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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8 00:12

가포신항 준설 말고 해양신도시도 중지해야

<제 돈이라면 이렇게 할까?>

 

이미 오래 전부터 예측되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마산의 가포신항 문제를 두고 하는 이야깁니다.

양심적인 학자와 전문가, 시민단체에서 가포신항의 경제성 문제는 일찍부터 제기하였습니다. 하지만 사업자와 국토해양부 관료 그리고 옛 마산시의 행정을 책임졌던 분들이 아무 문제가 없다며 뭉개고 넘어갔던 일입니다.

토론회, 간담회 수도 없이 많이 했습니다. 기자회견, 성명서 말할 것도 없고 시청, 국회에 까지 적잖게 뛰어 다녔습니다,

지난 십수년, 가포신항과 해양신도시를 막거나 변경시키기 위해 참 많이도 다녔고 몇해 전에는 해양신도시조정위원회의 책임을 맡아 고민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가포신항은 아래 사진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예견되었다고는 하지만 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한심합니다.

 

 

이 일 추진했던 사람들, 정말 거짓말 많이 했습니다. 국토해양부, 마산시, 사업자, 전문가 모두 한결같이 말 맞추어가며 거짓말했습니다.

가장 큰 거짓말은 전문가들이 했습니다. 아무리 예측이라지만 해도해도 너무한 거짓말 했습니다. 가포신항만 조성하기만하면 연간 40만 TEU, 즉 하루에 컨테이너 처리 물량 1,100개가 될 것이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이런 거짓말을 확대재생산 시킨 이는 전 마산시장입니다. 2004년 당시 황철곤 시장은 가포신항만 사업이 4조원의 생산유발효과가 있고 4만 명의 고용효과가 있다고 하면서 가포신항만 준공되면 마산이 부자도시가 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시민들을 현혹했습니다.

시장만 아니라 당시 마산시의 담당국장 정규섭 씨도 공개석상에서 이런 말을 해댔고 이분들과 소통이 잦았던 일부 시민들까지 가세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당시 국토해양부의 가포신항 담당관이었던 권모 씨는 적자가 뻔 한 사업을 왜 하느냐는 질문에 국가개발계획은 그리 허술하게 결정되고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가포신항 계획은 전문가들의 용역결과에 근거하여 개발계획과 규모 등을 결정하여 국가계획에 반영된 사안이다”라고 거침 없이 답했습니다. 이 분, 현 가포신항 상황 듣고 있을텐데 지금은 무슨 말 할지 궁금합니다. 이 분은 5-6년 전에 모 지방항만청장으로 승진해 잘 지네더군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점을 지적하며 염려했지만 이 분들 거짓말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볼 때 가포신항만 사업은 실패했습니다.

국가든 개인이든 사업이야 실패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실패했다는 것이 확인된 지금 시점에서 미래를 위해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두고 보면 나중에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준설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말하는 사람들,,, 정말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자신의 돈으로 하는 사업이라도 그렇게 말할 건지 묻고 싶습니다.

준설해 놓고 나면 배가 들어 올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 말도 옳지 않습니다.

준설은 3만톤 급 선박을 위한 것이고 원래 마산항에는 1만 톤급 규모의 선박이 주로 들어옵니다. 항만 유지가 될만큼 물동량이 있을려면 '물동량 제로'라는 황당한 기사가 나올리 없습니다. 언론 보도대로라면 저 항만의 미래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그래서 하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나중에는 잘될 지 모르니 계속 가보자”는 말은 심하게 말하면 “냄새로는 모르니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알겠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개장을 불과 2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들어올 배가 없는데 계속 투자를 고집하는 상황, 도무지 우리 보통 시민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항만매립지 땅이 항만 외에는 아무 곳에도 사용할 수 없는 땅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 땅은 항만 아니라도 다른 여러 용도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굳이 실패한 사업인 항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는 땅입니다.

지금이라도 다른 용도, 즉 산업용지나 주거용지 혹은 공공용지 등 창원시가 필요로하는 용도로 사용하면 됩니다. 위치 좋고 규모도 25만 평이나 되니 무슨 용도라도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만 되면 수심을 더 깊게 하기 위해 바다 밑 준설할 필요가 없어지고 준설하지 않으면 해양신도시 만들 필요도 없어지니 여러 문제가 동시에 해결될 수 있습니다.

                                         <개장 기다리는 마산가포신항>

 

언론을 통해 여론으로까지 형성되었으니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가포신항 터는 항만용도 취소해 다른 용도로 쓰게 되면 준설하지 않아도 되니 해양신도시도 취소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 시점에서 유일한 정답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비록 가포해수욕장은 없어졌지만 마산만이라도 살릴 수 있습니다.

자신의 돈 아니라고, 불확실한 미래에 희미한 기대를 걸며 실패한 사업에 계속 헛돈 투자하는 일 중지해야 합니다. 그 돈 모두 국민들이 낸 혈세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니 지난 일들이 주마등 처럼 지나가네요.

10년 전 쯤, 현 합포구청 6층 회의실에서 있었던 토론회에서 벌어졌던 상황,,,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와 이인식 환경련 의장이 가포신항만 경제적 없음과 해양신도시의 무모함을 주장했고 사업자와 마산시 정규섭 국장이 가포신항만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토론회였습니다. 조직된 청중으로 부터 야유를 받으면서 진행된 토론회였죠. 심지어 토론회 끝난 뒤 이인식 의장은 멱살잡이도 당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고향 마산을 떠나 창녕 우포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인식 의장이 왜 우포에서 그러고 있느냐고 묻는 제 말에 이렇게 답하더군요. "휴,, 그냥 마산에서 좀 떠나 있고 싶어서,,,"

아무튼 그 엉터리 연구, 정부가 맡긴 국책연구소에서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정부는 그 것 들고 와서 가포신항 추진한 거고요. 물론 뒤에서 검은 손이 작용했겠지만. 

가포신항 추진했던 그 분들 지금 무얼 할까요? 국민 세금 탕진시킨 이 분들, 법적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

 

 

Trackback 0 Comment 10
  1. 지나가다 2013.03.28 16:1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얼척없는 짓을 아직도 하고 있지요! 지금쯤 그 가포유원지가 남아 있다면 정말로 멋진 경관의 휴식처로 변할 수 있었을텐데요! 저 되먹지 못한 철구조물을 쳐다보니 왕짜증이 오르는군요! 그래서 그 참한 청량산에 오르기가 싫습니다.

  2. 도시를담은틀(창동공화국) 2013.03.31 01:5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마산의 부흥을 꿈꾸는 마산시민으로써 글을 남깁니다.
    가포신항이 이렇게 된데에는 도시계획의 허술함을 꼽을수있습니다. 준설을해서 매립을하던 어쨌던간 분명히 가포신항의 물동량 확보는 처음부터 가능했다라는 점입니다. 옛 마산시의 부시장이셨던전수식씨는 가포보금자리주택을 취소하고 그 자리에 "산업단지"를 만들자고 주장하셨지요.
    전 이말이 맞다고 봅니다.

    사실, 마산만을 이렇게 매립할수밖에없었던때에는 마산이 매우 어렵기때문임은 물론 맞습니다.
    어떻게든 선사를 유치하고 물동량을 확보한다음 그것이 세수입이되던 고용창출이되던해서,
    앞으로 마산의 인구를 증가시키는거 외에는 큰 방법이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도시의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기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하고 공급할수있는 능력이 되어야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산이 이렇게된데는, 산업용지난에대한 제때 대처하지못하고 기업유치에 실패하다보니 "일자리"가있는 주변도시, 김해나 창원등지로 빠져나갔다라고 생각합니다. 최후의 보루에 서있는 마산으로써는 어떻게서든 돌파구를 마련해야한다고생각합니다. 그렇기때문에 마산만이아니라, 창포만 600만평을 매립하는 계획까지 수립되었던것이아니겠습니까? 활기있는 소비력있는 도시가되기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생산능력을 키워야합니다.
    경상남도에서 GDRP가 마산이 가장낮은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그렇기때문에 마산만을 매립하는것에대해 마산시민들은 오히려 시민단체를 욕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하는일마다 발목을 잡는다구요.

    전 선생님께서 마산의 적정인구와 마산의 미래모습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창원시 도시계획을 반대하는이유중하나는 마산의 미래모습을 "관광상업"도시를 표방하기때문입니다. 기업도시/공업도시로써의 도시공간구조를 가지고있는 마산이 관광과 상업만 특화하게되면 결국 인구 20만까지 뚝떨어져서 완전히 생기를 잃어버릴것이라고봅니다.
    그이후로는 창원의 베드타운의 가치밖에 되지않는 기생도시가 되어버리겠지요.

  3. 허정도 2013.04.01 13:3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어차피 매립한 건데 지금와서 항만을 왜 반대하겠습니까?
    문제는 저 항만의 경제성이 없다는 거죠. 설령 항만이 가동된다하더라도 저 엄청난 규모의 항만에 수익성이 있을만큼 물량확보는 어렵다고 보는 겁니다.
    저만 그렇게 보는게 아니라 양심적인 전문가와 상식을 가진 시민들,사정을 잘 아는 언론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저렇게 불완전한 항만을 "앞으로 잘 될 수도 있다. 물량확보에 최선을 다하자"는 식으로 말들합니다만 여러가지 정황을 보아 경쟁력이 없다는 건 상식입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가포 매립지를 항만보다 경제성이 더 있고, 고용창출도 많이 되는 용도로 바꾸자는 말을 하는 겁니다. 더 시간이 흐르면 되돌리기가 더 힘들어 지거든요.
    불확실한 항만으로 계속 밀고 가는 것과 지금이라도 생산성 높은 땅으로 바꾸자는 것 중 누구의 주장이 지역경제에 더 도움이 될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해양신도시 매립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는 도시 외에 모든 도시에서 가장 금기시해야하는 것이 도시의 확장입니다. 상업용지와 주거용지가 많이 늘어나면 기존 도시의 상권이 황폐화되기 때문입니다. 이미 모든 도시에서 증명된바 있으며 수요와 공급이라는 상식적인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대하는 겁니다.
    도시는 한번 저지르고 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도박이나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해보기도 전에 반대한다"는 말은 그래서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두서 없는 글 미안하며, 사이트 방문 감사합니다.

  4. 창동공화국 2013.04.02 20:2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큰그림을 보자면 수익창출을위해 첫번째로 기업도시로써의 마산으로 성장하는 방법이 최선이 아니겠습니까? 항만기능을 상실한 국가항만시설은 듣도보도못했습니다. 항만이 제기능을 할수있도록 충분한 공급물량을 갖출수있는 주변시설확보가 우선시되어야한다고봅니다. 그래서 "가포산업단지"라던지 "제2자유무역지역"과 같은 대안이 나왔던것으로 압니다.

    현재 창원시가 계획하고있는 "해양신도시"계획은 주거와 상업기능을 제외한, 국가에서 이 부지를 인수하고 그에따른 "국제컨벤션기능"과 "R&D",등의 기능을 넣겠다고 합니다. 생산적인 부분이지요. 또한, 저는 마산의 도시확장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1970년대 서울시의 선상형 여의도 도시개발형태를 보면, 새로운 도심개발과함께, 구도심이 재개발이 추진되어 도시계획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현재 마산의 도시공간구조가 근대적인 부분에만 머물러있기떄문에 공동화가 진행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의 구도심개발을 살펴보면, 여의도라던지, 혹은 강남개발이 있었기때문에 재개발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산의 인구감소는 확실하지만, 인구감소요인이 마산이 포화상태이기떄문에 또, 도시공간구조의 문제점등에의해 반대급부로 더 인구감소가 발생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들면 내서를 보더라도 내서를 신도시로 개발하자마자 기존도시계획인구에비해 약1.5배가량 더많은 인구가 몰려들었습니다. 내서-삼진 일대의 마산배후 생산기지건설과 해양신도시개발과 동시에 구도심개발이 이루어져야만이 마산의 옛부흥을 생각할수있지않을까 합니다.

    • 허정도 2013.04.04 10:46 신고 address edit & del

      송구스럽습니다만 서울의 예로써 마산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동의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서는 커졌습니다만 같은 시기에 인근 지역의 변화를 동시에 생각하셔야 하는 것 아닌지요?

  5. 창동공화국 2013.04.02 20:3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해양신도시를 주거기능을 제외한 여의도식 개발방식을 채택하고 이에따라 추진해간다면 얼마든지 구도심기능을 보완하고 포화된 마산시가지의 확장할수있는 큰그림을 볼수있지않을까요?

    물론 마산"만"이아니라, 마산"강"이된듯한 지형으로 바뀐점은 굉장히 유감스럽지만은,
    창원의 베드타운이아닌, 마산이 3도시의 중심도시, 혹은 창원시가 도시계획에서 말하는 3도심중 하나의 도시기능으로써 역활을 하기위해선, 인구증가를 목표로한 생산기반시설 확보를 우선시 둬야한다고 생각되며, 이에따라 인구증가를 대비한 구도심의 도시기능재생이 필요하다고봅니다.

    단순 도심/도시기능재생에 머물것이아니라, 근대적인 도시계획에 머물러있는 마산을
    완전히 뜯어고치는 방법으로 생각해야된다고 봅니다.

    선형도시구조라는 아주좋은조건을갖추고있음에도 "노면전차"라던지하는 혁신적인 도시교통수단등을 추가할때, 오히려 더많이 심사숙고할수밖에없는 요인중하나도 마산의 환경적요인이 문제되지않을까생각합니다.

    • 허정도 2013.04.04 10:50 신고 address edit & del

      여의도식 개발에 선뜻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여의도식 개발로 마산이 성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더 없이 좋은 일이죠. 하지만 마산해양신도시는 여의도가 아니거든요.
      제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마산은 마산이 갖고 있는 조건에 따른 발전방식을 찾아야 된다고 봅니다. 아무튼 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

  6. 창동공화국 2013.04.04 20:2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서울의 방식을 따라한 마산과 아주 비슷한도시가 있습니다
    바로 부산이지요 부산이야밀로 마산이 여러가지로배울점이 많습니다 도시의 도시계획형태나공간구조 특히 도시가 성장해온과정부터 쇠퇴하는과정 도시재생단계까지 여러모로 매우흡사합니다
    그런데 마산해양신도시사업과같은 사업을 부산은 이미 마린시티해운대와 센텀시티광안리 또 지금은 해앙신도시와매우흡사한 북항재개발까지 추진되고있습니다 그런데 마산창동과 부산광복동을 보면 확연하게 상황이 차이가나죠

    마산이나부산은 다핵권상권입니다 창동의 원도심을 성장시키면 다른 합성동이나 댓거리의 상권이 또 쇠퇴할수있지요 그러나 부산의경우 기존원도심이 할수있는기능은 그대로가져가면서 서면이나 해운대 광안리등 각기다른 기능을 부여하면서 구도심과신도심의 기능분담과 그것이 공생역활, 시너지효과를 낸다고 저개인적으로 보고있습니다

    또 산복도로를보더라도 마산이 부산보다 활용가치나 기능적 이용가치가 휠씬충분하지만
    부산은 도심재생의 중심핵으로 산복도로를 활용하지만 마산의 산복도로는 기능조차 살리지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창동의 도심재생과정에서의 과제와 당장수반해야하는 문제해결이 있다라는점입니다 이것은 마산만의 특수성이 아니라 각 도시가처해있는 보편적인상황에서 마산이 대처하고 있는 방법이 틀렸다라는것이지요
    창동예술촌만보더라도 그어떤성과없이 돈만퍼붓고 전시성행정으로 끝나버렸지않았습니까? 전 이사업하기전부터 이렇게하면 실패한다고 말한적이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제가예상하던방향대로 흘러갑니다
    가장창동이 필요로하는것이 무엇인가 라는질문에서 또, 합성동댓거리 상남동을 버리고 사람들이 창동까지 가야하는 모티베이션을 창동이 무엇을 제공해줄수있으며 기능을 할수있을것인가?
    이것부터 해결해야합니다
    그렇기때문에 해양신도시는 큰그림에서 필요하다라는것입니다 먼저 창동을 키우기위해서는 수요로하는 마산도시자체의 인구를 증가를 목표로할수밖에없다라는것입니다
    그렇기위해서는 좀더 마산에 살고싶게하는 동기부여 즉, 일자리가 있는도시로써 목표로해야합니다 그것이 창동복원의 핵심이라고봅니다 두번째 원도심재생이아니라 마산은 도시자체의 재생과 도시구조의 변화가있어야된다고봅니다 마산의 도시구조의 특수성을, 의미부여를 너무강조한나머지 현대인이 조금더 선호하고 살고싶어하며 편하게 살수있는 도시형태로 변화해나가야지 근대도시기때문에 라고하면 인구감소요인밖에되지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세번째는 창동주변의 주거지구의 개선이 필요로합니다 또 원도심접근성을 개선할필요성이 있습니다 전 이 방법으로 선형도시로써의 마산의 가치와 특히산복도로를활용하는방안을 제안합니다
    네번째는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고 또 기본이 되는 유동인구마련을 위해 창동에는 대학로닮은 예술촌이아니라 대학로가되어야하여, 경남에는 예술대학이 없습니다 인재양성이라는 부분에서취약성을 보완하고 마산의로봇랜드와같이 미래산업디자인과같은 부분을 결합할 예술대학이 마산이 필요로하고 그것이 창동에 있어야된다는것입니다
    다섯번째는 지금 한국민주주의전당을위치를두고 말이많은데 전 한국민주주의전당이 창동에있어야된다고생각합니다 그냥 전시관형태의 전당이아니라 시민과 함께 축제형태로 언제든지 참여할수있는 아고라가 되어야한다고봅니다 그 전당에서 마산국제연극제와 대동제를 한다면 얼마나 멋있는일이겠습니까? 부산의 광복동이 국제영화제라면 마산의 창동이 또 민주주의전당이 시민과화합할수있는 축제의 현장이라면 그보다더좋은일이 어딨겠습니까?
    이미 315기념사업회와 부마기념사업회가 창동에 기념비 설치를두고 싸운적도 있죠
    모든 민주주의성지이자 이모든것을 화합할수있는곳이 창동이라고 전생각합니다

    내서가성장하면서 구도심이 죽었다고 전보지않습니다 내서가없었어도 구도심이 무너지는것은 시간문제라고 전생각합니다
    내서조차없었으면 인구30만까지 감소하고 더 황폐화됬을지도모르죠

  7. 허정도 2013.04.12 11:2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 글 감사합니다.

  8. 박진섭 2013.12.25 13:1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과거 성장시대의 확장논리와 현재와 미래의 저성장 시대를 대비한 실속논리의 충돌로 보입니다. 두 의견 다 마산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한 것임에 틀림없을 겁니다...^^ 그러나 최근에 저명한 학자들로부터 미래의 저성장시대를 대비하라는 경고가 많이 나왔고 지난 10년 일본을 통하여 그 징후가 충분히 나왔기 때문에 이제는 보다 신중히 접근하는 자세가 더욱 필요할 것입니다. 과감과 신중 둘다 필요하지만 상황에 따라 적절한 배합의 묘를 살려야 되겠지요..;;

2010.09.01 00:02

이인식을 생각하며

“전교조 때문에 떠날 수밖에 없었던 제일여중고 교단에 한 번이라도 서고 싶다"

"20여 년 전 부터
우포늪을 드나들다 몇 달 전 부터는 거처를 마련해 완전히 들어가 앉았다. 언제든지 오시라, 잘 모시겠다.
요즈음 내 똥 빛이 어린애 똥 빛으로 변했다. 건강하다는 표신데 자연이 인간에게 그만큼 이롭다는 증거다"

"지금까지 해왔던 생물서식처보존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교육운동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이인식 선생의 퇴임식 인사말 중 일부입니다.


그제, 8월 30일 월요일 저녁 7시.
대우백화점 19층 뷔페식당에서 이인식 선생의 명예퇴직을 축하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오래 동안 그가 몸 바쳐 활동했던 ‘전교조 마산지회’에서 마련한 자리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3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교육운동과 환경운동에 바쳐온 그의 삶을 되새겼고, 생물서식처보존운동가로 다시 시작하려는 그의 새 출발을 기대하면서 축하했습니다.

이 선생과 교육운동 환경운동을 함께했던 분들과 조현순 전 마산가톨릭여성회관장, 조형래 경남교육의원, 남재우 창원대 교수, 박진해 람사르 환경재단 대표, 전점석 창원YMCA사무총장, 서익진 경남대 교수, 작곡가 고승하 선생, 양운진 경남대 교수 등 많은 분들을 한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활짝 웃고있는 이 선생 옆의 창원대 사학과 남재우는 그의 외사촌 동생입니다>

조현순
관장은 덕담에서,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고민하는 분, 변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자신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분이라고 이 선생을 말했습니다.

이인식 선생의 친구이자 교육운동을 함께했던 안종복 선생은,
문제해결을 위해 철저히 자료를 준비하여 핵심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사람이었다고 이인식 선생을 회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에서 자신은 한 번 밖에 안 떨어졌는데 이 선생은 두 번씩이나 떨어진 게 흠(?)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 선생과 긴 시간 교육운동을 함께했던 고승하 선생이 직접 기타를 치며 ‘산죽’ ‘고백’ ‘상록수’ 등의 축가를 불렀고 흥이 난 주변사람들도 나가 함께 불렀습니다.


덕담 한 마디 하라기에 저도 앞으로 나갔습니다.

“이것 좀 보관해 달라”면서 불온문서를 한 박스 잔뜩 안고 우리 집으로 쳐들어왔던 '80년대 어느날 밤'의 기억을 시작으로 오래 동안 이 선생과 함께 했던 일들 중 몇 마디를 풀었습니다.

‘신포동매립지 현대아이파크건설 반대운동’ 회고 했습니다. 2003년 일이니 벌써 7년이 지난 이야깁니다.
마침 우리가 모였던 뷔페식당 창문 바로 코앞에 문제의 그 현대아이파크 아파트가 야간조명을 번뜩이며 우뚝 서 있었습니다.
‘현대아이파크 반대운동’은 수많은 사람들이 뜻을 함께하며 고생했습니다만 결국 실패했던 운동입니다.

이 운동이 정점에 달했을 때 저와 이 선생이 한 팀을 이뤄 찬반토론회에 나간 적이 있습니다. 축구에 빗대 말하자면 이 선생이 공격수로 제가 미드필드로 출전한 셈이었는데, 이 선생은 자연환경을 저는 도시환경을 맡았습니다.
찬반토론회가 끝난 후 현장에서 멱살잡이까지 갈 정도로 격하게 싸웠던 일을 회고하면서 모두들 함께 웃기도 했습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 아파트만 들어서면 마산이 창원을 능가하는 일류도시가 될 것이다”고 강변했던 마산의 유지들과 공무원, 시의원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하고 말입니다.

이 글을 써니 '가포신항만과 해양신도시 반대운동’ 때 함께했던 이 선생과의 인연도 떠오릅니다.

당시 우리는 신항만의 경제성이 없다는 자료를 제시하면서 천혜의 가포만을 철저히 파괴하는 항만건설공사를 반대했습니다.
그 때도 둘이 함께 토론회에 출전(?)해 팀워크를 과시했습니다만 이 운동 역시 실패했습니다.

지금은 민간인으로 되돌아간 황철곤 당시 마산시장과 황 시장의 생각을 맹목적으로 따르던 마산시 간부들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최근 들어서 가포신항만의 경제성이 없다는 말이 많이 들립니다.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나와있었던 답인데 지금에 와서 저러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저 항만이 들어서면 마산에 돈이 풀려 마산시민도 잘 살게 될 것이다”고 우리를 몰아세웠던 마산의 유지들과 공무원, 시의원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인식 선생님의 제자들>

이인식 선생의 환경운동은 1991년 낙동강 페놀사건과 1992년 리우환경회의 참석을 계기로 시작하여 올해로 20년 째입니다.
이제는 '환경'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가 연상될 만큼 지난 20년 간 우리지역의 환경파괴 현장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퇴임식에서 이
선생의 환경운동업적을 다시 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창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과 의장을 시작으로, 녹색경남21상임대표, 우포늪따오기복원위원장, 한국습지네트워크공동대표, 람사르총회준비민관추진위원장, 국가습지심의위원, 따오기학교교장 등 그의 활약에 세삼 놀랐습니다.
그 중 람사르총회 창원 유치는 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교육운동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이인식은 1953년생이라 아직 교사정년이 5-6년 남았습니다.
요즈음처럼 어려운 시절에 철밥통(?)인 교사직을 스스로 그만두기까지 깊고 넓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이 선생이 새롭게 구상하는 생물서식처보존운동의 중요성과 당위성에 뜻을 같이하면서 그의 결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최근 국무총리공청회 과정에서 ‘지역의 자산’이라는 말이 많이 회자되었는데 정치가만 지역의 자산이 아닙니다.
이인식의 역량과 경험과 열정도 우리 사회의 자산이기에 충분합니다.
그는 에너지가 넘치고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입니다.
이인식 선생의 능력이 지역사회를 위해 잘 활용되면 모두를 위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이인식의 별명은 '왜가리'입니다.
왜가리는 민감한 새입니다. 특히 사람에 민감하다고 합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주변에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가장 먼저 위험신호를 보낸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다른 새들을 지켜주는 ‘지킴이 새’입니다.
그의 별명이 왜가리가 된 이유도 그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지킴이’이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친구 이인식의 삶은 그의 별명 '왜가리'처럼 모든 사람을 지키는 ‘세상 지킴이’로 이어질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생물서식처는 물론, 혼탁한 사회밑바닥까지 지키는 '날개 넓은 왜가리'가 될 것입니다.

새로 시작하는 그의 장도를 마음모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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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은진 2010.09.01 07:2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퇴임하신다는 말만 듣고, 지나쳤는데,
    퇴임기념모임을 하셨군요.
    제가 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오면서 연락이 잘 안된 모양이네요.
    아무튼 우표에 가면 만날 사람이 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2. 이은진 2010.09.01 07:2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퇴임하신다는 말만 듣고, 지나쳤는데,
    퇴임기념모임을 하셨군요.
    제가 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오면서 연락이 잘 안된 모양이네요.
    아무튼 우표에 가면 만날 사람이 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 허정도 2010.09.01 08:38 신고 address edit & del

      연락을 이인식 선생이 하지 않고 전교조 마산지회에서 했답니다.
      많은 분들이 행사가 있는 줄 몰라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답례로 우포에서 돼지 한 마리 잡아 부른다니 그 때 모이죠 뭐.

  3. 이응인 2010.09.01 12:1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주변에서 환경 문제가 터질 때마다 이인식 선생님이 떠올랐지요.
    우포에서 선생님이 뜻한 바대로 멋진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건강하시고.
    우리에게 오롯이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게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준 분!

    • 허정도 2010.09.01 20:26 신고 address edit & del

      할 일을 찾아 퇴임하시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4. 임종만 2010.09.01 14:0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 뜻밖의 소식이군요.
    퇴임이라뇨?
    그런자리였다면 참~ 아쉽습니다.
    '왜가리'인생인가 봅니다.
    언제 '왜가리'선생님 만나 쏘주나 한잔 해야겠습니다 하하~

    • 허정도 2010.09.01 20:26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러십시오. 좋아하실 겁니다.

  5. 오유림 2010.09.01 20:1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선생님이 환경운동을 하신다는 기사는 봤었는데
    마산제일여중을 다닐때 생물을 가르쳤던 선생님이셨는데...
    선생님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 허정도 2010.09.01 20:27 신고 address edit & del

      후배님이 제 친구의 제자였군요.
      이 선생 마산오면 같이 가게로 한 번 가겠습니다.

  6. 구연아 2010.11.26 18:0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ㅎㅎ 선생님께서 우포에 가신 뜻 들으면서 참 감동받았습니다.
    늘 감사합니다ㅎㅎ
    퇴임식 이야기를 블로그로 보니 선생님에 대한 쨘한 감동이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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