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6.04.04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83. 엽총 정사

83. 엽총 정사(情死)

 

1923(대정12) 초봄 무학산 봉우리에 아지랑이가 서리고 시냇가 버들가지엔 강아지가 겨우 필락 말락하는 약력 3월 중순경,

시내 장군교 교반(橋畔)으로 나이 60이 넘은 일본 노인 한 사람이 다비(일본 버선) 발로 헐레벌떡 달리다 역시 일본인 순사에게 검문을 당하고 있는데, 다리에서 서녘 윗길 30미터 되는 노상에서 총소리가 터져나왔다.

도망치던 노인은 일본 사족(士族)이요, 법정에서 입회 검사와 싸움 잘하는 변호사 장자빈(莊子斌) 노인이었다.

장자(莊子) 변호사집 건너편에 서기로 있는 관원(管原)이 살고 있었다.

이 자는 대구 검사국에서 사기 사건인가 공갈죄로 형을 받아 이 자와 동서(同棲)생활을 하던 조선인 여자가 이 자의 대리 복역을 하고 있었다.

진범은 그 자인 것을 아는 일본인들은 거의 경원하였던 것인데, 마산으로 이주하여 변호사 서기로 있었다.

마산에서 서기로 있으면서도 공갈행동이 빈번하므로 여기서도 해면되자 대서업을 하면서 당시 마산병원(도립병원 전신) 간호원과 동서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그 자가 간호원과 동서하기 전에 그 자 때문에 희생됐던 조선인 여자도 석방되어 마산으로 이주하였고, 또 이 여자와 먼 친척관계인지 선대와 교분이 두터웠던 경북 어느 곳의 의병대장의 3대 독자도 그녀를 의존해서 마산으로 오게 되어 마침 장자(莊子) 변호사의 서기로 채용되었다.

이것이 풀 수 없는 전생의 업원(業怨)이요 숙명이었던 것이다.

관원(管原)의 아내와 조선인 서기와는 집이 건너요, 용무가 비슷한 때문에 접촉이 자주 있게 되자 남편되는 자의 깊은 의심을 사게 되었다.

의심이 쌓일수록 확증을 잡을 기회만 노리고 있던 그는 그 수렵 해제 전인 3월에 수렵을 간다고 속이고 은밀한 장소에 은신을 하고 있었다.

마침 여자가 토지대장등본 관계로 창원군청(지금의 상공회의소, 당시 위치)으로 나갈 차비를 하는데 변호사 서기가 찾아와서 두 사람은 실내로 들어가 화로를 사이에 두고 몇 마디 담소를 하고 있는 동안 꽝하는 총소리가 울려나오고 연속 제2발이 터졌다.

1탄은 남자의 심장부를 명중하여 앉은 자세로 절명되고, 2찬은 여자의 목을 관통하였다.

날아오는 탄환을 본능적으로 막다가 왼손 장심을 뚫고 목을 거쳤는데 여자는 당장 절명되지 않고 최후의 단말마 그대로 도로까지 뛰어나와 엎치락 뒤치락 극심한 고통 끝에 절명하였다.

남녀 두 사람을 죽인 관원(管原)은 길에 뛰쳐나와 옆에서 피를 흘리고 고통하는 여자도 아랑곳없이 하늘을 우러러 최후의 서글픈 웃음을 남기며 왼쪽 다리를 꿇고 엽총을 목에 대고는 바른편 발가락으로 방아쇠를 눌러 자살하고 말았다.

이 바람에 평소 감정이 좋지 않던 장자(莊子) 변호사는 자기에게 해가 오지 않을까 하여 도주 했던 것이요,

여자는 지금과 같은 양장이 아닌 일본 옷이었기 때문에 여자의 중요한 부분까지 노출하는 등 4월의 벚꽃이 피기 한 달가량 앞선 평화스런 장군동 일대는 삼각관계의 붉은 피로 물들었던 것이다.<<<

 <아래 붉은 표시한 곳이 장군교>

 

 

 

 

Trackback 0 Comment 0
2016.02.15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73. 어떤 일인 변호사

73. 어떤 일인(日人) 변호사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

 

장자(莊子) () 노인은 한문학자로서 다분히 야인적 정치 색채를 띤 일종의 장한(壯漢) 타입이다.

일찍 조선 토지조사국에 봉직한 일이 있으나 언제 어떻게 되어서 법조계에 뛰어들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그가 오래 우거(寓居)한 곳은 장군동 3가이며 만년의 가족으로 자부(子婦)와 시부(媤父) 단 두 사람이다. 말하자면 형영(形影) 상조(相弔)라는 표현이다.

그는 사족(士族)으로 선대의 무사(武士)집 자제라고 하며 일설에는 일본의 정당인 정우계(政友系)라고도 한다. 당시 망() 70년령인데 소장(少壯) 2, 3명 쯤이야 때려 눕힐만한 건강체이고 술도 두주불사하리만큼 호주(好酒)이며 대식(大食)이다. 자기가 맡은 사건이 여의치 못한 판결이 있을 때에는 으레 집에 돌아오던 길로 며느리더러 닭을 잡아 오라 해서 무사검(武士劍)으로서 울화를 끈다고 한다.

다음은 술이다. 평소에는 홀로 있을 때나 객이 올 때나 불구하고 건너집에서 한 모의 두부로 통음(痛飮)을 한다. 법정에서도 피고인의 변론보다는 방약무인(傍若無人)의 태도로 법정을 소란케 한다.

이러다가 입회 검사와 논의 끝에 그날 변론은 중지라 선포하고 퇴장해 버린다. 공판이 끝나면 검사에게 마구 욕설을 퍼붓기 마련이었다. 한번은 일본서 오래 살다 돌아온 박병주란 청년이 자기 형의 채권자를 식도로 척살(刺殺)한 상해치사 사건의 공판 때

잘하는 암성(岩城) 검사가 피고는 계획적으로 사람을 해쳐 놓고 술 취했다고 빙자함은 비겁한 일이라 하여 7년을 구형하자, 변호인 장자(莊子)는 몇 마디 변론을 하다가 검사 자신도 술 취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무슨 그런 술타령을 하느냐 식으로 변론이 급선회를 하자 그대로 듣고 있을 수 없다는 입회 암성(岩城) 검사는 변론 중의 변호사에게

나는 법정에 나온 천황의 대리다. 무엇 때문에 개인의 인신공격을 하느냐

서로 설왕설래 예의 장자(莊子) 노인은 분연히 퇴장하였고, 이 틈에 끼었던 박 피고인은 구형보다 2, 3년 가형 판결이 되고 말았다.

며칠이 지났다. 아들 없는 노 변호사는 미남의 암성 검사를 자기 아들이라고 농도 하며 뿐종 술자리를 벌였다. 자기 집에 초대되는 사람은 암성(岩城)과 그 당시 서기홍 판사 분이다. 술안주는 천편일률로 두부로써 생색을 낸다.

검사와 변호사는 법정에서는 싸워도 자기 집에서 술 마실 때는 화기애애하게 다정하다. 술이 몇 순배 되면 노인과 청년은 또 싸움이 벌어진다.

한날은 검사로서 참을 수 없이 격한 끝에 노인을 유도로써 방바닥에 때려눕히고 나가려 할 찰나에 검사의 멱살은 노인의 거센 손아귀에 잡히는 동시에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어 검사의 목에 견주었다. 과연 전광석화다. 손 한 번 까닥하면 검사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검사의 위세고 무엇이고 얼굴은 순식간에 황토빛이다. 이때에 그 자부가 뛰어들어 사력을 다하여 만류한 끝에 권총은 떨어지고 사경에서 벗어난 암성(岩城)은 맨발로 탈출하였다.

잠시 후에 치다꺼리를 하는 자부에게

네 시부가 살인할 사람인 줄 알았느냐? 제깐놈이 검사라고 까불어대도 살려달라고 항복할 것이 아니냐 말이다. 이렇게 되면 세작(洗酌) 갱진(更進), 기쁜 마음으로 서로 담소화락(談笑和樂)하면서 화해술을 마시게 되는 것을, 술 먹는 시부의 마음을 몰라 주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였다.

장자(莊子) 변호사는 술값을 비롯해서 일상 생활 필수품의 외상값이 엄청났다고 했는데 동경에 다녀오겠다고만 하고 비밀리에 자부를 불러들인 후에 종적을 끊었다고 한다.<<<

 

 

 

 

Trackback 0 Comment 0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1

오늘부터는 <경남지역 주거변천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6~7년 전에 『경남도사』에 싣기 위해 간략히 쓴 글인데 출판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블로그에 올립니다. 어차피 공유하기 위한 글이니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동남부에 ..

기억을 찾아가다 - 25 (마지막 회)

25. 3·15의거에 대한 기억 「그날 나는 ‘극장 구경 시켜주겠다’는 주무돈이란 동네친구의 호의에 끌려 10리 가까이 되는 길을 걸어 ‘시민극장’으로 갔다. 그때 나는 대학입시에 낙방한 직후라 의기소침해 있던 상황이었다. 우..

기억을 찾아가다 - 24

24. 이승만 행사 -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 노인잔치...... 내 고등학교시절의 어느날 동회 서기가 들고온 책자를 잠시 훑어본 기억이 남아있다. ‘한국 정치인 99인집’이란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승만편이 현격히..

기억을 찾아가다 - 23

23. 떠돌이들, 좀도둑 전쟁이 끝나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들갔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남아있었다. 좌우갈등의 와중에 있었던 몸이라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고 들은 문씨 같은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가봤자 땅뙈기 ..

기억을 찾아가다 - 22

22.기합, 주먹자랑, 몸단련 중학교시절에도 조금은 의식되었지만 신경을 곤두세울 정도는 아니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그 문제들은 신경의 상당부분을 자극하여 행동거지의 상당부분을 조종하고 지배할 정도로까지 작용했다. 소위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2

지난주에 이어 녹색 기둥의 정원 에서부터 선유도 이야기를 이어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녹색 기둥의 정원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 기둥만을 남겨 만들어진 이 정원은, 선유도 이야기관 의 설명에 의하면 ‘휴식과 ..

기억을 찾아가다 - 21

21. 동(洞) 대항 줄다리기대회 ‘마산시 동 대항 줄다리기대회’가 시작된 건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내가 몇번 구경한 건 중학교 때였다. 대회 장소는 주로 무학초등학교였다. 마산의 30여 동이 토너먼트로 겨루어 하루에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1

서울 한강변의 대표적 공원 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곳 중에 선유도가 빠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원래 거기에 그렇게 있었던 장소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직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선유도 공원이 ..

기억을 찾아가다 - 20

20. 아이스케키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도 있었지만 수요가 많지는 않았었다. 학교 앞이나 시장 입구 등에 리어카를 세워놓고 수제로 만들어 파는 정도였다. 소금 뿌린 얼음 통을 손으로 돌려 냉각시킨 아이스크림은 즉석에서 고깔과자 ..

안상수 시장은 철거민의 눈물 닦아주시라

설 연휴가 끝난 다음 날, 나는 한 언론사의 취재에 동행해 재개발로 철거 중인 마산 회원동 일대를 다녔다. 내가 태어난 곳이고 서른까지 산 곳이었다. 지금도 매일 두 번씩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날 나는 몰상식과 몰염치의 밑..

기억을 찾아가다 - 19

19. 영화, 만화, 잡지 초등학교 6학년 때 단체로 시민극장에 ‘성웅 이순신’을 보러 갔다가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활동사진이 아니고 정지된 그림(슬라이드)이었기 때문이다. 중1때 문화동 쯤에 있었던 제일극장에서 본 애정(哀..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intro.

세 달 가까이 이어져 왔던 '건축의 외형' 에 이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방치되고 버림받게 된 건축에 새 삶을 불어넣는 '재생 건축' (regenerative architecture)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볼까 합니..

기억을 찾아가다 - 18

18. 바냇들, 부림시장 정전 다음해 진학한 마산서중(전쟁 중인 1951년 9월 1일 6년제 마산공립중학교가 3년제 마산고와 마산서중으로 분리되었다. 마산서중이 현재의 마산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한 것은 1955년 5월 7일이었다..

기억을 찾아가다 - 17

17. 공놀이, 헌병사령부 축구팀 우리 어릴 때 겨울 빈 밭에서 새끼로 동여맨 짚 뭉치를 차고 놀던 기억이 있고, 간혹 있은 잔칫집에서 나온 돼지 오줌보에 물을 넣어 차고 놀던 일도 어렴풋이 기억의 한 자락에 남아 있다. 형들..

기억을 찾아가다 - 16

16. 광복절 행사와 우리들의 영웅 초등학교 때도 광복절 기념 체육대회가 있었지만 참여 정도가 미미해서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중학생이 되어 응원군으로 참여하면서 운동경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면서 선수들의 면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