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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5 00:00

한국100명산 10. : 조계산. '태백산맥'의 배경지

♪ 100명산을 시작한지 만 1년만에 10번째 산행을 하게되었습니다. 이번 원정지는 전남 순천에 있는 조계산입니다. 조계산 정상 장군봉을 기점으로 좌우에 송광사와 조계사가 위치하여 횡단하는 코스는 두 사찰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 조계산입니다. 그리고 태백산맥으로 너무나 유명한 조정래 선생님이 태어난 곳이 조계산 선암사입니다. 그의 대하소설 '태백산맥'과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조계산은 소설 '태백산맥'의 중요무대의 배경이 된 곳입니다. 한국동란 이후 빨치산의 총사령부가 있었던 지리산으로부터 확산된 전남 서부지역과 연결되는 통로로서 조계산이 당시 빨치산의 거점이며 통로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계산은 우리민족의 아픈역사가 남아있는 산이기도 합니다. 

♬ 5월 3일 토요일 아침 7시 30분에 315아트문화센터 주차장에 집결하였습니다. 오늘도 열외1명 없이 6명 모두가 함께 하게되었습니다. 아침은 섬진강 휴게소에서 우동과 준비한 충무김밥으로 가볍게 해결했습니다. 연휴를 이용하여 봄을 만나러 떠나는 사람들이 흥겨움이 휴게소 마당을 부산스럽게 하는 것 같습니다. 순천은 작년에 순천만 조성된 생태공원 박람회를 통해 생태도시로의 이미지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인접한 여수의 엑스포 박람회와 더불어 새로운 생태관광코스로 거듭나는 것 같았습니다.

선암사에서 장군봉까지 : 선암사에서 장군봉까지는 약 2.7키로미터로 1시간 30분 정도 소요시간을 예상하고 10시 20분에 출발하였습니다. - 주차장에서 선암사까지는 1키로미터 정도입니다. 사부작히 걷기 좋은 길입니다.

- 선암사가는 중간쯤에 돌기둥 2개가 좌우에 서있습니다. 일종의 문주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측은 조계산 선암사라는 글귀가, 좌측은 禪敎兩宗大本山이 적혀있습니다.

 - 얼마지 않아 유명한 승선교가 보입니다. 반원아치의 돌다리로 유명한 곳이죠, 우리일행은 일부러 하천가로 내려가서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 승선교 뒤로 보이는 누각(강선루)가 살짝 보이는 것이 백미인데 주변의 녹음이 울창하여 누각의 다리부분만 살짝 보여서 아쉽게도 그림에서 보던 장면을 촬영할 수 없었습니다. 얘가 보물로 지정되었어 있다고합니다. - 단체사진 한팡

강선루(降仙樓)입니다. 이름을 풀이하자면 이 누각으로 신선이 내려왔다가, 昇仙橋를 통해 신선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일주문에 앞서 이러한 누각이 설치된 것은 특별한 경우인 것 같습니다. 보고 싶은 선암사는 하산길에보기로 하고, 장군봉을 향하였습니다. 출발과 함께 시작된 경사도는 도대체가 쉴틈을 주지않고 연거푸 경사면으로 이어졌습니다. 

- 12시 35분에 장군봉에 도착했습니다. 2시간하고도 15분이 지났습니다. 얼추 2시간 이상을 걸었습니다. 우리 학봉대원들 체력이 예전만 못한 것 같습니다. 1시간 반 거리를 2시간 이상이나 걸리다니!!!

- 일단 기념사진 촬칼, 정상이라고 하기에 너무 협소하였습니다.

- 오늘 점심은 능선변에 있는 보리밥집에서 먹기로 하였습니다. 각자 가져온 간식 메뉴가 다양합니다. 충무깁밥, 쑥떡,  야관문주, 그리고 보급품 한봉다리가 끝내줍니다. 보시겠습니까? 놀라지 마십시오

- 이 간식은 학봉산악회 보급대장님 하사품입니다. 간식이 아니라 낙오시 하루정도 버틸 수 있는 비상식량이 될 정도입니다. 

그 유명한 보리밥집입니다. 조계산 가는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보리밥집입니다. 등산로 이정표에 기재될 정도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집입니다.

- 보리밥집 전경입니다. 원조라고 합니다. 즉 한군데가 옆에 새로 생긴모양입니다. 맛이비슷하겠지만 원조라는 집에 들렀습니다. 노란깃발을 보고 찾아갔습니다.

 - 막걸리 한사발에 보리밥에 온갖 나물들, 그리고 비빈 보리밥을 상추에 얹어서 된장 쓱싹하여 먹는 맛이 일품입니다.

선암사 경내를 둘러보았습니다.

《선암사사적기()》에 따르면 542년(진흥왕 3) 아도()가 비로암()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875년(헌강왕 5)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신선이 내린 바위라 하여 선암사라고도 한다. 고려 선종 때 대각국사 의천()이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 거의 폐사로 방치된 것을 1660년(현종 1)에 중창하였고, 영조() 때의 화재로 폐사된 것을 1824년(순조 24) 해붕()이 다시 중창하였다.
6·25전쟁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20여 동의 당우()만이 남아 있지만 그전에는 불각() 9동, 요() 25동, 누문() 31동으로 도합 65동의 대가람이었다. 특히 이 절은 선종()·교종() 양파의 대표적 가람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와 쌍벽을 이루었던 수련도량()으로 유명하다.
주요문화재로는 보물 제395호인 삼층석탑 2기가 있으며, 대웅전은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어 있다. (heen8659님의 블로그에서 인용)

- 일주문입니다. 기둥 사이가 1칸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가운데 공포가 여럿히 설치된 다포식 처마장식입니다. 처마는 공포와 서까레가 2단으로 형성된 겹처마 입니다. 왜이렇게 화려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범종각입니다. 종을 보호하는 건물입니다. 정면 측면 3칸씩입니다. 처마장식은 기둥위 간단하게 익공으로 처리하였습니다.

- 대웅전 전경입니다. 대웅전 다운 위용입니다. 현재 보수공사중입니다. 처마에 단청을 칠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기존의 서까레와 노후화한 부재를 갈아 끼워진 상태입니다. 목부재가 어느 정도 건조가 되면 단청을 하게 될 것입니다.

- 대웅전 앞 삼층석탑입니다. 신라시대 9세기경에 지어진 탑으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불국사 석다탑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 대웅전 옆의 요사채입니다. 요사채의 지붕개량공사는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절집에서 보기좋은 느낌의 색상은 목재면에 바래진 수채화빛 색상입니다.

- 대웅전 경내전경입니다. 삼층석탑을 위시하하는 듯한 연등의 행렬이 보기 좋습니다.

- 요사채의 고무신 : 가지런한 고무신과 색이 바란 목재문살, 누런 서까레가 황토벽면색을 닮아가는듯 합니다.

- 담장너머 처마선 : 얕은 담장은 고래등 같은 지붕선과 처마선을 살포시 받아줍니다.

  

- 문살의비례 : 요사채 전경입니다. 정연한 기둥사이내에 창호의 크기에 따라 나뉘어진 가로 선과 세로선의  비례가 아름답습니다. 

- 문꼴로 봐서 창고인 듯 합니다. : 창고의 품위! 

 - 장경고입니다. 불교경전을 보관하는 도서관이죠, 건물 기능에 비해 장식이 과다한 것 같습니다.  

 - 선암사 경내가 아름다운 이유 : 건물주변 공간을 구획하는 담장에 의해 외부 공간을 풍요롭게 하는 것 같습니다.

- 한국불교 태고종의 업무를 보는 종정원 : 나무 옹이와 못자욱 마처 아릅답게 보입니다. 

- Y 디자인의 결정체 : 석재 함지박에 물을 길는 두가닥 물줄기와 물족자를 보관하는 지붕을 이고 있는 새총모양의 나무기둥 

- 화장실의 위용 : 이처럼 럭셔리한 화장실이 있을까?, 그래서 이름도 뒤깐입니다. 출입구 박공면의 위용이 엄청납니다.  현재 지붕 공사중입니다.

- 선암사는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선암사 관람평은 무척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건물이 제각각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지어진 시기나, 건물의 용도가 다르니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완만한 경사지를 잘 이용한 부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형의 높이차에 따라 건물과 담장 그리고 조경에 의해 외부공간을 잘 분리하였습니다. 전체가 다 보이지 않고 필요한 부분, 예를 들면 지붕의 처마선만 살짝 보면서 경내를 회유하게 됩니다. 보일듯 말듯한 공간을 돌아다니면 건물의 특정부분들이 그림처럼 다가옵니다. 어떤 곳에서는 처마의 서까레 부분이 어떤 곳에서는 담장의 쌓여진 돌들의 조합에 의한 비례가, 또 어떤 곳에서는 500년된 매화가 하나의 주인공처럼 등장하게 됩니다. 이상으로 학봉산악회 열번째 등반보고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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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5.15 17:20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014.04.03 00:00

한국100명산 9. : 태백산. 민족의 영산

갑오년 시작을 알리는 시산제가 지난 1월초 에 있었습니다. 무학산 고운대(일명 학봉)에서 수육과 과일을 포함한 주한상을 차려놓고 정갈하게 산신제를 지냈었습니다. 그 때에  민족의 영산 태백산을 올해의 첫 원정지로 하자고 결정하였습니다. 그래서 2월에 첫 등정을 하자고 꿀떡같이 약속을 했건만, 막상 2월에 영동지역의 폭설로 인해 이동자체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어 결국 춘분인  3월 22일에서야  태백산을 탐방하게 되었습니다.- 제단 외부모습

♬ 마산에서 태백까지 : 아침 6시반에 양덕동 메트로모델하우스앞에서 집결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6시 15분쯤 케이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아마 최초의 약속시간인 6시로 착각한 듯 합니다. 제가 '6시 반'이라고 알린 메모가 헷갈렸던 모양입니다. 담부터 정확하게 '6시 30분'이라고 정확히 전달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약속시간에 한분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서님이 늦는다고 합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핑계를 됩니다. 1시간 일찍 알람을 해놓고 일어났는데, 머시기 거시기 해서 늦었다는 겁니다. 암튼 처이가 얘를 낳아도 할말이 있다는데 뭔 핑계를 못되겠습니까. 하여 예정보다 15분 늦게 6시 45분에 마산을 출발하였습니다. 일단 아침은 현풍휴게소에서 우동 한그릇으로 해결하였습니다. 모닝커피 블랙 두잔 뽑아들고 다시 태백으로 향하였습니다. 영주까지는 고속도로 주행이라 잘 나가다가, 국도에서부터는 산길을 꼬부랑 고갯길의 연속인 상태라 당체 속도가 나지 않았습니다. 해발600고지대의 산골마을을 돌고 돌아 태백하고도 당골에 도착했습니다. 출발 4시간 15분 만이 오전 11시에 도착을 했습니다. 평소 볼기회가 없던 눈이 지천에 널려있는 눈풍경에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그것도 잠시 점심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당초 가려고 했던 식당은 오늘 영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태백산은 2월까지 피크이고, 3월의 태백산은 파시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인근 식당가는 몇집만 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집을 골라 주인장이 추천하는 '드레로 비빕밤'을 주문하였습니다. 밥보다 나물이 많을 정도로 푸짐하였습니다. 옛날에는 쌀이 귀하여 나물이 쌀대용으로 먹었다는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암튼 담백한 곤드레 나물에 두부와 콩이 자작한 된장을 비벼 먹는 곤드레비빔밥은 별미였습니다.

당골광장에서 천제단까지 :  당골광장 중간에 성황당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산신령을 모시는 사당인데, 단종이 태백산 산신령으로 모시는 곳이 여러곳 있다고 하는데 이곳도 관련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문이 닫혀서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주변고목을 봐서는 제법 된곳인것 같습니다.- 출발선상에서 기념샷, 역광정도는 무시하기로''''

- 정확히12시에 당골광장을 출발하였습니다.

당군성전 ; 출발지에서 얼마 걷지않자 당군성전이 있었습니다. 아마 정상부에 해당하는 천재단과 관계있는 것 같았습니다. 일단 들러보았습니다.- 성전 앞 솟슬대문 전경 : 배면의 올 곧은 나무가 건물의 후광처럼 보입니다.- 솟을대문에서 본 성전 : 2개의 단을 두어 위계성을 높인 것 같습니다.

- 처마장식은 익공식으로 간결하게 - 전면에 내진주 공간을 두어 완충 역할를 하게 합니다.

- 내부에 모셔진 국조할어버지 초상 - 외부에 있는 국조할아버지, 소주가?

♣ 반재 가는길 ; 반재는 당골에서 천재단까지 가는 중간쯤에 해당되는 고개마루입니다.반재까지는 1시간 남짓 소요된 것 같습니다.- 등산로 초입부 : 적당한 폭에 걷기 좋은 정도의 푹신함을 가진 등반로- 설경 : 돌에도 나무에도 천지가 눈천지 입니다.- 자작나무 : 수피가 하얀 자작나무는 가로결로 껍질이 얕게 잘 벗겨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껍질을 불에 태우면 자작하는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진짜일까?

반재고개에서 ; 반재고개는 백단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합류지점이라 많은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입니다. 사람도, 바람도 모두가 쉬는 곳 같습니다. 뜻하지 않게 쪼맨한 산새가 반겨줍니다. - 정면을 응시하는 포즈 : 크기는 어른 엄지손가락 정도로 작은새입니다.- 꺽기 나무 : 갑자기 수평으로 뻐친 가지에서 다시 직각으로 접힌 수형입니다.

♣ 망경사(望景寺) :  정상에 못미쳐 망경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이 절은 신라 진편왕 6년(584년)에 정암사에서 수도하던 자장율사가 산봉우리에 문수보살이 돌부처가 되어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창건했다는 망경대가 지금의 망경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망경사 배치 : 횡으로 삼신각, 대웅전, 요사채 순으로- 망경사에서 바라본 태백산 능선 전경

- 용정암 : 용정과 관계있는듯 - 야누스가 된 부처님 :눈이 유죄!!!
- 단체 인증샷 : 눈빨 받네요.

♣ 단종비각  망경사에서 5분정도 올라가면 천제단 바로 아래에 단종비각이 있습니다. 지금의 비각은 1955년 바로 밑에 있는 망경사 주지 박묵암스님이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단종비각은 1457년 영월에서 승하한 단종을 태백산 산신령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매년 9월 3일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 비각은 비문 보호가 목적인데, 밖에서 못보게 하여 문틈으로 겨우본 모습입니다. - 단청이 화려한 비각의 모습, 단군성전과 대조적인 모습

- 비각 문살에 설치된 떡살 문늬 - 무궁화문양이 당초문양과는 거리감이 있는 것 같네요

♣ 천제단 : 정상에 정확하게 2시 23분에 도착했습니다.  정상의 천제단은 매년 개천절에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또한 일반사람들도 년초에 소원을 비는 곳으로 잘알려져 있읍니다.-천제단 : 높이 2.4에 지름 8미터 정도의 제단- 정상인증 기념샷 : 기분도 상쾌하게'''

- 제단 외부모습 - 내부에 설치된 한배검 비석?
- 천제단에서 바라본 장군봉- 장군봉에서 문수봉을 바라봄- 주목의 모습 : 바람, 눈, 햇살이 빚어낸 작품

♣ 장군봉 : 천제단에서 5분정도 거리에 있는 장군봉은 높이상으로 최고지점이라고 합니다.장군봉에서 정상주를 한잔씩하였습니다. 서님께서 가져온 프랑스 수도원에서 만든 55도 술을 한잔씩 했습니다. 속의 열기와 외기의 냉기과 교차하여 짜릿하였습니다.미각과 후각과 촉각의 삼요소를 원하여 축하주를 즐겼습니다.- 최고지점 장군봉에서 다시 인증샷!- 장군단 모습 : 내부에 비석같은 3개의 돌이 있습니다.

♣ 하산은 문수봉으로 : 하산이 빠르기는 유일사방향으로 가면 1시간 반도 걸리지 않는 코스가 있고, 설경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능선을 타고 문수봉으로 가는 코스가 1시간 이상이걸리는 코스입니다. 코스를 선택하는데 약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죽기전에 태백산 다시 올수 있겠나! 라는 결기가 모아져 시간이 더걸리는 문수봉으로 하산하기로 하였습니다.- 문수봉으로 향하는 눈길 : 눈! 원없이 밟게되었습니다.- 문수봉가는 길에서 만난 주목 : 하단는 상록수가 상단은 죽은지 제법 됐을 것 같은 고사목이 하나의 뿌리로 버티고 있습니다. 죽어도 죽지 않은 나무 주목입니다.- 주목앞 인증샷 :

♣ 문수봉에서 : 예상외로 완만한 코스덕분인지 1시간만에 문수봉에 도착했습니다. 비상식량으로 체력을 회복하고 쭉 내리막길을 하산코스를 향하였습니다.- 문수봉 도착 : 장군봉에서 출발한지 1시간만에 문수봉 도착,- 하강스로프 같은 하산길- 석탄박물관도착 : 5시15분경에 하산 완료, 오늘도 아군피해 없이 임무완료 

♣ 저녁은 태백시내에서 : 저녁은 태백에서 가장 맛있다는 '태백닭갈비'로 사전에 결정하였습니다. 하산후에 뭔들 맛있지 않겠습니까!  반주는 포루투칼에서 공수하여온 '포르토와인'을 곁들였습니다. 크 역시 등산은 이맛이야!

- 닭고기 +쑥갓+떡뽁이+쫄면사리+ 육수+ 고추장 푹 삶기(15분정도) - 먹는순서, 사리 - 쑥갓 - 떡뽁이 - 닭고기 - 국물 순서로 - 국물에다가 밥 그리고 김 뿌시레기, 그리고 나서 살짝 눌린뒤 먹기

♣ 마산으로 가는길: 식사후 6시 50분에 출발했습니다. 못해도 4시간 정도롤 달려야 마산에 도착될 것 같습니다. 운전은 교대로 하고, 누군가가 잠들면 안전운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전부 잠들거나 졸기 없기'로 하고 마산으로 행했습니다. 그냥 괜찮은 음악을 틀면 될 줄 았았는데 그래도 조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다시 생각한 것이 돌아가면서 노래부르기를 하였습니다. 노래는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여 차량 오디오에 연결하여 신나게 부를 수 있었습니다. 관광버스 노래방 분위기로 전환되었습니다. 얼마지 않아서 또다른 제안이 나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부르기'로 하자는^^ . 임주리의 '가버린 사람', 팝송의 '더 세디스트 싱, 박인수의 '봄비', 불효자는 웁니다. 등등 돌아가면서 목청을 한껏 돋우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듯 마산에 도착했습니다. 도착시간은  10시40분이었습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저녁 11시에 귀가하기까지 장장 17시간동안, 최근들어 바쁜 토요일을 보낸것 같습니다. 육신의 피곤함과 뿌듯한 마음이 교차합니다. 낼은 늦잠을 자야할 것 같습니다. 모두들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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