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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3 10:17

당신의 말이 듣고 싶습니다

어제와 그제, 지역 언론에는 통합창원시 청사위치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머리기사를 장식했습니다.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결과가 예고되었던 터라 보도 자체가 새롭지는 않았습니다.

시민다수가 신청사 건립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 이미 예측되었던 일입니다.

여론조사결과를 두고 일부 언론과 SNS에서 통합정신 훼손, 비민주적 의사결정, 통합준비위원들을 향한 날선 비판 등 이런저런 주장들이 있습니다만 모두 쇠귀에 경 읽기인 것 같습니다.

통합 때문에 생긴 청사위치 여론조사결과를 보니 문득 지난 일들이 생각납니다. 3년 전 상황들 말입니다.

 

 

통합에 가장 앞장 선 분들은 당시 한나라당의 지역 국회의원, 시의원들이었습니다. 당시 병환 중이었던 진해시장을 뺀 두 시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의원들의 변화는 정말 무쌍했습니다. 통합의결이 2009년 연말이었고 2010년 봄에는 지방선거 공천이 결정되는 상황이어서 공천권자의 눈치를 안볼 수 없긴 했습니다만 많이 심했습니다. 이 분들의 힘으로 세 도시 통합은 마치 번개 불에 콩 구워 먹듯이 추진되었습니다.

전국 여러 곳에서 동시에 통합이 추진되었습니다만, 합리적인 토론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타 지역에서는 한 군데도 성공하지 못했고 창원 마산 진해만 성공, 현재의 창원이 되었습니다.

이 글을 보시면서 “이미 물 건너 간 일인데 지나간 일 들먹여 뭐하나”라는 분들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세 도시의 통합이 첫 걸음에서 한 발짝도 더 못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합 후 2년 반이 지났습니다. 그간 좋은 일 보다는 언짢은 일들이 더 많았습니다.

의회 단상점거는 물론 시의원끼리 멱살잡이를 하기도 하고, 시민들이 의회로 몰려가 물리적인 힘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통합 때문에 경기가 나빠졌다고 한숨을 쉬는 분, 이름 잃은 도시를 생각하며 안타까워하는 분, 예산 낭비된다고 억울해 하는 분 등 통합에 불만을 터트리는 분들은 많지만, 통합이 잘 된 일이라고 만족하는 분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2014년 전국이 통합될 것이라고, 그 때 통합되면 인센티브도 없으니 어차피 할 거라면 먼저 하는 것이 상수라고 떠들었지만 내년이 2014년인데 아무 기척도 없습니다. 마치 통합이 만병통치약처럼 도시를 살려 줄 거라고 했지만 치료는커녕 지역갈등이라는 합병증만 커지고 있습니다.

시청사 위치 결정을 목전에 두고 상황이 더욱 나빠졌습니다. 통합준비위원회가 결정한 ‘통합청사 순위결정’이 번복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공공연히 ‘원점으로’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급기야 어제 오전에는 마산지역 출신 시의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박 시장더러 통합준비위원회의 결정사항을 지켜라면서 시장사퇴까지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말을 해야하는 분들이 입을 닫고 있습니다.

통합이 옳았느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하기 이릅니다. 하지만 지금 시청사 문제로 지역사회가 이렇게 시끄러운데 책임있는 사람의 정확한 해명이 없다는 건 뭔가 이상합니다.

시청사의 위치문제는 사실상 ‘창원에 그냥두자’는 주장과 ‘마산과 진해 중으로 옮기자’는 주장의 충돌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공직에서 떠난 분들은 차치하고, 마산과 진해에서 선출된 현직 공직자들 중 이 일에 책임있는 분이 나서서 자기 의사를 밝히는 게 시민에 대한 도리입니다. 하지만 통합시청사에 직을 걸겠으니 표 달라고 했던 국회의원도, 통합준비위원회에 참여했던 시도의원도 입을 닫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요?

진해 김학송 국회의원은 현직을 잃었다지만 마산의 이주영 안홍준 두 의원은 왕성하게 활동하며 지역을 호령하고 있습니다.

당시 통합준비위원 중 마산의 김이수·이흥범·이상인 의원과 진해의 유원석 의원은 지금도 시도의원으로 활발히 일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이 분들은 입을 열어야 합니다. 통준위의 결정은 무엇이었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말을 좀 하십시오. 시민인 저는 당신의 말이 듣고 싶습니다.<<<

Trackback 1 Comment 5
  1. 장복산 2013.01.23 17:0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제는 다시 도시를 나누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나느는 방법이 더 현명하리도 모릅니다.

  2. 허정도 2013.01.23 17:2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참 한심합니다, 돌아가는 걸 보니,,,

  3. 옥가실 2013.01.23 17:4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유감스럽게도 현재의 상황으로 보면,
    시청사의 마진 이전은 힘든 거 같습니다.

    창원 지역 시민이나 창원지역 시의원, 그리고 창원시장이 동의를 해야 가능할 터인데....또 통합으로 득을 보는 사람들도 있을 터이고...

    그렇다면 결국 남은 최후의 방법은 원상 회복입니다만, 이것조차 현재 가능한지 가름할 길이 없습니다. 마치 독립운동처럼 치열해야 할 텐데...
    한숨만 나옵니다.

  4. 2013.01.23 18:21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5. 허정도 2013.01.23 19:1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한 지붕 아래서 맨날 싸우는 삼형제보다 웃고 지내는 이웃이 낫겠죠? 이럴 거면 차라리 분리하는 게 나을지도,,,

2011.08.03 00:00

해양신도시, 지금이라도 다른 길 찾아야

여러 정황을 보아 머지않아 마산해양신도시의 토지이용계획이 확정될 것 같습니다.
가포신항만 준공일자가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통합창원시가 ‘옛 마산시에서 계획하던 34만 평을 19만 평으로 축소하여 섬 형으로 신도시를 조성할 계획이며 이제는 매립지의 토지이용 문제만 남았다’고 밝힌 지 몇 달이 지났습니다.

마산만 내만에, 그것도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섬 형으로 매립하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고 다양한 해결책도 있었습니다만 결국 여기까지 왔습니다.

통합창원시에서는 ‘고민과 노력을 다해보았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라는 입장이지만 제 눈에는 중앙정부와 그 주변에서 정해주는 안을 그대로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원안이 최악이라면 지금 안은 차악입니다.

지난 3월 17일 해양신도시문제를 함께 고민했던 몇 분들과 국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마산출신 두 국회의원과 국토해양부 담당국장을 비롯한 담당책임자들이 저희들과 신도시 문제를 놓고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 날의 결론은 ‘국토해양부가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 다시 논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국회의원이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마산시민들이 뽑은 국회의원과 함께 한 약속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이주영 의원은 집권여당의 예산결산위원장이었고 안홍준 의원은 국토해양부가 소속된 상임위원회 위원이었으니 의심할 여지도 없었습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머지않아 나올 ‘새로운 방안’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창원시가 ‘19만 평, 섬형으로 개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사실은 그 날 간담회에서 안홍준 의원이 도면을 한 장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가 관심을 보이자 도로 넣어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도면에 섬 형으로 된 신도시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일의 전후를 연결시켜 보니 '섬형 19만 평'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새로운 방안’을 놓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국회의원들은 창원시의 발표 후에도 아무 해명도 없었고, 그 날 이후 ‘신마산 해안일대 6만 여 평에 정부가 워터프런트를 조성해 준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신도시는 개발하고 싶은데 시민단체의 반대 때문에 인센티브를 제시한 것 같고, 그 안을 국회의원과 창원시가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후부터 오늘까지 창원시는 해양신도시의 토지이용계획을 어떻게 할 건지 고민하고 있다 합니다.
사실 오래 고민해야할 만큼 복잡한 일도 아닙니다만 매립비용과 공공용지의 반비례관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처럼 만들어지는 해양신도시에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환경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도시구조적으로도 마산도시에 도움 되는 일이 아닙니다. 
특히 염려스러운 것은 도시학자 테오도르 폴 김이 '가장 나쁜 도시'라고 말한 ‘도시공간의 분리현상’입니다.

얼마 전에 마산YMCA시민사업위원들과 배를 타고 마산 앞바다로 나갔는데, 그 때 경남대 교수 한 분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런 바다를 메우다니, 제 정신인가?"

이 도시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제와서 바꿀 수 없다, 시간도 없고, 조건도 맞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그만한 사유를 이 도시의 미래와 수십만 삶의 무게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도시의 영원한 시간  앞에 1년이니 2년이니 해서야 되겠습니까.

사실은 해양신도시를 걱정하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떠 올라 글을 올렸습니다.

저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분들,,,
이 사업이 끝나는 2020년 쯤, 모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국토해양부 사람들이야 ‘마산해양신도시’ 기억도 하지 못할 테고,

기업 측 사람들은 진작 마산 떠났을 테고,

시장과 관련공무원도 마산 올 일 별로 없을 테고,,,,

저야 뭐 여전히 마산에서 살면서 70을 바라보고 있겠죠, 별 탈이 없으면.

결국 해양신도시가 들어서면 저 섬과 함께 살아갈 사람은 저 같은 마산사람들 뿐,,,,

그 때 이런 후회를 하겠죠,,,,

‘아, 끝까지 매립하지 못하게 막았어야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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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종만 2011.08.05 11:5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대표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저 또한 대표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만
    자칫 반대를 위한 반대로 여겨질 수 도 있겠습니다.
    저가 알기로는 항로개설에 따른 잉여 준설토가 발단이 되어
    해양신도시가 표면화 된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로 인해 미칠 영향들에 대하여 여러차례
    토론도 있었고 공청회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최선의 방법이 모색되었다면 이런 아쉬움은 없었겠지만
    한다고 한것이 지금의 축소방향인걸로 알고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것도 아니라고 생각되었다면
    이러한 정책이 결정되지 않도록 논의 단계에서 힘썼어야 했습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에서 집행은 해야겠고
    해서 누구도 반기지 못할 19만평 신도시가 가시화 되는듯 합니다.
    최소한 이 문제에 지금까지 많은 관심과 노력이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누구나 공감가는 이보다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해야 될걸로
    봅니다. 대안없는 문제제기는 논란만 부추키면서 돈은 퍼붓되 일은
    제데로 되지 않습니다.
    왜 그때 하지말란짓을 해가지고 이모양이냐며 갈등은 증폭되겠죠.

    또 일을 해놔봐야 욕만 먹고 책일질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시민사회 일원 중 누군가 책임감을 가지고 확고한 대안으로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분이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밥솥에 밥은 뜸이 돌고 있는데 소도방을 열어버리고 새로 밥을 할것인가?
    아니면 뜸돈 밥을 입맛에 맞지 않지만 먹을것인가?
    선택해야 되겠지요 ㅎㅎ

    • 허정도 2011.08.05 18:13 신고 address edit & del

      임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금 구상되고 있는 방법은 좋은 대안이 아니다, 이런 이런 방법을 택하자, 수도 없이 많이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왔습니다.
      지금에 와서 뒤늦게 이러는 게 아니고, 말씀 하신대로 논의 과정에서 이미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의사결정권을 저희들이 가지고 있지 않으니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항로개설에 따른 준설토 처리방법에 대해서도 저와 시민단체, 이찬원 교수가 함께 여러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결정될 때는 가만히 있다가 지금에 와서 반대를 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해양신도시문제가 제 직업이 아닌 만큼 날이면 날마다 이 문제에 매달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건 양해를 좀 해주십시오. 많이 도와주십시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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