이것이 이슬람교도들의 이베리아 반도 침입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7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북서쪽의 고산 지대를 제외하고 반도 전체를 점령하여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켰다.

- 11세기부터 이슬람교도 사이의 분쟁으로 여러 왕국으로 분열되었으며, 이로 인해 카톨릭 왕국의 재정복(레콘키스타)이 달성되어 1492년 이슬람 왕국은 사라지고 카톨릭으로 통일된 강력한 국가가 형성

이슬람도시 코르도바의 탄생 :아랍 본토의 다마스쿠스를 거점으로 지배하던 '옴마아드' 왕조의 '압데라만 1세'가 바그다드를 거점으로 하는 '아바스 왕족'의 학살을 피신하여 칼리프령인 스페인에 피신해 있다가 새로운 독립 이슬람 왕국을 세웠다. 국호를 알 안달루스 (Al Andalus)라고 칭하고 도읍지로 결정괸 곳이 코르도바이다. '압데라만 2세'는 코르도바를 바그다드보다 훌륭한 도시로 만들려고 두 번에 걸쳐 증축한 대모스크의 1,200개나 되는 석조기둥에는 스페인을 거쳐간 지중해의 모든 문명(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비진틴)의 양식들이 표현되었다.

당시 유럽에는 인구 3만의 도시가 적었던 반면 코르도바 인구는 50만 이었으므로 당시 콘스탄티노플 외에는 없었다. 압데라만 3세는 코르도바를 독립된 카리프로서 바그다드로부터 분리시켜 정치적 종속관계를 벗어나 알 안달루스 왕국은 독립적인 황금시대를 구가할 수 있었다.

코르도바는 그리스 철학이나, 로마의 법률, 비잔틴과 페르시아의 예술을 받아들였고, 유대교와 카톨릭 신학까지 연구했다.  코르도바의 멸망은 1031년 마지막 와인 힉셈3세가 사망함으로써 왕국의 동요와 반란이 일어나 한 군주가 통치하는 칼리프 왕국이 사리지고, 왕국은 주요 도시로 분활되어 각 도시마다 군주들이 난립하는 군웅할거 시대인 타이파(소왕국)왕욱 시대로 넘어갔다.(1036-1081) 이후 1085년에 이슬람교도의 핍박을 받던 톨레도가 카톨릭교도로 넘어가자 코르도바 왕국은 북아프리카의 알모라비데족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이들은 카톨릭교도들을 물리치지만 동시에 코르도바 왕국도 정복하는 바람에 안달루스의 신부 코르도바의 영광은 사라지고 말았다.

*코르도바(cordoba)는 페니키아어로 '풍요롭고 귀한도시'라는 뜻의 Kartuba에서 유래했다.

코르도바 대성당 : 대성당이라는  명칭은 현재에 사용되는 용도를 일컬어 사용하는 건물명이다. 당초 건립당시에는 이슬람 사원으로 건립되어 모스크(Mosque)라고 부르며, 스페인어로 'Mezquita(매즈퀴타)'라고 사용되고 있다. 이 사원은 스페인에 남은 유일한 회교사원이며,세계에서 규모면으로 몇번째 해당되는 큰규모의 사원이다.

- 건물의 연혁은 786년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규모는 22,400평방미터로 남북길이 175미터, 동서로 128미터의 규모로 동시에 2만5천명 예배를 드릴수 있도록 되어있다.  평면의 구성은 사원과 중정(세정의 정원) 그리고 미나렛(Minaret, 광탑)으로 구성되어있다.

- 사원은 최초에 노랑색(9번)부분이었으나, 색상에 따라 증축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하단이 중정이며, 실내의 중앙부분이 성당으로 개조하면서 만들어진 중앙예배당이다. (16,17,18번)

 - 종탑에 해당되는 미나렛은 하루 5번 기도시간을 알리기 위해 종탑기능을 하며 내부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최초의 종탑은 소실되고 현재의 종탑은 47.5미터로 1617년 성당으로 용도변경되면서 새로이 건립된 것이다.- 현재의 종탑은 카톨릭성당으로 사용되면서 세원진 것이다. 중정 외곽에 설치된 회랑에 접해있다.

- 중정은 5개의 분수와 함께 올리브나무, 오렌지나무, 종려나무, 사이프러스 나무 등으로 장시되어있다. 중정 외곽으로는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행하는 수세의식을 위한 세례소가 있었을 것이나, 현재는 카톨릭 성당으로 변경되어서 그러한 모습은 남아있지 않다.- 중정은 예배보러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정화공간이다.- 중정 외곽에 면한 회랑은 원래 세례소가 설치되었으나, 현재는 전시회랑의 역할을 하고 있다.

- 사원은 19개의 아케이브 주열로 형성되어 있다. 쉽게 표현하면 19칸의 기둥주령릉 형성하고 있으며, 매 칸은 상부 세모난 박공지붕으로 형성된 지붕으로 채광을 삼각형의 한면을 채광창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붕은 톱날 지붕형태의 반복형태로 지어졌다.- 아치구조를 받치는 기둥이 하단에는 원기둥으로 마감하고 상부는 네모난 기둥으로 되어있다. 원기둥과 네모기둥의 접합부를 고대 로마시대에 기둥 상단을 장식하는 꽃잎문양으로 장신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기둥을 칼리프 기둥으로 불리면서 코르도바의 대표적 예술품으로 후세에 알려졌다.

- 당초 회교사원으로 사용될 당시의 지붕모습이다. 19개의 아치 상부 톱날 지붕의 단순한 형태로 마감되어있다.

- 카톨릭 대성당으로의 용도변경 :  1236년 성페르난도 3세에 의해 코르도바가 함락당하면서 회교사원은 '산타마리아 마드레 데 디오스'라는 대성당으로 바꾸게 되었다. 회교사원과 성당은 내부 기능이 다르므로 당시에는 이것을 해체시키고고 했으나 재차 협의를 한 결과, 주 제대와 성가대석의 십자가형 평면을 중앙부에 삽입하는 형태로 정리되었다. 그래한 형태로 나온 결과가 삼각형 박공형 평면의 중심에 우뚝 솟은 고딕식 지붕이 성당의 중심공간을 상징하는 형태로 변경되게 되었다.

- 그림의 지붕은 카톨릭 성당으로 용도변경하면서 중앙부에 제대와 예배석을 설치하면서 고딕식으로 장식하기 위해 높은 천장을 만들기 위해 지붕이 솟아 있으며, 주변부는 높은 벽면을 지지하기 위한 부축벽이다.

실내상세 설명- 여러차레 증축되는 과정에 시대별 다양한 아치의 장식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건물을 거대한 고고학 박물관으로 여기고 있다.

- 내벽면에 아치로 통하는 감실을 '미르합'이라고 한다. 대리석으로 장식된 팔각형의 공간으로 아치 주변은 자연을 상징하는 식물모양과 주변에는 코란 경구를 금박으로 장식하고 있다.

- 성가대석에 조각은 중앙부에 예수님의 부활장면을 양측에 시빈를 상징하는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와, 고행을 상징하는 막달라 말아가 조각되어있다. 조각은바로크를 대표하는 조각가 페드로에 의해 마호가니 나무로 제작되었다.- 회랑부분은 반원형 아치로 되어 있으며, 반대열은 얼룩무늬 2단 아치의 동일한 공간이 반복되고 있다.

사원 주변풍경

-사원주변은 유태인지역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비좁은 골목길에 조그만한 기념품 코너가로로 형성되있다.-벽면의 아기자기한 화분 장식들- 기념품티가 가지런히 정열된 모습- 주변광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네 노인들- 노천카페에서 강변을 바로보다.- 다리위에서 바라본 사원모습, 중앙의 돌출부분이 제대에 해당된다.

현재의 코르도바 -지붕의 중앙부 라틴크로스 부분이 제단 및 예배당으로 변경되었다.

- 코르도바는 8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서구의 콘스탄티노플', '서양속의 동양'이라고 불리웠던 이슬람 제국의 영화를 간직한 도시이다. 카톨릭교도에 의해 멸망한지 10세기가 지났지만, 회교도들이 남긴 건축술에 대한 독창성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남아있다. 사원 실내에 도열한 얼룩무늬 아치에 남겨져 있는 회교도 장인들의 야무진 손맵시는 코란속의 경구를 실천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카톨릭 국가 스페인의 한켠에서 세계 여라나라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이슬람교의 의미를 생각하도록 예상했을 수도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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