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1.02.28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7) - 개항이후

<행정구역 명칭이 바뀌다 - 정명변경(町名變更)>


일제는 그들의 편의에 따라 도시지역의 행정구역 최소단위를 ‘정(町, 마찌)’이라는 일본식 명칭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마산창(馬山倉) 설치 후 생겼던 마산포의 6개리도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이 글은 마산의 행정구역 명칭이 바뀌는 과정과 결과에 대한 내용입니다.


조선총독부를 개청한 1910년 10월 1일 하루 전날인 9월 30일, 일제는 식민지 통치를 위한 과도기적 지방통치기구를 확립하였는데 거기에 동리명의 변경에 관한 지침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변경방법은 그 때까지 사용되던 행정구역의 최소단위인 ‘동’과 ‘리’의 명칭을 일본식이나 한국식 중 어느 것이나 택하라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일본인이 행정책임자가 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온통 일본 세상이었던 때라 종래의 한식(韓式) 동리명이 채택되는 일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조치가 있기 전부터 일본식 지명이 사용되고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개항기에 설치된 일본전관거류지와 각국조계가 설치되었던 곳, 그리고 통감부 치하에서 일본거류민단이 설치된 지역을 두고하는 말입니다.
그곳에는 종래의 한국식 동리명과 병행하여 본정(本町, 혼마찌)이니 경정(京町, 쿄마찌)이니 하는 일본식 동리명이 이미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마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1월 3일자 포스팅에서 소개한 1907년 간행된 「馬山全圖*」를 보면 이런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신마산(조계지)에서는 이미 일본식 지명이 사용되었던 겁니다.
2011/01/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9) - 개항이후
 
그러나 그 때 사용했던 신마산 지명은 공식적인 명칭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일제기 마산에 살았던 일본지식인 추방사랑의『마산항지』에 의하면,
1908년 4월 23일 거류지회 회두인 삼증(三增) 이사관(지금의 시장 역할)이 궁천(宮川)경찰서장, 동조원태랑(東條源太郞)우편국장, 전전(前田)민장을 비롯한 거류지회 유지들과 신마산 조계지 내의 행정구역 명칭에 대해 협의했다고 합니다.

그 협의에서 본정(本町, 월남동)․경정(京町, 두월동)․빈정(濱町, 창포동)․서정(曙町, 청계동)․대정(臺町, 대내동)․파정(巴町, 대외동)․녹정(綠町, 유록동)․영정(榮町, 홍문동)․유정(柳町, 신창동)․욱정(旭町, 평화동)․앵정(櫻町, 문화동)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정리 확정하였습니다.

그 중 간선도로를 끼고 있던 본정과 경정과 빈정은 각각 정목(丁目, 죠메)을 두었습니다. 본정은 1-5정목, 경정과 빈정은 1-3정목까지였습니다.

정목(丁目)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가(街)를 뜻하는 말로 ‘본정1정목’은 지금의 ‘월남동1가’입니다.

다음 그림은 정명 결정 후 몇년이 지난 1916년 신마산지도에 표기된 지명들입니다.
원형 내의 마산신사는 지금의 제일여고 자리입니다.


마산포(원마산) 쪽의 지명도 아래처럼 바뀌었습니다.
남성동파출소 위 쪽의 정() 지금의 창동입니다.



이사관(지금의 시장 역할)이 나서서 한 일이라 이 때 결정한 정명(町名)은 결정 후 곧바로 실행되었습니다.
거류민단에서 각 정 및 정목의 경계에 나무패를 박아 표시하고, 어린 벚나무 5천 그루를 구입하여 각 가로에 4칸(7.2m) 간격으로 심었습니다.

이처럼 마산의 조계지(신마산)에는 1910년 조선총독부가 전국행정구역명칭을 변경하기 훨씬 전부터 자기들 임의로 지명을 지어 부르다가, 1908년 이사관의 주도로 확정하여 뒷날 총독부가 시행한 정명변경(町名變更) 때는 바꿀 필요도 없이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마산항지』에 의하면 이러한 신마산 조계지의 정명변경에 뒤이어 1909년 원마산(마산포)의 6개리 명칭도 바뀌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조계지 인근 지역도 선정(扇町, 반월동)․고정(高町, 대창동)․영정(英町, 화영동) 및 금정(錦町, 해운동)이라는 명칭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정(町)의 경계를 결정하는 구획방법은 신마산과 원마산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신마산은 길을 중심에 두고 지역을 구획한 반면, 원마산은 길을 경계로 해서 지역을 나누었습니다.

특별한 의도가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길을 중심으로 지역을 구획할 때는 반드시 가로가 일정한 규격과 형태로 정돈되어 있어야하는데 꾸불꾸불하고 좁은 골목길뿐이었던 원마산은 도로를 중심으로 구획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린 부득이한 조치였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행된 조선 전국의 행정구역명칭변경 결과를 1917년 일본인  ‘월지유칠(越智唯七)’이  『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 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이라는 책으로 엮었습니다.




다음 표는
『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 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에서 발췌한 마산의 정명변경 이전과 이후 명칭비교입니다.<<<


변경 전 명칭

변경 후 명칭, ( )내는 현재 동명

月影里 一部

錦町(해운동), 英町(화영동), 高町(대창동), 월영리

新月里 一部

신월리,
扇町(반월동), 弓町1․2丁目(대성동1․2가)
通町1․2丁目(장군동1․2가),湊町(월포동)
都町1․2丁目(중앙동1․2가), 仲町(신흥동)

玩月里 一部

通町3․4․5丁目(장군동3․4․5가),都町3丁目(중앙동3가)

玆山里

玆山里

西城里, 城湖里, 城山里 各 一部

新町(추산동), 幸町(서성동)

西城里 一部

富町(부림동), 壽町(수성동)

東城里, 西城里, 中城里 各 一部

元町(남성동)

城湖里, 中城里 各 一部

石町(창동)

東城里, 城山里 各 一部

俵町(중성동)

東城里, 中城里, 午山里 各 一部

萬町(동성동)

東城里, 午山里, 上南里 各 一部

午東里

上南里 一部

上南里

城湖里 一部

城湖里

校坊洞, 檜原洞 各 一部

校原里

新月里, 玩月里 各 一部

玩月里


‘通町’은 원래 구마산 역(지금의 육호광장)까지 지역을 길게 할애하여 ‘長町’이라 부르고 11町目으로 나누었다가 나중에 尺山橋(자산동 경남데파트 앞)까지 단축하여 ‘通町’으로 고쳤습니다.


현재 우리
가 사용하는 동(洞)의 명칭은 해방 후 우리 식으로 바꾼 것이지만 토지의 지번과 동(洞)의 경계는 100여 전 일본인이 만든 지번과 정(町) 경계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라 도처에 남아있는 식민지 시대 흔적 중 하나입니다.<<<





2010/10/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6) - 개항이후
2010/10/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7) - 개항이후
2010/10/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8) - 개항이후
2010/10/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9) - 개항이후
2010/11/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0) - 개항이후
2010/11/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1) - 개항이후
2010/11/1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2) - 개항이후
2010/11/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3) - 개항이후
2010/11/2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4) - 개항이후
2010/12/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5) - 개항이후
2010/12/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6) - 개항이후
2010/12/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7) - 개항이후
2010/12/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8) - 개항이후
2011/01/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9) - 개항이후
2011/01/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0) - 개항이후
2011/01/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1) - 개항이후
2011/01/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2) - 개항이후
2011/01/3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3) - 개항이후
2011/02/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4) - 개항이후
2011/02/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5) - 개항이후
2011/02/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6) - 개항이후

Trackback 0 Comment 0
2010.12.27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8) - 개항이후

<자복포에서 펼친 일본의 야욕>

-한국마산포 대일본제국 전관거류지 평면도-
1902년 5월 / 일본정부 / 한일양국정부 / 막대축척 / 마산포일본전관거류지협정서 / 규장각



마산의 일본전관거류지가 확정된 후 그 협정서에 첨부된 지도입니다.
자복포, 즉 구 한국철강 주변 일대가 상세하게 측량하여 표시되어 있습니다.

35회에 포스팅한 일본의 육군중포병대대(현재의 월영동 아파트 단지, 구 국군통합병원)가 옮겨오기 전의 자복포 일대를 세밀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입니다.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자복포의 해안선이 상세히 나와 있을 뿐아니라, 범례를 만들어 도로, 가옥, 구거, 묘지 등까지 잘 표시되어 있어서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월영리에서 율구미로 이어지는 옛길도 세밀하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토지의 소유도 러시아인소유지, 일본정부소유지, 일본인 박간방태랑(迫間房太郞) 소유지, 한국인소유지로 구분해 놓았으며 면적표까지 만들어 도로 및 구거의 면적 외에 토지 소유자별 면적까지 평방미터와 평방평 단위로 기재해 놓았습니다.

이 지도만 보아도 당시 일본이 러시아를 견제하고 마산을 집어 삼키기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우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도 왼쪽 아래에는 창원감리 한창수와 일본영사 판전중차랑(坂田重次郞)의 인장이 있습니다.

이 지도의 표지글입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자복포 부근의 원래의 모습입니다.
이 지도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가 다시 살려야 할 것은 없을까요?
잃어버린 우리 모습의 한조각이라도 다시 찾을 수 있는 도구로 이 지도를 사용할 수는 없을까요?

위 지도의 현재 모습이 아래 그림입니다.
붉은 점이 동일한 지점입니다.<<<





2010/10/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6) - 개항이후
2010/10/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7) - 개항이후
2010/10/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8) - 개항이후
2010/10/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9) - 개항이후
2010/11/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0) - 개항이후
2010/11/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1) - 개항이후
2010/11/1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2) - 개항이후
2010/11/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3) - 개항이후
2010/11/2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4) - 개항이후
2010/12/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5) - 개항이후
2010/12/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6) - 개항이후
2010/12/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7) - 개항이후


Trackback 0 Comment 0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0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2 농촌 주택개량사업은 새마을운동 시작 다음 해인 1972년부터 전개되었으며 담장이나 지붕 등의 부분적 보수와 개량으로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관리들은 초가지붕이 비위생적이고 아름답지 못..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9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1 196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농촌은 전쟁으로 입은 농토의 피해와 농촌인구의 감소 등으로 아직 근대화의 영향을 받지 못한 채 재래식 농경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거환경 또한 전쟁피해..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8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3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주택 시장은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개발과 성장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지어진 단독주택은 대부분 도시 한옥과 양식이 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7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2 1960년대는 한국사회의 큰 전환기였다. 4·19혁명과 5·16쿠데타에 따른 정치적 격변을 겪었고, 소위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제반 개발이 계획적으로 유도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6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1 1945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주체적인 주거문화를 창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지만 경제 사회적 제반 여건이 불비하여 주체적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5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 2 일제하의 중·상류계층의 주택 유형으로는 양식주택과 절충식(개량식)주택·개량 한옥·문화주택·공동주택·영단주택 등을 들 수 있다. 양식주택은 서양식주택을 말하며, 절충식 주택은 과도기적 상황에..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4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시기까지 - 1 구한말(舊韓末)까지도 조선 사람들이 살았던 보편적인 주거 유형은 한옥이었다. 1882년 그리피스(W. E. Griffis)가 쓴 한국에 관한 역사서 『은자의 나라 한국』에는 당시 전통 한옥을..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3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3 조선시대는 우리나라 주거문화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기이다. 반상(班常)을 철저히 구분한 신분사회였기 때문에 신분에 따라 주택의 크기나 형태를 규제하는 가사규제(家舍規制)가 있었다. 신..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2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2 주거사(住居史)에서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지표는 구들의 시작이다. 한국 주거문화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구들은 난방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인 동시에 지상주거로의 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 / 조선시대 이전

오늘부터는 <경남지역 주거변천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6~7년 전에 『경남도사』에 싣기 위해 간략히 쓴 글인데 출판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블로그에 올립니다. 어차피 공유하기 위한 글이니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동남부에 ..

기억을 찾아가다 - 25 (마지막 회)

25. 3·15의거에 대한 기억 「그날 나는 ‘극장 구경 시켜주겠다’는 주무돈이란 동네친구의 호의에 끌려 10리 가까이 되는 길을 걸어 ‘시민극장’으로 갔다. 그때 나는 대학입시에 낙방한 직후라 의기소침해 있던 상황이었다. 우..

기억을 찾아가다 - 24

24. 이승만 행사 -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 노인잔치...... 내 고등학교시절의 어느날 동회 서기가 들고온 책자를 잠시 훑어본 기억이 남아있다. ‘한국 정치인 99인집’이란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승만편이 현격히..

기억을 찾아가다 - 23

23. 떠돌이들, 좀도둑 전쟁이 끝나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들갔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남아있었다. 좌우갈등의 와중에 있었던 몸이라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고 들은 문씨 같은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가봤자 땅뙈기 ..

기억을 찾아가다 - 22

22.기합, 주먹자랑, 몸단련 중학교시절에도 조금은 의식되었지만 신경을 곤두세울 정도는 아니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그 문제들은 신경의 상당부분을 자극하여 행동거지의 상당부분을 조종하고 지배할 정도로까지 작용했다. 소위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2

지난주에 이어 녹색 기둥의 정원 에서부터 선유도 이야기를 이어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녹색 기둥의 정원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 기둥만을 남겨 만들어진 이 정원은, 선유도 이야기관 의 설명에 의하면 ‘휴식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