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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1 00:00

고지도로 보는 창원 24. - 칠원현 광여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4. - 칠원현 廣輿圖

 

漆原縣 廣輿圖(古4790-58)/ 필사본(회화식)

 

- 지도 개요 : 제작 시기는 19세기 전반 (규격은 36.8 * 28.6cm, 구성: 7책)에 만들어진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광여도 전체의 구성은 비변사 지도와 유사하다. 영조대 중반부터 계속되던 관찬 회화식 전국 군현지도집 편찬의 전통은 19세기에 사라지게 된다. 기호식 지도집의 등장으로 국가가 합리적인 윤곽을 가진 기호식 지도집을 편찬에 활용하게 되면서 과거의 회화식 관찬 군현지도집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비변사 지도와 비교해 보면

표현방식상 비변사지도는 방안 위에 그려져 축척에 의해 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방안식지도이다. 광여도의 경우 거의 배치형태가 동일하지만, 방안이 표기되지 않은 이유로 회화식으로 분류하였지만, 사실상 방안식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전체 산의 배치와 읍면의 위치 등은 거의 같으나, 각 면을 연결하는 내방도로와 인접 군현으로 가는 외방도로가 생략된 것이 큰 차이다.

 

칠원현은 현재의 함안군 칠원읍, 칠서면, 칠북면 지역에 해당된다.

칠원현의 읍치는 현재 칠원초등학교 주변일대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주변을 표현하였다.

읍치을 중심으로 남측에 상리면, 북면과 서면 그리고 구산면으로 4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지도 상단에 있는 수계는 영산계에 면한 낙동강으로 篾浦津, 金浦津, 亏叱浦津 3개의 나루터가 있다.

중앙에 남북방향으로 읍내를 가로지르는 하천은 현재의 광려천에 해당되며, 읍성을 경계로 분기되는 상단의 하천은 운곡천, 하류의 하천은 칠원천에 해당된다.

 

주변의 지형은 읍치 북측에 德山이 등장한다. 칠원현의 주산은 동측에 있는 청룡산이나 지도상 표기가 누락되어있는 반면 덕산이라는 명칭이 등장하게 된다. 방안식 조선지도에는 청룡산과 城山이 나타나는데, 위치상으로 성산과 덕산은 같은 산일 가능성이 높다.

장춘암을 품은 산이 무릉산으로 창원부 북면에 면한 산이다.

서측에 있는 안곡산 봉대 주변의 산 이름은 생략하였으며, 남측 구산면에 청량산이 표기되어 있으며, 임해군방둔소 에 면하여 大峙山封山이 나타나고 있다.

대체적으로 주요 산세는 비변사 지도를 참조하여 그렸으나 대부분의 산지명은 생략하였다.

 

공공건물은 읍치 인근에 향교와 내원암, 묵사, 장춘사가 있으며, 상리면에는 덕연서원이 있다.

구산면에는 구산진과 선소와 해창 그리고 (수정포)稅所와 淑媛房屯所와 臨海君房屯所가 배치되어 있다.

봉화는 구산면의 창원봉대에서 안곡산 방대를 거쳐 영산계로 연결된다.

역원은 창인역이 있으며, 주요 교통로는 생략되었다.

인접 군현 길목의 고개를 살펴보면, 동측으로 내서면 감천으로 넘어가는 甘溪峙, 서측으로 함안으로 넘어가는 於嶺峙險阨, 구산면에서 서측 진해현으로 넘어가는 東田峙險阨 등이 있다.

 

구산면에서 해창의 위치는 현채 덕동 하수종말처리장 위치로 판단되며, 구산진이 설치된 곳은 현재 구산면 수정리 일대로 보이며, 선소의 위치는 STX에서 조선소를 설치하려고 했던 ‘수정 일반산업단지’ 위치에 해당된다.

지도 남측의 저도는 구복리 저도로, 최근 콰이강의 다리에 설치된 바닥투시경을 통해 인기를 끌고 있는 명소이다.

 

 

 

구분

소분류

명 칭

행정

면.리

上里面, 西面, 北面, 龜山面

4

자연지리

산천

德山, (구산면) 淸凉山,大峙山

3

고개

於嶺峙險阨, 甘溪峙, 東田峙嶺阨

3

나루터

蔑蒲津, 金浦津, 亏叱浦津

3

기타

穴岩, 猪島

2

인문지리

공해

龜山鎭, 海倉, 船所, (水晶浦)稅所, 臨海君房屯所, 淑媛房屯所

6

교육

향교, 덕연서원

2

사찰

長春寺, 墨寺, 內院庵

3

역원 등

靈浦驛, 昌仁驛

2

烽燧

안곡산봉, 창원봉

2

 

 

칠원현 광여도 地志

 

- 별도의 地志에 수록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세부 내용

행정

군사

호구

- 호구수 : 2,970호

- 인구 : 10,551명 (남자 5,140명, 여자 5,411명)

2

군병

- 京各司諸色軍 : 564명

- 監營屬 : 90명

- 統營屬 : 541명

- 右兵營屬 : 282명

- 金海鎭屬 : 609명

= 합계 2,086명 

 5

지리

시설

기타

시설

- 구산진 : 官距 53리, 전선1척, 병선1척,

- 덕연서원 : 사액서원

- 昌仁驛 : 대마1필, 기마2필, 복마10필

- 靈浦驛 : 대마1필, 기마2필, 복마9필

- 船材封山 : 청량산, 선두산, 대치산, 시궁산, 저도주면

4

경제

量付

- 전 1,736결36부, 실결 966결 23부

- 답 877결60부, 실결 593결92부

 

곡물

- 別餉米 : 514석 9두, 租10석 13두

- 元會米 : 44석 7두, 잡곡 434석 9두

- 常賑米 : 264석 10두, 잡곡 1,887석 4두

- 監營米 : 5두, 잡곡 6,259석

- 統營米 : 253석 12두, 잡곡 1,662석 13두

- 浦項雜穀 : 469석 5두

- 私賑雜穀 : 1,077석 1두

- 帖價牟 : 326석 9두

- 備荒租 : 551석 3두

- 儲置米/저치미 : 782석 6두

- 除留米 : 70석 6두

- 各樣軍作米 : 119석 9두

- 射軍作牟 : 590석 14두

12

 

비변사지도에 수록된 지지내용과 동일하다. 1760년 제작된 비변사 지도와 19세기 초반사이에 약 40년의 시간 차이가 있지만, 인구 및 군사, 조세 및 경제 지표의 변동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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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1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4) - 강점제3시기

오늘부터는 1930년대 이후 마산 도시변화와 관련한 신문보도를 기사와 함께 소개하겠습니다. 간단한 기사가 대부분이지만 꽤 볼만한 기사도 있습니다.

 

1. 먼저 1931년 7월 23일자 동아일보 3면에 게재된 돗섬 관련 기사입니다.

제목은 「納涼村施設 마산 저도에」이며 기사는 「마산부에서는 여름 동안의 피서지(避暑地)로 마산부 저도리(猪島里, 돗섬)에 납량촌(納凉村)을 신설할 터이라 한다」로 되어 있습니다.

부민들을 위해 돗섬에 어떤 피서시설을 만든다는 내용인데 건물을 짓는다는 건지 해수욕 시설을 조성하는 건지 이 기사만으로는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겠습니다.  

 

2. 1933년 11월 19일자 동아일보 3면에 게재된 몽고정 관련 기사입니다.

제목은 「馬山 蒙古井 大谷博士 證明」이며 기사는 「지난 14일 성대교수 대곡(大谷)박사가 사적 연구차 내마(來馬)하여 부내(府內)의 고적을 시찰한 후 구마산 신정(新町, 현 추산동) 진주선 철교 밑에 있는 몽고정(蒙古井)을 보고 중년에 민간에서 판 것이 아닌 것을 단언하였다한다. 몽고정의 유래는 신사(辛巳)7년(일본홍안4년) 원세조 홀필열(忽必烈)이 고려국을 침략하고 일거 일본은 정약하고자 동정군(東征軍)을 금일의 마산, 당시 합포에 주둔케 하였을 때에 병졸의 음료수로 이 몽고정을 팠다고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 고려시대에 판 몽고정의 조성시기 진위여부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었나 봅니다.

 

 

3. 1934년 4월 3일자 동아일보 5면에 게재된 벚꽃 관련 기사입니다.

제목은 「南國의 花信 馬山川畔의 앵화 칠팔일경에는 만개」이며 기사는 「같은 남조선에서도 화도(花都)로 유명한 마산의 앵화(櫻花, 벚꽃)는 만개가 예년보다 7,8일 일찍 필 모양으로 금월 7,8일 경이 보기 좋으리라 하는바 금년에도 부산 대구 진주 방면의 화객들을 위하여 철도국에서는 임시열차를 운행하리라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남조선에서 화도(花都)로 유명한 마산의 벚꽃,,, 그 시절로 돌아 가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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