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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5 02:32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2

난주에 이어 녹색 기둥의 정원 에서부터 선유도 이야기를 이어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녹색 기둥의 정원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 기둥만을 남겨 만들어진 정원은, 선유도 이야기관 설명에 의하면휴식과 사색의 공간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처음에 지어질 때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출처 - 건축도시연구정보센터 (http://www.auric.or.kr/)


 현재의 곳은 사람을 피해 사진을 찍는 것이 상당히 까다로운, 또다른 의미의 멋진 정원이 되어 있습니다. '휴식과 사색 포용하는 넓은 기능의 공간이 되어간다는느낌이며, 이러한 느낌은 녹색 지붕의 정원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자연스레 생겨납니다.



 

 - 수생 식물원


녹색 기둥의 정원을 돌아나와 도달하는 , 수생 식물원 입니다. 여과지 였던 곳을 재활용한 곳이지요.

 ‘낮은 수반에 자리잡은 다양한 수생식물들의 모습과 생장 과정을 가까이서 관찰할 있다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아직은 추운 날씨 탓에 군데군데 비어있긴 하지만, 저런 모습도 계절에 맞는 자연스러운 식물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앉고, 올라가고, 쉬고... 기존 시설의 잔재 위에 데크 깔은 것이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하였나 봅니다.


 - 시간의 정원


수생 식물원과 시간의 정원은 공간의 분할이 명확하면서도 발걸음따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됩니다. 약품침전지를 재활용한 곳은 선유도 공원 내에서, 남겨진 기존 시설을 공간적 다양성 측면에서는 가장 풀어낸 곳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래 사진은 건설 당시 기존 구조물의 모습 입니다.

 공간적 풍부함을 가지는 많은 건축들과 공간들은 사진으로는 현장의 느낌을 설명해 내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곳 또한 그런 경우라고 생각이 듭니다.


 지층부와 상층부의 공간이 마치 씨줄 날줄처럼 다른 높이에서 얽혀 흐릅니다.

 상층부의 구조물을 어떤 부분은 데크로, 어떤 부분은 식생으로 채워, 너무 많은 가능한 동선에서 오는 혼란을 줄이고 다양한 식생들을 자연스레 경험하도록 의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방향원, 덩굴원, 이끼원, 고사리원 작은 주제정원들을 감상할 있다고 하니 다른 계절 또한 기대됩니다.

 기존 구조물을 그대로 살린, 상층부의 작은 쉼터들 하나입니다. 



- 개의 원형 공간


 선유도 공원을 양화 한강공원 쪽에서 왔다면 첫번째,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양화대교 북단에서 진입하였다면 마지막에 만나게 되는 곳입니다. 

 - 개의 원형 공간 하나인 환경 교실. 방문 시에는 운영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원래 원형의 조정조 2개소와 농축조 2개소 였던 곳으로서 (정수후 불순물과 물을 분리 처리하던 ), 일상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은 기존 건물의 원통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환경 교실, 환경 놀이마당, 원형극장, 화장실 각각 구성된 곳은 선유도 공원 전체중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싶었습니다.

 원형극장이라던지, 지상에서 있는 고리 형태의 화단이라던지 하는 것들은 기존 구조물의 형태를 유지하지 않았다면 나타나기 힘든 공간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카페테리아 나루 


 정작 방문했을 때는 몰랐습니다카페테리아 또한 기존 시설이었던 취수펌프장을 재활용한 곳이었다는것을. 내부를 모두 새로 단장한 탓이었을까요 - 아무래도 직접적인 상업 시설이다 보니 공원의 다른 부분들과 동일한 접근방식을 취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봅니다



 100 뒤에도 지금처럼 살아 숨쉬고 있을 선유도 공원을 기원하며 포스팅의 마무리는 선유도 이야기관의 일부를 발췌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어볼까 합니다.


<이태림>



낡은 것은 낡은 채로, 비어 있는 것은 채로


 자연과 어울리기 위한 인간의 노력을 찾아볼 있는 공원에서는, 남아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던져주는 암시를 통해 이곳만의 특별한 의미를 찾아볼 있습니다. 


 그것들은 인간의 문명, 산업 폐기물, 자연의 훼손과 같은 일을 경계하라고 조용히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유도 공원은 환경의 의미를 재인식해 보는 장이기도 합니다. 산업 문명의 공간을 철거하는 대신 자연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재활용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선유도 공원에서는 있는 장소에 따라 느낌도 천변만화 합니다. 막힘과 트임 그리고 솟음과 꺼짐의 입체적인 조형성은, 공원이라는 안에 담은 정수장과 선유봉의 기억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솟아 있는 위에서는 막힌 길이 없어 어디로든 있습니다. 미루나무가 불러들이는 바람 소리에 취해도 보고, 건너 트인 전망을 즐기며 사색의 시간을 가져볼 수도 있습니다. 


 바람 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대쯤 지하 공간으로 내려오면 놀라울 정도로 고즈넉한 정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수장 건물들의 흔적들, 남아 있는 기둥과 , 그리고 물을 담아두었던 사각 공간 안에 자라는 식물들은 평온한 사색의 시간을 안겨줍니다.



…….


 10년이 지나고 100년이 지난 , 선유도 공원은 어떤 모습일까요. 과연 그때쯤에도 공원의 흔적이 남아 오늘날을 기억할 있을까요


어쩌면 완강한 옹벽은 허물어지고, 산책길은 무성한 풀밭이 되고, 정원을 구분했던 벽들은 스러져 더욱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아름다운 자연입니다. 


 자연의 생명력은 순리에 따라 이곳을 아름답게 보전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자연은 가장 훌륭한 관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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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8 00:00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1

울 한강변의 대표적 공원 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곳 중에 선유도가 빠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원래 거기에 그렇게 있었던 장소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직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선유도 공원이 생태공원으로 개관한 것은 2002년 4월 26일, 햇수로 16년째 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엔 어땠을까요?

겸재 정선, 선유봉, 1742, 비단에 채색. 출처 - blog.naver.com/pfloyd56/90008180704

 

선유도는 원래 '선유봉' 이라는, 40m 높이의 아담한 바위산 이었습니다. 신선이 노닐던 봉우리 라고 이름이 붙여질 만큼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한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는 명소 중의 하나였던 선유봉은 1925년 큰 홍수 이후 한강의 제방을 쌓는 암석채취에 이용되면서 훼손되기 시작했고 1965년에 양화대교가 이곳을 통과하여 건설되었으며, 1978년에 선유 정수장이 세워지면서 안타깝게도 아름답던 옛 모습을 잃게 되었습니다.

선유 수원지 통수식' 1978년 구자춘 당시 서울시장이 참석. 출처 - http://www.fnnews.com/news/

 

선유 정수장은 낡고 오래되기도 하였고, 남양주시에 큰 규모의 강북정수장이 들어서면서 그 기능과 역할이 통폐합되어 2000년에 문을 닫게 됩니다.

 

이에 따라 서울시에서는 ‘새 서울, 우리 한강’ 사업 계획의 하나로 ‘기존의 정수장 시설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쾌적한 문화와 휴식, 관광의 명소로 제공하고, 한강의 역사와 생태를 배울 수 있는 환경 친화적 공원으로 조성한다' 는 지침 아래 ‘선유도공원화사업현상설계’  를 공모하게 되었습니다.


 이 공모전에서 서안 컨소시움(조경설계서안+조성룡도시건축+다산컨설턴트)의 설계안이 당선되었고(1999.12) 그후 8개월간의설계(2000. 8)와 공사(2000. 12 착공)를 거쳐2002년 4월26일 선유도 공원으로 개원하였습니다.



 - 선유도 공원

 

한강 남쪽 양화한강공원 방향, 선유교 아래에서 바라본 선유도 전경


 선유도공원은 폐기된 공장 시설을 재활용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례로서 환경 재생 생태 공원이자 ‘물의 공원’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유도는 직접 주차는 할 수 없고 (장애인인 경우에 주차가 가능합니다), 남쪽의 한강 공원 주차장 중 한곳에 주차를 하고 선유교를 통해 걸어서 건너가게 됩니다.

 

서울에서 이정도 규모의 탁 트인 시야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에 익숙해졌던 사람들에게는 조금 불편하다고 생각될 수 있으나 선유교를 걷는 순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곳은 걷는 것이 어울리는 곳이라는 것을요.

선유교에서 바라본 선유도 전경




 선유도공원이 선유정수장 이었던 때와 비교할 수 있도록 비교 평면과 선유정수장 당시 사진을 올려봅니다. 


 

선유 정수장의 모습. 출처 : 선유도 내 선유도이야기관


 

선유정수장과 선유도 공원 비교평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양화대교를 통해서도 접근할 수 있습니다. 선유도를 통해서 들어오는 것과는 다른 느낌의 첫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양화대교에서 접근했을 때의 선유도 공원의 모습



 선유교를 통해 접근해서 들어오면, 몇군데서 볼 수 있는 아래와 같은 약품저장탱크 였던 시설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재는 관수기계실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은 나뭇가지들이 추운 계절을 벗어나지 못한 모습인데 그래서 오히려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장탱크와 넝쿨이 어우러져 볼만한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 선유도공원 관리사무소


 아래 사진들은 급속여과지 (수조에 모래와 자갈 등을 담아 물속의 불순물을 걸러내는 여과지 8개소와, 지상 1개층 규모의 시설) 였던 곳을 일부 남기고 수선하여 만들어진 선유도공원 관리사무소의 모습 입니다. 

 





건물 입구에서부터 살펴보면 예전의 모습들, 세월의 흔적들이 지워지지 않고 드러나는 부분들이 보입니다.



 

기존 시설의 콘크리트 상판을 뜯어낸 후 골조를 살려 아래와 같은 주차공간과 기계실로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 수질정화 정원


 

 아래는 약품침전지를 재활용한 수질정화 정원입니다. 격자로 세워졌던 기존 구조물의 형태를 그대로 살려 걷고 쉬고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는 정원이 만들어졌습니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걷고 쉬고 대화하며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새로 짓는 공원이었다면 데크 아랫부분과 같은 형태의 구조물이 존재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대칭이라 하기에도 디자인이라 하기에도 고개가 갸우뚱 해지는 형태를 생각해 내기에도, 설득해 내기에도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존재하던 것을 그대로 살려냄으로써 발생하는 소소한 재미가 아닐까요?



 녹슨 배관도 운치있게 느껴지는 것이 저만의 느낌은 아닐 것입니다.




다른 계절일 때의 모습이 궁금해지는, 넓게 보면 아래와 같은 모습의 수질정화원 입니다. 






 - 선유도이야기관


 아래는 송수펌프실 이었던 선유도이야기관 입니다. 첫번째 사진은 펌프실 이었던때의 모습입니다.

 





 

 이곳에서도 역시 옛 구조물이나 낡은 모습, 쓰임이 끝난 장비 들이 남아있는 곳이 많습니다.








 아래와 같이 옛 모습을 ‘전시’ 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시선을 많이 받는 쪽은 이러한 방식인 듯 싶었습니다.




 

 선유도 이야기관을 나서면 녹색 기둥의 정원을 만나게 됩니다.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고 기둥만을 남겨서 자연과 함께하도록 한 이 정원은 선유도의 대표 얼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카메라 속에 담겼고, 담기고 있었습니다.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2 로 이어집니다.



<이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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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2 09:34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intro.

  달 가까이 이어져 왔던 '건축의 외형' 에 이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방치되고 버림받게 된 건축에 새 삶을 불어넣는 '재생 건축' (regenerative architecture)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볼까 합니다.

우선은 대표적 사례 중 하나인 미술관, 테이트 모던 (Tate Modern) 의 이미지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Tate Modern seen from the River Thames : 출처 - www.geograph.org.uk


 직접 가 보진 못했을 지라도 이름은 한번 정도는 들어봤을 법한 테이트 모던은 연간 4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영국 런던의 명소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원래 이곳은 미술관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화력발전소 건물 겸 수련 기계공 및 전기공 양성기관이었습니다. 


Bankside B Power Station, London, England, around 1985 : 출처 - en.wikipedia.org


 하지만 1년도 안되는 기간에 석유 가격이 3배 수준으로 폭등했던 1970년대의 석유 파동 등을 이유로 뱅크사이드 발전소는 1981년 가동을 중단하게 되며, 20년 가까이 런던의 흉물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철거 및 재개발을 노리는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있었으나 많은 사람들과 Tate Gallery의 결단으로 아래와 같은 모습으로 재탄생 하였습니다.


출처 - commons.wikimedia.org


 테이트 모던의 모습을 보면 화력발전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기둥을 포함하여, 많은 부분에서 기존 외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뱅크사이드 발전소가 계속 방치되었다면 여전히 흉물로 남았을 것이고, 철거 후 새로운 건물이 세워졌다면, 예전의 발전소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보아왔던 풍경은 그들의 기억속에만 남게 되어 결국 영영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기능을 가지되 기존 건물의 형태적, 공간적 정체성을 유지하게 하여 과거의 시간을 품은 채로 현재와 공존하게 하는 것이 재생 건축으로서, 새로 지어지는 건축물과도 다르고 고건축과도 차별되는 독창적 공간을 탄생시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재생 건축' 과 유사한 의미도 있지만 똑같지는 않은 용어들이 있고, 다른 의미지만 언뜻 듣기에는 유사한 의미처럼 들리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아래 단어들은 영어권 국가에서도 의미가 모호한 부분들이 있고,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에서도 혼용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야기해 보려는 주제를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 싶어 적어봅니다.


 - 재건축 :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30년 이상 지난 아파트 단지를 완전 철거한 후 신축 하는 행위를 의미하며, 안전상의 문제 해결과 경제적 이득 발생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러나 단순 번역인 reconstruction 은 일부 혹은 완전히 파괴된 건물을 예전 모습으로 복원하는 행위를 뜻하는 경우가 많으며 (맥락에 따라 다르게 쓰일 수 있습니다), 복원 이라는 단일 의미를 가지는 rebuild 라는 단어 또한 사용됩니다.

 - 리모델링 :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15년 이상 지난 아파트 단지를 골조를 유지한 채로 수직 또는 수평으로 증축하는 행위를 뜻하며, 목적은 재건축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리모델링이라는 단어는 사회 전반적으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으며, 건축 분야에서는 건물의 규모와 상관없이 내,외관 변화 혹은 용도의 변화를 주는 경우 관습적으로 사용됩니다. 영어 표현인 remodelling 또한 건축의 내,외관이나 구조의 변경 등을 행할 때 사용되며, 아래의 리노베이션 (renovation) 과 비교됩니다.

 - 리노베이션 : (보통은 오래되어 낡은) 기존 건축물을 헐지 않고 개보수하여 사용한다 는 뜻이며, 영어 표현인 renovation (낡은 것을 좋은 상태로 수리하는 것) 과 거의 같다고 보아도 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리노베이션을 리모델링의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리모델링' 이라고 하는 표현은 주로 '경제 논리' 가 힘을 발휘하는 작업이며, 투자 대비 수익을 계산하여 실행하게 됩니다 (개인 주택의 리모델링 같은 경우는 예외입니다).

'재생 건축' 은 테이트 모던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외형적으로는 리모델링에 가까운 작업이라 볼 수 있지만, 방향성과 목적에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버려지게 되었지만 유,무형의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품고 있는 많은 건물과 장소가 있습니다. 재생 건축은 그러한 것들을 현재에, 그리고 미래까지 이어주고자 하는 생각이 담겨 있는 작업입니다. 또한 환경보호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의 리모델링 비용은 1995년도 당시에 약 1.4억 파운드, 한화로 2,000억원에 이릅니다. 경제논리에 의하면 철거 되었어야 했을 화력발전소는 테이트 모던 이라는 '재생 건축' 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결국에는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이득을 지역사회에 가져다 주었습니다.


 다음 주 부터는 여러 형태의 '재생 건축' 사례들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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