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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3 00:00

해양신도시, 지금이라도 다른 길 찾아야

여러 정황을 보아 머지않아 마산해양신도시의 토지이용계획이 확정될 것 같습니다.
가포신항만 준공일자가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통합창원시가 ‘옛 마산시에서 계획하던 34만 평을 19만 평으로 축소하여 섬 형으로 신도시를 조성할 계획이며 이제는 매립지의 토지이용 문제만 남았다’고 밝힌 지 몇 달이 지났습니다.

마산만 내만에, 그것도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섬 형으로 매립하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고 다양한 해결책도 있었습니다만 결국 여기까지 왔습니다.

통합창원시에서는 ‘고민과 노력을 다해보았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라는 입장이지만 제 눈에는 중앙정부와 그 주변에서 정해주는 안을 그대로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원안이 최악이라면 지금 안은 차악입니다.

지난 3월 17일 해양신도시문제를 함께 고민했던 몇 분들과 국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마산출신 두 국회의원과 국토해양부 담당국장을 비롯한 담당책임자들이 저희들과 신도시 문제를 놓고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 날의 결론은 ‘국토해양부가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 다시 논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국회의원이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마산시민들이 뽑은 국회의원과 함께 한 약속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이주영 의원은 집권여당의 예산결산위원장이었고 안홍준 의원은 국토해양부가 소속된 상임위원회 위원이었으니 의심할 여지도 없었습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머지않아 나올 ‘새로운 방안’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창원시가 ‘19만 평, 섬형으로 개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사실은 그 날 간담회에서 안홍준 의원이 도면을 한 장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가 관심을 보이자 도로 넣어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도면에 섬 형으로 된 신도시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일의 전후를 연결시켜 보니 '섬형 19만 평'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새로운 방안’을 놓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국회의원들은 창원시의 발표 후에도 아무 해명도 없었고, 그 날 이후 ‘신마산 해안일대 6만 여 평에 정부가 워터프런트를 조성해 준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신도시는 개발하고 싶은데 시민단체의 반대 때문에 인센티브를 제시한 것 같고, 그 안을 국회의원과 창원시가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후부터 오늘까지 창원시는 해양신도시의 토지이용계획을 어떻게 할 건지 고민하고 있다 합니다.
사실 오래 고민해야할 만큼 복잡한 일도 아닙니다만 매립비용과 공공용지의 반비례관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처럼 만들어지는 해양신도시에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환경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도시구조적으로도 마산도시에 도움 되는 일이 아닙니다. 
특히 염려스러운 것은 도시학자 테오도르 폴 김이 '가장 나쁜 도시'라고 말한 ‘도시공간의 분리현상’입니다.

얼마 전에 마산YMCA시민사업위원들과 배를 타고 마산 앞바다로 나갔는데, 그 때 경남대 교수 한 분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런 바다를 메우다니, 제 정신인가?"

이 도시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제와서 바꿀 수 없다, 시간도 없고, 조건도 맞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그만한 사유를 이 도시의 미래와 수십만 삶의 무게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도시의 영원한 시간  앞에 1년이니 2년이니 해서야 되겠습니까.

사실은 해양신도시를 걱정하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떠 올라 글을 올렸습니다.

저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분들,,,
이 사업이 끝나는 2020년 쯤, 모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국토해양부 사람들이야 ‘마산해양신도시’ 기억도 하지 못할 테고,

기업 측 사람들은 진작 마산 떠났을 테고,

시장과 관련공무원도 마산 올 일 별로 없을 테고,,,,

저야 뭐 여전히 마산에서 살면서 70을 바라보고 있겠죠, 별 탈이 없으면.

결국 해양신도시가 들어서면 저 섬과 함께 살아갈 사람은 저 같은 마산사람들 뿐,,,,

그 때 이런 후회를 하겠죠,,,,

‘아, 끝까지 매립하지 못하게 막았어야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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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종만 2011.08.05 11:5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대표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저 또한 대표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만
    자칫 반대를 위한 반대로 여겨질 수 도 있겠습니다.
    저가 알기로는 항로개설에 따른 잉여 준설토가 발단이 되어
    해양신도시가 표면화 된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로 인해 미칠 영향들에 대하여 여러차례
    토론도 있었고 공청회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최선의 방법이 모색되었다면 이런 아쉬움은 없었겠지만
    한다고 한것이 지금의 축소방향인걸로 알고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것도 아니라고 생각되었다면
    이러한 정책이 결정되지 않도록 논의 단계에서 힘썼어야 했습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에서 집행은 해야겠고
    해서 누구도 반기지 못할 19만평 신도시가 가시화 되는듯 합니다.
    최소한 이 문제에 지금까지 많은 관심과 노력이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누구나 공감가는 이보다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해야 될걸로
    봅니다. 대안없는 문제제기는 논란만 부추키면서 돈은 퍼붓되 일은
    제데로 되지 않습니다.
    왜 그때 하지말란짓을 해가지고 이모양이냐며 갈등은 증폭되겠죠.

    또 일을 해놔봐야 욕만 먹고 책일질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시민사회 일원 중 누군가 책임감을 가지고 확고한 대안으로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분이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밥솥에 밥은 뜸이 돌고 있는데 소도방을 열어버리고 새로 밥을 할것인가?
    아니면 뜸돈 밥을 입맛에 맞지 않지만 먹을것인가?
    선택해야 되겠지요 ㅎㅎ

    • 허정도 2011.08.05 18:13 신고 address edit & del

      임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금 구상되고 있는 방법은 좋은 대안이 아니다, 이런 이런 방법을 택하자, 수도 없이 많이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왔습니다.
      지금에 와서 뒤늦게 이러는 게 아니고, 말씀 하신대로 논의 과정에서 이미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의사결정권을 저희들이 가지고 있지 않으니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항로개설에 따른 준설토 처리방법에 대해서도 저와 시민단체, 이찬원 교수가 함께 여러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결정될 때는 가만히 있다가 지금에 와서 반대를 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해양신도시문제가 제 직업이 아닌 만큼 날이면 날마다 이 문제에 매달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건 양해를 좀 해주십시오. 많이 도와주십시오. ^ ^

2010.07.16 00:00

통합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3)-빌바오의 도시재생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

(1) 8년동안 만든 도시계획-도쿄 도심재개발 
(2) 도시정비계획 수립후 협의만 10년, 독일 에슐링겐
(3) "빌바오 효과"... 15년전 예견된 성공사례
(4) 민관협력으로 성공한 토리노의 도심 재개발 정책
(5) 도시의 색채는 작은 안내서에서 부터... '오다와라의 경관색채계획'
(6) 프랑스 신도시 '라데팡스', 알고보면 그 시작은 1958년 부터
(7) 40여년 동안 바람길 활용계획으로 대기오염을 극복한 슈투트가르트, 또 앞으로의 도전
(8) 작은계획(하천정비)을 시작으로 큰 그림(도시계획)을 완성하다. '물의 도시 오사카'
(9) '미나토 미라이 21'은 20세기 중반에 세워진 계획?
(10) 23년동안 10개의 다리를 10가지 각기 다른 테마로 만드는 도시, 들어보셨나요?
(11) 25년만에 완성된 하펜시티(함부르크) 프로젝트


빌바오(Bilbao, Spain).
면적 41.3㎢, 인구 35만의 중소도시가 세계적인 도시로 부각되었습니다.
스페인 북부 비스카야주의 주도인 빌바오.

※ 월드맵파인더 캡쳐


광장을 중심으로 뻗은 방사형 주간선도로와 중정형의 블럭을 가진 정형적인 중세도시의 모습입니다.


네르비온강변으로 3km에 이르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비스케이만(灣, Bay)에서 10km 내륙으로 들어오 네르비온강에 면한 빌바오의 이곳.
철광산업의 부흥을 이어오던 이곳에 새로운 도시디자인을 통해 일약 월드스타급의 도시로의 도약을 이뤄냈습니다.




"빌바오 효과"는 1995년에 수립한 '메트로폴리탄 빌바오 계획'으로부터 이뤄낸것입니다.
물론 1991년에 '구겐하임미술관'의 유치가 확정되면서부터 그 신조어(Bilbao Effect)가 톡톡히 효과 본것이기도 합니다.

그 효과를 정량적으로 계산한 자료를 보면, 과거 10년동안의 관광객이 986만명. 수익은 약 2조 1,000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중소도시인 빌바오는 도시규모에 대비되는 엄청난 도시브랜드를 일궈냈습니다.

우리나라 관광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방안외래관광객 수 =  약 780만명.(2009년)


이렇게 되기까지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 역사가 있었습니다.

빌바오는 1970년대까지 45만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활기찬 도시였습니다.
철강, 조선산업의 중심지 (빌바오는 스페인 최대항구)로 급성장해오던 이곳에
1970년대 말, 유럽의 산업위기로 인해 그간 이루어낸 경제적 성장이 멈춘것은 물론이고
중공업과 그 부속되는 산업, 이와 견주는 서비스업 마저도 붕괴되고 맙니다.

70년대말부터 80년대 중반까지 관련 산업의 고용이 25%나 감소되고,
이에 따라 실업율도 30%까지 치솟습니다.
인구감소현상은 눈에 띄게 늘어나고, 각종 사회문제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빌바오의 위기 앞에서,
시는 산업위기 등으로 도시침체를 맞은 타도시사례(피츠버그, 글라스고우 등)의 정황과 유사한 것으로 보고, 그 원인을 '도시의 구조적 문제'로 규정합니다.
즉, '산업도시 빌바오'의 도시재생방안으로 '탈산업화'를 시도하게 됩니다.

탈산업화를 통한 빌바오의 도시회생을 위해 '문화와 예술적인 도시'를 목표로 한
 '메트로폴리탄 빌바오 계획'이 1995년에 수립됩니다.
문화와 예술을 통한 경제 활성화가 이 계획의 궁극적인 목표였습니다.

도시디자인을 통해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는 일로 시작해서, 문화와 예술관련 부문을 활성화시키고, 자본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영국 글래스고우 도시재생전략 벤치마킹)

빌바오의 도시재생의 특징은 지역공동체에 대한 지원입니다.
대표적으로,
1991년에 설립된 '빌바오 메트로폴리탄 30'공공과 민간의 활동이 도시재생 과정을 주관하도록 하였고,
1992년에 설립된 '빌바오 리아 2000'은 중앙정부와 주정부가 50%씩 공동으로 출자하여 도시재생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공기업을 만들었습니다. 이 기관은 독립성을 보장받고(정치적 개입 방지), 운영도 독립적으로 하되, 경제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였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빌바오계획은 실제로 빌바오항만청에서 외부 항구의 확장공사계획에 따라 네르비온강 주변지역을 활용할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기회였습니다.

현재 마산지방행양항만청에서도 부두를 도시의 유휴공간으로 제공할 계획이며, 이에 대한 '마산만 르네상스 정책'의 일환으로 워터프런트 계획을 현재 창원시 도시디자인과에서 추진중입니다.
이 구상이 통합창원시의 기회로 작용하면 좋겠습니다.



현재까지 메트로폴리탄 빌바오계획에서 사용된 자금은 신공항에 190백만유로, 빌바오전철 900백만유로, 외부항구 600백만유로, 지상궤도열차(트램)에 20백만유로를 투입하되었습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들의 계획은 지금으로 부터 15년전에 되어졌던 것입니다.
빌바오 메트로폴리탄 30의 설립시기로 보면 20년전입니다.

 1991년  빌비오 메트로폴리탄 30설립 
 1991년  바스크 주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 확정 
 1992년  빌바오 리아 2000설립 
 1992년  외부항구 확장공사 시작 
 1995년  메트로폴리탄 빌바오 계획 수립
 소로사우레 마스터플랜 통과 
 1995년  지하철개통, 네르비온강 인도교, 수변지구 재개발공사 
 1997년  구겐하임미술관 완공 
 1998년  Aalborg 법규 통과 - 21 지방 의제
 2005-2008년 활동 계획 수립
 1995년
 2001년  소로사우레(Zorrotzaurre) 도시발전관리위원회 구성 
 2002년  에우스꼬뜨란 완공 
 2003년  소로사우레  
 2004년  아메촐라 공원 개장
 2007년  사로사우레 마스터플랜 완료
 마스터플랜 목적과 지침 목록서 계획

빌바오의 트램 

구겐하임 미술관 

네르비온강변 워터프런트 1

네르비온강변 워터프런트 2

네르비온강변 워터프런트 3

스비스리 다리(Pasarela Zubizuri), 보행전용교
※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 디자인


 에스칼두나 다리.
보행자와 자전거이용자를 배려한 캐노피 디자인인 돋보입니다.


기업의 생명이 30-50년이라고 본다면, 도시의 생명은 무한대일 것입니다.
그런 도시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따라 실천해나가는 것.
절대 서둘러서는 안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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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래 2010.07.16 17:5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관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빌바오는, 스페인이 관광대국이기에 관광이 중심이 될 수 있으나
    창원은, 한국이 관광으로는 스페인에 못미친다.
    따라서 제조업을 더 중요시 해야 한다.

    • 허정도 2010.07.17 11:34 신고 address edit & del

      맞는 말씀입니다.
      도시를 조금 고친다고 관광객이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워터프런트나 도시재생 프로그램을 통해 생활환경이 좋아지고 도시에 생기가 넘치면 마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은 많이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2. 똥곰 2011.04.24 23:3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도시공학을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구글링중에 좋은정보 많이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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