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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8 00:00

조선총독부가 대한민국정부의 전신?

창원시 추진하고 있는 마산임항선 철도부지의 푸른 길 가꾸기 사업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철도부지를 관리하는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에서 창원시더러 임항선 부지를 사용하려면 400억에 매입하라했기 때문입니다. 임대할 경우에는 연간 4억 정도가 필요하지만 장기임대는 곤란하며, 현행 법률상 다른 방법은 없다고 합니다.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은 국유지인 철도부지를 관리하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매입요구 주체는 사실상 정부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 글은 정부의 이런 입장에 대한 질문입니다.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지에 부설하는 철도는 식민지의 방대한 토지와 물자 그리고 노동력수탈을 전제로 합니다. 20세기 벽두에 시작된 일제의 한반도 철도공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제는 철도건설을 이유로 조상 대대로 지켜온 한국인의 논과 밭을 무상 혹은 무상에 가까운 헐값으로 탈취했습니다. 탈취과정도 악랄했습니다. 공권력과 경찰을 앞세워 제멋대로 경계말뚝을 박았고, 이에 저항하면 법을 들먹이며 힘으로 눌렀습니다.

한참 농사를 짓고 있던 논밭까지 뒤집어엎은 후 그 농작물을 군마의 먹이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창졸간에 땅을 빼앗긴 한국 민중들의 참상은 목불인견이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대한매일신보는 가옥을 철거당한 주민들이 길바닥을 헤매고, 전답을 빼앗긴 농민들은 농사를 포기하고 논두렁 밭두렁에서 울고불고 하는 형편 이라고 기사로 남겼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철도공사 때 노역착취도 극심했습니다.

전국의 연선 주민들이 철도역부로 동원되어 살인적인 노역을 강요당했습니다. 총칼로 무장한 일본 감독자는 무자비한 폭행에다 처형까지 감행하여, 철도공사에 끌려가면 ‘살아서 갔다가 죽어서 돌아온다(生行歸死)’는 말까지 떠돌았습니다.

부녀자를 겁탈하고 양민을 학살하고 비협조적인 군수를 폭행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본 영국 언론인 멕켄지는 ‘일제의 철도부지 수탈은 약소민족에게 자행할 수 있는 가장 범죄적인 포학이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거지가 되었다’ 고 했습니다.

땅을 지키기 위해 일제와 친일세력을 상대로 거센 저항도 하였지만 주권 잃은 나라의 민초들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식민지 시대의 철도는 일본에 의한 피해 당사자인 한국인들의 토지와 노동력으로 건설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문명의 이기(利器)이기 이전에 침략과 수탈과 탄압의 도구였습니다.

마산 임항선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 철로 역시 오래 전 마산사람들의 피와 땀이 서린 통한의 땅입니다.

1905년과 1923년 두 번에 걸친 수탈과정에서, 마산사람들도 집단으로 일제에 저항했지만 결국 토지를 뺏기고 말았습니다. 강제로 동원된 공사장에서 배고픔과 수모를 참아가며 노역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참혹한 역사가 서린 저 임항선 철로를 대한민국의 정부가 창원시에 돈을 받고 팔려합니다.

저는 이런 정부의 입장과 법률이 납득되지 않습니다.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탈취해간 철도부지를, 땅을 뺏긴 지역의 주민들이 공익을 위해 사용하자는데 돈을 받고 팔려니 말입니다.

최근 우리 정부의 대법원은 일본기업더러 식민지 시대 우리 국민에게 끼친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식민지 피해보상 해석을 정부차원에서 민간 기업에까지 확대한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의 시대정신입니다.

그런데, 일본에 대해서는 민간 기업에까지 피해보상을 요구하면서 일본에게 빼앗겼던 자국민들의 땅은 돈 받고 되넘기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조선총독부가 대한민국정부의 전신인지, 아니면 오래된 장물이라 주인이 바뀐 건지, 진실을 외면하는 이중적 역사 해석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에 묻습니다.

첫째, 저 철도가 무상 토지수탈과 강제 인력동원에 의한 식민지 철도라면, 국유지라는 단순한 판단에 앞서 역사적 성찰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 아닌지요?

둘째, 조선총독부의 토지소유권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대한민국정부는, 일제의 토지강탈 과정을 확인할 의무는 없고 토지소유에 대한 권리만 있는지요?

셋째, 수명이 끝난 임항선 철도부지가 원래 마산사람들의 땅이었다면, 최초에 땅을 빼앗긴 사람들의 후손들 즉 지금의 마산사람들 품으로 돌려주어야 마땅한 것 아닌지요? 역사는 그렇게 바로 잡는 것 아닌지요?

답을 듣고 싶습니다.<<<

<2012년 7월 1일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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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0 00:00

도시에 대한 생각도 바꿀 때가 됐는데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고용노동부 장관 시절 “청년 실업률이 높은 것은 대학에서의 문(文)·사(史)·철(哲)이 과잉 공급되어 그렇다”는 주장을 편 적이 있습니다. 한 나라의 장관이라는 분이 내뱉은 이 말은 가뜩이나 관심 밖으로 밀려나있던 인문학의 추락에 가속도를 붙인다 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당사자인 박 장관은 이런 비난에 대해 납득할만한 해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것이 문(文)·사(史)·철(哲)에 대한 그의 평소 소신이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학문을 취업의 수단으로만 보는 박 장관의 퇴행된 눈과 달리 인문학은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도 경남대학교 교수들이 나서서 24강좌 2년 계획으로 마산의 합포도서관에서 개최하는 인문학 강좌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매달 한 번씩 열리기 때문에 저도 몇 번 참석해보았습니다만 그 때마다 꽉 찬 좌석에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오래 전부터 시행해온 마산박물관의 지역사 강좌와 창원대 박물관이 시민들에게 제공한 박물관대학 등 역사가 꽤 깊은 인문학 강좌도 있습니다. 3년 전에 시작된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 역시 이런 범주의 진화된 형태였습니다. 인문학의 저력이 이처럼 지역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대학 강의실을 나온 인문학이 상종가를 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지역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전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인문학이 생활 속 깊숙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노숙자와 인문학을 결합시킨 프로그램도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 산호동 용마산 자락의 마산도서관에서도 ‘길 위의 인문학’이라는 타이틀로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짧은 강좌가 열리고 있습니다. 내용은 마산지역의 역사, 보다 더 세밀히 말하면 마산 도시변천사입니다.

두 번의 강의와 두 번의 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강의 한 번과 답사 한 번은 이미 끝났고 두 번째 강의가 오늘 저녁에, 마지막 답사는 오는 23일 일요일 오후에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 첫 답사 때는 창동을 중심으로 옛 마산포 지역과 노비산 임항선 환주산을 다녔습니다. 답사자들은 마치 숨겨진 비밀을 캐내듯 흥미진진하게 지역보물찾기에 몰두했습니다.

노비산 언덕에 올라서는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와 다시 서니∼∼"로 시작되는 노산의 '옛 동산에 올라'가 바로 이곳이 배경이라면서 직접 노래를 듣기도 했고, 문신 미술관에서는 조각가 문신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그렇게 초여름 휴일 오후를 보냈습니다.

답사 내내, 가까운 곳에 이렇게 소중한 것들이 있었나? 어, 이런 줄 몰랐네? 등등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아마 신마산 쪽으로 계획되어 있는 이번 일요일 답사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행사에 참여하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사람들이 이 도시가 겪었던 지나간 시간을 회억하려할까? 지나간 시간에 있었던 사건과 사람들의 흔적에 왜 관심을 가질까,,,,?

너무 단순하고 어설픈 답이지만, 우리가 문화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주변에 달라져가는 것이 하나 둘 아닙니다. 일상에서의 사람들 관심도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많이 달라졌습니다.

똑 같이 생긴 콘크리트 공중에서 사는 아파트보다 자기만의 집에서 마당을 딛고 살기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 갑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개성있는 공간에서 꽃나무라도 한 그루 바라보며 여유롭게 마시고 싶어 합니다. 과도하게 격식을 차린 복장보다는 편안한 옷을 입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형식적인 외피로 치장한 건물보다는 건축재료의 본래 모습이 드러나는 건물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주택과 자동차의 다운사이징 현상도 눈에 보입니다.

시와 음악이 넘쳐서 문화의 시대가 아니라, 이런 생각의 변화들이 이 시대가 문화의 시대임을 말해주는 것 아닐까요? 미미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냥 주어진 변화가 아닐 겁니다. 경제와 문화의 변화가 주는 현상일 테죠. 소위 선진국으로 가는 변화가 이런 것들이라면 쌍수 들어 환영할 만한 변화입니다.

바로 이런 변화들이 문화소비자를 양산하였고 마산도서관 행사는 그 문화소비자를 수용했던 사업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변화에 맞춰 도시에 대한 생각도 좀 바뀔 때가 됐는데,,, 아직 요원하네요. 뚫고, 짓고, 메워야만 좋은 것이라 생각하는 우리의 정지된 생각은 언제쯤이나 바뀔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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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01410 2012.06.20 11:2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최근 만화 팬들 사이에서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작품 중에 '다카스키 가의 도시락'이란 게 있습니다. 주인공 다카스키는 지리학 석사 과정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작품의 주요 주제인 음식과 향토문화(배경이 나고야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삶을 작품 속에 엮는 수단으로써 지리학이란 학문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되더군요.
    이 블로그를 보고 모친과 옛 마산에 대해 잠깐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삶 속에 있는 이 도시의 기억과 제가 보낸 도시의 기억이 겹치지만 또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되어 놀랐었습니다. (옛 신사가 마산여고 운동장 끝부분에 있었다고 알고 계시더군요. 마산역에 내려서 마여고까지 지각 안 하려고 뛰어올라가던 기억도 얘기하시고) 지리학, 특히 도시공간사 분야는 한 사람의 일생을 담은 배경을 학문적으로 엮어낸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실제로 마산의 도시 이야기는 소 닭 보듯 하는 서울의 대학 친구들도 학창시절 다닌 거리의 100여년 전 사대문 안 옛 이야기를 들려주면 깜짝 놀라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2. 허정도 2012.06.20 11:5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반갑습니다. 저희 블로그를 방문해주신 것도 감사하고요.
    한 도시가 겪었던 사건과 사람과 공간이 가진 가치의 소중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겠죠.
    어머님께서 옛 신사가 마산여고 운동장 끝 쯤이라는 기억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제일여고 교정 안이지만 신사의 위치가 마산여고에서 아주 멀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당시에는 마산여고와 신사 사이에 건물이 없었을테니 학교 끝 부근으로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3. 12409 2012.06.26 17:2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옥기환선생님은 친일행적도 많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독립운동이라는 것은 너무 과장된것 아닌가요?

    옥기환은 일본총독부로부터 조선총독부 25주년 기념관 건립에 헌금을 해서
    일본으로부터 훈장을 받았고 일제때 경찰서에 국방비로 써 달라고 헌금을
    내었던 분입니다.....그 헌금이 만주의 독립군을 토벌하는데 쓰였고 일반인들도 강제로 내게하는 빌미를 제공한것으로 압니다....

    일제때 친일하던분이 해방이 되자마자 친미로 돌아선 대표적인 분 아닌지?
    의구심이 갑니다....

    • 허정도 2012.06.26 21:37 신고 address edit & del

      예,,, 좀 더 자세한 자료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 마산사랑사람 2012.09.05 14:0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교수님 칼럼들 잘 읽어보고 있습니다. 물론 박장관께서는 문(文)·사(史)·철(哲) 출신의 과잉 공급으로 봤겠지요? 인성에는 반드시 문(文)·사(史)·철(哲) 교육이 필요하지요! 말을 좀 더 다듬어서 거꾸로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예향의 도시 마산!"이라고 모두들 글로 말로는 많이 하였는데 그걸 지키고 보존하는 활동이 없습니다. 있다면 산호공원 시비들, 문신미술관, 마산음악관/문학관 등입니다. 예술인들이 남긴 흔적은 별로 찾지 않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아까 신문에 "산장의 여인 시비"를 건립한다고 하던데 많아 아쉽습니다. 주인공이신 두 분이 살아계실 때 했더라면 더욱 빛났을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일제의 잔재라고 옛 것이라고 허물고 부수어 새로 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텐데 말입니다. 항상 숨어 있는 옛 것을 많이 찾아 설명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 허정도 2012.09.06 22:11 신고 address edit & del

      감사합니다. ^^

2012.06.18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4) - 강점제2시기

<마산에 놓인 두 번째 철도>

마산에 최초로 철도가 개통된 것은 개항 6년 후인 1905년이었습니다. 러일전쟁 종전으로 일본이 조선을 본격적으로 집어 삼키기 시작할 즈음이었습니다. 경부선 개통과 같은 해였으며 마산이 종착지라 ‘마산선’이라고도 불렀고 삼랑진에서 마산과 연결된다 해서 ‘삼마선’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마산선은 한국인에 의해 설립된 철도회사를 일본 군부가 러일전쟁을 빌미로 그 사업권을 강제 접수한 다음, 자국의 중요 인력을 동원하여 개통시킨 철도였습니다. 비록 국력이 약해서 강제로 탈취 당한 철도였지만, 이 철도의 개통은 마산의 도시화를 촉진시켰으며 마산을 일본열도와 한반도 내륙을 연결하는 교통요충지로 만들었습니다.

마산선이 개통된 20여년 뒤, 진주 방면으로 연결되는 또 하나의 철도가 놓였습니다. ‘경남선’이라 불린 이 철도는 사설(私設) 조선철도회사에 의해 마산과 진주를 잇는 철도였습니다. 당시 사설철도 건설은 일본 본국의 유휴자본을 식민지에 투자함과 동시에 식민지 기반시설을 확충한다는 두 가지 목적으로 일본 정부가 나서 적극 장려한 정책이었습니다.

1923년 12월 1일 마산과 군북 간을 우선 개통했다가 2년 뒤인 1925년 6월 15일 진주까지 연결되었습니다. 작년 12월 15일 정부가 폐선하기로 결정한 임항선이 바로 이 철도입니다. 1967년 진주-순천 간 80.5㎞가 연결되어 경전선으로 불리면서 경남과 전남을 연결한 철도이기도 합니다.

개통하기까지 곡절이 많았습니다. 1920년 9월 2일자 동아일보에서는 「남선철도공정 연내기공은 도저불능이라는 제목으로, 경남 마산을 기점으로하여 남조선 각지를 연결하는 이 철도가 괴질 때문에 측량이 불가능해 기공이 늦어진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1919년과 1920년에 동아시아 전역을 뒤덮은 콜레라 때문이었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 당시에는 비록 마산에서 진주까지만 연결되었지만 향후 한반도의 중요한 철도노선과 연결시킨다는 계획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 그림은 당시에 제작된 지도인데, 황색표시가 ‘경남선’ 녹색표시가 ‘마산선’입니다. 그 밑의 그림은 현재 위치입니다.

다음은 이 철도가 군북과 개통될 당시 동아일보의 1923년 11월 26일자 기사와 개통 축하회를 알리는 광고입니다. 축하회에는 2원 이상 낸 사람들만 참석할 수 있다고 되어있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경남선은 마산역을 시발로 북마산, 중리, 산인, 함안, 신음, 군북, 원북, 평촌, 반성, 이천, 갈촌, 남문산, 개양 순으로 진주와 연결되었으며 기존의 마산선과 함께 도시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교통축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인근 함안․군북의 농촌 지역이 마산 권역으로 편입되면서 북마산 역 주변인 상남동과 교방동 지역에 역세권이 형성, 도시의 범역이 넓어졌습니다. 철도 건설공사에서 생긴 흙은 같은 시기에 추진되던 마산만 매립공사에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1927년 조선총독부는 철도건설 12개년 계획을 세우면서 운수계통의 정비와 운영의 통일성을 꾀하기 위해 전국의 사설철도를 모두 매입해 국유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계획에 따라 마산 진주 간을 잇던 70㎞의 경남선도 1931년 4월 11일 7,573,477엔의 보상금으로 국철(國鐵)이 되었습니다.

철도의 명칭도 기존의 마산선과 경남선을 합쳐 경전남부선(慶全南部線)으로 개칭했으며 마산선과 경남선의 시발역이던 마산역은 통합 경전남부선의 중심 역으로 변했습니다.

1970년대,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 등에 힘입어 도시지역이 팽창하고 인구가 증가하자 한 때 도시 성장의 상징이었던 두 철도가 오히려 도시 발전을 저해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습니다. 이에 따라 도심을 관통하던 철도를 변경, 외곽지역에서 도시를 경유하는 형태로 바꾸는 공사가 대대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마산역, 구마산역, 북마산역이라는 세역이 없어지고 하나로 통합되어 1977년 12월 16일 현재의 마산역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름 하여 ‘삼역통합’이었습니다.

이 때 1905년부터 마산을 횡단했던 철도 마산선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고 지금은 자동차가 다니는 중앙건선도로로 변했습니다. 경남은행 본점 앞 대로입니다.

그러나 한 때 경남선이라 불렀던 현재의 임항선 철도는 항만과 내륙을 연결하는 산업용 철도로 작년 말까지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용빈도가 낮고 도시중심을 관통하고 있어서 옛 마산시가 이 철로 주변을 그린웨이로 꾸몄는데, 그 사업을 이어 받아 통합창원시에서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15일, 정부의 폐선 발표를 듣고 시민단체는 철도레일을 걷어낸 그린웨이의 큰 그림을 다시 그리자고 요구하였습니다. 창원시는 시민단체의 주장에 동의를 하면서도 그럴 경우 우리 시가 부담해야할 비용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소유는 국가이지만 저 철도부지의 관리는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에서 하는데,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에서 '창원시가 매입하고 싶으면 400억 원을 내고, 임대하려면 연간 4억2천만 원을 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임대는 무기한으로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는 그린웨이의 내용 구상과 함께, 어떻게 하면 400억이라는 거액을 들이지 않고 저 땅을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400억을 받아야겠다는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 도심공원을 위해 땅은 필요하지만 돈 400억이 자신 없는 창원시, 비용을 물지 않고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시민단체,,, 곧 이 문제가 지역사회 의제로 떠오를 것 같은데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오는 22일(금) 오후 4시 합포구청(옛 마산시청)에서 이주영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공동주관으로 이 문제를 주제로 토론회가 계획되어 있기도 합니다. 

아무튼,,,,  지난 80년간 수많은 사람들을 실어 날랐던 저 철로는 겹겹의 흔적을 안고 쇠로 만든 육교와 함께 이 도시가 겪었던 격랑의 시간들을 회상시켜줍니다. 도시 한복판에 말없이 누워있는 저 두 가닥 쇠길 위로, 지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애환들이 오고 갔을지, 오며가며 쳐다 볼 때마다 온갖 생각이 듭니다. <<<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2011/11/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86) - 강점제2시기

2011/12/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7) - 강점제2시기

2011/12/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8)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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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2) - 강점제2시기

2012/01/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3) - 강점제2시기

2012/01/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4) - 강점제2시기

2012/02/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5) - 강점제2시기

2012/02/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6)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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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8) - 강점제2시기

2012/03/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9) - 강점제2시기

2012/03/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0) - 강점제2시기

2012/03/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1) - 강점제2시기

2012/03/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2) - 강점제2시기

2012/04/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3) - 강점제2시기

2012/04/0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4) - 강점제2시기

2012/04/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5)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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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3)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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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8 01:16

도시를 가로지르는 녹색길

전국 곳곳에서 용도폐기되거나 이용빈도가 극히 적은 철도터를 활용해 자연친화적인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있다.
마산역에서 마산항에 이르는 임항선도 '그린웨이'라는 큰 구상하에 다양한 사례와 공모등을 통하여 추진중이다.


기차길의 추억

임항선은 어릴적 추억이 제법 깃든 곳이다.
기차가 지나갈때 레일위에 못 같은 쇠붙이를 올려놓고 납작하게 만들어 놀고, 선로위에 깔린 자갈에 붙어있는 금속을 금가루라며 주워서 오곤했다.
하천이나 도로와 교차하는 고가철도를 지날때는 침목사이로 아래가 훤히보여 양팔을 벌려 균형을 잡고 건너며 담력을 키우기도 했다.
좀 커서는 집이있는 회원동에서 시내인 창동까지 걸어갈 때 신호등이 없어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로 이용하곤 했다. 
요새는 철로의 주인인 기차는 일주일에 한번밖에 이용하지 않고, 그 자리를 주민들이 일군 텃밭과 노점하는 상인들,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차지하고 앉았다.






현재까지 임항선 활용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친환경적 일 것, 산책로로 활용 가능할 것, 역사성을 보존할 것 정도의 공통분모는 제시된것 같다.


다른도시는 어떻게?

마산과 비슷한 조건을 가진 광주의 경우 시민이 직접 폐선부지를 가꾸게 하기위해 지역주민, 사회단체, 전문가들이 모여 2002년 3월에 '푸른길운동본부'를 결성해 계획과 설계는 물론 공원조성까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푸른길을 가꾸어 나가고 있다.

이를 위해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일반 시민들에게 다양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지역주민이 푸른길가꾸기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주민위원회를 구성했다.
 100만그루 헌수운동을 전개하며, 시민활동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지원하도록 조례제정과 푸른길의 녹지공간을 확대하고 주변지역과 연결시키는 녹색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시민들이 푸른길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자원봉사 활동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된다.

이런 고민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가 보다.
얼마전 미국 뉴욕의 옛 철길이 주민들의 산책로로 탈바꿈한 기사가 소개되었다.
주민들은 낡고 오래된 고가철도를 철거하지 않고 새롭게 도시에 활력을 넣어 줄 수 있는 공원과 산책로로 만들기로 했다.
당장 보기싫다고 해서 전체를 걷어내고 개발하기보다 그 자체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유지하며 그 위에 녹색을 입히기로 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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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뉴욕타임즈(이하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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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그러나 천천히

주민의 삶고 밀접하게 연관된 이런 사업은 행정기관에만 맡겨서는 안될 일이다.
가시적 성과를 위해 급하게 진행해야할 일은 더욱 아니다.
뉴욕의 경우 공사에만 4년이 걸렸고, 광주의 경우 폐선부지에서 2002 광주비엔날레 공공예술 '프로젝트4 Connection' 진행을 시작으로 꾸준히 시공과 계획을 이어가고 있다.

주민이 참여하여 만든 녹색길이 숨통이 되어 내고향 마산이 활기넘치는 도시로 거듭나기를 희망해 본다.

2009/06/08 - [도시 이야기] - 하천 옆 카페에서 커피 마실날 올까?

Trackback 0 Comment 14
  1. urbandesign 2009.07.28 11:3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마산 몽고정 위를 지나는 철교가 있습니다.
    밑으로 쌩쌩지나는 차량이 훤~히 보이는 그 위를
    엉기적 엉기적 조심스레 건너는 것이 어릴적 친구들과의 담력시험의 무대이었지요.
    철길은 우리사회 도시의 발전에 있어 '시간'과 '공간'을 극복하게 된 견인역할을 해왔다고 봅니다.
    이제는 문화를 통해 도시에게 내어주는 창조적인 전환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

  2. 신삼호 2009.07.28 14:4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아주 삭막한 철길 사례로는
    마산철길 중에 회원동인가요?
    구.공동탁주 앞에 있는 고가철도는 주변환경을 상당히 황폐화 시킨 사례로 볼수 있지요.

    마산 철로의 역사는 마산선이 1905년 개통되었으니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읍니다. 벌써 100년이 지났군요.
    그럼 지금의 레일이 혹시 100년전 제작된 것인지 확인이라도?

  3. urbandesign 2009.07.28 17:2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참에 마산지역의 철도 현황과 그 구간별 특징 등을
    답사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사진으로 현재를 남기는 것만으로도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


    유창현님. 추진한번 해보세요~
    뜨끈뜨끈한 여름날의 철길답사.
    옛추억이... 이글 거립니다.

    • urbandesign 2009.07.29 21:29 신고 address edit & del

      기왕하는것 광복절로 하지요. ^^
      죄송합니다. 8일이 되는 주말은 선약이 있군요.

  4. 허정도 2009.07.29 08:2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기왕 임항선 이야기가 나왔으니 몇 년 전에 쓴 임항선관련 제 글을 한 편 소개하겠습니다.
    딱딱하고 재미가 별로 없습니다.


    〈경부선과 같은 해 개통된 철도 마산선〉


    1899년 마산은 열강에 의해 개항되었다.
    개항장 마산은 러시아와 일본의 야욕이 노골화 되었던 치욕적인 역사 현장이었다.
    이들 두 제국은, 서로 먼저 대한해협의 군사적 요충지를 확보하기 위해 마산을 무대로 갈등을 빚었다.
    러일전쟁 종전으로 세력 다툼이 끝나자 이 도시의 운명은 일본의 손아귀에 들었다.

    마산에 철도가 처음 개통된 것은 바로 그 즈음, 1905년 5월 25일이었다. 경부선 개통과 같은 해였으며 ‘마산선’이라 불렀다.
    원래 마산선은 1904년 1월에 영남지선철도회사가 착공한 마산포와 삼랑진 간 철도였다.
    영남지선철도회사는 한국정부의 외부참사를 지낸 바 있는 부산 태생의 박기종이 황족인 완순군 이재완을 앞세워 1902년 6월 한국정부 농상공부 대신으로부터 설립 허가를 받은 회사다.
    이처럼 한국인에 의해 설립된 철도회사를 일본 군부가 러일전쟁을 빌미로 그 사업권을 강제 접수한 다음, 자국의 중요 인력을 동원하여 개통시킨 것이다.
    이 때 철도노동자와 함께 일본 창기(娼妓)가 이 도시에 들어왔으며 철도건설에 힘입어 한 때 건설 붐이 일기도 했다.

    개통 직후에는 군용철도로 사용하였으나 같은 해 11월 1일부터 민간인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마산선의 종착역이었던 마산 역은 일본인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하도록 조계지 가까운 곳에 설치하였다.
    그러다가 1910년 7월 5일 한국인들이 모여 살던 마산포 인근, 즉 현재의 상남동에 구(舊)마산 역을 개설하였다.
    구(舊)마산 역의 위치는 현재 중앙로의 6호 광장자리인데 개설 후 67년간 사용하다가 1977년 12월 폐쇄되었다.

    철도의 개통은 마산의 도시화를 촉진시켰으며 일본열도와 한반도 내륙을 연결하는 도시기능도 갖게 하였다.
    마산선의 철도건설공사는 전(全) 5공구로 나누어 일본인들에 의해 시행되었는데 이 과정서 한국인들은 단순노무자로만 참여했다.


    〈진주와 호남까지 연결한 철도 경남선〉


    마산선이 개통된 20년 뒤, 진주 방면으로 연결되는 또 하나의 철도가 놓였다.
    경남선이라 불린 이 철도는 사설(私設) 조선철도회사에 의해 마산과 진주를 잇는 대 공사였다.
    1923년 12월 1일 마산과 군북 간을 우선 개통했다가 2년 뒤인 1925년 6월 15일 진주까지 연결되었다.
    당시 사설철도 건설은 자국의 유휴자본을 식민지에 투자함과 동시에 식민지 기반시설을 확충한다는 두 가지 목적으로 일본 정부가 나서 적극 장려한 정책이었다.

    경남선은 마산 역을 시발역으로 북마산, 중리, 산인, 함안, 군북 순의 역이 있었으며 기존의 마산선과 함께 도시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축이 되었다.
    이로 인해 인근 함안․군북의 농촌 지역이 마산 권역으로 편입되었다.
    또한 북마산 역 주변인 상남동과 교방동 지역에 역세권이 형성, 새로운 상권이 생겼을 뿐 아니라 마산을 호남지방과도 연결시켜 주었다.
    철도 건설공사에서 생긴 흙은 마산만 매립공사에 사용하기도 했다.

    1931년,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철도 정책을 변경, 전국의 사철을 국유로 흡수하면서 70㎞ 경남선도 국철로 변했다.
    철도의 명칭도 기존의 마산선과 경남선을 합쳐 경전남부선(慶全南部線)으로 개칭했으며 마산선과 경남선의 시발역이던 마산역은 통합 경전남부선의 중심 역이 되었다.


    〈요요히 남은 격랑의 흔적 임항선〉


    북마산 역 부근에서 소년시절을 보낸 필자는, 설 추석 전날 진주 방면으로 향하는 기차의 그 기이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마치 안이 꽉 차 밖으로 터져 나온 것처럼 기차문 밖에 고향 가는 사람들이 뒤엉켜 붙어 있었다.
    지붕 위에 올라앉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유난히 흰 옷 입은 사람이 많았는데 기차가 출발하면 어린 내 눈에 마치 거대한 사람덩어리가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가족을 떠나 이 도시로 온 그들에게 북마산 역은 고향으로 통하는 큰 문이었다.

    1970년대,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 등에 힘입어 도시지역이 팽창하고 인구가 증가하자 한 때 도시 성장의 상징이었던 두 철도가 오히려 도시 발전을 저해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이에 따라 도심을 관통하던 철도를 변경, 외곽지역에서 도시를 경유하는 형태로 바꾸는 공사가 대대적으로 시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세 역이 없어지고 하나로 통합되었는데 그 결과가 1977년 12월 16일에 개통된 현재의 마산역이다. 이름 하여 ‘삼역통합’이었다.
    이 때 1905년부터 마산을 횡단했던 철도 마산선은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고 철선은 자동차가 다니는 길로 변했다. 부림동과 합성동을 잇는 중앙간선도로다.

    그러나 한 때 경남선이라 불렀던 현재의 임항선 철도는 항만과 내륙을 연결하는 산업용 철도로 사용한다는 이유로 철거하지 않았다.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던 북마산역도 그 때 사라졌다. 하지만 그 번성했던 흔적은 쇠로 만든 육교와 함께 지금도 남아 근대기 이 도시가 겪었던 격랑의 시간들을 회상케 한다.

    도시 복판에 요요히 누워있는 이 두 가닥 쇠길 위로, 지난 세월 얼마나 많은 애환들이 오고 갔을까.

    • 이윤기 2009.07.29 09:25 신고 address edit & del

      출처를 밝히고...사진과 함께 정식으로 포스팅하시지요

  5. 허정도 2009.07.29 16:3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이 글이?
    괜찮다면 류창현씨가 한 번 올려보던지.......

  6. 허정도 2009.07.29 23:1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옛 사진은 없는데''''''

    • 이윤기 2009.07.30 09:05 신고 address edit & del

      몇년전에 마산Y 시민사업위원회에서 수 차례 걸쳐 임항선을 답사하고 만든 '임항선, 80년 역사의 발자취'라는 책에 사진이 여러장 있습니다. 이 글도 그 책에 실렸었지요.

  7. 이인안 2009.07.30 12:0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그 사진은 저희 회사에 있는데요. 필요하면 드리지요..

  8. 전성환 2009.07.30 13:2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허이사장님. 안녕하세요. 전성환입니다. 도시이야기에 관심있어 서핑하다가 블로그발견했네요. 부지런도 하십니다. 쿠리찌바 글과 여기있는 글들 잘 읽었습니다. 저는 지금 미국 인디아나에 있는데 미국 도시계획에 대한 논문 다썼고 귀국준비하고 있습니다. 위 글에 나온 뉴욕사진은 2005년에 뉴욕설계공모전에 나온 그곳이네요. 저도 그곳 설계사진이 하나있는데 임항선과 같이 폐선부지를 새롭게 만드는데 많은 상상력을 주는 사진입니다. 종종 들러겠습니다. 건강하시고요. 한국들어가서 연락드리겠습니다.

    • 허정도 2009.07.30 15:31 신고 address edit & del

      아이구,, 이게 누구신가?
      전 실장 아니요.
      근데 왜 전 실장이 도시계획에 대한 논문을??
      나는 동명이인인 후배인가 해서 한 동안 얼떨떨 했어요.
      아무튼 반갑습니다.
      건강하시죠?
      공부 실컷하고 귀국 하세요.
      마산오시면 도다리 한 접시는 내가 책임질께요.
      보고 싶네요.

    • 이윤기 2009.07.30 16:57 신고 address edit & del

      남의 시간은 내 시간 보다 더 빨리 지나가네요.

      벌써 귀국인가요?

      한국은 대통령 잘못 뽑아 반대할 일, 싸울 일 지천입니다. 얼렁오세요.

  9. 전성환 2009.08.02 13:4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도다리만 사주실건가요? 소주는요??
    뭐 도시계획에 대한 거창한 논문은 아니고요. 공간을 둘러싼 시민의 이해를 높이기위한 활동이 한국시민운동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축을 전공한건아니지만 건축에 관심이 많고요. 이윤기 간사님 지리산도보여행 잘하시고 한국가면 뵙시다.
    차총장님께도 안부전해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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