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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3 00:00

스페인 도시이야기 1. 코르도바, 알 안달루스의 신부

정열의 나라. 스페인을 가다.

금번 여름휴가 때 스페인의 주요도시를 탐방할 기회가 있었읍니다.

스페인하면 연상되는 것은 참 다양한 것 같습니다.

우선 투우의 나라, 그리고 열정적인 집시들의 춤사위인 플라멩고, 그리고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생각나는 것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중세기사와 충성의 상징인 '엘시드' 라는 로드리고 장군도 생각날 것입니다.

예술가로는 천재화가 피카소,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 성가족 성당을 설계한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를 꼽을 수 있읍니다.

특히 스포츠에서는 유럽의 축구명문가인 레알 마드리드 구단, 바르셀로나의 메시를 다들 기억할 것입니다. 특히 20세기 들어 36년간 군사 독재정치를 한 프랑코 역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스페인의 이미지를 종합해 보건데, 유럽에 속하기는 하지만 유럽과 또 다른 에너지가 넘치는 반도적 기질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이베리아 반도의 지정학적인 요인과 시대별로 다양한 문화가 섭렵되어진 다양성에 있는 것 같습니다.

도시의 소개는 지역별, 문화별로 나뉘어 소개할까 합니다. 우선 이슬람도시부터 둘러보겠습니다.

● 스페인 속의 이슬람세계 : 코르도바, 세비야, 그라나다는 이슬람교도 지배 하의 스페인은 세도시가 중심을 이루었다. 711년에서 1010년까지는 코르도바, 1010년부터 1248년까지는 세비야, 그리고 1248년에서 1492년까지는 그라나다에서 이슬람 문화가 꽃을 피웠다.

'알 안달루스의 신부' : 코르도바

- 안달루시아 : 코르도바는 스페인 남부 해안지역에 면해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도시이다. 안달루시아는 지정학적으로 북아프리카의모로코와 가장 근거리에 접한 지역으로 이슬람교도들이 북아프리카를 통해 이베리아반도(스페인)로 접근하기 좋은 교두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안달루시아비방의 이름은 '알 안달루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알 안달루스'는 '반달족이 건너온 곳'이라는 뜻의 '반달루스(vandalus)'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al)'은 아랍어 관사이다. 즉 안달루시아는 반달족이 건너온 곳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이다.

- '알 안달루스의 신부' 라는 말은 코르도바의 아름다움을 두고 이슬람의 작가는 ‘알 안달루스의 신부’라고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 그녀는 모든 아름다움을 다 갖추고 있다. 왕후로서의 오랜 가계가 그녀의 영광된 관을 만들고 있다. 그녀의 목걸이는 시인이 언어의 바다에서 채취한 진주를 이어 놓은 것이며, 그녀의 이상은 학자들이 교모하게 짠 학문으로 지어져 있다.”

● 스페인 역사 :

- 기원전4500년경 동부연안에 최초의 집단부락이 출연, 이후 기원전 1천년경 아프리카에서 동부연안에 진출한 햄족 기원의 이베로족과 기원전 600년경 피레네 산맥을 넘어와 반도 중앙부와 서북부에 정착한 켈트족이 합쳐져셔 셀티베로족이라는 새로운 종족으로 변해 스페인의 직계조상

- 켈트족은 기원전 2천년부터 기원전 1세기까지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 살았던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던 종족으로 매우 호전적인 종족으로 현재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지역에 아일랜드인과 유사

- 페니키아와 그리스인들(기원전11-3세기) : 기원전 11세기 무렵 이베리아반도 남부 연안에 카디스를 건설하여 식민거점으로 활용하였다. 오늘날 베이루트 북쪽 20마일에에 있는 페니키아는 도매상의 교역로로 아프리카 북부와 이베리아 반도 남부지역에 공장을 건설하여 방해한 해상교역망을 구축, 이후 카르타고의 번영으로 쇠토

- 카르타고인들은 페니키아인들의 뒤를 이어 식민도시를 건설, 그 거점이 바르셀로나로 기원전 3세기 이후, 로마제국과 1세기 이상 치렀던 포에니 전쟁에서 패함으로 지중해 패권을 로마제국에 양도

- 이베로라는 말은 오늘날 에브로(Ebro)강의 옛 이름인 이베르 강지역에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 기원전 1200년에서 서기 400년(로마제국 지배)까지 스페인의 많은 문명이 발달, 기원전 19년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인들은 이베리아 반도를 완전히 점령 이때 반도에 카톨릭과 라틴어가 도입

- 게르만족의 대이동(서고트족의 침입409년) : 북방인종으로 키가 크고 금발에 파란눈이 특징으로 원래 거주지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남부에서 지금의 북독일에 걸친 지역이다. 이들의 이동은 훈족이 볼가강을 건너 동고트 족을 정복함으로써 376년 로마 영토안으로 이주, 476년 로마는 게르만족의 오토아케르에 의해 폐위되엇으며 그로서 로마는 멸망

- 이베리아 반도에서 서고트족은 전체 약 400만의 주민 중 10만명 정도로 세고비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정된 지역에 거주했고, 나머지는 중요한 각 지방의 도시에 군대와 관리들만 주둔시켰다. 711년 이슬람의 침공으로 붕괴되었다

- 이슬람교도의 반도 침입(711년) : 서고트의 왕 위티사가 710년 죽자 로드리고가 왕위에 오르자 아들의 추도세력은 북아프리카의 회교 통치자 무사에게 용병을 요청, 타리크를 보냈다. 그의 부대는 스페인 남부 코달레테 강가에서 싸워 이겼다. 이것이 이슬람교도들의 이베리아 반도 침입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7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북서쪽의 고산 지대를 제외하고 반도 전체를 점령하여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켰다.

- 11세기부터 이슬람교도 사이의 분쟁으로 여러 왕국으로 분열되었으며, 이로 인해 카톨릭 왕국의 재정복(레콘키스타)이 달성되어 1492년 이슬람 왕국은 사라지고 카톨릭으로 통일된 강력한 국가가 형성

이슬람도시 코르도바의 탄생 :아랍 본토의 다마스쿠스를 거점으로 지배하던 '옴마아드' 왕조의 '압데라만 1세'가 바그다드를 거점으로 하는 '아바스 왕족'의 학살을 피신하여 칼리프령인 스페인에 피신해 있다가 새로운 독립 이슬람 왕국을 세웠다. 국호를 알 안달루스 (Al Andalus)라고 칭하고 도읍지로 결정괸 곳이 코르도바이다. '압데라만 2세'는 코르도바를 바그다드보다 훌륭한 도시로 만들려고 두 번에 걸쳐 증축한 대모스크의 1,200개나 되는 석조기둥에는 스페인을 거쳐간 지중해의 모든 문명(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비진틴)의 양식들이 표현되었다.

당시 유럽에는 인구 3만의 도시가 적었던 반면 코르도바 인구는 50만 이었으므로 당시 콘스탄티노플 외에는 없었다. 압데라만 3세는 코르도바를 독립된 카리프로서 바그다드로부터 분리시켜 정치적 종속관계를 벗어나 알 안달루스 왕국은 독립적인 황금시대를 구가할 수 있었다.

코르도바는 그리스 철학이나, 로마의 법률, 비잔틴과 페르시아의 예술을 받아들였고, 유대교와 카톨릭 신학까지 연구했다.  코르도바의 멸망은 1031년 마지막 와인 힉셈3세가 사망함으로써 왕국의 동요와 반란이 일어나 한 군주가 통치하는 칼리프 왕국이 사리지고, 왕국은 주요 도시로 분활되어 각 도시마다 군주들이 난립하는 군웅할거 시대인 타이파(소왕국)왕욱 시대로 넘어갔다.(1036-1081) 이후 1085년에 이슬람교도의 핍박을 받던 톨레도가 카톨릭교도로 넘어가자 코르도바 왕국은 북아프리카의 알모라비데족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이들은 카톨릭교도들을 물리치지만 동시에 코르도바 왕국도 정복하는 바람에 안달루스의 신부 코르도바의 영광은 사라지고 말았다.

*코르도바(cordoba)는 페니키아어로 '풍요롭고 귀한도시'라는 뜻의 Kartuba에서 유래했다.

코르도바 대성당 : 대성당이라는  명칭은 현재에 사용되는 용도를 일컬어 사용하는 건물명이다. 당초 건립당시에는 이슬람 사원으로 건립되어 모스크(Mosque)라고 부르며, 스페인어로 'Mezquita(매즈퀴타)'라고 사용되고 있다. 이 사원은 스페인에 남은 유일한 회교사원이며,세계에서 규모면으로 몇번째 해당되는 큰규모의 사원이다.

- 건물의 연혁은 786년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규모는 22,400평방미터로 남북길이 175미터, 동서로 128미터의 규모로 동시에 2만5천명 예배를 드릴수 있도록 되어있다.  평면의 구성은 사원과 중정(세정의 정원) 그리고 미나렛(Minaret, 광탑)으로 구성되어있다.

- 사원은 최초에 노랑색(9번)부분이었으나, 색상에 따라 증축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하단이 중정이며, 실내의 중앙부분이 성당으로 개조하면서 만들어진 중앙예배당이다. (16,17,18번)

 - 종탑에 해당되는 미나렛은 하루 5번 기도시간을 알리기 위해 종탑기능을 하며 내부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최초의 종탑은 소실되고 현재의 종탑은 47.5미터로 1617년 성당으로 용도변경되면서 새로이 건립된 것이다.- 현재의 종탑은 카톨릭성당으로 사용되면서 세원진 것이다. 중정 외곽에 설치된 회랑에 접해있다.

- 중정은 5개의 분수와 함께 올리브나무, 오렌지나무, 종려나무, 사이프러스 나무 등으로 장시되어있다. 중정 외곽으로는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행하는 수세의식을 위한 세례소가 있었을 것이나, 현재는 카톨릭 성당으로 변경되어서 그러한 모습은 남아있지 않다.- 중정은 예배보러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정화공간이다.- 중정 외곽에 면한 회랑은 원래 세례소가 설치되었으나, 현재는 전시회랑의 역할을 하고 있다.

- 사원은 19개의 아케이브 주열로 형성되어 있다. 쉽게 표현하면 19칸의 기둥주령릉 형성하고 있으며, 매 칸은 상부 세모난 박공지붕으로 형성된 지붕으로 채광을 삼각형의 한면을 채광창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붕은 톱날 지붕형태의 반복형태로 지어졌다.- 아치구조를 받치는 기둥이 하단에는 원기둥으로 마감하고 상부는 네모난 기둥으로 되어있다. 원기둥과 네모기둥의 접합부를 고대 로마시대에 기둥 상단을 장식하는 꽃잎문양으로 장신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기둥을 칼리프 기둥으로 불리면서 코르도바의 대표적 예술품으로 후세에 알려졌다.

- 당초 회교사원으로 사용될 당시의 지붕모습이다. 19개의 아치 상부 톱날 지붕의 단순한 형태로 마감되어있다.

- 카톨릭 대성당으로의 용도변경 :  1236년 성페르난도 3세에 의해 코르도바가 함락당하면서 회교사원은 '산타마리아 마드레 데 디오스'라는 대성당으로 바꾸게 되었다. 회교사원과 성당은 내부 기능이 다르므로 당시에는 이것을 해체시키고고 했으나 재차 협의를 한 결과, 주 제대와 성가대석의 십자가형 평면을 중앙부에 삽입하는 형태로 정리되었다. 그래한 형태로 나온 결과가 삼각형 박공형 평면의 중심에 우뚝 솟은 고딕식 지붕이 성당의 중심공간을 상징하는 형태로 변경되게 되었다.

- 그림의 지붕은 카톨릭 성당으로 용도변경하면서 중앙부에 제대와 예배석을 설치하면서 고딕식으로 장식하기 위해 높은 천장을 만들기 위해 지붕이 솟아 있으며, 주변부는 높은 벽면을 지지하기 위한 부축벽이다.

실내상세 설명- 여러차레 증축되는 과정에 시대별 다양한 아치의 장식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건물을 거대한 고고학 박물관으로 여기고 있다.

- 내벽면에 아치로 통하는 감실을 '미르합'이라고 한다. 대리석으로 장식된 팔각형의 공간으로 아치 주변은 자연을 상징하는 식물모양과 주변에는 코란 경구를 금박으로 장식하고 있다.

- 성가대석에 조각은 중앙부에 예수님의 부활장면을 양측에 시빈를 상징하는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와, 고행을 상징하는 막달라 말아가 조각되어있다. 조각은바로크를 대표하는 조각가 페드로에 의해 마호가니 나무로 제작되었다.- 회랑부분은 반원형 아치로 되어 있으며, 반대열은 얼룩무늬 2단 아치의 동일한 공간이 반복되고 있다.

사원 주변풍경

-사원주변은 유태인지역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비좁은 골목길에 조그만한 기념품 코너가로로 형성되있다.-벽면의 아기자기한 화분 장식들- 기념품티가 가지런히 정열된 모습- 주변광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네 노인들- 노천카페에서 강변을 바로보다.- 다리위에서 바라본 사원모습, 중앙의 돌출부분이 제대에 해당된다.

현재의 코르도바 -지붕의 중앙부 라틴크로스 부분이 제단 및 예배당으로 변경되었다.

- 코르도바는 8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서구의 콘스탄티노플', '서양속의 동양'이라고 불리웠던 이슬람 제국의 영화를 간직한 도시이다. 카톨릭교도에 의해 멸망한지 10세기가 지났지만, 회교도들이 남긴 건축술에 대한 독창성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남아있다. 사원 실내에 도열한 얼룩무늬 아치에 남겨져 있는 회교도 장인들의 야무진 손맵시는 코란속의 경구를 실천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카톨릭 국가 스페인의 한켠에서 세계 여라나라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이슬람교의 의미를 생각하도록 예상했을 수도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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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6 00:00

통합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3)-빌바오의 도시재생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

(1) 8년동안 만든 도시계획-도쿄 도심재개발 
(2) 도시정비계획 수립후 협의만 10년, 독일 에슐링겐
(3) "빌바오 효과"... 15년전 예견된 성공사례
(4) 민관협력으로 성공한 토리노의 도심 재개발 정책
(5) 도시의 색채는 작은 안내서에서 부터... '오다와라의 경관색채계획'
(6) 프랑스 신도시 '라데팡스', 알고보면 그 시작은 1958년 부터
(7) 40여년 동안 바람길 활용계획으로 대기오염을 극복한 슈투트가르트, 또 앞으로의 도전
(8) 작은계획(하천정비)을 시작으로 큰 그림(도시계획)을 완성하다. '물의 도시 오사카'
(9) '미나토 미라이 21'은 20세기 중반에 세워진 계획?
(10) 23년동안 10개의 다리를 10가지 각기 다른 테마로 만드는 도시, 들어보셨나요?
(11) 25년만에 완성된 하펜시티(함부르크) 프로젝트


빌바오(Bilbao, Spain).
면적 41.3㎢, 인구 35만의 중소도시가 세계적인 도시로 부각되었습니다.
스페인 북부 비스카야주의 주도인 빌바오.

※ 월드맵파인더 캡쳐


광장을 중심으로 뻗은 방사형 주간선도로와 중정형의 블럭을 가진 정형적인 중세도시의 모습입니다.


네르비온강변으로 3km에 이르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비스케이만(灣, Bay)에서 10km 내륙으로 들어오 네르비온강에 면한 빌바오의 이곳.
철광산업의 부흥을 이어오던 이곳에 새로운 도시디자인을 통해 일약 월드스타급의 도시로의 도약을 이뤄냈습니다.




"빌바오 효과"는 1995년에 수립한 '메트로폴리탄 빌바오 계획'으로부터 이뤄낸것입니다.
물론 1991년에 '구겐하임미술관'의 유치가 확정되면서부터 그 신조어(Bilbao Effect)가 톡톡히 효과 본것이기도 합니다.

그 효과를 정량적으로 계산한 자료를 보면, 과거 10년동안의 관광객이 986만명. 수익은 약 2조 1,000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중소도시인 빌바오는 도시규모에 대비되는 엄청난 도시브랜드를 일궈냈습니다.

우리나라 관광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방안외래관광객 수 =  약 780만명.(2009년)


이렇게 되기까지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 역사가 있었습니다.

빌바오는 1970년대까지 45만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활기찬 도시였습니다.
철강, 조선산업의 중심지 (빌바오는 스페인 최대항구)로 급성장해오던 이곳에
1970년대 말, 유럽의 산업위기로 인해 그간 이루어낸 경제적 성장이 멈춘것은 물론이고
중공업과 그 부속되는 산업, 이와 견주는 서비스업 마저도 붕괴되고 맙니다.

70년대말부터 80년대 중반까지 관련 산업의 고용이 25%나 감소되고,
이에 따라 실업율도 30%까지 치솟습니다.
인구감소현상은 눈에 띄게 늘어나고, 각종 사회문제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빌바오의 위기 앞에서,
시는 산업위기 등으로 도시침체를 맞은 타도시사례(피츠버그, 글라스고우 등)의 정황과 유사한 것으로 보고, 그 원인을 '도시의 구조적 문제'로 규정합니다.
즉, '산업도시 빌바오'의 도시재생방안으로 '탈산업화'를 시도하게 됩니다.

탈산업화를 통한 빌바오의 도시회생을 위해 '문화와 예술적인 도시'를 목표로 한
 '메트로폴리탄 빌바오 계획'이 1995년에 수립됩니다.
문화와 예술을 통한 경제 활성화가 이 계획의 궁극적인 목표였습니다.

도시디자인을 통해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는 일로 시작해서, 문화와 예술관련 부문을 활성화시키고, 자본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영국 글래스고우 도시재생전략 벤치마킹)

빌바오의 도시재생의 특징은 지역공동체에 대한 지원입니다.
대표적으로,
1991년에 설립된 '빌바오 메트로폴리탄 30'공공과 민간의 활동이 도시재생 과정을 주관하도록 하였고,
1992년에 설립된 '빌바오 리아 2000'은 중앙정부와 주정부가 50%씩 공동으로 출자하여 도시재생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공기업을 만들었습니다. 이 기관은 독립성을 보장받고(정치적 개입 방지), 운영도 독립적으로 하되, 경제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였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빌바오계획은 실제로 빌바오항만청에서 외부 항구의 확장공사계획에 따라 네르비온강 주변지역을 활용할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기회였습니다.

현재 마산지방행양항만청에서도 부두를 도시의 유휴공간으로 제공할 계획이며, 이에 대한 '마산만 르네상스 정책'의 일환으로 워터프런트 계획을 현재 창원시 도시디자인과에서 추진중입니다.
이 구상이 통합창원시의 기회로 작용하면 좋겠습니다.



현재까지 메트로폴리탄 빌바오계획에서 사용된 자금은 신공항에 190백만유로, 빌바오전철 900백만유로, 외부항구 600백만유로, 지상궤도열차(트램)에 20백만유로를 투입하되었습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들의 계획은 지금으로 부터 15년전에 되어졌던 것입니다.
빌바오 메트로폴리탄 30의 설립시기로 보면 20년전입니다.

 1991년  빌비오 메트로폴리탄 30설립 
 1991년  바스크 주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 확정 
 1992년  빌바오 리아 2000설립 
 1992년  외부항구 확장공사 시작 
 1995년  메트로폴리탄 빌바오 계획 수립
 소로사우레 마스터플랜 통과 
 1995년  지하철개통, 네르비온강 인도교, 수변지구 재개발공사 
 1997년  구겐하임미술관 완공 
 1998년  Aalborg 법규 통과 - 21 지방 의제
 2005-2008년 활동 계획 수립
 1995년
 2001년  소로사우레(Zorrotzaurre) 도시발전관리위원회 구성 
 2002년  에우스꼬뜨란 완공 
 2003년  소로사우레  
 2004년  아메촐라 공원 개장
 2007년  사로사우레 마스터플랜 완료
 마스터플랜 목적과 지침 목록서 계획

빌바오의 트램 

구겐하임 미술관 

네르비온강변 워터프런트 1

네르비온강변 워터프런트 2

네르비온강변 워터프런트 3

스비스리 다리(Pasarela Zubizuri), 보행전용교
※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 디자인


 에스칼두나 다리.
보행자와 자전거이용자를 배려한 캐노피 디자인인 돋보입니다.


기업의 생명이 30-50년이라고 본다면, 도시의 생명은 무한대일 것입니다.
그런 도시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따라 실천해나가는 것.
절대 서둘러서는 안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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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래 2010.07.16 17:5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관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빌바오는, 스페인이 관광대국이기에 관광이 중심이 될 수 있으나
    창원은, 한국이 관광으로는 스페인에 못미친다.
    따라서 제조업을 더 중요시 해야 한다.

    • 허정도 2010.07.17 11:34 신고 address edit & del

      맞는 말씀입니다.
      도시를 조금 고친다고 관광객이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워터프런트나 도시재생 프로그램을 통해 생활환경이 좋아지고 도시에 생기가 넘치면 마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은 많이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2. 똥곰 2011.04.24 23:3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도시공학을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구글링중에 좋은정보 많이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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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정전 후의 체험들 Ⅱ - 수학여행 전쟁이 막바지로 갈 때쯤 해선 민간자동차도 많이 다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주로 화물차가 많이 보였는데, 마산 부산 간에만 다니던 버스 숫자도 상당히 불어난 걸 느낄 수 있었다. ..

건축의 외형 - ‘계단’ (Staircase)

오늘은 이전 포스팅들 보다는 조금 더 인공적인 형태라 할 수 있는, '계단' 이라는 주제를 가져와 보았습니다. 계단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 되어, 이미 BC3000년 경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에서부터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

기억을 찾아가다 - 10

10. 정권 후의 체험들 Ⅰ- 깡통문화, 총탄 정전 반대를 외치는 집회와 행진이 전국적으로 있었고 마산에서도 무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궐기대회가 열렸었다는 이야기를 어른들이나 형들로부터 엿들었던 기억은 있으나 거기에 관심을 기울..

건축의 외형 - ‘초승달’ (crescent)

달은 태양과 마찬가지로 여러 문화권에서 신화나 종교와 연결지어서 생각되었습니다. 초승달은 달이 뜨지 않는 삭 다음에 나타나기 때문에 서양권 에서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하여 new moon 이라고도 불리죠. 오늘은 이슬람의 ..

기억을 찾아가다 - 9

9. 한국전쟁기의 학교생활 Ⅲ - 용의검사, 학력경쟁 가교사생활 직후부터 실시된 용의검사는 생활환경이 좋은 도회지 넉넉한 집 아이들에겐 별 부담이 안 되었겠지만, 누추한 환경에서 생활하거나 항상 흙을 묻히고 살아야하는 농촌 아..

건축의 외형 - ‘삼각형’ (Triangle)

피라미드와 삼각형, 그게 그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입체도형과 평면도형 이라는 근본의 차이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접근 또는 적용 방식 또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라미드와 삼각형 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확..

기억을 찾아가다 - 8

8. 한국전쟁기의 학교수업 Ⅱ - 떠돌이 수업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1952년의 학교생활엔 참 변화가 많았다. 담임선생님도 세 번이나 바뀌었고 교실도 다섯 번이나 옮겨 다녔다. 그리고 전입생도 그 해에 갑자기 불어났다.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