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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7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10, 양악대 11, 감전사 제1호

10. 양악대(洋樂隊)

 

마산부내에 양악대가 시초된 것은 1911년 전후라고 기억되는데 현재 신마산에 자리잡고 있는 마산극장 위편 모 상점 자리에 일본인이 경영한 안부(安部)양복점이 있었다.

여기에 악기를 일본에서 구입하여 활동사진이나 일본 연극단체의 선전으로 신·구마산을 일주하면서 점원들의 후생사업을 하여 왔던 것이다.

그 뒤 몇 년이 지나서 마산 사립 창신학교에도 7인조 양악기를 구입하여 고등과 학생에 한해 연습케 하였는데 총지휘자는 안부(安部)양복점 주인과 직공 몇 사람이었고, 교습을 받은 생도들은 박군현(팔룡), 김인숙, 황장오, 김필석, 김영근, 박성우, 최사규, 김정기, 김상기, 강을렬, 박진우 등 제씨로 기억된다.

이들 창신학교 학생 밴드대는 교내 춘추 대운동회 때는 취악(吹樂)을 하여 선수 학생들을 흥겨웁게 해주며, 또한 부민 대운동회 때도 지원해 주기도 하여 갈채를 받았으나, 이것도 대원들의 생활환경에 따라 지남지북(之南之北)으로 흩어지고 겨우 명맥을 이어 온 것은 5인조의 마산악대였다.

이들은 선전용으로 전락, 직업화되어 공락관 전용으로 되다시피 된 후로는 어찌된 일인지 악기조차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최후까지 마산악대 명의로서 일당 얼마로 단합된 사람은 우용익, 박진우, 최사규, 황장오, 김상기 등 제씨들이었다.

<창신학교 밴드부>

 

11. 감전사(感電死) 제1호

 

구마산 수정(壽町, 현 수성동) 유곽 골목에서 유까다(日衣) 차림의 중노인이 전주 위에서 감전사한 일이 있었다.

죽은 사람은 정미소를 하는 원국(原國) 某로써 그는 해군 기관병으로 전기에는 다소 상식이 있어 발동기와 트란스 같은 것은 간단히 수리하기도 한 사람이다.

참화를 당한 그날(1922년 9월 3일 우천)도 트란스에 고장이 생겨 전기회사에 전화연락을 하였으나 전공은 오지 않고 일거리는 밀려들어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전주로 올라간 것이다.

마침 궂은 비가 내리던 때라 전선에 손을 대자마자 감전되어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흠칫했는데 그 순간 나선(裸線)인 고압선이 허리에 걸려 즉사하고 만 것이다.

이 광경을 전주 밑에서 보고 있던 그의 노처(老妻)와 아들은 “아버지!”라고 목 메어 절규하며 발버둥을 치고, 개도 높은 전주 위에서 불타는 참상을 알았는지 위만 쳐다보고 이리저리로 킁킁거리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이 딱한 꼴을 보면서도 아무도 어찌할 수 없었다. 글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

굵다란 전선이 허리뼈가 허옇게 드러나도록 파고 들어가 새까맣게 타버린 시체는 가제에 싸여 전공에 의하여 내려졌으나 책임소재는 밝힐 곳이 없었다.

전공이 아닌 사람이 전주에 올라가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회사 측에서 검찰관에게 진술하며 주장했다.

그런 불행한 일은 연쇄적으로 생기는 모양인가.

이 사고가 난 얼마 후 포교당 앞 전주에서도 목야(牧野)라는 일인 전공이 감전되자 재빨리 떨어져 목숨을 건졌는가 하면 2개월 전후하여 조선인 전공 두 사람도 역시 감전되었으나 비하(飛下)하여 목숨은 건졌으나 모두 상당한 중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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