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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6 00:00

마산 창원 역사 읽기 (43-마지막 회) - 매립의 도시, 마산

5. 삶과 문화로 보는 마산·창원의 역사

5-8 매립의 도시, 마산

 

19세기 말, 동성리(현 동성동)에 김경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개항된 해인 189910월, 마산포 조창에 들어있던 창원감리서에 ‘서성리에서 오산리(현 오동동)에 걸친 간석지 50파(把, 1파는 양팔을 벌린 길이)를 매립하여 선창의 혼잡을 덜고 지역을 발전시키겠다’는 내용의 청원서를 제출하여 정부로부터 매립허가를 받은 사람이다.

당시의 상황으로 항만건설과 매립사업을 생각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일본상인 히로시 세이죠(弘淸三)에게 15,000량의 공사비를 차용하여 매립공사에 착공했으나 안타깝게도 사망하여 그의 꿈은 사라지고 말았다.

1906년 히로시는 김경덕의 매립인허장을 저당 잡을 때 작성한 전집표에 ‘차용금을 갚지 못하면 매립권은 채권자에게 귀속된다’는 것을 근거로 권리의 승계를 요구했고 창원감리서 주사 김병철은 이를 허가했다.

그러나 이 보고를 받은 의정부 참정대신은 가볍게 처리할 문제가 아니니 빨리 취소하라고 엄명했고 창원감리 이기(李琦)가 히로시에게 즉각 사정을 통보했지만 히로시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성통감부를 통해 매립 사업을 하게 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고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은 창원감리에게 사건의 재조사를 명했다.

이에 대해 창원감리는 ‘만약에 마산포 해안을 타인이 매립하게되면 마산포는 입이 틀어 막힌 목구멍이나 문이 잠겨버린 집과 같이 되어 마산포 수천호 주민은 결국 생업을 잃고 흩어져 비참하게 될 것이라’ 는 내용으로 보고했다.

그리고 기왕 매립을 하려면 마산포 주민들의 힘으로 해야 된다고 덧붙였는데, 이때 마산포의 자본가 15명이 4만원을 모아 공동으로 매립을 청원하였다.

그러나 이 공동매립 청원은 신청한지 1년이 넘도록 정부로부터 아무 해답을 못얻었으며 시간이 흘러 1910년 한일합방이 되었다.

결국 김경덕도 히로시도 마산포 해안을 매립하지는 못했다.

 

<매립 전의 월포 해수욕장>

 

-사라진 마산포 선창-

하사마 후사다로(迫間房太郞)라는 일본인이 있었다.

하사마는 부산 제일의 땅부자로 유명한 동래별장의 주인이며 부산 경제를 좌우한 자다.  경남 도내 소작지의 3.5%를 소유하고 소작농을 자그마치 2,000여호나 거느린 대지주였다.

러시아와 일본이 마산 율구미를 두고 각축을 벌인 마산포 사건 때 조선인 지주들을 꾀어 토지를 매수, 러시아의 마산 진출을 막은 공로로 일본정부로부터 서훈을 받기도 한 자다.

합방 후 부산·경남 일대를 호령하던 이 하사마가 오래 전 김경덕이 꿈꾸었던 마산포 남성동 해변을 매립하게 되었다. 김경덕이 매축권을 얻은지 12년만의 일이다.

대지 8,000평 도로 3,600여평 합11,600여 평의 대규모로 1911년 착공, 19147월 준공하였다.

전주(錢主)는 하사마(迫間)였지만 이 사업을 마산에서 직접 시행한 이는 합방 전 김경덕의 매립권을 얻기 위해 날뛰던 히로시 세이죠(弘淸三)였다.

매립이 끝나자 이중 극히 일부를 제외한 모든 토지가 하사마의 소유가 되었으며 19362월 그의 아들로 추정되는 하사마 히데오(迫間秀雄)에게 상속되어 해방 때까지 전부를 소유하고 있었다.

매립 후부터 마산의 중심상권이 되었던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 내내 마산포 상권의 요충지였다. 그리고 이 매립지 전체를 일제시대 내내 하사마에게 모든 상인들이 대지와 혹은 건물을 임대하여 영업하였다.

이 매립으로 마산포 중심상권이 크게 변했다.

일찍이 두개의 굴강과 네개의 선창을 중심으로 발전한 마산 어시장은 전국적 규모로까지 성장하였다.

그러나 하사마의 토지가 모든 해안을 차지하게 되어 굴강과 선창은 없어지고 마산포는 젖줄인 바다와의 연결이 끊어지게 되어 그 중심상권이 새로 조성된 매립지 쪽으로 옮겨진 것이다.

<마산포 가로망(점선으로 표기된 길 주변이 변화한 곳이었다)>

 

마산만 최초의 매립은 1905년 현 중앙동 해안이 일본 군부에 의해 철로정차장 건설을 구실로 시행된 것이며 두 번째는 19097월 진해에 있던 육군중포병대대가 월영동(현 월영동 아파트 단지)쪽으로 이전되면서 이 일대 일부를 군용지 확보를 이유로 매립한 것이다.

그러나 민간인에 의한 매립은 하사마의 것이처음이었다.

일본군부에서 시행한 앞의 두 매립은 그 특수성 때문에 매립의 규모와 위치 등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없다. 단지 해안선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여러자료와 철도 및 육군중포병대대 이전에 관한 기록을 보고 추정할 뿐이다.

남성동 매립 후 해안에는 석축안벽(石築岸壁)과 석축돌제(石築突堤) 등 항만시설이 조성되었고 선박의 접안·정박시설과 물량장이 갖추어졌으며 통영, 거제 등지를 비롯한 남해안 일대를 운항하는 연안 여객선 부두로 사용되었다.

 

-직선으로 변해버린 천혜의 해안-

1920년 조선회사령이 폐지되었다.

그 동안 뜻을 이루지 못했던 마산의 일본자본가들이 회사를 설립하기 시작했고 한국인도 일부 창업하면서 1920대 마산 도시는 변화를 맞는다.

마산은 한국과 일본을 손쉽게 연결할 수 있는 입지조건과 철도로 내륙까지도 손쉽게 연결되므로 타 지역에 비해 공업도시로서의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마산만과 무학산이라는 배산임수의 자연조건 때문에 대규모 산업시설을 수용할 수 있는 가용부지가 부족했다.

마산과 부산 혹은 본국에 있던 일본 자본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부지조성방법으로 폭 70m에서 200여m의 간석지가 있는 마산 해안의 매축에 눈을 돌렸고 이들에 의해 시행된 마산의 매립은 해방 때까지 지속되었다.

마산이 끼고 있던 해안의 간석지가 일본자본가의 입장에서 볼 때는 손쉽게 큰 돈을 쥘 수 있었던 투자의 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산 도시의 역사는 매립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립과 함께 도시가 바뀌고 매립과 함께 교통과 산업도 변화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한 마산매립은 마산부나 조선총독부가 전체적인 도시의 균형발전을 위해 일관되게 계획, 시행되었던 것이 아니라 오직 매립 주체인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필요에 의해 시행되었던 것이다.

 

<매립 전의 마산만>

 

1920년대 말부터 시작된 마산매립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1927년 : 남성동 어시장 너른 마당 일대 252평이 마산부에 의해 매립되었다.

2) 1928년 : 신마산에오래 동안 살아온 일본인 목재상 메가다 헤이자브로(目加田平三郞)가 우리나라 철도건설에 참여한 후 이름이 알려진 서울의 토건업자아라이(荒井初太郞)에게 의뢰하여 본정(本町,현월남동) 앞 해면을 매립했다. 현재의 경남은행 신마산지점 남쪽 건너편 일대와 옛 진일기계, 유원산업주변 10,500여 평의 넓은 면적이었다. 해안선은 석축안벽으로 시공되었고 유원산업 앞에는소규모의 선착장이 마련되었다.

3) 1929년 : 오동교에서 해안을 끼고 남쪽으로 2,100여평이 매립되었다. 이곳은 당시 야마다(山田)장유(현 몽고간장)의 사주 야마다 노부스케(山田信助)에 의한 것이었다.

4) 1935년 : 남성동 건어물시장 일대 1,000여 평이 마산부에 의해 매립되었다.

5) 1935년 : 신포동 삼익아파트, 대우백화점, 대한통운 일대에 대지 48,000여평, 도로17,000여평, 총65,000여평의 대규모 매립이 있었다. 이 사업에 참가한 일본인은 모두 여섯 명으로 그 중 두 명은 부산, 한 명은 일본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 일을 추진하기 위해 마산매축주식회사라는 새로운 토목회사까지 설립하였으며 자산동 임야를 매입하여 그곳의 흙을 파 매립토로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 마산의 도시형태는 몽고정 부근에서 해안은 깊고 환주산은 돌출해 나와 가용대지가 잘록해서 마산포와 신마산 두 도시를 지형적으로 단절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매립으로 노선(路線)만으로 연결되던 두 도시가 하나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 마산 최대의 매립이었다. 이 곳은 원래 북에서 남으로 2㎞이상이나 되는 아름다운 백사장 때문에 전국으로 널리 알려져 있던 월포해수욕장 부근으로 알려져 있다.

6) 1931년 ~ 1942 : 창포동과 월남동 일대 13,700여 평이 7차례에 걸쳐 매립되었다. 좁게는 4~500평, 넓게는 3~4,000평 규모로 진행된 이 매립은 여러 명의 일본인들에 의해 시행되었는데 주로 자신들의 공장이나 조선소 부지를 확보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7) 1942년 : 마산 수협 자리와 동양공업, 신기사 등이 있던 11,800여 평이 부산의 토건업체 다케모토 구미(竹本組)에 의해 매립되었다. 일제기 마산포의 매립공사는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8) 1944. 12 : 마산의 명승지 월포해수욕장이 매립된 이후 고노에가하마(近衛濱) 해수욕장이란 이름으로 이용되던 해운동 일대(전 마산화력발전소자리)의 해변 12,200여 평이 일본인 나까무라 시게오(中村繁夫)에 의해 매립되었다. 그러나 완공된 지 8개월 만에 일제가 패망하여 해방 당시 공터로 버려져 있었고 시기를 잘못 선택해 크게 실패한 나까무라는 후에 마산에서 그이름이 회자되기도 했다.

9) 이 외에 1935년부터 1945년까지 제2부두, 제1부두, 중앙부두 등을 건설하면서 총 4차례 42,000여평이 매립되었다.

 

해방 당시, 아름답기로 소문났던 천혜의 마산 해안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직선형 호안으로 바뀌어 있었다.

해방된 지 40년, 창포동에서 월영동까지의 서항과 오동동에서 서성동에 이르는 구항 일대의 매립공사가 1985년 착공 후 1993년 준공될 때까지 일제에 의해 조성된 이 해안은 수십년 동안 존속하였다.<<<

허정도 / 건축사, 창원대 건축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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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로써 43회 연재한 <마산·창원 역사 읽기>는 전부 끝났습니다.

애당초 계획대로라면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의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시작해야 합니다만 아직 준비가 다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부터는 다시 마산 도시의 근대기 이야기를 다룬 책, 목발 김형윤 선생님의 『마산야화 소개하겠습니다.

김형윤 선생님은 마산지역의 원로 언론인이셨고, 소개드릴 책 『마산야화』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마산의 지난 세월을 알게 해준 고마운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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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1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5) - 강점제3시기

-부두의 건설-

부두 역시 매립으로 건설되었지만 그 목적이 항만건설이라는 점에서 일반 매립과 구분하여 다룹니다.

일제강점기 마산에는 부두를 건설하기 위한 네 번의 매립이 있었습니다.

모두 강점 제3시기(1930년 이후)에 이루어 졌으며 조선총독부 혹은 마산부가 시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국내 사정 및 권력 체제로 보아 마산부는 명의만 제공했을 뿐, 모두 조선총독부의 의도가 개입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같은 시기에 급속히 대규모로 시행된 이 항만공사는 마산을 상업무역항으로 키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일본의 침략전쟁을 돕는 병참기지로의 역할 수행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 태평양전쟁(1941)로 이어지는 일제의 전쟁 광란에서 마산의 섬유산업과 장유산업 그리고 주조산업은 전쟁의 필수보급품이었던 겁니다.

 

<마산부가 시행한 제2부두 공사>

마산매축주식회사에서 신포동을 매립할 때 시행되었던 공사( )입니다.

1935년 4월 25일에 2,900평이 조성되었고 나머지 1,650평은 같은 해 6월 7일 마산부의 개간사업으로 건설되었습니다.

이 자리는 매립을 하기 전까지 아름다운 백사장으로 그 이름이 전국에 널리 알려진 월포해수욕장이었습니다.

여름 피서 철이 되면 서울에서 마산까지 정기 피서특별열차가 운행되던 명승지였기 때문에 당시의 각종 자료집에는 월포해수욕장의 사진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다음 사진이 월포해수욕장입니다.

매립지의 위치는 수년 전까지 존속하고 있었던 대한통운 창고가 있었던 곳으로 지금은 하이마트가 자립잡고 있는 곳입니다.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제1부두 1차 공사>

1936년 10월 총독부가 발주하고 경성의 토건업자 삼택조(三宅組)가 맡아 중앙부두와 함께 착공하였습니다.

함께 착공하면서 이 곳을 제1부두로 구분하여 공사했던 것으로 보아 2차공사를 착공하면서부터 계획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3,460평의 공유수면을 매립하여 1939년 5월 19일 제1차 준공된 부두입니다.

매년 가을이면 열리는 가고파국화축제 장소의 입구부분이 바로 이곳입니다.

위의 두 매립지 위치도입니다.<<<

 

2012/07/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0) - 강점제3시기

 2012/08/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1) - 강점제3시기

2012/08/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2) - 강점제3시기

 2012/08/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3) - 강점제3시기

 2012/08/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4) - 강점제3시기

 2012/09/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5) - 강점제3시기 

2012/09/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6) - 강점제3시기

2012/09/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7) - 강점제3시기

2012/09/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8) - 강점제3시기

2012/10/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9) - 강점제3시기

2012/10/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0) - 강점제3시기

2012/10/1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1) - 강점제3시기

2012/10/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2) - 강점제3시기

2012/10/2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3) - 강점제3시기

2012/11/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4) - 강점제3시기

2012/11/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5) - 강점제3시기

2012/11/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6) - 강점제3시기

2012/11/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7) - 강점제3시기

2012/12/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8) - 강점제3시기

2012/12/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9) - 강점제3시기

2012/12/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0) - 강점제3시기

2012/12/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1) - 강점제3시기

2013/01/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2) - 강점제3시기

2013/01/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3) - 강점제3시기

2013/01/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4) - 강점제3시기

2013/0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5) - 강점제3시기

2013/01/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6) - 강점제3시기

2013/02/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7) - 강점제3시기

2013/02/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8)- 강점제3시기

2013/02/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9) - 강점제3시기

2013/02/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0) - 강점제3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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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5 - [오늘의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4) - 강점제3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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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5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4) - 강점제3시기

나카무라 되었다?”

<중촌번부(中村繁夫)의 해운동 근위빈(近衛濱)해수욕장 매립>

 

마산의 명승지 월포해수욕장이 매립된 이후 근위빈 해수욕장이란 이름으로 해운동 일대(전 마산화력발전소 자리) 해변이 해수욕장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이 해수욕장이 1944년 12월 3일자로 일본인 종촌번부(中村繁夫)에 의해 매립되었습니다.

지금의 마산시외버스터미널 남부주차장을 포함한 해운프라자, 뎃츠빌딩까지의 넓은 지역이며 시기적으로는 일제기 마산의 마지막 매립이었습니다. 면적은 12,254평이었으며 매립 후 해안은 석축으로 호안하였습니다.

시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매립지는 완공된 지 8개월 만에 일제가 패망했기 때문에 매립된 땅을 제대로 사용해보지도 못했고, 해방 당시에는 공터로 버려져 있었습니다.

당연히 매립공사에 투자한 금액을 회수할 수가 없었고 매립을 한 나카무라(中村)는 졸지에 엄청난 금전 손실을 입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이 사업을 시행한 나카무라(中村)는 해방 후 마산에서 ‘돈을 벌려고 하는 순간에 알거지가 된 인물’의 상징처럼 불렸습니다.

예를 들면, 사업을 하다가 완전히 망해버렸거나 혹은 무슨 일이던지 잘 안 되는 사람을 일러 "그 사람 나카무라 되었다" 라고 비유로 말했던 거죠. 마산에서만 통했던 말입니다.

바로 그 나카무라, 중촌번부(中村繁夫)는 인근 군북에서 광산(中村광업소)을 크게 경영했던 사람입니다.

지금은 고성 거제 방면으로 오가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남부터미널과 경남대학교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학가입니다만 이 터는 해수욕장→매립→공터→화력발전소→버스터미널 및 대학가로 이어온 역사를 안고 있는 땅입니다.

바로 이 땅입니다.<<<

 

 

 

 

2012/07/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0) - 강점제3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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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4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1) - 강점제3시기

<신포동의 탄생>

1920년대 중반까지 마산의 도시구조는 한국인들이 모인 원마산과 일본인들이 거주한 신마산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두 지역을 연결해야할 중앙지역은 지형적으로도 잘록한 병목형이었을 뿐 아니라 철도용지로 묶여 있기까지 해서 도시발전에 장애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철도용지가 마산부에 불하되어 시가지 형성이 가능해지자 마산세무서․마산부청․경성전기 마산지점․도립마산병원․지방법원 지원․신문사 등 관공서나 공공시설의 건물이 세워지거나 또는 건축예정부지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른바 중앙마산이 공공업무지역으로 재탄생하기 시작한 겁니다.

때를 맞춰 비슷한 시기에 조선회사령도 철폐되자 일본인들이 기회를 놓칠세라 마산의 중앙부 해변에 매축을 계획하게 되어 본 매립이 추진되었습니다.

위치는 현 대우백화점, 어시장, 삼익아파트, 센트럴 아파트단지를 포함한 아래의 넓은 지역입니다.

 

이 대규모 매립공사는 마산매축주식회사에 의해 65,088평 규모로 시행되었는데 그 중 대지는 48,105평이었습니다.

마산매축주식회사(마산시 남성동 221번지)는 오직 이 매립사업 만을 위해 설립한 회사였습니다.

마산매축주식회사에 참여한 사람은 일찍부터 마산에 들어와 미곡상을 하던 송원조장(松原早藏)을 비롯해 서전(西田)양조장 주인 서전목총시(西田木惣市), 대판상선 마산대리점 도본우일(島本宇一)과 부산의 서본영일(西本榮一)과 암전국랑(岩田菊郞) 그리고 일본 고오베에서 사업을 하던 야림치일(野林治一) 등 모두 여섯 명이었습니다.

다음은 매립설계도입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 소장 자료입니다.

 

 

 

매립허가 신청은 1928년 11월 15일하였고 마산부로부터 허가는1929년 6월 14일 받았습니다. 매립공사를 착공한 시기는 1929년 말경이었고 1935년 10월에 준공되었습니다.

마산시사에 의하면 자산동 204번지에서 247번지, 즉 현 자산동 온누리 빌라 남쪽 일대의 임야를 매입한 후 그 흙을 취토(取土)해 공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새로 조성된 토지 48,105평은 신포동 1가 1번지에서 46번지까지의 22,257평과 신포동 2가 1번지에서 113번지까지의 25,848평이었습니다. 당시 기준지가는 평당 1엔30전부터 1엔80전까지였습니다.

이 땅이 현재의 신포동입니다. 일제강점기에 풍정(豊町)이라 불렀던 신포동은 이 매립사업으로 태어났던 겁니다.

이 매립지에는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의 임해창고(臨海倉庫)와 군수․민수용을 다함께 제조하는 대형 장유공장인 환금장유주식회사를 비롯하여 일본광업․질소비료․조선염협 등 대소 기업체들이 입주했습니다.

현재 환금장유 자리에는 삼익아파트가, 옛 의창수산자리는 대우백화점 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산시사와 마산개항백년사 등 그간 편찬된 마산관련 각종 문헌에 의하면 이 신포동 매립지 해변이 월포해수욕장이라고 했는데 이는 사실과 약간 다릅니다.

월포해수욕장은 이쪽이 아니라 1936년-1939년까지 시행된 제2부두와 중앙부두 북쪽 일부였으며 신포동 매립지는 남단에 약간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사실은 여러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1932년 마산공립보통학교에서 발행한 「향토의 교통도(鄕土の交通圖)」입니다.

아래 그림이 「향토의 교통도」의 일부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장군천을 기점으로 좌측이 해수욕장이라고 「월포해수욕장(月の浦 海水浴場)」이라는 명칭까지 정확하게 표기하고 있습니다. 신포동 매립지는 장군천을 기점으로 우측 지역이었습니다.

또 143번째( )로 소개했던 지도 「馬山***」에는 해수욕장 변에 있었던 송림(松林)으로 추정됨직한 나무들이 제2부두와 중앙부두 쪽에 묘사되어 있어서 이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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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1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5) - 강점제3시기

<마산부>

1937 / / / 1 / 40,000 / / 김한근

 

당시의 도시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표기한 지도입니다. 건물이 들어선 지역을 검은 색 빗금으로 쳐놓아 도시화가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었는지를 대략 가늠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미 시행된 중앙마산의 도로 상황과 도시범역이 잘 드러나 있을 뿐아니라 추후 시행될 계획도로도 그려져 있습니다. 현 용마고(마산상고) 앞 일대 산호동 지역의 계획도로도 표기되어 있습니다.

도시의 중요시설 12개, 즉 상업학교(전 마산상고, 현 상남성당 자리), 마산도립병원, 지방법원지청, 세무서, 부청사 이전예정지, 장군교, 여학교(마산여고), 본원사 본파(현 경남아파트), 우편국, 시장(일본인 전용시장, 현 반월시장), 헌병대, 세관 등이 범례에 잘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현재 마산 제2부두(현대아이파크 옆)까지 철도가 그려져 있어서, 육로와 해로를 연결시켜 물류의 효율을 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2부두 앞 해안에 해수욕장이 표기되어 있는데, 유명했던 월포해수욕장이 이 시기에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학산 정상에서 학봉으로 이르는 능선의 남쪽 산록에 화약고가 두 군데 표기되어 있습니다.

관련자료를 더 이상 확인하지 못해서 용도, 형태, 규모 등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만 중포병대대(현 월영동 아파트 단지)에 별도의 화약고가 있는 것으로 보아 두 화약고는 비상사태를 대비한 예비용이거나 다른 기관(헌병대 등)에서 사용한 화약고 아닌가 싶습니다.

북쪽 오동교 인근을 빼고는 도시 전역의 해안이 직선 호안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이미 해안 매립공사가 대부분 진행되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북쪽부터 교방리, 자산리, 완월리, 월영리 등 근대 이전의 마산 일대 자연취락들이 이때까지도 도시지역과 연결되지 않았음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지도를 통해, 현재 마산의 도시골격이 이미 일제강점기에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경남대 앞에서 시작해 합포구청(옛 마산시청) 앞을 거친 후 어시장 일대를 지나는 간선도로가 뚜렷이 표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창동과 중앙동 월영동 일대의 도로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도로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철도 표기에는 오류도 있습니다. 마산역에서 한 가닥으로 올라 가다가 3.15의거탑 쯤에서 두 가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철로는 처음부터 두 가닥이었고 변경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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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0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9) - 강점제3시기

<향토의 교통도(鄕土の交通圖)>

1932년 / 마산공립보통학교 / / / 鄕土の硏究 / 경남대학교 박물관

 

 

마산공립보통학교에서 필사본으로 당시 마산상황을 정리하여 간행한『향토의 연구(鄕土の硏究)』에 수록되어있는 지도입니다.

입체형식으로 그린 일종의 조감도인데 당시 마산의 도로가 잘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일제기 마산 이야기 중 많이 등장하는 월포해수욕장의 위치가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는 것이 이 지도의 자랑입니다.

월포해수욕장의 위치에 대해 이런 저런 주장이 많습니다만 이 지도를 보면 해수욕장의 위치가 신포동 매립지 쪽이 아니라 제2부두에서 중앙부두 쪽(현, 쌍용 시멘트 사일로 부근)에 있었다는 것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어 달 전, 제일여자고등학교 교장을 지내신 배두이 선생님에게서 월포해수욕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아주 어렸을 때, 흐릿한 기억으로 너덧 살 때였을 거라 했습니다. 현 장군교 인근에 집이 있었는데 가끔 해수욕장에 나간 기억이 난다고 하면서 위치는 전 마산시의회 바로 아래였다고 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기억과 이 지도에 나타난 위치도 동일합니다. 맑은 물에 반짝이는 금빛모래의 잔상이 지금도 선생님의 기억에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월포해수욕장과 관련한 동아일보의 기사를 소개합니다.

먼저 1931년 7월 19일 자 3면입니다. 아래 기사가 당시 신문의 원본입니다.

『마산 월포의 해수욕장 개시』라는 큰 제목 아래 「욕객에겐 긔차임도 할인, 아동 수영소도 별설」이라는 작은 제목이 있으며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후와 공기가 온화하고 명미하며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마산 월포해수욕장이 개시되었다. 지난 10일 오후 1시 마산신사(현 제일여고)에서 부윤(현, 시장)을 비롯한 5-60명의 관민이 모여 월포해수욕장의 개장식을 마쳤는바 연일 비가 계속되었으므로 해수욕장은 자못 한산하여 있던바 지난 15일부터는 욕객이 모여들어 번창한 중에 있다. 특별히 아동수영소를 별립하였으며 각지의 욕객을 흡인하기 위하여 욕객에게는 기차임금까지도 할인하는 동시에 시내버스를 욕장 입구에 까지 운전하는 중인바 마산 월포해수욕장은 수질과 모래 및 공기 모두 해수욕장으로서의 조건을 구비하여 있으므로 금년 하긔(여름)에도 자못 번창할 것을 예측한다고 한다」

해수욕장의 개장식을 신사(神社)에서 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다른 기사는 1934년 7월 5일 자 5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당시 기사의 원본입니다.

 

『때 만난 마산월포해수욕장』이라는 제목의 사진기사인데, 내용은 「여름의 바다는 젊은 남녀들의 마음을 떠들썩거리는 판인데 마산 진해 해수욕장에도 벌써부터 남조선 각지에서 욕객이 모여드는 판이다. 마산 월포해수욕장은 남조선 지방에서도 물이 맑고 모래가 하여 풍광이 명미하기로 이름이 높아 각 여관업자들은 이 때 한목을 보게 된다고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위 두 기사를 보아 월포해수욕장은 당시 최고의 여름 휴양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월포해수욕장은 중앙부두 건설이 시작된 1936년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외에 이 지도에는 각 동(당시는 町)과 주요 건물이 표기되어 있습니다만 약도 형식이기 때문에 상세하게 도시를 파악할 수 있는 지도는 아닙니다.

신마산 부두에서는 대판과 고베 등 일본으로 가는 항로가 있고 마산포(원마산) 부두에서는 진해와 부산으로 연결되는 항로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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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역사 만큼이나 액자의 역사는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회화의 전시, 보존 등을 위한 보조적인 위치에서 출발한 액자는 사진의 등장과 기술의 발달 등으로 현재는 picture frame 만이 아니라 photo frame, d..

기억을 찾아가다 - 11

11. 정전 후의 체험들 Ⅱ - 수학여행 전쟁이 막바지로 갈 때쯤 해선 민간자동차도 많이 다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주로 화물차가 많이 보였는데, 마산 부산 간에만 다니던 버스 숫자도 상당히 불어난 걸 느낄 수 있었다. ..

건축의 외형 - ‘계단’ (Staircase)

오늘은 이전 포스팅들 보다는 조금 더 인공적인 형태라 할 수 있는, '계단' 이라는 주제를 가져와 보았습니다. 계단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 되어, 이미 BC3000년 경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에서부터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

기억을 찾아가다 - 10

10. 정권 후의 체험들 Ⅰ- 깡통문화, 총탄 정전 반대를 외치는 집회와 행진이 전국적으로 있었고 마산에서도 무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궐기대회가 열렸었다는 이야기를 어른들이나 형들로부터 엿들었던 기억은 있으나 거기에 관심을 기울..

건축의 외형 - ‘초승달’ (crescent)

달은 태양과 마찬가지로 여러 문화권에서 신화나 종교와 연결지어서 생각되었습니다. 초승달은 달이 뜨지 않는 삭 다음에 나타나기 때문에 서양권 에서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하여 new moon 이라고도 불리죠. 오늘은 이슬람의 ..

기억을 찾아가다 - 9

9. 한국전쟁기의 학교생활 Ⅲ - 용의검사, 학력경쟁 가교사생활 직후부터 실시된 용의검사는 생활환경이 좋은 도회지 넉넉한 집 아이들에겐 별 부담이 안 되었겠지만, 누추한 환경에서 생활하거나 항상 흙을 묻히고 살아야하는 농촌 아..

건축의 외형 - ‘삼각형’ (Triangle)

피라미드와 삼각형, 그게 그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입체도형과 평면도형 이라는 근본의 차이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접근 또는 적용 방식 또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라미드와 삼각형 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확..

기억을 찾아가다 - 8

8. 한국전쟁기의 학교수업 Ⅱ - 떠돌이 수업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1952년의 학교생활엔 참 변화가 많았다. 담임선생님도 세 번이나 바뀌었고 교실도 다섯 번이나 옮겨 다녔다. 그리고 전입생도 그 해에 갑자기 불어났다.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