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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5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4) - 강점제3시기

<술과 꽃의 도시, 마산 2>

 

마산은 술 생산량에서도 이름이 높았지만 더 유명했던 것은 마산 술의 품질입니다. 마산 술의 향과 맛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마산 술이 얼마나 유명했는지를 알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소개합니다.

식민지 시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술은 나다자케(灘酒, 탄주)였다고 합니다.

「나다자케(nadazake)」는 일본의 효고켄(兵庫縣)의 나다(灘)지방에서 나는 고급 청주를 말합니다. 지금도 생산되는 일본 고급 전통주입니다.

「나다자케」가 생산된 것이 1624년이라는 설도 있지만 실제 그 기원은 그로부터 훨씬 더 오래전인 14세기경이라고 합니다.

문헌에 의하면 무로마치(室町: 1338-1573)시대에 이미「僧坊の酒(승방의 술), 酒屋の酒(술집의 술)」이라고 불렸다고도 합니다. 가히 일본 최고의 술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산 술이 이 나다자케에 필적할 만 하다고 했으며, 만주에서는 마산의 술이「조선의 나다자케(灘酒)」라고 불릴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고 합니다.

직전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대로 맑고 깨끗한 물과 술 빚기에 적당한 좋은 기후, 그리고 질 좋은 쌀, 삼박자 덕 아니었겠나 싶습니다.

「나다자케(灘酒)」급이냐, 아니냐, 라는 말을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마산 술이 그만큼 특별한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꽃에 대한 이야깁니다. 정확히 말해 '벚꽃'에 대한 이야깁니다.

1908년 삼증(三增)이사관이 신마산에 살던 일본인 유지들과 협의하여 동(洞)의 명칭을 일본식인 정(町, 마찌)으로 명명하고 정(町)의 경계를 획정하는 과정에서 어린 벚나무 5천 그루를 가로 양쪽에 4칸마다 심었던 사실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자료를 종합해 보면 삼증 이사관이 벚나무를 심기 이전부터 마산에는 벚나무가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봄철이 되면 마산 전역에 벚나무가 만개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는 기록이 여기저기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증 이사관에 의해 식재된 창원천 좌우도로의 벚나무가 가장 아름다웠다고 전합니다. 일본인들이 남긴 기록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장전 순(長田 純)과 고수마공(高須瑪公)이 쓴 『마산현세록』에 의하면 당시 창원천의 벚꽃은 4월 7일경부터 피기 시작하여 10일, 11일에 70% 개화하고 13, 4일부터 만개하여 17, 8일 경까지가 절정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창원천(옛 마산시장 관사 앞을 흐르는 하천. 대곡천,대곡하,마산천 혹은 일화계라고도 불렀음)의 맑은 물 위에 떨어지는 낙화가 일품이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이 부근에 앵정(櫻町, 사쿠라마찌, 벚꽃동네, 현재의 문화동)이라는 지명도 있었습니다.

당시 마산에서 가장 유명했던 요정 망월루가 창원천변에 있었습니다. 경남신문 조용호 기자는 마산개항 100년을 맞아 특집 기획기사로 연재한『마산개항백년』1999년 4월 5일자에서, 망월루 주인의 딸이었던 모쯔스키는 일본에 살면서도 최근까지 3-4년에 한번 씩은 신마산을 찾았는데 망월루 앞의 창원천 벚꽃을 그렇게도 그리워했다고 적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와 같은 ‘술과 꽃의 도시’ 마산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자료가 남아 있습니다.

1937년 마산부에서 관광안내서로 간행한「觀光の 馬山(관광의 마산)」이라는 리플렛의 표지입니다.

아래 사진이 그것입니다.

 

일본인들에게 마산을 소개하기 위해 마산부가 만든 이 조그마한 인쇄물에는 마산을 둘러싸고 있는 무학산과 마산만, 그리고 다도해의 섬과 마산만을 출입하던 수많은 선박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명주(銘酒)라고 적힌 술통과 함께 만개한 벚꽃이 흐드러진 것을 묘사하여 이 도시 마산이 가히 「술과 꽃의 도시」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012/07/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0) - 강점제3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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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2 01:00

술과 꽃의 도시



《유장근교수의「도시탐방대」에 참여해, 한 때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마산의 술 공장과 벚꽃 휘날렸던 창원천을 둘러보니 일제기 ‘술과 꽃의 도시’로 명성이 높았던 ‘그 옛날 마산’이 생각나 이 글을 포스팅한다


특정한 도시를 한두 가지 단어로 정확히 규정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도시건 그 도시 특유의 자연조건과 문화조건을 이용해 한마디로 규정하기도 한다.
부산하면 항구, 진해하면 벚꽃, 춘천하면 호수 등과 같은 의미다.
이런 관점에서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경의 마산은 ‘술과 꽃의 도시’였다.


- 술의 도시 마산 -

개항 직후인 1904년 최초로 아즈마(東)양조장이 설립된 이후 꾸준히 성장했던 마산의 양조산업은 1928년에 부산을 제치고 이윽고 국내 지역별 주조생산량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현 마산의 무학소주도 일제기였던 1929년 설립한 소화(昭和)주류주식회사에 그 뿌리가 닿아, 일전에 창립8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29년에 설립된 소화주류주식회사>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20년대 마산의 일본인 양조장>

당시 주조방식을 생각해 보면, 술의 질은 물맛과 기후 그리고 양질의 쌀이라는 세 가지로 결정되었을 텐데 마산은 그 중 하나도 모자람이 없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전부터 일본에는 각 지역마다 유명한 전통주가 많았다.
그 중 일본 효고켄(兵庫縣)의 나다(灘)지방에는 14세기경에 시작된 최고급술 나다자케(灘酒)가 있었다.
명실 공히 당시 일본 최고(最高) 최고(最古)의 술이었다」


1931년,
우리로서는 기억도 하기 싫은 만주사변을 일제가 일으켰다.
전장에 나섰던 조선과 일본의 젊은이들을 위해 공급된 술은 주로 조선 땅에서 담당했고, 조선 각지에서 생산되던 모든 술들이 공급되었다.
그런데
그 많은 술들 중 마산 술의 향과 맛이 최고라면서 마산 술을 ‘조선의 나다자케’라고 부르면서 즐겨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마산 술이 만주에 까지 명성이 높았던 것이다.                  


‘술의 도시’라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말기 바란다.
그것은 곧 마산이 맑은 물의 도시요, 기후가 좋은 도시요, 좋은 쌀이 생산되는 비옥한 땅이라는 뜻이다.
한 때 마산이 그렇게도 살기 좋은 도시였다는 자랑스러운 말이다.


- 꽃의 도시 마산 -

‘꽃의 도시’는 무슨 말인가.

그 옛날,
마산의 봄은 지금의 문신미술관 부근 환주산 일대를 비롯해 시내 전역에 벚나무가 만개하여 장관을 이루었다.
흔히 일본인을 통해 이 땅에 벚나무가 들어왔다는 속설이 있지만 그 이전부터 마산에는 벚나무가 많았다.

시내의 가로수는 경술국치 이전인 1908년에 마산이사청(현재 의미로는 시청)에서 심었는데 그 중 창원천변의 벚꽃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한다.
창원천은 대곡산에서 내려오는 하천으로 전 마산시장 관사 앞을 흐르는 하천이다.
현재 문화동인 이 일대의 지명을 사쿠라마찌(櫻町, 벚나무동네)라 불렀으니 벚나무의 위세를 알만하지 않은가.

‘술과 꽃의 도시’ 마산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자료로 1937년 마산부가 만든 관광홍보용 리플렛 「관광 마산」의 표지가 있다.

거기에는 마산을 둘러싸고 있는 무학산과 마산앞바다, 그 가운데 두둥실 떠있는 돝섬, 그리고 마산만을 통해 일본을 오가던 큰 배들이 그려져 있다.
바로 그 옆에 명주(銘酒)라고 적힌 일본식 술통과 함께 흐드러지게 만개한 벚꽃을 묘사하여 마치 마산을 꿈의 이상향처럼 소개하고 있다.


                    <1937년 마산부가 제작한 리플렛 '관광의 마산'>


일제기 마산에서 활동을 많이 한 일본지식인 추방사랑(諏方史郞)은 당시 마산의 술과 꽃을 찬양하며 노래하던 시구(詩句)를 기록으로 남겼다. 일본인들이 부른 노래라 달갑지는 않으나 당시 마산의 분위기를 알 수 있어 소개한다. 번역은 경남대 배대화교수가 하였다.

꽃의 마산이냐 마산의 꽃이냐            花の馬山か 馬山の花か
가을 깊어가는 달의 포구                  秋は冱えたる 月の浦

술의 마산이냐 마산의 술이냐            酒の馬山か 馬山の酒か

꽃도 술술 피어나고 물은 용솟음치네  花もさけさけ 水はこんこん


                            <1929년경 창원천가에 만개한 벚나무>

『마산현세록』이라고, 일본인이 쓴 책이 있다.
1929년에 간행되었는데 그 목차에「술의 마산」과 「꽃의 마산」이라는 항목이 들어있어 ‘마산의 술과 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
당시 창원천 벚꽃은 4월 7일경부터 피기 시작하여 10일-11일에 70% 개화(開花)하고 13일-14일부터 만개하여 17일-18일경까지가 절정이었다.
특히 창원천의 맑은 물 위에 떨어져 흘러내려가는 낙화가 일품이었다고 적혀있다.

이 절경을 구경하기 위해 매년 4월 10일을 전후해 부산 대구 대전 서울 등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임시열차까지 운행되었다고 한다.
1930년대 마산의 봄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시내 전역이 붐볐다.
진해 벚꽃보다 수 십 년 전의 일이다.

맑은 물, 맑은 공기, 아름다운경치.
이 도시의 자랑은 영원히 지나가버린 한 순간의 우연이었을까?
다시 되돌릴 수는 없을까?
정말 그럴까?

Trackback 0 Comment 6
  1. 2009.11.03 20:1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잘 읽었습니다.

    • 허정도 2009.11.03 23:21 신고 address edit & del

      방문 감사합니다

  2. 노상완 2010.03.22 20:5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그곳이 창원천이라는 걸 오늘 알았습니다...하천 상류에 있는 다리가 月見교 경교 월남교
    마산교 순으로 되어 있던데...(중간에 다리가 하나 더 있나? )

    지금 하천 주변의 벚꽃은 너무 초라하게 생명을 이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도심의 쌈지터를 많이 사랑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허정도 2010.03.23 08:31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창원천 외에 대곡천 등 명칭이 몇개 더 있었습니다.

  3. 우의영 2012.06.10 23:3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간장도 유명하죠??

    • 허정도 2012.06.11 14:17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럼요, 간장도 유명했습니다. 지금의 몽고간장도 일본인이 경영하던 야마다장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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