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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1 00:00

한국 100명산 13 : 재약산과 표충사

♪ 한국 100명산 탐방 13번째 산행으로 지난해 이맘 때쯤 들렀던 영남알프스 5개 봉우리 중 하나인 재약산을 등정하기로 하였습니다. 가을이고 해서 대원님들이 워낙 바쁜 관계로 소인원이라도 출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이번 산행은 2명이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에는 비봉대원 3명이 동참하여 분위기가 화기애애했었으나, 아마 그 때 몹시 힘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무도 동행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ㅠㅠ

아침 8시에 중앙동 김밥집에서 일반 1인분과 땡초 김밥 1인분을 싸 담아서 8시 15분에 출발했습니다. 네비게이션만 믿고 생각없이 달렸습니다. 어렵쇼. 청도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고 나서 "이 네비가 제 정신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청도 IC에서 돌아 국도를 통해 다시 밀양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100산 원정 징크스라고 궁시렁거리면서 국도변을 타고 내려오면서 모처럼 한적한 농촌 마을 분위기를 감상했습니다. 청도는 반시가 유명하다고 하지요, 그래서 그런지 집집마다 감나무가 한가득합니다. 반시는 홍시랑 단감이란 중간쯤의 상태인지 궁금해 하면서 내려왔습니다. 청도풍경 중 하나는 청도가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라고 가로변에 녹색바탕에 새싹이 그려진 새마울 국기가 국도변에 도열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마을이 엄청나게 잘살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별반 차이없는 농촌풍경이었습니다. 피식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청도 상동마을에는 미나리가 유명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삼겹살과 미나리' 입맛이 땅기지 않습니까? 군침을 다시면서 악세레이터를 밟았습니다. 이런 저런 농촌풍경을 보면서 표충사로 향하는 길이 나름 즐거웠습니다. 표충사 가는 길에는 대추가 한창이었습니다. 생대추, 마른대추들을 파는 점포들이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표충사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10분이었습니다. 1간이면 올 거리를 예정에 없는 청도를 들를게 되어서 2시간을 소요하였습니다.

♬ 표충사에서 정상까지 : 10시 20분에 표충사 일주문을 좌회하여 재약산으로 향하였습니다. 거리상으로는 4.5키로미터인데 해발은 1188미터이니 그 경사도가 가히 짐작이 됩니다. 표충사 해발을 100미터 정도로 보았을 때. 1.1키로미터 높이를 4.5키로미터의 수평거리로 환산하면 그 구배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허~둘, 허~뚤 하면서 개울가의 시원한 물서리를 청각이 얼얼할 정도로 들으며 발길을 제촉하였습니다. 20분 정도 올랐을 때 조그만 암자가 보이면서 구름다리, 토담벽으로 만든 창고들이 보였습니다. 쪼맨한 폭포도 보이자 다른 등산객들도 기념사진을 찍는다고 난리법석입니다. 우리도 잠시 땀을 흠치면서 한장 박았습니다.

- 경사가 급하다 보니 능선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코앞 위로 보이는 파란 하늘만 보며 올랐습니다. 요 고비만 지나면 능선일꺼야 라고 생각하면서~~~~ 헉헉헉~~~ 두시간쯤 올랐을까요 진짜 능선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1000미터 고지쯤 되는 것 같습니다. 정상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능선에 오르자 억새풀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파란하늘에 키큰 억새가 장관입니다.

- 잠시 올라온 길을 내려다 봅니다. 주변 산들이 얼추 발 아래로 보입니다. 재약산의 해발을 실감합니다.

- 2시간 전에 출발했던 표충사가 보입니다. 오른쪽이 주차장입니다.

- 다시 40분쯤을 정상을 향해 걸었습니다. 항상 이 정도쯤에서 가장 몸 컨디션이 최고조인것 같습니다. 2시간 정도 워밍을 하니 몸도 풀리고, 정상이 눈 앞에 보이기 심리적으로 마무리 하고픈 마음이 생겨서 심신의 피로가 상쇄되는 것 같습니다. 도착시간은 1시 10분이었습니다. 출발후 2시간 50분 만 입니다. 돌무지 옆이 정상봉입니다.

- 인증샷입니다. 그런데 등산 가이드 책과 다른사실이 정상비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재약산이 아니라 천황산(해발 1189미터)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책에는 일제가 지은 산이름인 천황산을 제약산이라 고쳐부르기 위해 이 봉우리를 제약산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달리 되어 있네요, 책을 오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재약산은 이 봉우리 보다 우측편에 있는 곳을 재약산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책에는 수미봉으로 되어있으며, 해발은 이 봉우리 보다 낮은 1108미터입니다.)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우측봉우리 입니다.)

(등산 가이드북에서 수미봉이 이정표에서는 제약산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 학봉에서 작년에 탐방한 영축산과 신불산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림이랑 사진위치랑 확인하기 쉽습니다.

- 정상에서 도시락과 후식으로 사과를 나눠먹고 1시 40분에 하산을 했습니다. 하산시간은 1시간 40분 소요예정입니다. 얼추 예정되로 3시 20분에 표충사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 표충사에서 : 표충사는 신라때 지어진 고찰입니다. 무열왕 원년(654년) 에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죽림사라 하였다가 영정사로 바뀌었으며, 이후 임진왜란 때 의승대장인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대사  3분의 영정을 봉안한 표충서원을 사찰초입에 둠으로써 절의 이름도 표충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 모든 사찰 입구에 설치된 일주문입니다. 기둥이 1열이라고 일주문인데, 이 문은 지붕면적이 커서 2주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누문입니다. 일주문에서 사찰에 들어서는 정문에 해당됩니다. 

- 누문을 지나서 바같마당이 있고, 다시 중간마당으로 향하는 곳에서 마주치게 되는 것이 천왕문입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방위에 따른 사천왕이 모셔져 있습니다. 동에 지국천황, 서에 광목천왕, 남에 중장천왕, 북에 다문천와의 천왕상을 안치하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무섭게 생겼죠, 죄 지은 사람들은 두려워 할만한 포스를 지니고 있습니다.

 

- 표충사는 일주문에서 본전에 이른는 천왕문에 이른 곳에 큰 마당이 있습니다. 좌측에는 사당과 사명대사 전시장이, 우측에도 커다란 수도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공간이 너무 크기도 하고, 건물도 전통 목구조 형식이 아닌 콘크리트 구조에 기와만 씌운 구조입니다. 그리고 전통 사찰에서 볼 수 없던 큰 기와지붕이 형성되어 상단의 법당과 조화를 이루이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당의 넓은 공간이 그냥 널부러진 마당처럼 조성되어 산만하기 까지 합니다.

 - 사천왕문을 지나 본 마당의 모습입니다. 가운데 탑을 위시해서 좌우에 요사채가 상부로 갈수록 법당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 좌측에 스님들의 기숙공간이 요사채입니다. 그리고 오른쪽은 탬플스테이를 위해 개방된 요사채가 있었습니다. 담장이 낮은 관계로 요사채 내부의 프라이버시는 확보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요사채를 지나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종루와 누각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관광객들에게는 쉼터역할을 하지만 법당 앞에 마련된 누각은 정서상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 안마당에서 내려본 중간마당입니다. 요사채를 사이에 두고 비워진 공간입니다. 특별한 기능없이 휑하기만 합니다.   

 - 석탑주변입니다. '들어가지 마세요'라는 안내판이 옹색합니다. 보통 철주 난간을 설치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석등은 왜 탑 근처에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부처님의 생애를 8개의 탱화와 존상으로 나타내 모시는 법당입니다. 얼추 보고 나니 4시쯤 되었습니다. 마산으로 가는 길에 밀양시내를 경유해서 가기로 했습니다. 미리 확보해둔 맛집을 들르기 위해서입니다. 

 - 가로변에 코스모스가 한들거립니다. 국도변은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차창가로 보이는 밀양송전탑!!! 밀양 할매들이 생각났습니다. 산위에 솟은 철탑이 자연경관을 망치는 괴물처럼 보였습니다. 경관뿐  아니라 할매들을 못살게 구는 사탄처럼 보였습니다. 저곳을 흐르는 고압전류가 테이저건처럼 영향이 마치 도로변까지 미칠 것 같습니다.

  ♬ 금강산후 식후경 : 100산 탐방은 그 지역의 유명 먹거리를 확인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단출하게 시내에 있는 홍*불고기집을 찾았습니다. 얇게 썬 생고기를 반쯤 구운 후, 파와 양파를 버무려 살짝 데쳐서 먹는 주물럭의 일종이랄 수 있습니다. 먹을만 했습니다.

밥과 된장까지 먹고 마산에 도착하니 6시였습니다. 해가 아직 쪼맨 남아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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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01 15:41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김윤지 2014.10.02 14:3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안녕하세요. 청주대 학생입니다.
    블로그를 보고 동탄 프르비오 하임 견학을 하려고 하는데
    지금도 홍보관이나 모델하우스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3. 김윤지 2014.10.02 14:3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안녕하세요. 청주대 학생입니다.
    블로그를 보고 동탄 프르비오 하임 견학을 하려고 하는데
    지금도 홍보관이나 모델하우스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 신삼호 2014.10.03 10:53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견학용으로 지어진 건물이라 가능합니다.
      그런데 사전에 예약을 하고 가야됩니다.
      :)

  4. 김윤지 2014.10.06 17:5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혹시 사전예약 할 수 있는 전화 번호를 알 수있을까요?
    모델하우 위치도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5. 김윤지 2014.10.06 17:5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혹시 사전예약 할 수 있는 전화 번호를 알 수있을까요?
    모델하우 위치도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6. 정택진 2014.10.10 23:2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안녕하세요 건축학과 학생입니다
    친환경 설계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데 이번 동탄푸르지오하임을 사례로 더 깊게 공부를 하고싶은데
    연락을 해보니 지금은 견학이 안된다고 하네요.
    혹시 홈페이지 외의 사진 자료가 더 있는지, 있으면 혹시 공유좀 해주실 수 있습니다
    메일 주소는 xorwls6607@hanmail.net 입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수고하세요

2014.05.15 00:00

한국100명산 10. : 조계산. '태백산맥'의 배경지

♪ 100명산을 시작한지 만 1년만에 10번째 산행을 하게되었습니다. 이번 원정지는 전남 순천에 있는 조계산입니다. 조계산 정상 장군봉을 기점으로 좌우에 송광사와 조계사가 위치하여 횡단하는 코스는 두 사찰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 조계산입니다. 그리고 태백산맥으로 너무나 유명한 조정래 선생님이 태어난 곳이 조계산 선암사입니다. 그의 대하소설 '태백산맥'과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조계산은 소설 '태백산맥'의 중요무대의 배경이 된 곳입니다. 한국동란 이후 빨치산의 총사령부가 있었던 지리산으로부터 확산된 전남 서부지역과 연결되는 통로로서 조계산이 당시 빨치산의 거점이며 통로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계산은 우리민족의 아픈역사가 남아있는 산이기도 합니다. 

♬ 5월 3일 토요일 아침 7시 30분에 315아트문화센터 주차장에 집결하였습니다. 오늘도 열외1명 없이 6명 모두가 함께 하게되었습니다. 아침은 섬진강 휴게소에서 우동과 준비한 충무김밥으로 가볍게 해결했습니다. 연휴를 이용하여 봄을 만나러 떠나는 사람들이 흥겨움이 휴게소 마당을 부산스럽게 하는 것 같습니다. 순천은 작년에 순천만 조성된 생태공원 박람회를 통해 생태도시로의 이미지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인접한 여수의 엑스포 박람회와 더불어 새로운 생태관광코스로 거듭나는 것 같았습니다.

선암사에서 장군봉까지 : 선암사에서 장군봉까지는 약 2.7키로미터로 1시간 30분 정도 소요시간을 예상하고 10시 20분에 출발하였습니다. - 주차장에서 선암사까지는 1키로미터 정도입니다. 사부작히 걷기 좋은 길입니다.

- 선암사가는 중간쯤에 돌기둥 2개가 좌우에 서있습니다. 일종의 문주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측은 조계산 선암사라는 글귀가, 좌측은 禪敎兩宗大本山이 적혀있습니다.

 - 얼마지 않아 유명한 승선교가 보입니다. 반원아치의 돌다리로 유명한 곳이죠, 우리일행은 일부러 하천가로 내려가서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 승선교 뒤로 보이는 누각(강선루)가 살짝 보이는 것이 백미인데 주변의 녹음이 울창하여 누각의 다리부분만 살짝 보여서 아쉽게도 그림에서 보던 장면을 촬영할 수 없었습니다. 얘가 보물로 지정되었어 있다고합니다. - 단체사진 한팡

강선루(降仙樓)입니다. 이름을 풀이하자면 이 누각으로 신선이 내려왔다가, 昇仙橋를 통해 신선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일주문에 앞서 이러한 누각이 설치된 것은 특별한 경우인 것 같습니다. 보고 싶은 선암사는 하산길에보기로 하고, 장군봉을 향하였습니다. 출발과 함께 시작된 경사도는 도대체가 쉴틈을 주지않고 연거푸 경사면으로 이어졌습니다. 

- 12시 35분에 장군봉에 도착했습니다. 2시간하고도 15분이 지났습니다. 얼추 2시간 이상을 걸었습니다. 우리 학봉대원들 체력이 예전만 못한 것 같습니다. 1시간 반 거리를 2시간 이상이나 걸리다니!!!

- 일단 기념사진 촬칼, 정상이라고 하기에 너무 협소하였습니다.

- 오늘 점심은 능선변에 있는 보리밥집에서 먹기로 하였습니다. 각자 가져온 간식 메뉴가 다양합니다. 충무깁밥, 쑥떡,  야관문주, 그리고 보급품 한봉다리가 끝내줍니다. 보시겠습니까? 놀라지 마십시오

- 이 간식은 학봉산악회 보급대장님 하사품입니다. 간식이 아니라 낙오시 하루정도 버틸 수 있는 비상식량이 될 정도입니다. 

그 유명한 보리밥집입니다. 조계산 가는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보리밥집입니다. 등산로 이정표에 기재될 정도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집입니다.

- 보리밥집 전경입니다. 원조라고 합니다. 즉 한군데가 옆에 새로 생긴모양입니다. 맛이비슷하겠지만 원조라는 집에 들렀습니다. 노란깃발을 보고 찾아갔습니다.

 - 막걸리 한사발에 보리밥에 온갖 나물들, 그리고 비빈 보리밥을 상추에 얹어서 된장 쓱싹하여 먹는 맛이 일품입니다.

선암사 경내를 둘러보았습니다.

《선암사사적기()》에 따르면 542년(진흥왕 3) 아도()가 비로암()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875년(헌강왕 5)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신선이 내린 바위라 하여 선암사라고도 한다. 고려 선종 때 대각국사 의천()이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 거의 폐사로 방치된 것을 1660년(현종 1)에 중창하였고, 영조() 때의 화재로 폐사된 것을 1824년(순조 24) 해붕()이 다시 중창하였다.
6·25전쟁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20여 동의 당우()만이 남아 있지만 그전에는 불각() 9동, 요() 25동, 누문() 31동으로 도합 65동의 대가람이었다. 특히 이 절은 선종()·교종() 양파의 대표적 가람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와 쌍벽을 이루었던 수련도량()으로 유명하다.
주요문화재로는 보물 제395호인 삼층석탑 2기가 있으며, 대웅전은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어 있다. (heen8659님의 블로그에서 인용)

- 일주문입니다. 기둥 사이가 1칸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가운데 공포가 여럿히 설치된 다포식 처마장식입니다. 처마는 공포와 서까레가 2단으로 형성된 겹처마 입니다. 왜이렇게 화려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범종각입니다. 종을 보호하는 건물입니다. 정면 측면 3칸씩입니다. 처마장식은 기둥위 간단하게 익공으로 처리하였습니다.

- 대웅전 전경입니다. 대웅전 다운 위용입니다. 현재 보수공사중입니다. 처마에 단청을 칠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기존의 서까레와 노후화한 부재를 갈아 끼워진 상태입니다. 목부재가 어느 정도 건조가 되면 단청을 하게 될 것입니다.

- 대웅전 앞 삼층석탑입니다. 신라시대 9세기경에 지어진 탑으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불국사 석다탑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 대웅전 옆의 요사채입니다. 요사채의 지붕개량공사는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절집에서 보기좋은 느낌의 색상은 목재면에 바래진 수채화빛 색상입니다.

- 대웅전 경내전경입니다. 삼층석탑을 위시하하는 듯한 연등의 행렬이 보기 좋습니다.

- 요사채의 고무신 : 가지런한 고무신과 색이 바란 목재문살, 누런 서까레가 황토벽면색을 닮아가는듯 합니다.

- 담장너머 처마선 : 얕은 담장은 고래등 같은 지붕선과 처마선을 살포시 받아줍니다.

  

- 문살의비례 : 요사채 전경입니다. 정연한 기둥사이내에 창호의 크기에 따라 나뉘어진 가로 선과 세로선의  비례가 아름답습니다. 

- 문꼴로 봐서 창고인 듯 합니다. : 창고의 품위! 

 - 장경고입니다. 불교경전을 보관하는 도서관이죠, 건물 기능에 비해 장식이 과다한 것 같습니다.  

 - 선암사 경내가 아름다운 이유 : 건물주변 공간을 구획하는 담장에 의해 외부 공간을 풍요롭게 하는 것 같습니다.

- 한국불교 태고종의 업무를 보는 종정원 : 나무 옹이와 못자욱 마처 아릅답게 보입니다. 

- Y 디자인의 결정체 : 석재 함지박에 물을 길는 두가닥 물줄기와 물족자를 보관하는 지붕을 이고 있는 새총모양의 나무기둥 

- 화장실의 위용 : 이처럼 럭셔리한 화장실이 있을까?, 그래서 이름도 뒤깐입니다. 출입구 박공면의 위용이 엄청납니다.  현재 지붕 공사중입니다.

- 선암사는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선암사 관람평은 무척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건물이 제각각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지어진 시기나, 건물의 용도가 다르니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완만한 경사지를 잘 이용한 부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형의 높이차에 따라 건물과 담장 그리고 조경에 의해 외부공간을 잘 분리하였습니다. 전체가 다 보이지 않고 필요한 부분, 예를 들면 지붕의 처마선만 살짝 보면서 경내를 회유하게 됩니다. 보일듯 말듯한 공간을 돌아다니면 건물의 특정부분들이 그림처럼 다가옵니다. 어떤 곳에서는 처마의 서까레 부분이 어떤 곳에서는 담장의 쌓여진 돌들의 조합에 의한 비례가, 또 어떤 곳에서는 500년된 매화가 하나의 주인공처럼 등장하게 됩니다. 이상으로 학봉산악회 열번째 등반보고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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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5.15 17:20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009.10.01 08:50

추석엔 산호공원 옆 효자비 한 번 둘러보세요

골목 효자비에서 발견한 건축적 장식의 화려함

얼마 전 산호공원에 산책 갔다가 내려오면서 우연히 건물 틈 사이로 기와지붕 용마루가 눈에 띄었다. 골목에 면하여 귀퉁이만 조금 보였다.
“도심 속에 웬 한옥이 있지 ?”하고 내려가 보았다.


▲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일주대문

정면에 일주문이 위용을 갖추고 서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솟을대문에 붙혀져 비각이 있는데 그 건축적 디테일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내부에 들어가서 비문을 읽어보니 효자비를 보호하기 위한 정려각 임을 알게 되었다. 정려란 나라에서 충신·효자·열녀를 칭찬하여 그들이 살던 마을의 입구에 세우던 문이나 비로서 이 동네에서 유명한 효자를 기리는 비각이었다.

보통 시골의 마을 어귀에 신도비나 효자, 열녀비가 서있는 경우는 많이 보았는지라, 도심 속에 효자비가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하고, 그 건축적인 용모 또한 많은 볼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정려각은 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비각만 있는데 반하여 산호동의 정려각은 앞에 일주대문 추가로 설치함으로써 후손들이 정성을 최대한 보여주기 위해 화려하게 꾸민 것 같았다.

건축적 장식의 화려함을 하나 하나 살펴보면...

먼저 일주문은 기둥이 1열인 대문의 형식으로 폭은 한 칸임에도 불구하고 상부의 공포(기둥 위나 기둥사이에 지붕면을 떠받히는 구조재 역할과 장식을 겸한 부분)는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 연꽃 모양의 화려한 공포장식


처마를 내미는 면이 기둥간격 보다 서너배 되는 지붕면을 받치기 위해 방사형으로 4단 내민 구조로 되어있었다. 지붕처마는 원형의 굴도리와 네모난 민도리를 내민 2단 겹처마의 형식을 띠고 있었다.내민 부분은 화려한 연꽃모양과 줄기부분을 상세하게 깎아서 단청이 칠해져 있으며 서가래와 처마 밑판에도 기하학적 문양으로 장식이 아주 화려해 보였다.


▲ 공포와 화려한 단청의 서가래 장식


특히 기둥위의 공포사이에 있는 소로(기둥사이 보 중간에 설치되어서 지붕의 중량을 받혀주는 장식재)는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 위에 귀여운 도깨비 얼굴로 장식되어 아주 재미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 인방보위에 얹혀진 거북이 등을 탄 도깨비 얼굴


정려각은 정면2칸, 측면 1칸으로 되어있었고 현판/편액은 孝閣이라고 적혀있었다. 내부에는 2개의 비석이 놓여있었다.

▲ 정면2칸 측면1칸의 정려각


▲ 비각 내부의 효자비

내부 두 개의 비석에서 하나는“孝子 金海金公重呂彰積碑”으로 적혀있고, 다른 하나는 “孝子金海金公善文彰積碑”로 비문이 새겨져 있었고 배면에는 상세한 치적내용이 적혀있었다.

공포는 정면과 측면에 세 개씩 설치되어 대문에 비해 훨씬 화려하게 장식되어있었다. 코너부분의 공포형태는 연꽃 문양 상단에는 닭머리 모양의 장식과 대각선 방향으로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을 조각하여 단청칠이 되어있었다.

▲ 공포상단에 여의주를 물고있는 용과 닭머리 장식


아쉬운 점은 정려각 주변에 담장이 쳐져 있어서 일부러 들어가기 전에는 목조구조의 화려한 장식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주변에는 잡풀이 무성하여 관리상의 아쉬움이 남았으며, 비각 뒤편에서는 불을 지핀 흔적들이 남아있어서 자칫하면 화재의 위험도 있을 것 같았다.

▲ 주변의 담장과 무성한 잡초는 효자비 관람을 어렵게 하고 있다


혹시 하는 마음에 해당 동사무소에 전화를 해보았더니, 현재 지방 문화재로 등록되어있지 않아서 문중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문중의 소유라도 문화재로서 보호할 가치가 충분히 있을 것 같았다.

일주대문 앞에 약간의 자투리 공간이 남아있었다. 가능하다면 이 부분을 쌈지공원으로 만들고 담장을 투시형으로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즐겁게 방문할 수 있도록 하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대문 용마루의 훼손된 기와도 보수하고, 비문을 해석하여 정문 앞에 조그만하게 설치 해둔다면 효자비의 원래 목적인 교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효자비의 위치는 용마고등학교 뒤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소는 산호동 530-1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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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괴나리봇짐 2009.10.01 09:5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전문가적 시각이 확연히 드러나는 포스팅이네요.
    일일이 전화해서 확인하는 기자정신까지!
    정말 선생님 말씀대로 쌈지공원도 만들어지고,
    반듯하게 잘 관리된다면 명소가 될 것 같습니다.^^

    • 신삼호 2009.10.01 11:19 신고 address edit & del

      잘 관리만 한다면 좋은 문화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는 생각이 듭니다.

  2. 김주완 2009.10.01 11:4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멋진 걸 발굴하셨습니다. 저도 꼭 한 번 가봐야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아차! 이 아까운 글을 비로그인 상태에서 추천하고 말았네요. 나중 집에 가면 한 번 더 해야겠습니다.

    • 신삼호 2009.10.01 11:53 신고 address edit & del

      잘 가꾸어서 보존되도록 김기자님이 힘좀 쓰십시오

  3. 허정도 2009.10.01 13:1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틀리지 않네요.
    앉으나 서나 건축과 도시 문제에 대한 관심을 끊지 않는 신삼호 씨의 눈에 이 보물 덩어리가 띄었군요.
    수많은 사람들이 이 건물을 보고 그냥 지나쳤는데 말입니다.
    재미 있었습니다.
    더 세밀히 조사해봐야겠지만, 얼핏 보기에는 필자 말처럼 문화재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 같네요.

  4. 2009.10.01 17:47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신삼호 2009.10.01 22:48 신고 address edit & del

      현재 비문 내용 해석을 부탁해 놓았읍니다. 내용은 차후에 소개할 예정입니다.
      건축적으로는 규모나 용도에 비해 너무 화려한 장식을 사용한 특이한 유형인 것 같읍니다.
      그리고 정려각의 건물 년령이 최소 1세기는 넘어보입니다. 목구조와 단청의 상태로봐서는요---
      암튼 비문세운 시기와 내용이 확인하면 구체적인 상황이 파악될 것 같읍니다.

  5. 林馬 2009.10.01 21:3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어릴적 시골에서 많이 봐왔던 비석이지만 설명을 곁들어 감상하니
    정말 아름답고 웅장합니다.

    요즘은 이런 건축물 정말 보기드물지요.

    고건축 용어도 새롭고요.
    여기와서 건축관련 공부도 좀 해야겠네요.

    유심히 보지않으면 놓치기쉬운 것을 세삼 그 의미와 함께
    보게되어 새롭습니다.

    즐겁고 풍요로운 한가위 되십시요.

    • 허정도 2009.10.01 22:42 신고 address edit & del

      林馬님 반갑습니다.
      한국 고건축에도 관심이 많으시네요.
      말씀하신대로 상당히 가치 있는 건축물 같습니다.
      추석 잘 보내시고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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