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4.05.12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13)

개항부터 해방까지 진행된 마산 도시변화과정의 특징을 간단히 요약한 글입니다. 내용은 시가지 확산, 도로망 패턴, 토지 이용 등 세 가지와 이 시기에 있었던 도시변화 중 대표적인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시가지 확산>

원마산과 신마산의 두 도시가 각각 다른 조건과 형태로 생성․변화․확산을 거치면서 1930년대 중반에 이르러 서로 연결되었고, 그 결과 마산 시가지는 남북 장축의 대상형(帶狀型)으로 변하였습니다.

두 도시의 연결은 단지 두 공간이 지형적으로 연결되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공간적 경계가 완화되고 식민정책을 관장하는 공공업무지역이 형성되는 등 사실상 마산 도시에 있어서 최대의 변화를 초래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도로망 패턴>

합방 이전까지 원마산에는 자연취락형 도로 밖에 없었으나 신마산의 형성 이후 두 도시에 각각 격자형 도로가 조성되었습니다.

두 도시를 연결하는 중심가로는 자연조건에 의해 남북축을 따라 길게 형성되었는데, 1930년대 이후 시가지가 확산되면서 총 3개의 남북축 중심가로가 나타남으로써 선상(線狀)형의 도로망 구조를 갖게 되었습니다.

<토지 이용>

마산창을 중심으로 남쪽 해안일대에 강력하게 형성되어 있던 원마산의 상권은 매립과 도로개설, 그리고 역세권의 영향을 받으면서 다른 곳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아울러 신마산의 중심가로변에는 노변상권이 형성되었는데 1920년대 이후 중앙마산 조성으로 노변상권은 더욱 길어졌습니다.

개항기와 강점 제1기까지의 공업관련시설은 시가지 전역에 흩어져 있었습니다만 1920년대 이후 시행된 매립으로 인하여 그것이 해안에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신마산에서 가장 번화했던 두월동 상권의 기능 밀도는 원마산의 남성동 상권에 비할 바가 못 되었는데 이러한 남성동지역의 상권은 비록 그 세가 약해지긴 했지만 오늘날까지 도시의 상업중심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표적 도시변화>

이상과 같은 도시변화과정에는 사회변화 및 산업성장에 따른 도시인구증가라는 일반적인 요인 외에 다른 요소도 있었습니다.

곧 마산 도시 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동서(東西)쪽에 각각 바다와 산이 자리 잡고 있는 자연적 조건과 개항․러일전쟁․한일합방․부(府)제정․회사령․시구개정․전쟁 등으로 이어지는 정치사회적 조건이라고 하는 특수한 요인을 말합니다.

그 결과,  

① 개항으로 인한 신 도시 건설

② 지속적으로 시행된 해안의 대규모 매립

③ 중앙마산이라고 하는 특수한 공간의 형성과 변화

④ 두 개의 철도노선과 세 곳의 철도역에 의한 유통발달

이라고 하는 중요한 도시변화를 낳았으며, 이 네 가지 결과는 도시변화과정 속에서 변화의 내용을 확대 재생산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 그림은 강점기 동안 시행된 매립을 정리한 것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0
2014.04.14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09) - 강점제3시기

<강점기 마산의 도시화과정 특징>

도시는 인구․생활욕구․교통체계․경제여건 등 내적 상호작용에 의해 그 구조가 변화되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지역과 국가 나아가서 국제사회가 기능적으로 상호 긴밀하게 얽혀있는 생태의 장(ecological field)에서 도시가 그 중심적인 구성체이기 때문에 도시와 외부 영향 사이의 관계 및 입지조건 등 외적자극도 중요한 변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이런 변화요인에는 도시의 역사적 배경을 비롯하여 문화적․사회경제적 조건 등 일체의 상황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지금까지 몇 주 동안 올린 강점기 마산의 도시화과정을 요약 정리합니다. 내용은 1) 시가지 확산, 2) 도로망 패턴, 3) 토지 이용 순입니다.

1) 시가지 확산

마산의 시가지 확산은 한국인이 살던 원마산과 일본인이 살던 신마산의 두 도시가 각각 다른 조건과 형태로 생성․변화․확산을 거쳐 마침내 하나로 연결되는 과정으로 다음과 같이 전개되었습니다.

① 도시의 규모는 개항 전 약 0.19㎢에서 해방 시기에 4.37㎢로 무려 23배나 넓어졌습니다.

확산 시기는 신마산이 1910년 이전인 개항기, 원마산은 1910-1920년대에 많이 진행되었으나 두 도시 모두 1930년대 이후에 그 강도와 속도가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③ 도시구성 형태는 원마산과 신마산이라고 하는 각각의 두 개 도시가 1930년대 중반에 연결됨으로써 남북 장축의 대상형(帶狀型)으로 변했습니다.

④ 두 도시의 연결은 단지 두 도시가 지형적으로 연결되었다는 것 외에 한국인과 일본인의 공간적 경계가 완화되고 식민정책을 관장하는 공공업무지역 형성 등 사실상 마산 도시에 있어서 최대의 변화였습니다.

시가지 확산의 방향과 강도를 나타낸 그림입니다.

2) 도로망 패턴

① 근대적 도로가 개설되기 이전에 원마산은 자연취락에서 나타나는 부정형 세도(細道)와 부정형 격자의 일부 도로가 혼재하고 있었으며 창원과 진주를 잇는 가도(街道)가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② 개항으로 조성된 신마산에는 도시의 특수한 자연조건과 향후 원마산과의 연결을 고려하여 남북축으로 중심가로가 조성되었습니다.

③ 1910년경 신마산의 중심가로가 북쪽의 원마산까지 연결되었으며(현 장군로) 이 때 원마산에도 격자형 도로가 처음으로 조성되었습니다.

③ 1930년대 이후에 도시범역이 확장되면서 해안의 매립지를 따라 제2의 중심가로인「해안로」가 기존의 도로와 평행하게 조성되었습니다. 이어서 중앙마산과 신마산지역 산지(山地)의 허리를 지나는「고운로」도 조성되어 마산은 두 개의 중심가로와 동일 축의 보조도로 등 총 세 개의 남북축 도로가 형성되었습니다.

④ 따라서 중심가로 형태로서 유형을 분류한다면 선상(線狀)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심가로망 변화패턴을 나타낸 그림입니다. 

3) 토지 이용

① 개항기 원마산은 마산창을 중심으로 남쪽 해안일대에 강력한 상권이 형성되어있었고 주위의 상당한 지역까지도 상업용지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일부 도로 안쪽의 대지와 동성동의 동쪽 일대는 주거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정 당시의 시기를 기준으로 할 때 이들 중심상권의 토지는 어선창 일대를 제외하고 대부분 일본인의 소유였으며 중국인의 소유도 제법 있었습니다.

② 원마산의 이러한 토지이용구조는 매립과 도로개설, 그리고 역세권의 영향으로 상업기능이 확산되었으며 1930년대 이후에는 해안지역의 매립지가 공업시설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③ 신마산은 도로망 패턴과 마산 역 건설의 영향으로 노변상권이 형성되었으며 1920년대 이후 중앙마산 조성으로 중심가로를 따라 노변상권은 더욱 길어졌습니다.

④ 공업관련시설은 초기에는 시가지 전역에 흩어져 있었는데 1920년대 들어 매립이 시작되면서 해안으로 집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⑤ 1945년 당시 도시공간 중 해수면을 접한 대부분의 토지가 공업용지로 사용되고 있었다. 상업용지는 원마산은 남성동 중심부 일대와 구마산 및 북마산 역 주변을 중심으로, 신마산에서는 두월동 3가를 중심으로 노변상권이 형성되었다.

⑥ 신마산의 두월동 상권은 원마산의 남성동 상권에 비해 그 기능의 밀도가 훨씬 미치지 못했습니다. 남성동의 도심권 기능은 개항 이전부터 해방 때까지 지속되었으며 현재까지도 그 위상이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개항되었던 1899년과 해방 때인 1945년의 토지이용상태의 변화를 간략히 그림으로 나타내었습니다.<<<

 

Trackback 0 Comment 0
2014.01.27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8) - 강점기 정리

강점기 동안 있었던 마산의 도시변화 중 <시가지 확산>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개항기 원마산의 시가지 범역 규모는 약 0.19㎢였고 이는 1910년 합방기까지 변화가 없었습니다.

1910년대 들어서 경제적 잉여를 목적으로 시행된 남성동의 매립과 구마산․북마산 두 역의 발달로 인해 유통이 활발해지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시가지가 확산되었는데 이미 인근에 자리하고 있던 자연취락까지 연결될 정도의 확산양상을 보여 1930년에는 0.9㎢로 약 470%나 확장되었습니다.

시기적으로는 1920년대 이후부터 확산의 강도와 속도가 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원인은 산업의 발달에 따른 도시인구의 증가와 철도역으로 인한 인근지역과의 교류 때문이었습니다.

확산의 방향은 원마산의 자연적 조건(원마산을 지형적으로 보면 남쪽 신마산 방향은 환주산과 해안선의 거리가 짧아 몽고정 일대가 오목하여 더 확산될 여지가 없었으며 서쪽은 환주산, 동쪽은 바다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말함)과 철도역세권 등의 이유로 북쪽방향으로 폭넓게 확산되었으나 1930년대 이후에는 남쪽의 중앙마산 건설, 동쪽 해안 쪽의 매립, 그리고 서쪽으로는 환주산 저단부까지 주거지로 변하는 등 사방으로 시가지 범역이 강하게 확산되었습니다.

신마산 지역은 조계지의 서쪽 산사면(山斜面)이 미처 개발도 되지 않은 채 개항기에 이미 북쪽으로 시가지가 확산되어 동서축이 좁고 남북축이 긴 형태의 장방형 약 0.64㎢규모로 시가지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원인은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전하고 그에 따라 일본인이 대량으로 이주해 온 것과 마산 역의 역세권 때문이었지만 이렇게 급성장한 신마산이 1910년 이후 약 10년 동안에 침체기를 맞게 됩니다.

1920년대에는 철도용지가 해제되어 중앙마산지역이 중심가로를 중심으로 세장형 0.11㎢규모의 시가지가 조성되었다가 1930년대 이후에는 중앙마산지역 전체가 시가화 되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해안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매립되었으며 그때까지 개발되지 않고 있었던 조계지와 중앙마산지역의 서쪽 산사면(山斜面)의 해발 악45m전후까지 주거지가 확산되어 최상부 말단에 현재의 고운로가 개설되었습니다.

와 같은 과정을 거쳐 1935년경 원마산과 신마산이 서로 맞닿게 되고 도시는 둘에서 하나로 변했습니다.

시가지 외곽경계를 살펴보면 동쪽으로는 매립 후 조성된 해안의 직선 호안이었고 남쪽은 산지까지 맞닿아 현재의 고운로까지 연결되었으며 남쪽은 육군중포병대대 입구(현재의 경남대 정문 일대)까지, 북쪽으로는 회원천 경계주변까지 확산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회원천을 경계로 이남지역의 가용지는 대부분 시가화 되고 북쪽으로 현재의 석전동․양덕동․합성동은 농지로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1945년 기준으로 시가지의 규모는 4.37㎢이었는데 이는 최초 원마산의 0.19㎢에 비해 무려 23배에 달하는 면적이며 시가지 형태는 크게 보아 동서축이 좁고 남북축이 긴 대상형(帶狀型)이었습니다.

마산의 시가지가 이와 같은 확산과정을 거치게 된 요인은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그 중 시가지 확산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매립은 회사령 폐지 이후 가용지 부족이라는 사회경제적 요인도 있었겠지만 보다 규정적 요인은 자연적 조건이었습니다.

마산은 서쪽으로 무학산록과 동쪽으로 마산만 사이의 세장형으로 좁고 긴 해안평지에 도시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장축(長軸)은 해안을 따라 평지로 형성되었으며 단축(短軸)은 사면(斜面)으로서 여러 개의 하천이 서쪽 무학산에서 동쪽인 마산만으로 흘러내리는 지형입니다.

이와 같은 자연조건 때문에 해안에는 무려 폭 70m에서 최고 200m까지의 간석지가 있었으며 심지어 봉암동 지역은 간석지의 폭이 1㎞에 달했는데, 바로 이 간석지가 매립을 촉진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 때 사용한 매립토는 인접한 산사지(山斜地)에서 공급하기도 하여 결과적으로 산이 위치한 방향(西)과 바다가 있는 방향(東)의 시가지 폭이 점점 넓어지는 양상으로 시가지가 확산되었던 것입니다.

시가지 확산의 다른 요인으로 1920년대 이후부터 시작된 중앙마산 조성을 들 수 있는데 철도용지로 묶여있던 이 중앙마산지역이 시가화 되면서 원마산과 신마산이 연결되었고 이로 인해 시가지가 확산되었던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마산 도시가 그 때까지 두 곳으로 나누어져있었던 원인은 중앙마산지역이 철도용지로 묶여 시가화(市街化)되지 않았던 정책적 요인도 있었지만 위치상 두 도시의 한 가운데인 현 몽고정 부근 일대의 지형이 해안이 깊고 환주산이 돌출하여 지형적으로 병목형태이던 자연적 요인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두 개의 철도 노선과 한 개의 도로까지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도 두 도시가 연담화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은 두 가지의 요인이 철도용지 해제와 신포동 지역의 0.21㎢에 달하는 대규모 매립이라는 방식으로 동시에 해결되었는데 시기적으로는 1920년대 중반 동시기에 검토․착수되어 10여 년이란 세월을 거쳐 1935년경에 완료된 시점이었습니다.

이 변화는 단지 원마산과 신마산의 시가지 연결이라는 도시의 지형적 측면뿐만 아니라 한국인과 일본인의 공간적 경계완화 및 도시의 지형 변화라고 하는 사실상 마산 도시에 있어서 최대의 변화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산도시의 시가지 확산과정을 축약한 후 시기 별로 나누어 그림으로 표현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산호리(옛 오산리), 즉 용마산 동편 아래쪽인 자유무역지역 정문 앞 일대에 취락이 형성되어 있었지만 시가지와 연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림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Trackback 0 Comment 3
  1. 박천환 2014.02.06 12:3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고맙습니다. 종걸 스님 꾸벅

  2. 박천환 2014.02.07 09:3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교수님의 글을 종종 보고 있습니다. 여기는 국내 유일의 군산시 일본식 사찰 동국사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조동종이 세운 사찰입니다. 마산부 무학산 자락에 위치했던 복수사에 관한 자료를 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행정지번과 언제 없어졌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무학산 조동종 복수사 위치도는 동국사 홈피 사진실에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doldosa7044@hanmail.net

    • 허정도 2014.02.06 10:41 신고 address edit & del

      방문 감사합니다. 찾는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기억을 찾아가다 - 14

14. 정전 후의 체험들 Ⅴ - 마부 버스, 화물차 군용차 아닌 것들을 그때 우리들은 ‘개인차’라 불렀는데, 개인 승용차는 당시로선 하루에 한두 대 보기도 어려웠고, 거의 모두가 화물차와 버스였다. 거의 모두 일제가 두고 간 ..

건축의 외형 - ‘새둥지’ (Bird's Nest)

동굴에서의 삶을 시작으로 인간의 주거는 자연을 모방하는 단계를 거쳐 현재는 완전히 인공적인 삶의 공간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연적 형태들은 완전한 인공물인 건축의 형태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의도되었든 ..

기억을 찾아가다 - 13

13. 정전 후의 체험들 Ⅳ - ‘이용범 다리’ ‘용베미 다리’란 말을 언제 쯤 부터 들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이용범(아래 사진 / 1905~1968)이란 인물의 이름이 널리 퍼진 계기로 미루어보면, 1954년..

건축의 외형 - ‘원통’ (cylinder)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수많은 도형들 중에, 언제나 주변에 있어서 오히려 존재감이 낮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상에서의 '원통' 이 그런 것 중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원통형 물체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

기억을 찾아가다 - 12

12. 정전 후의 체험들 Ⅲ - 귀환, 상이군인들 정전 얼마 후에 전장에 갔던 아저씨들이 속속 돌아왔다. 함께 끌려가서(그땐 그렇게들 표현했다) 내내 한 부대에 있다가 함께 돌아온 우용 아저씨와 내 당숙은 상이용사가 되어 돌아..

건축의 외형 - ‘타공판’ (perforated board)

사람이 건축의 외형을 인지하고 기억할 때에 여러 가지 요소들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됩니다.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특정 건물은 가장 부각되는 특정 요소로 기억하게 되는 듯 합니다. 규모나 재질, 기하학적 형태, 조..

2018년 새해인사

새해 인사드립니다. 꿈 꾸는 것과 희망하는 것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해가 되기 바랍니다.

건축의 외형 - ‘액자’ (frame)

미술의 역사 만큼이나 액자의 역사는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회화의 전시, 보존 등을 위한 보조적인 위치에서 출발한 액자는 사진의 등장과 기술의 발달 등으로 현재는 picture frame 만이 아니라 photo frame, d..

기억을 찾아가다 - 11

11. 정전 후의 체험들 Ⅱ - 수학여행 전쟁이 막바지로 갈 때쯤 해선 민간자동차도 많이 다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주로 화물차가 많이 보였는데, 마산 부산 간에만 다니던 버스 숫자도 상당히 불어난 걸 느낄 수 있었다. ..

건축의 외형 - ‘계단’ (Staircase)

오늘은 이전 포스팅들 보다는 조금 더 인공적인 형태라 할 수 있는, '계단' 이라는 주제를 가져와 보았습니다. 계단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 되어, 이미 BC3000년 경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에서부터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

기억을 찾아가다 - 10

10. 정권 후의 체험들 Ⅰ- 깡통문화, 총탄 정전 반대를 외치는 집회와 행진이 전국적으로 있었고 마산에서도 무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궐기대회가 열렸었다는 이야기를 어른들이나 형들로부터 엿들었던 기억은 있으나 거기에 관심을 기울..

건축의 외형 - ‘초승달’ (crescent)

달은 태양과 마찬가지로 여러 문화권에서 신화나 종교와 연결지어서 생각되었습니다. 초승달은 달이 뜨지 않는 삭 다음에 나타나기 때문에 서양권 에서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하여 new moon 이라고도 불리죠. 오늘은 이슬람의 ..

기억을 찾아가다 - 9

9. 한국전쟁기의 학교생활 Ⅲ - 용의검사, 학력경쟁 가교사생활 직후부터 실시된 용의검사는 생활환경이 좋은 도회지 넉넉한 집 아이들에겐 별 부담이 안 되었겠지만, 누추한 환경에서 생활하거나 항상 흙을 묻히고 살아야하는 농촌 아..

건축의 외형 - ‘삼각형’ (Triangle)

피라미드와 삼각형, 그게 그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입체도형과 평면도형 이라는 근본의 차이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접근 또는 적용 방식 또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라미드와 삼각형 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확..

기억을 찾아가다 - 8

8. 한국전쟁기의 학교수업 Ⅱ - 떠돌이 수업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1952년의 학교생활엔 참 변화가 많았다. 담임선생님도 세 번이나 바뀌었고 교실도 다섯 번이나 옮겨 다녔다. 그리고 전입생도 그 해에 갑자기 불어났다.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