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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31 00:00

고지도로 보는 창원 18. - 웅천현 地乘地圖

▮ 고지도로 보는 창원18. - 웅천현 地乘地圖

 

熊川縣 지승지도(奎15423)/ 필사본(방안식)

 

- 지도 개요 : 지승은 군사요지인 일부의 관방처와 전국의 군현을 총 6책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식 지도책으로 각 책의 크기는 세로*가로가 27.0*19.0cm이다.

1책에는 경기도, 2책에는 충청도, 3책에는 경상도, 4책에는 전라도, 5책에는 평안도와 황해도, 6책에는 함경도와 강원도가 수록되어 있다.

지도의 전반적인 구도와 내용은 해동지도, 광여도, 여지도와 거의 비슷하여 동일 필사본 계통으로 분류할 수 있다. 지도제작 시기는 빨라도 1776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읍치를 중심으로 邑內面, 東面, 上西面과 下西面 4개면이 나타나 있다. 웅읍면은 현재 웅천동 일대 읍성이 있었던 일대이며, 동면은 웅동. 두동 및 용원일대를 포함하고 있다. 읍성을 기준으로 서쪽방향의 상서면과 하서면은 여좌천을 기준으로 좌측 부분을 하서면 우측면을 상서면으로 구분하였다.

지도의 구성은 중심이 되는 읍성을 지도 중심에 크게 배치하고, 주변에 산세, 물길, 도로망을 표현하고 있다.

 

자연지리 조건을 살펴보면

북쪽방향 창원부 경계면에 長福山(창원부 지도에는 長白山으로 표기됨)으로 구분되며, 장복산에 연이어 웅암산과 망운산, 가리산이 동서방향으로 이어져 있다.

동측 김해부 경계면 남북 방향으로 율현, 안봉, 아래로 궁현, 지현이 가덕도로 연결되어 있다.

읍성 남측으로 內南山과 外南山이 겹쳐진 형태로 읍성의 방어막을 형성하고 있다.

저수지로서 蔬谷堤와 注伊堤 및 獨店堤가 있으며, 성흥사 아래에 용추정이 있다.

 

읍성의 배치를 살펴보면

동서남북 방향으로 사대문이 설치되고, 건물로는 중앙에 衙舍가 4동, 客舍 1동, 倉가 1동이 있으며, 중앙부분에 누각이 1동 하단에 (監)獄과 1동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읍성 주변 건물로는 읍성 북측에 향교가 있으며, 남측에 보평역이 있다. 창원 가는 길목에 안민역이 있다.

해안변에 서창, 현선소, 제선소가 있으며, 가덕도에는 3개소에 선소가 있다.

사찰은 망운산 아래에 광석암, 가리산 아래 성흥사가 있다.

봉수는 가덕도에 2개소, 사화랑 봉대, 및 고산봉대 합계 4개소에 설치되어 있다.

 

주요 도로망을 살펴 보면

외방도로로 북측방향은 안민령과 마야현을 넘어 창원으로 가는 2갈레 길이 있다. 동측으로는 지현과 궁현을 지나 김해로 가는 길이 있다.

내방도로로 읍성 남문에서 나온 길은 제포진이 있는 해안로를 따라 천자봉 공원묘원 앞을 지나서 중면에 해당하는 풍호동에 이르는 길이다.

서문에서 나온 길은 注伊堤(지금의 서중 소류지)를 끼고 小峴(천자봉 만남의 광장)을 넘어 중면에 이르는 길이다.

동문에서 나온 길은 裵應峴 고개를 넘어 동면(지금의 웅동)에 이르며 다시 하천(지금의 대장천)을 지나 지금의 두동을 거쳐 용원지구로 넘어가는 길이다.

 

웅천현 내의 물길(하천)을 살펴보면

크게 읍성 우측면의 하천은 현재 하천명은 동천으로 상류에 북부 소류지가 있다.

동면의 하천은 현재 웅동일대에 흐르는 하천으로, 성흥사에서 내려오는 대장천 중간에 소사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소사천과 합류하여 흐르고 있다.

중면의 하천은 자은동에서 내려오는 자은천과 신이천으로 볼 수 있다.

상서면에 남북으로 흐르는 하천은 여좌천으로 판단된다.

 

주요 군사시설을 살펴보면

웅천현의 지형적 조건은 전형적인 배산임해 지형으로 볼 수 있다. 북쪽방향 창원부 경계면에 長福山에 연이어 웅암산과 망운산, 가리산이 동서방향으로 이어져 있는 지형이며, 중간 부분에 지금의 산지명으로 보면, 웅산에서 시루봉으로 다시 천자봉으로 연결되는 남북방향의 산세가 마산만을 향해 남북방향으로 가로지르는 형국이다.

이러한 지형적 여건에 의해 군사시설에 해당하는 鎭堡(陳)가 설치되었다.

가장 남덕에 위치한 가덕도에 天城鎭과 2개의 선소와 2개의 봉대가 설치되었으며, 안골포에는 安骨鎭과 新門陳, 晴川陳 그리고 加德津舍와 船所가 설치되었다.

읍성 남측에는 제포진과 2개의 선착장 (縣船所, 薺(浦)船所)과 사화랑 봉대가 있다.

내만인 하서면 일대에는 豐德領(鎭)과 西倉 그리고 高山烽臺가 설치되어 있다.

 

지승지도에 포함된 내용을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명 칭

행정

면.리

읍내면, 동면, 상서면, 하서면

4

자연지리

산천, 고개

장복산, 망운산, 웅암산, 가리산, 屛山, 내남산, 외남산

馬也峴, 소현, 拘峴, 裵應峴, 旨峴, 弓峴,

13

堤堰

蔬谷堤, 獨店堤, 注伊堤, 龍湫井

4

島嶼, 나루터

거제도, 拘島, 대고장도, 대죽도, 대하도, 마도, 목도, 백산도, 부도, 서도, 소고장도, 소죽도, 소하도, 속고리도, 송도, 수도, 신도, 연도, 우율도, 웅도, 음지도, 이슬도, 전모도, 죽도, 지대도, 표도, 흑산도

孫渡津,

28

인문지리

읍성

아사4동, 객사, 倉, 옥, 누각, 4대문

12

교육

향교

1

사찰

廣石庵, 聖興寺

2

鎭堡

풍덕령(진), 제포진, 천성보, 안골진, 신문진, 청천진

6

역원, 烽燧

보평역, 안민역

사화랑연대, 고산봉대, (가덕) 봉대 2개

6

고적

강선대, 왜성, 천수대, 未串望,

4

기타

서창, 현선소, 제선소, 선소 3, 가덕진사,

7

 

전체 지도의 구성의 특징은 타 지도에 비해 부내 도로망을 상세히 표현하였다. 인접 군현으로 향하는 모든 길을 나타내었다. 지금의 도로망과 비교해서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地圖地志에는 지도상에 표기 하지 못한 지역사회, 경제, 군사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

소분류

세부 내용

행정

군사

호구

- 호구수 : 3,473호

- 인구 : 16,042명 (남자 7,256명, 여자 8,786명)

 

군병

- 各色軍 : 2,050명

- 京各司諸色軍 : 395명

- 監營屬 ; 101명

- 統營續 : 1,107명

- 右兵營屬 : 442명

- 左水營屬 : 5명

- 烽軍 : 50명

= 합계 4,150명

8

기타시설

- 烽(燧) 合 2처, 驛 1, 산성 1처

- 邑城周面 2,400尺

  5

경제

元田沓

- 1,792結27負5束,

(전869결76부5속, 답922결51부)

 

實結

- 1,238속25부

(案田557결74부3속, 案畓680결50부7속)

 

곡물

- 別餉米 : 4,453석 9두

- 元會米 : 470석 1두, 잡곡 : 1,233석 3두

- 常賑米 : 397석 8두, 잡곡 : 1,594석 1두

- 監營米 : 3석 3두, 잡곡 5,833석 5두

- 統營米 : 1,193석 10두, 잡곡 3,289석 6두

- 私賑미 : 12석 9두, 雜穀 : 1,655석 9합

- 帖價租穀 : 704석 11두

- 備荒租 : 203석 14두

- 儲置米/저치미 : 270석 9두

- 戰舡價價 : 100석 10두

- 除留米 : 285석 4두, 太 : 23석 9도

- 各樣軍作米 : 80석 12두

12

 

전체적으로 소개된 내용이나 지도 제작기법이 여지도와 흡사하다.

다만 면의 이름이 상서면과 하서면으로 구분된 지승지도와 달리 중면, 상서면으로 되어 있는 바, 실제 5개의 면(읍내면, 동면, 중면, 상서면, 하서면/ 웅천현 해동지도. 1750)으로 구성되었으나, 각 지도에서 한 개면씩 생략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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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3 00:00

고지도로 보는 창원 14. - 웅천현 조선지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14. - 웅천현 朝鮮地圖

 

熊川縣 조선지도(奎16030)/ 필사본(방안식)

 

- 지도 개요 :

모든 지도는 4.2cm의 方案 위에 그려져 있다. 이 방안은 縮尺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국 모든 고을이 동일한 축척 아래 그려져 있는 보기 드문 지도책이다.

동일한 정보는 동일한 기호로 표시하는 범례도 고을의 읍치와 감영·병영·수영, 종6품의 察訪이 파견된 찰방역, 군사시설인 鎭堡와 烽燧, 稅穀의 저장과 운반을 위한 倉庫 등의 7개 부분에서 모든 지도에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일반 고을의 邑治는 붉은색의 큰 동그라미로 표시하였으며, 성곽이 있는 경우는 검은색 테두리의 원을 하나 더 그려 넣었다. 각 고을의 監營은 붉은색의 정사각형으로 표시하였으며, 성곽이 있는 경우에는 성곽 모양을 표시하였다.

兵營과 水營은 파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였으며, 성곽이 있는 경우에는 파란색 테두리의 사각형을 하나 더 그려 넣었다.

종6품의 察訪이 파견된 찰방역의 경우는 붉은색의 작은 동그라미로 표시하여, 고을의 읍치와 구별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군사시설인 鎭堡는 푸른 색 마름모 모양으로 통일하였으며, 倉庫는 건물 모양으로, 烽燧는 불이 펴져 있는 봉수 모양으로 표시하였다.

 

 

읍치를 중심으로 동면, 중면, 서면, 하서면 4개면이 표기되어 있다.

중심이 되는 읍성은 읍치를 나타내는 붉은 색 동그라미로 표기되어 있으며, 북측에 주산에 해당되는 熊岩이 자리하고 있다.

자연지리 조건을 살펴보면

전체적인 산세의 흐름은 남동측 방향을 향해 있으며, 산을 경계로 창원, 김해, 동래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북서측 창원계에 면하여 고봉산과 손도봉 봉수를 기점으로 하여 장복산, 웅봉, 율천현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외 표기된 산과 고개길로는 읍치 북측에 병산, 대현, 배응현이 있으며, 남측으로 남산이 자리하고 있다.

해안에 면한 포구로는 서면에 풍덕포, 중면에 구천포와 망운대가 있으며, 남측에 삼포와 제포가 있다.

수군 병영시설인 鎭堡가 동면과 가덕도에 연이어져 여러 곳 있었다.

청천진, 안골포, 신문진, 가덕진, 천성진, 제포진등이 연안에 나타나 있다.

섬은 하서면에서 가덕도에 연하여 무수히 많은 섬들이 나타나고 있다.

주요 건조물로 하서면에 西倉, 九泉浦에 望雲臺, 읍성 남측 남산아래 倭城과 船所가 있다. 읍치에서 창원으로 향하는 가로변에 惠濟院이 熊岩 아래 興聖寺(聖興寺의 오기로 보임)가 있다.

역원으로 읍성 아래 驛(保安驛)이 있다.

봉수는 웅천의 지리적 여건상 대마도 왜구의 동향을 파악하기 용이한 지역인 가덕도에 2개의 봉수가 배치되어 있다. 남산에 있는 봉대를 거쳐서 하서면의 고산봉을 거쳐 창원부의 성황봉으로 연락을 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또한 남산 봉대에서 서측 해안 건너 여음포 봉대로 이어졌다.

 

지도에 포함된 내용을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명 칭

행정

면.리

동면, 중면, 서면, 하서면

4

자연지리

산천, 고개

고산봉(손도봉), 장복산, 웅암, 병산, 남산

율천현, 대현, 배응현,

8

島嶼

서도, 소목도, 대목도, 호도, 瓢島, 蘘衣島, 부도, 蟒魚島, 대죽도, 소죽도, 이슬도, 벌지도, 웅도, 소형도, 수죽도, 방산도, 웅도, 훅산도, 백산도, 연도, 벌도, 감물도, 송도, 마미도, 전도, 죽도

26

인문지리

읍성

읍치

1

교육

-

-

사찰

흥성사(성흥사)

-

역원, 烽燧

역(보안역)

가덕도 봉대2, 봉(남산봉), 고산봉

4

鎭堡

청천진, 안골포, 신문진, 가덕진, 천성진, 제포진

6

기타

西倉, 망운대, 왜성, 선소,

4

 

전체 지도의 구성이 매우 간결하다.

먼저 수계를 나타내는 형식으로 물길과 해안은 청색으로, 산세는 산형으로 방향성만 묘사하고 청색을 채색하여 산세의 흐름을 나타내었으며, 외방에 면하는 주요 간선도로는 창원부로 향하는 길과 가덕도로 향하는 도로만 표기하였으며, 가덕도에서 김해로 향하는 도로는 생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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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5 00:00

고지도로 보는 창원10. - 웅천현 輿地圖

▮ 고지도로 보는 창원10. - 웅천현 여지도(輿地圖)

 

熊川縣 輿地圖(古14709-68)輿地圖》(古4709-68)/ 필사본(회화식)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이지만 동일하게 필사되지는 않았다.

전체 지도의 구성은 해동지도처럼 산계 및 수계를 구성하고 읍성을 중심으로 주변의 건물을 묘사하였다. 읍성을 중심에 크게 표현하고 내부의 관아의 배치를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해동지도와 달리 읍성에서 면이나 인접 군으로 향하는 도로의 표기는 생략하였다.

 

 

웅천읍성(웅동 일대)을 중심으로 주변을 표기하였다.

읍성내에는 7동의 건물이 있다. 객사와 창(창고, 아(관아)가 있으며, 사방으로 동문, 서문, 남문, 북문이 배치되어 있다.

읍성을 중심으로 읍성 아래측에 읍내면, 동면, 경화동 일대는 중면이 있으며 여촤천을 사이에 두고 우측이 상서면, 좌측의 하서면은 생략된 채 4개의 면만 표기되어 있다.

읍성의 배치는 북서측의 장복산과 남측의 내남산만 표기하고 나머지 산들은 생략되었다.

주요 건물로는 읍성 근처에 향교와 성흥사와 광석암 사찰 이외는 거의 군사 거점인 진지가 표기되어 있다.

제포진과 가덕(진) 및 청천진, 신천진 및 천성보가 표기되어 있으며, 그 외에 현선소와 가덕창과 서창이 있다. 주요 시설로 왜성 및 저수지로 소곡제와 독점제, 용추정을 표기하였다.

현의 외곽 형태가 부정형임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의 틀에 맞춘 형태로 지도를 제작하였으며, 읍성의 크기를 과도하게 크게 표현하였다.

 

 지도에 포함된 내용을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명 칭

행정

면.리

읍내면, 동면, 중면, 상서면

4

자연지리

산천

장복산, 內南山

2

鎭堡

薺浦鎭, 新門陳, 淸川鎭, 天城堡

4

고개, 제방

蔬谷堤, 龍湫井,

2

나루터,섬

魔道, 木島, 釜島, 鼠島, 小庫莊島, 小升島,

孫渡津, 松島, 水島, 兩栗島, 熊島, 陰地島, 理瑟島, 草理島

14

인문지리

읍성

衙, 객사, 창, 동문, 서문, 남문, 북문

7

교육

향교,

1

사찰

聖興寺

1

역원,봉수

保安驛, 安民驛

2

공공시설

西倉, 현선소, 창

3

고적

倭城,

1

 

앞서 소개된 해동 지도나 비변사 지도에 비해 소개된 정보의 량이 적은편이다.

 

웅천현 여지도 地志

- 地志는 지도 여백에 적어놓은 군현의 인문지리에 관한 내용으로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세부 내용

행정

군사

호구

- 호구수 : 4,333호

- 인구 : 19,346명

군병

- 京各司諸色軍 : 388명

- 各營鎭浦分防諸色軍 1,063명

- 束伍雜色軍 : 144명

= 합계 1,595명

3

경제

量付

- 1,802結27負5束,

- 전869결76부5속 중 실결 767결10부4속

- 답932결51부 중 실결 787결 12부6속

實結

- 1,555속23부

 

곡물

- 元會常賑米 : 960석3두, 皮穀 1,933석3두

- 廻營米 : 18석7두, 皮穀 7,650석 5두

- 統營米 : 31석4두, 租 440석1두

 

비변사지도와 비교했을 때

호구의 수는 3,680호, 16,666명에서 4,333호, 19,346명으로 증가하였다.

量付의 수는 동일하며, 군병수는 2,050명에서 1,595명으로 줄었다.

곡물의 세곡미는 항목이 축소된 형태로 나타났으며, 전반적으로 내용이 간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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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8 00:00

누가 이 나무를 모르시나요?

<진해 중원로터리 팽나무>

일제에 의해 계획된 진해 신도시의 한복판 중원로터리에는 늙은 팽나무 한그루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나무입니다.

식민지 시대, 일본해군은 이 나무 아래서 행사도 많이 했습니다.(1930년대 사진)


1950년대 중반에 제 수명을 다해 고사(枯死)했는데 당시 수령이 1,200여년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팽나무는 신라, 고려, 조선 세 왕조를 지켜본 진해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만합니다.

이 늙은 노거수(老巨樹)는 어디에서나 불 수 있는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니었습니다. 

1899년 일본해군에서 제작한 「마산포 및 부근」이라는 지도에 의하면 당시 웅천군 웅중·웅서 양면이 자리 잡은 진해신도시지역은 넓은 평야였습니다.
북쪽은 장복산이 막아주고 남쪽으로는 야트막한 산과 오목조목한 해안을 낀 살기 좋고 아름다운 지역으로 ‘중평’이라는 이름을 가진 들판이었습니다.

그곳에는 9개 마을이 들판을 사이에 두고 오손도손 살고 있었는데, 이들 2천 여명을 벼락같이 내쫓고 만든 것이 진해신도시입니다.
하지만 이 늙은 팽나무는 쫓겨난 마을주민들과 달리, 진해 신도시의 중심에 살아 남아 신도시의 랜드 마크 역할까지 했습니다.

중평마을에서의 팽나무 위상을 확인해보기 위해 팽나무의 위치와 일본인들에 의해 사라진 9개 마을의 위치를 추정해보았습니다.

해방 2년 후인 1947년 7월에 일본식 동리명칭을 우리 식으로 다시 고치는 작업이 있었고, 1955년 8월 진해읍이 ‘진해시’로 격상될 때 다시 동명조정이 있었습니다.
이때 위 9개 마을의 명칭이 대부분 되살아났습니다.
현동·도만·도천·중평(이상 중앙동)·안곡·속천(이상 태평동)이 법정동으로 되었고, 여명리(余明里)의 ‘余’자와 통자되는 ‘餘’를 취하고 좌천리(左川里)의 ‘左’와 자음이 같은 ‘佐’를 취해서 여좌동(餘佐洞)이 되었습니다.

이 동(洞)들의 명칭을 정할 때 옛 마을 위치에 맞추어 결정했는지의 문제에 대한 전문가의 견해를 살펴보았더니, 창원대 민긍기 교수는 옛위치가 그대로 적용된 것은 아니라 했습니다.
하지만 진해·웅천향토연구회 황정덕 회장의 견해는 달랐습니다.
군사지역 때문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현재 동의 위치는 옛날 리(里)의 위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2011년 8월 8일, 황정덕 회장에게 직접 확인하였습니다.

황정덕 회장이 쓴 『우리고장문화유적길잡이』에 실린 ‘옛 중평마을 일대 추상도’에도 도만리·도천리·여명리는 현재 도만동·도천동·여좌동과 비슷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다음 그림은 옛 이름을 가진 현재의 동과 팽나무를 함께 앉혀본 도면입니다.
황정덕 회장의 견해가 맞다고 볼 때, 당산나무였던 팽나무를 중평들판 중앙에 두고 각 마을들이 둘러 앉아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철거당한 마을주민들은 물론,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중평들판에 있어서 팽나무의 위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마을 주민들을 강제로 내쫓고 만든 진해라는 일본인도시 한복판에 오랜 세월동안 9개마을주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팽나무가 있었던 겁니다.

뿐만아니라 이 나무 주변에 일본제국을 과시하는 시설들도 들어섰습니다.
러일전쟁기념탑과 진해신사를 비롯하여 진해역·진해우체국·진해면사무소 등이 그것들입니다.

신도시가 완성되고 정착된 1920년경의 도시전경인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도시중심에 앉은 중원광장 팽나무(화살표 방향)는 크기가 대략 폭 30m 높이15m 정도로 짐작되는 도시의 강력한 상징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엽서 4장을 연결해 만든 겁니다.
대정10년(1921년) 9월 3일자로 소인된 엽서라 1920년경으로 추정하였습니다.
보시죠.

 


일본해군은 이 팽나무를 중원로터리 중심에 두면서 방사상(放射狀) 신도시 디자인의 기점으로 삼았습니다.
추정해 보면,
진해신도시를 설계하기 위한 사전현장조사과정에서 팽나무의 크기·모양·위치·앉은 높이를 비롯하여 나무에 얽힌 역사와 주민들과의 관계까지 충분히 조사 분석하였을 겁니다. 
그런 후, 팽나무가 앉은 위치에 맞추어 중원로터리를 배치한 후 북원광장, 남원광장과 크고 작은 도로들은 그에 적절히 어우러지도록 설계하였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진해신도시계획의 전체 틀은 바로 이 팽나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 오래된 팽나무를 신도시계획의 모티브로 삼았을까요?

강제로 철거당한 마을의 당산나무였던 팽나무를 신도시의 중심기점으로 삼은 것은 작은 의미가 아닙니다.

당산나무단순히 나무로서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믿어 신목(神木)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당산수를 베거나 해를 입히면 큰 재앙을 입게 되며 천재지변으로 나무가 죽거나 쓰러져도 마을 전체가 큰 화를 입는다고 믿기도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당산나무는 마을주민들의 대소사를 치렀던 행사장으로, 때로는 지친 심신을 품어주는 휴식의 장소로도 사용되었던 마을의 상징이자 자부심이었습니다.

이런 나무를 남겨 도시설계의 모티브로 삼은 것을 두고 생태와 경관을 고려했다고도 볼 수 있고, 벌목에 대한 미신이 작용했다는 등 다양한 추측이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급하게 토지를 수용했던 당시의 정황을 보면, 이런 이유보다는 군항건설과정에서 저지른 자신들의 만행에 대한 민심을 우려하여 선택한 수습책 아니었나 싶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내쫓긴 9개마을 주민들의 '고향의 상징' 당산나무마저 베어냈을 때 생길 후환을 고려했다는 뜻입니다.

이 추정은 물리적인 도시구조에 대한 결과론적 담론보다는 식민도시의 전개과정에서 나타나는 억압과 수탈의 과정에 대한 담론으로 진해신도시를 조명해보자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늙은 팽나무의 위치가 신도시의 상징공간이었던 중원광장 한복판이라는 점은 ‘비록 마을은 없어졌지만 그 역사와 전통은 존중한다’ 고 표현함으로써 자신들의 강제토지수탈을 ‘부득이한 조치’ 로 위장하기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오래된 나무는 신도시건설 이전의 한국전통마을과 신도시건설 이후의 일본인 전용도시를 아우르는 상징이었습니다.

수령 1,200여년을 채워 천수를 다한 나무를 대신해
현재 중원로터리에는 작은 나무들과 조형물이 들어서있습니다.
어차피 큰 의미가 없는 것들이니,
역사적으로나 생태적으로나 이것들 대신, 잘 생긴 팽나무 한 그루를 다시 심는 것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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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종만 2011.09.28 15:4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대단한 글입니다.
    어제저녁 포커스경남 시청 잘 했습니다^^

  2. 대자연어머니 2016.04.04 18:2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얼마전 진해를 방문하여 나무의 존재를 궁금해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글 마음에 남기고 마지막 말씀 저도 같은 생각이라 말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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