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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2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131. 자복포의 매수 각축

 

131. 자복포(滋福浦)의 매수 각축

 

 

조선정부와 영·(·, 18831126일 체결), 아국(俄國, 18847/ 원문에는 18851024일 체결), 의국(義國, / 해방 후 미국을 의국이라 칭하기도 했다. 미국과의 조미수호조약은 18825월에 체결되었다-옮긴 이 / 본문에는 1886년 체결 ), 불국(佛國, 18866월에 체결 / 본문에는 1887530일 체결) 사이에 체결된 영····(····) 조약 제44절을 보면

 

여모인욕행영조혹잠조지단임구방옥(如某人欲行永租或暫租地段賃購房屋) 재조계이외자(在租界以外者) 청유상생조계불득(聽惟相牲租界不得) 유십리조선리(逾十里朝鮮里) 이조차항지단지인(而租此項地段之人) 어거주(於居住) 납세각사(納稅各事) 응행일율준수조선국(應行一律遵守朝鮮國) 자정지방세과장정(自定地方稅課章程)이라하여

 

마산포 개항 때에는 이미 외국인이 조계지 외에 10리 이내의 토지를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조선 정부로부터 승인받고 있었으므로 마산포에 있어서의 열강 특히 노·일의 각국 공동조계 외에 있어서의 토지 매수를 둘러싼 각축과 대립은 실로 치열하였다.

 

여기서는 먼저 마산포에서 가장 치열하였던 자복포(滋福浦) 토지 매수를 둘러싼 일·노의 대립과 그 각축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마산포가 개항되던 해 즉 1899625일에 가등(加藤) () 조선일본공사가 사임하고 새로인 임권조(林權助)가 주()조선일본공사로 부임했다.

 

1899118일에는 주 조선노국공사 마튜니네(M. Matunine)가 전임하고 파브로프 조약의 체결자로서 북경 외교계에서 민활한 활동으로 이름을 날려 일본의 조야(朝野)를 놀라게 한 바 있는 북경 주재 노국대리공사 파브로프(Pavloff)가 새로이 주 조선공사로 임명되어 조선을 둘러싼 노·일 관계는 보다 심상치 않은 징조를 예감케 하였다.

 

괴수완자(怪手腕者) 파브로프는 부임하자마자 수완을 발휘하여 329일 조선 정부로부터 노국인 백작(Keizeling)에게 함경·강원·경상도 33개 처의 포경권 및 포경 근거지를 얻게 하였고, 또 노국이 동진정책 수행 상 일본을 견제하고 여순항과 우라디보스톡(Uladivostok)이 해상 연락을 완전히 하기 위해 마산포 요지를 조차, 이를 군항으로 삼고자 하였다.

 

이리하여 189955(326) 주한 조선노국대리공사 파브로프는 만츄리아(Manchuria)호 외 2()을 거느리고 위세당당하게 인천으로부터 마산포에 내항 투묘(投錨)하였다.

 

이때 노국 측이 그들의 요지로 착안한 곳이 바로 자복포 일대였다.

 

 57(328) 이들은 군함으로부터 구문(歐文)으로 노국지계(露國之界)’라고 흑흔선명(黑痕鮮明)하게 쓴 봉항(棒抗, 원문에는 표본) 500본을 양륙(揚陸)하여 마산산맥의 하나인 자복봉으로부터 해안에 걸친 약 30여 만 평의 광대한 토지 주위에 표본을 박고, 뒤이어 동형동문자(同型同文字)의 석표(石標) 500본을 다시 양륙하여 합계 1,000본의 경계표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정연하게 박아 세워 위와(본문에는 '다음과') 같이 표지를 하였다.

 

이때 이에 대한 감리의 보고를 보면 다음과 같다.

 

본군(本郡) 마산포구(馬山浦口) 개설항(開設港) 시차(市次)로 해관기지(海關基地) 및 각국(各國) 조계택정록유(租界擇定綠由)는 전기치보(前己馳報)하였거니와 음() 326일에 군수(郡守)가 이상(以上) 납결가구별차(納結價區別次)로 출왕간동래시찰소(出往干東來視察所)이옵더니 아국선함래국본포(俄國船艦來國本浦)하야 각국조계택정지외(各國租界擇定地外) 본군접계수리허(本郡接界數里許) 칠원군자복포(漆原郡滋福浦)에 택기기지입표이생(宅其基地立標以生)이다. ()로 군수환읍후잉왕궁심칙(郡守還邑後仍往躬審則) 정지입표(定址立標)가 과위적실(果爲的實) 이사조(而事條) 신중유난천(愼重有難擅)이옵기로 자()에 보고(報告)하오니 사조(査照)하심을 망().)

광무(光武) 3527<<<

 

 

<러시아가 가포 일대에 세웠던 표간의 위치와 형태 / 미의회 도서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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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1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6) - 개항이후


<육군중포병대대 연병장 매립 (옛 한국철강 터)>


1909년 일본 육군중포병대대가 월영동(구 국군통합병원자리, 현 월영동 아파트 단지)으로 오면서 진입 도로 일부와 대대가 끼고 있던 자복포 일부를 매립하여 연병장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창원으로 떠난 한국철강 터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철강 터 중 안쪽(월영동 아파트 단지 쪽)입니다.

아래 그림은 1912-1914년 경에 제작된 지도입니다.
중앙하부에 직선으로 그려 놓은 기역자 형 토지 내 ‘연병장(練兵場, 둥근 점)’이라고 적혀 있는 곳이 매립지입니다.
이 자리에 부대가 들어선 것이 1909년이고, 주위에 연병장 둘만한 곳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부대 이전 직후 간석지를 매립해 연병장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진입도로 쪽 일부(사각 점)도 매립한 흔적을 알 수 있습니다.


1899년 제작된 매립 전 지도를 보면 비교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매립공사는 일본군부에서 시행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절차와 과정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엇습니다.
다만 부대 이전 후 달라진 해안선 형태를 지도로 확인하여 추정했을 뿐입니다.

면적은 진입도로 쪽 약 4천 5백여 평, 자복포에 있는 연병장이 약 2만여 평(매립부분과 평토작업부분 포함) 정도 되었습니다.

위 지도에 나타난 부분의 현재 상황입니다.
노란색으로 그은 부분이 매립과 평토처리한 것으로 추정되는 구역입니다.



<옛 고려모직 (현 오동동 서광아파트) 부근 매립>

1912년 토지조사 이전의 시기, 간석지였던 옛 고려모직(현 오동동 서광 아파트 ) 부근에 일본인이 토지로 사용하기 위해 매립을 했던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 범위가 어디까지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지적도의 형태를 보아 오동동 16번지와 17번지였던 것 같았습니다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사정토지대장에 나타나는 기록을 보면, 이 토지는 1912년 사정(査定)되었는데 오동동 17번지의 1,139평은 일본인 ○동행조(○銅幸朝), 오동동 16번지의 235평은 한국인 윤군옥이었습니다. 지도를 이용하여 추정한 매립면적은 약 2천 4백여 평이었습니다.

중간에 소유권이 바뀌었다가 1939년 조선물산주식회사로 소유권이 이전되었다가 해방 후 고려모직(주) 소유가 된 땅입니다.

100년이 지난 오늘까지 마산도시의 갈등요인인 매립은 시작부터 주민 의사와 상관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개항이후시기(1899년-1910년) 마산에서 있었던 네 차례의 매립공사와 계획으로만 그친 다섯 차례 매립에 대한 포스팅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2010/10/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6) - 개항이후
2010/10/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7) - 개항이후
2010/10/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8) - 개항이후
2010/10/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9) - 개항이후
2010/11/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0) - 개항이후
2010/11/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1) - 개항이후
2010/11/1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2) - 개항이후
2010/11/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3) - 개항이후
2010/11/2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4) - 개항이후
2010/12/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5) - 개항이후
2010/12/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6) - 개항이후
2010/12/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7) - 개항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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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yday loans UK 2011.10.30 23:5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정말 유익한 블로그! ^ ^

2010.12.27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8) - 개항이후

<자복포에서 펼친 일본의 야욕>

-한국마산포 대일본제국 전관거류지 평면도-
1902년 5월 / 일본정부 / 한일양국정부 / 막대축척 / 마산포일본전관거류지협정서 / 규장각



마산의 일본전관거류지가 확정된 후 그 협정서에 첨부된 지도입니다.
자복포, 즉 구 한국철강 주변 일대가 상세하게 측량하여 표시되어 있습니다.

35회에 포스팅한 일본의 육군중포병대대(현재의 월영동 아파트 단지, 구 국군통합병원)가 옮겨오기 전의 자복포 일대를 세밀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입니다.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자복포의 해안선이 상세히 나와 있을 뿐아니라, 범례를 만들어 도로, 가옥, 구거, 묘지 등까지 잘 표시되어 있어서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월영리에서 율구미로 이어지는 옛길도 세밀하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토지의 소유도 러시아인소유지, 일본정부소유지, 일본인 박간방태랑(迫間房太郞) 소유지, 한국인소유지로 구분해 놓았으며 면적표까지 만들어 도로 및 구거의 면적 외에 토지 소유자별 면적까지 평방미터와 평방평 단위로 기재해 놓았습니다.

이 지도만 보아도 당시 일본이 러시아를 견제하고 마산을 집어 삼키기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우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도 왼쪽 아래에는 창원감리 한창수와 일본영사 판전중차랑(坂田重次郞)의 인장이 있습니다.

이 지도의 표지글입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자복포 부근의 원래의 모습입니다.
이 지도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가 다시 살려야 할 것은 없을까요?
잃어버린 우리 모습의 한조각이라도 다시 찾을 수 있는 도구로 이 지도를 사용할 수는 없을까요?

위 지도의 현재 모습이 아래 그림입니다.
붉은 점이 동일한 지점입니다.<<<





2010/10/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6) - 개항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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