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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7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 - 고려시대


<국제군사도시, 합포>

13세기 후반,
고려의 남쪽 해안에 있던 합포는 행정상으로 경상도 금주(金州, 지금의 김해) 의안군 관할의 영현(領縣)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고려 현종 군현체제 개편 때 지금의 양산인 양주에서 금주로 이속되었습니다)

하지만 합포는 동아시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국제군사도시였습니다.
당시 세계최대 강국이었던 원나라와 고려의 연합군이 이곳 합포를 일본정벌기지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때는 1274년, 고려 충렬왕 원년이었습니다.
여원연합군은 지금의 합포고등학교 남쪽 일대를 싸고 있던 현 자산성을 정동행성(征東行省)으로 삼고 전함건조(戰艦建造) 및 군사훈련을 비롯하여 일본정벌을 위한 대대적인 준비를 시작합니다.
둔전은 황해도 봉주(봉산)과 경상도 금주(김해)에, 선박건조는 제주도와 전라도 쪽에서 맡았습니다.

군사만 자그만치 33,000명이었습니다.
이들의 숙식과 훈련을 비롯하여 일본까지 배로 건너가는데 필요한 인원 등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 합포에 모여들었겠습니까. 뱃사공과
도선공, 수리공이 6,700명이었다고 하니 이곳 마산이 사람들로 북새통이었을 겁니다.
사람뿐아니라 전쟁에 나설 크고 작은 배들도 깃발을 펄럭이며 마산만으로 몰려들어 땅 바다 할 것없이 전쟁기운이 합포 하늘을 찔렀을 겁니다.

『고려사』가 그때의 정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에는 기마들이 줄줄이 이어 서 있어 온갖 사무가 눈코 뜰 새 없이 번잡하였다. 기한은 급박한데 독촉이 번개와 같아 백성들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해 10월 3일,
여원연합군이 일본 정벌에 나섰습니다.

위 그림 중 위의 것은 여원연합군 일본정벌 원정루트이며 아래 것은 다카시마역사민속자료관에 전시된 당시 여원연합군의 전함입니다.

여원연합군은 쓰시마섬과 이키섬을 거쳐 하카타까지 승승장구하다가 밤이 되자 일본군의 야습을 피해 하카다만(博多灣)으로 후퇴해 선상에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갑자기 들이닥친 태풍으로 배에 타고있던 연합군은 하룻밤 새 풍지박산되고 말았습니다.
세계 정복을 꿈꾼 원 세조 쿠빌라이의 첫 번째 패배였습니다.

7년이 지난 1281년,
여원연합군은 다시 원정군을 편성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병력 40,000여명에 전함 900척이었습니다.

5월 12일 출병했는데 출병 전 충렬왕이 친히 이곳 합포까지 내려와 연합군의 일본정벌을 격려했습니다.
국가통치권자가 마산을 방문한 첫 사례입니다.
연합군의 검열 차 내려와서 두어 달가량 있었는데 우부승지 정가신(鄭可臣)을 대동하였습니다. 환주산에 있는 현재의 자산성에 머물면서 중간에 김해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왕까지 내려왔으니 합포는 마치 전쟁기 임시수도와 같은 분위기 같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2차 원정에서도 갑자기 우박을 동반한 무시무시한 태풍이 일면서 역시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두 번이나 태풍이 일본을 지켜주었던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자신들을 지켜준 이 두번의 태풍을 두고 카미카제(神風)이라 부릅니다. 이로 인한 허황된 의식이 역사를 오판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마비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두 번에 걸친 원정이 실패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일본정벌의 출발지였던 합포에는 당시 주둔군 숙소와 군영 등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을 것입니다.
각지에서 들어오는 군량미는 물론, 전쟁에 필요한 군수품들 때문에 시장도 활성화되었을 것입니다.
두 차례의 원정이 실패한 후에는 부상당한 군사들의 치료와 구제에 필요한 시설물들도 많았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도시의 규모와 성격 측면에서 본다면, 13세기 후반의 합포는 위상이 아주 높았던 국제군사항구도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때 군사적 필요에 의해 조성된 각종 시설들이 뒷날 조선 후기 남해안 최대의 상업포구로 발전해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입니다.

700여년 전에 이 도시 마산이 한중일 국제전의 요충지였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 도시가 오늘이 있기까지 경험했던 사건들과,
이 도시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이야기들과,
이 도시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과 사람들의 사연들이,,,,
얼마나 많을까 궁금합니다.<<<



2010/04/0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 여는 글
2010/04/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 1
2010/04/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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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3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 4
2010/05/10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 5



Trackback 0 Comment 3
  1. 임종만 2010.05.19 18:4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넘 오랫만에 들렸지요.
    잘 계십니까?
    희귀 마산의 역사자료 정말 좋습니다.
    함씩 들리겠습니다.
    건강하시고 내외분 다~ 행복하십시오.^^*

    • 허정도 2010.05.20 09:14 신고 address edit & del

      잘 지내시죠?
      여름이 벌써 발등 위에 온 것 같습니다.
      세 도시 통합으로 일반시민들에 비해 공직자들 마은은 더 뒤숭숭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2. 우의영 2012.06.24 13:3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마산의 역사 ㅎ

2010.04.15 09:29

교통문제, 생각을 바꾸어야


1950년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말라리아가 보르네오의 다약(Dayak) 마을을 휩쓸었습니다.
구제에 나선 세계보건기구(WHO)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해결책 하나를 찾았습니다.
DDT를 살포해 모기를 전부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DDT를 뿌리자 즉각 다약마을에 모기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붕이 무너지기 시작한 겁니다.
DDT가 지붕 이엉을 먹어치우던 쐐기벌레의 천적 '작은 기생 말벌'까지 죽였기 때문입니다.
당황한 정부는 다약마을의 주택을 전부 얇은 금속판 지붕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번에는 새로운 문제 몇 가지가 더 발생했습니다.
다약마을은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인데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 때문에 주민들이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DDT에 노출되었던 딱정벌레를 잡아먹은 고양이들이 떼지어 죽었습니다.
고양이가 줄어들자 쥐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습니다.
그러자 WHO는 쥐 때문에 생길 전염병이 걱정되어  고양이 14,000마리를 급히 보르네오에 투입하였습니다.

우리의 도시는 어떻습니까?




광로는 더 많은 자동차를 불러왔습니다.
하천 직강화 사업은 홍수를 불러왔습니다.
재개발 사업은 또 다른 도시문제를 불러 왔습니다.

과거에는 해결책으로 사용되었던 방법들이 부메랑이 되어 오늘의 도시로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도시교통문제이런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교통은 도시문제의 핵심입니다.
살기 좋고 품격있는 도시로 가기 위한 큰 열쇠하나가 교통에 달려있습니다.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만 먼저해야할 것이 있습니다.생각을 바꾸는 일입니다.
고정관념에서 탈출하는 일입니다.

도로가 막히면 도로폭을 넓히고,
차댈 곳이 모자라면 더 큰 주차장을 확보하는,
WHO의 단순한 생각이 빚은 오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절대로 도시의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복잡한 도로의 수용능력을 키운다고 해서 차량의 흐름이 빨라지거나 개선되지 않습니다.
도시교통문제의 본질을 직시해야 합니다.

실패 사례도 여기저기 많습니다.
한강 위에 다리가 수도 없이 놓였지만 서울의 교통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것은 마치 허리띠를 늦춘다고 비만이 해결되지 않고, 콧구멍을 넓힌다고 코 막힘이 치료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해결은 치료를 통해서만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걷기와 자전거 타기를 장려하고,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을 고급화 대중화시켜 자동차의 이용률을 줄이는 정책은 곳곳에서 성공사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도시 내의 자동차 통행량을 줄여서 에너지의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환경도 보전하는 도시들입니다.

우리의 대중교통인 시내버스 사정은 어떻습니까?
누구나 타고 싶을만큼 편리합니까?

혹시,,,,
비오는 날 짐을 들고 시내버스를 타본 적이 있습니까?

든 손으로 우산 접고 버스계단 올라가서 짐 놓고 차비내고 다시 짐 옮겨야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손이 다섯 개가 있어도 모자랄 지경인데 둘 밖이니 버스 타지 말란 말에 다름 아닙니다.

언젠가 쿠리티바를 여행할 때,
버스가 편리하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었던 터라 직접 체험해 보았습니다.

거리가 4-5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 A지점과 B지점을 정해 놓고 대중교통인 버스도 타보고 택시도 타보았습니다.

내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비용은 택시가 몇 배 비쌌지만 속도는 버스가 빨랐습니다.
볼보에서 특수제작한 꾸리찌바의 시내버스는 깨끗했고 안락했습니다.
고위 공직자도, 연구소의 박사도, 의사도, 대부분 버스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가용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평상시에는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선진도시에서는 육상교통체계의 우선순위를
‘보행자 - 자전거 - 대중교통(시내버스) - 택시 - 자가용’ 순으로 둡니다.
이대로 따라 하기에는 우리네의 특수한 사정이 있지만 교통정책의 지향점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그들의 교통행정에는,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이, 동력차량보다는 보행자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우선권이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녹아있습니다.
그 신념이 질 높은 대중교통과 녹색교통시스템을 만들어 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민 일인당 도로연장은 2미터 조금 넘습니다.
일본의 1/4, 미국의1/10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연간 일인당 자동차 주행거리는 23,000킬로미터로 일본의 2배가 넘고 땅이 넓은 미국보다도 많습니다.
우리는 이동수단 대부분을 자가용자동차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출퇴근은 물론 주말, 휴가철, 명절 귀성 때, 어디라도 움직이기만 하면 자동차를 탑니다.
도로정체로 한 두시간 길 위에서 보내는 것 조차 예사롭게 생각하면서 자동차를 탑니다.

생활습관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자동차를 탈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져 있는 사회시스템 탓 아닌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통합창원시의 출범이 눈 앞에 다가왔습니다.
세 도시 제각각 안고 있던 문제들과 통합으로 생기는 새로운 문제까지,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해결해야될 도시문제들이 출범하자마자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교통문제도 그 중 하나이겠지요.

교통량은 도시구조가 좌우합니다.
토지용도의 지나친 구분이 도시를 점점 자동차에 지배 당하게 합니다.
따라서 토지이용과 교통계획은 통합적으로 계획되어야 합니다.
구조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차량사용제한과 교통영향평가 등의 언발에 오줌누는 대책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일본의 자동차 보유비율은 우리나라보다 높습니다.
하지만 주거지에서 자동차 구경하기가 쉽지 않고, 도로의 자동차도 우리만큼 많이 밀리지 않습니다.
교통에 관한 모든 시스템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6
  1. 노상완 2010.04.16 12:2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누가 지방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실천하는가도 중요하겠지만 시민들의 사고전환도 필요하겠군요

    • 허정도 2010.04.16 15:10 신고 address edit & del

      좋은 말씀입니다.
      가까운 거리도 걷기를 싫어하고, 모든 이동을 개인승용차에 의지하면 어떤 도시정책도 교통란을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2. 핑키 2010.05.14 00:3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숙제 때문에 교통 문제 사진 퍼갑니다.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3. k.t.b 2010.08.27 14:4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서울엔 주차난도 심하니 도심 지하도로를 만들고 그 옆으론 주차장을 만들면 서울 도심교통문제끝!

  4. 유니 2011.01.25 19:0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고맙습니다.. 덕분에 선생님께 칭찬받았어요.

    • 허정도 2011.01.26 10:26 신고 address edit & del

      다행이네요. 방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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