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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3 00:00

'건축가' 마을을 살리다 : 서천 어린이도서관

건축가의 사회참여에 대하여
건축가의 사회참여는 건축물의 설계를 통해 지어진 후 일반인들에게 제공됨으로써 구현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념이다.
그것도 공공적인 성격을 가진 건물에 한하여 특수한 경우에만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일례로서 얼마전 작고하신 정기용선생님은 '기적의 도서관' 시리즈는 어린이 도서관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여 주목을 받은바 있다.
그 외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를 통해서 나타내거나,
글을 통하여 잘못된 도시건축의 행태를 비판하는 정도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고 건축가가 '마을 만들기'사업을 직접 기획하고 설계에서 시공까지 손수 마무리 하는 모습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게되어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 농어촌 건축대전'행사에 참여하면서
얼마전 '한국농어촌건축대전'행사에 참여하는 관계로 충남 서천군 문산면에 있는 조그마한 건물을 탐방할 일이 있었다.
'농어촌건축대전'의 목적은 도시의 건축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디자이너의 관심 밖에 있는 농어촌지역의 건축물에 대하여 농어촌의 주거환경 개선과 지역의 전통과 문화적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라고 하였다.
탐방했던 '서천 어린이 도서관'은 건물의 디자인도 시골 풍경에 잘 어울리기도 하였지만,
단순히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라 건축가가 초기에 건축의 프로그램 기획에 참여하여 농촌지역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축적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시공과정까지 책임을 지고 실험적으로 지어진 건축물이었다.

● 건축가 주대관
건축가 주대관은 일찌기 (사)문화도시연구소를 통해 지역사회의 주거복지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2002년부터 농촌지역의 주거환경 및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하여 왔었다.
이번에 소개할 '서천 어린이 도서관'사업도 그러한 프로그램의 하나로 완공된 사례이다.

(사) 문화도시연구소의 사업개요
- 건축가 주대관이 대표로 있으며. 지역사회의 주거복지 대안을 모색하는 비영리 건축단체이다.
- 2002년 강원도 태백시 철암지역의 건축도시작업을 일호나으로 시작하여 올해로 7회째를 맞는 문화도시연구소의 집짓기 사업은 단순한 자원봉사프로그램을 넘어서 사회학적 문제들에 대한 프로그램적 대안을 모색하고 실험, 제안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 2005년 강원도 인제에 노령화와 주택의 노후화로 인한 농촌지역의 노인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천적 대안의 모색으로서 '마을단위 공공임대주택'개념을 적용하여 마을회관에 인접하여 마을공유 공동주택을 3동 신축하여 극빈 노약 노임들이 무상거주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 2006년 양구 농촌집짓기에서는 시장과 공공 모두에게 소외된 농촌지역으 거주환경 전방에 문제점들을 인식하여 '빈집 리모델링'프로그램을 진행하여, 빈집의 마을매입과 리모델링을 통해 공공시설의 확보와 귀농주택의 마련과 공급, 노인계층 주택의 단열과 난방개선사업을 진행하였다.
- 2008년 서천의 농촌집짓기 사업은 고령화가 40%이상이고, 취학아동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을 고려하여, 건축가가 마을단위 도서관을 건립하여 운영하게 함으로써 농촌지역의 문화적 구심점을 만들고, 이를 통하여 농촌마을의 문화적, 교육적 소외를 개선하기 위
한 대안으로 제시된 프로그램이 '서천 어린이 도서관'의 탄생배경이다.

(건축물+ 잔디마당= Good)


● '서천 어린이 도서관'의 사업과정
- 설계 : 주대관 + 김승희
- 시공 : 2008 서천농촌 집짓기 팀
: 서울시립대 건축과 학생을 비롯한 여러대학의 건축학부 학생들의 자원봉사로 이루어졌다.
: 연인원 1,860명의 학생들이 현장에서 자체 숙식을 해결하며 노가다(?)를 하였단다.
- 자재협찬 : 도시문화연구원에서 각종 자제업체에 협찬을 받어 이루어진 사업이다.
: 전체사업비는 2억 5천 8백만원에서 업체의 후원에 의한 사업비가 1억 4천 6백만원을 차지할 정도로 관련업체들의 협찬에 의해 이루어진 사업이다.
* 협찬업체 : (사)한국 목구조건축협회, 캐나다 우드, 한국라파즈석고보드, 건설화학공업, 오웬스코팅 비엠코리아. 이건산업, 한국종합목재, 수튜가이 이엔시, 지열공사업체 등이다.

● 건축개요


- 위치 : 충남 서천군 문산면 신농리 29-4
- 건축규모 : 지상2층 (230M2)
- 총사업비 : 258, 693,700원 (인건비는 자원봉사자 해결)
- 사업기간 : 2008. 7. 1 - 8. 10


건축 평면
- 평면구조는 좌측방향(서측)에 현관이 있으며, 남측면에 도서열람실이 상단에 마을 사랑방이 배치되었다.
- 2층은 세미나실이 다락방과 같은 구조로 놓여있다.


건물 외관

(목구조+찰판마감)+협찬에 의해= 담백한 형태죠!

(배면모습도 한백년은 끄떡 없을것 같죠!)


실내 전경
:

(현관홀 모습 : 약간은 중성적이죠-열람실과 중앙홀 에서 외부 채광이 풍부하게---)

● 디테일

(주민회의실 모습 :장서를 모으기 위한 형태입니다. )

주민회의실모습입니다.

- 주변은 서가의 모습이고,주민들의 회의 공간입니다. 쨘한 모습입니다.

(어린이 + 노인 + 주민의 생활을 통해 새로운 이정표 역할을 할 것 같읍니다.)

마무리 하면서
건축가가 해야 할 의무를 다시 새기게 되었읍니다.
건축물의 외형적, 조형적 디자인의 개선뿐만 아니라
소외된 지역의, 노약자를 위한 건축적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과 함께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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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옥가실 2011.07.13 17:1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와, 멋지군요.
    수고했습니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거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꼬...^^

    • 허정도 2011.07.13 17:40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러게 말입니다,,,

  2. 박미란 2011.07.14 14:1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같이 동행했던 농어촌공사 박미란입니다.

    알맞은 자리에 좋은 동기로 모인 사람들이 만든 건강한 건축을 보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좋은 건축물을 이렇게 널리 알려주시니 더 좋은데요 ^^

  3. 주환섭 2011.07.14 17:5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교수님~
    참 단백하고 정갈한게 깊이가 느껴집니다.

  4. 강복근 2011.07.17 12:3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잘보고 읽었습니다

  5. 삼식 2011.07.18 11:0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박미란선생님
    방문 감사합니다.

  6. 호태 2011.07.21 23:5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건축디자인이 시골스럽다고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건축을 위한 공공디자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가장 중요한 사람이 없는 건축은 아무데도 쓸모 없다.
    도시민들의 생각으로 시골을 꾸민다는 것은 오만하고 방자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골사람들의 생활공간이지 도시민들의 생활공간은 아닐 것인데 건축설계의 기본 바탕에 도시가 깔려 있음을 느낄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다.
    바탕에 시골이 깔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건물(건축)이 아니라 지역민들의 정신 및 정서를 이끌어내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후에 건축에 대한 필요성이 느껴지면 그제서야 사람이 있는 건축물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7. 나나소 2012.04.25 15:4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늦었지만 정정부탁드립니다. "(사)도시문화연구소" 가 아닌 "(사)문화도시연구소"입니다~^^

2011.03.23 10:26

한 건축가가 세상을 떠난 후 생각해 본 집의 의미



지난 3월 11일 오전 건축가 정기용 선생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건축계에서는 대가의 반열에 오른 분이라 모르는 분이 없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이름일 겁니다.
하지만 진해에 있는 '기적의 도서관'의 설계자라고 하면 '아~' 하실겁니다.
역시 건축가는 이름도 얼굴도 아닌 그가 남긴 건축물로 기억되는가 봅니다.



'기적의 도서관'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건물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내부에 들어가보면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선이나,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공간은 아무곳에나 철퍼덕 앉아 책을 펼치고 싶은 맘이 절로 들게 합니다.   
도서관을 사용할 아이들의 입장에서 모든 시설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봉하마을 노무현대통령 사저를 비롯해, 2004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 한국관 설계를 맡았고, 부산 민주공원 등 굵직한 공공시설들을 설계하였으며, 생태건축이라는 용어도 낯선 시절부터 자연과 건축의 공존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근래에 진행된 '무주 프로젝트'는 정기용 선생의 철학이 잘 녹아있습니다.
전북 무주군과 함께 군청, 도서관, 운동장 등 공공건물을 '주민의 쓸모'를 원칙으로 사용할 사람의 필요에 따라 지었습니다. 

마을회관에는 노인들이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목욕탕을 짓고, 무주공설운동장의 관람석은 등나무로 덮어 경기가 없더라도 주민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주었습니다.


그는 공공건축가로 불릴 정도로 많은 공공건물을 설계하고, 대형 프로젝트도 진행했지만 늘 가난한 건축가였습니다.

그의 설계를 필요로 하는 많은 공적인 시설을(이를테면 지역에 있는 이름없는 사회단체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계약관계'없이 흔쾌히 그려주었던것이 한 이유입니다.

그는 생전에,

"사유지 안에 세워지는 건축은 동시에 지구 위에 구축되는 건축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태생이 공공적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건물의 공공성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참으로 공감가는 말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건물이 태생적으로  공공적이라면 그 쓰임도 공공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요?
가족과 정을 나누는 따뜻한 보금자리?
그저 재산증식의 수단?

집 한칸 없는 사람이 태반인데, 한사람이 수십채의 집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100주 연속으로 전세값이 올라 전세대란이 와도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10평짜리 집을 싹밀어내고 4,50평 아파트를 지어도,
10평짜리 내집에 살던 사람이 변두리 셋방으로 쫓겨나도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이러한 일들이 현재진행형이고 이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연예인 한명 군대가는것 보다 이슈가 되지 못합니다.
 

이 모든것이 집을 공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개인의 사유재산으로만 바라보는 자본주의적 인식에서 나옵니다.

적어도 생존과 관련된'의식주'문제 만큼은 시장경제 논리에 맡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쌀은 국내에서 생산하는 원가 보다 훨씬 싸게 수입할 수 있습니다.
시장논리 대로라면 국내에서는 모두 쌀농사를 그만두고 수입해서 사먹는게 더 이익입니다.

하지만 보조금을 지급하면서까지 쌀농사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식량은 바로 생존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이유로 수입이 불가능해졌을때 대체할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똑같이 생존과 관련된 집 문제는 왜 시장논리에만 맡기는지 이해할수 없습니다.
집을 공적인 개념으로 바라보고 정책을 세우지 않는이상, 수백만채의 아파트를 지어도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가진사람이 더 가질뿐, 없는사람은 더욱 힘들어질 뿐입니다. 


흠모하던 건축선배의 죽음앞에 건축을 대하는 제 자신에 대한 반성과 함께 두서없는 넋두리를 하였습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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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식 2011.03.23 10:5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삼가 고인을 명복을 빕니다.
    ㅠ _ ㅠ

  2. 허정도 2011.03.24 09:4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그래요, 집이 없어서 집을 못가지는 것이 아니고 돈이 없어서 집을 못가지지,,,

  3. 공미 2011.03.30 16:2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주거관련 공익 사업을 하는 단체를 조사하던 중 한국인에게 집의 의미는 무엇일까를 인터넷으로 날림으로 검색하던 중 읽게 되었습니다.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11.03 01:00

노무현 대통령이 계시는 곳. '소석원(小石園)'


지난 여름, 봉하마을을 방문한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노무현대통령 묘역을 방문하기 위해서였지요!
당시 너럭바위 형태의 지석묘만 참배를 하고 왔던 기억이 납니다.
올 5월에는 서거 1주기를 맞아 묘역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묘역이 그저 그렇겠지 하는 생각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지나쳐 왔었습니다.
그러다가,
며칠전 건축잡지에 소개된 노 전대통령의 묘역의 설계과정에 대해 글을 보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습니다.
묘역을 건축적으로 풀어가는 과정도 새삼스러웠지만,
건축가가 본 노대통령에 대한 평가, 그리고 이러한 사고를 담아내기 위한 노력들이 묘역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 여러분들에게 알리고 싶어졌습니다.
참배시 이러한 의미를 느낄 수 있다면, 노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마음이 경건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좌측이 봉하마을 그리고 생가, 현재의 사저, 우측 삼각형부분이 묘역입니다.)


 
< 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 -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 소석원(小石園) > 
- 건축가 승효상은 노무현 전대통령의 묘역을 '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 기득권자가 경계 밖으로 자기를 몰아내어 경계안의 사람들을 질타하는 위치를 향해 스스로를 추방시킨 시대의 지식인의 모습으로 그를 평가하였습니다.
- 스스로를 제도권 밖으로 추방하는 자, 노무현 대통령은 길지 않은 삶을 사는 동안 거의 항상 자발적인 추방인이 되어 결국, 그렇게 세계 밖으로 스스로를 영원히 추방하고 말았다고 건축가는 설계에 임하는 비장한 각오를 밝혔습니다.
- 건축가는 죽은 자를 기념하는 장소에 대한 해석을 '죽음의 행로를 마주하며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장소인 이곳에 서게 되면, 사는 일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느끼게 한다. 여기서는 삶의 행로가 죽음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의 가슴에 그대로 살아 진행되는 것이다.'고 해석을 합니다. 
- 그리고 묘역의 개념을 절제를 통한 진정성 획득을 위하여 고민을 하게 됩니다.

(묘역 진입로 : 바닥의 거친 박석은 고인의 인생 역정처럼 경건한 추모의 장소로 인도합니다.)


< 묘역의 컨셉은 종묘의 월대 >

- 그 답을 건축가는 종묘에서 찾았습니다.

- 종묘는 조선왕조의 신위를 모신 장소입니다.
- 종묘 정전의 장중한 자태는 위엄에 찬 모습에 침묵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분위기는 마치 산자와 죽은자가 본원의위치를 떠나 서로 만나게 되는 중간영역입니다.
- 경건하고 침묵이 전체를 지배하는 공간을 '소석원' 설계 개념의 근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 역대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600년 역사의 종묘의 월대에서 묘역의 모습을 찾았다고 합니다.)


< 묘역의 배치 :  수반 - 헌화대 - 지석 >
- 묘역은 사저에 인접한 삼각형의 부지 약 3,500평방미터에 조성되었읍니다.
- 아마도 산자의 집 양택과 사자의 집 음택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도 참 드문 경우인 것 같습니다.
- 이등변 삼각형의 끝부분이 진입로에 해당됩니다.
- 진입부의 삼각형 부분은 수반(연못)을 설치하여 일상공간과의 접점으로 연꽃을 띄우고, 노무현 대통령의 별자리를 수면에 조명등으로 심어서 상징화된 공간으로 배치되었습니다.
- 종묘의 월대와 같이 몇개의 계단을 통해 역삼각형태의 광활한 광장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 물길 을 지나 헌화대를 맞이하게 되며, 다음 물길을 지내 지석에 면하게 되어있습니다.
- 지석묘역이 있는 배경에는 내후성강판 (코르텐강:녹슨 상태를 정지시킨 특수 철판)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일반사람들에게 생소한 뻘건 철판을 설치한 이유는 긴장을 불현듯 조성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 이 재료는 햇빛과 그늘에 따라 달리 보이며, 다양한 기후 변화에 따라 짙은 수묵의 이미지를 보이는 특수성 때문에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상단부분의 진입로에 수반이 있는 곳을 가로질러 가운데있는 계단을 통해 들어선다. 중앙의 헌화대를 지나서 너럭바위에 도착하게 됩니다. )


< 지상의 비석은 儉而不陋하게 지하의 봉분은 華而不侈하게>  
- 묘의 형식은 유홍준 위원장이 남방식 고인돌의 모습을 연상하였답니다.
- 박석위에 깔린 바닥 위에 놓인 봉분함은 너럭바위가 아주 작은 비석을 대신하고 있읍니다.
- 황지우 선생은 박석의 비문에 대해, 애도하는 국민들이 쓴 구구 절절함보다 더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답니다.

- 일천평 남짓한 삼각형 땅에 21세기의 지식인들의 의식과 비통한, 애절한 마음을 간결하게 표현한 묘역, 아니 고인돌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은 새로 지은 궁궐을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게'라는 의미로 쓰인 '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의미를 비석에 담았다고 합니다.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라는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따른 결과입니다.)


< 묘역은 '사람사는 마을'의 평면: 판석 하나는 집한채, 흰돌은 골목, 그리고 수로 >
- 박석디자인은 임옥상 선생에 의해 이루어 졌다고 합니다.
- 박석으로 포장되는 표면의 표정을 '사람사는 세상'의 어떤 마을의 거리의 평면을 모티브로 시작하였답니다.
- 검은 돌 하나가 집한채, 하얀돌은 골목길(골목길은 추모글인 적힌 추모석에 의해 이루어졌답니다.
- 전통적인 시골마을 처럼 하천도 있고, 저수지도 있으며, 선현을 모시는 사당이 있는 마을의 축소판으로 보여집니다.

(박석의 바닥배치는 임옥상 선생이 사람사는 세상의 마을 거리 평면도에서 착안하였답니다.마을에는 2개의 하천이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박석디자인 : 전대미문의  설치미술>
- 1만 5천명의 참가예술
- 바닥의 박석은 국민들이 애절히 쓴글을 신청받아서 이루어졌다. 마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주변의 널부러져 있는 돌들을 모아서, 조각난 그 돌들의 하나하나의 형상에 콜라주 하듯 길바닥 포장을 디자인하였다고 합니다.
- 글씨가 들어가는 박석은 돌의 개수를 세어 만개의 박석을 국민모금을 통해 신청받은 것이, 불과 얼마지 않아  숫자가 넘쳐서, 빗발치는 요구로 5천개를 더하여 만들어진, 그야말로 미술이라면 전대미문의 설치미술로 현장에 남아있답니다.
- 이러한 박석에 새겨진 간절한 글귀는 1만 5천명의 '자발적 추방자'들과 함께 영원히 남아있을 것같습니다.

(길에 해당되는 바닥에는 1만 5천개의 박석(자발적 추종자)을 깔았습니다.)


< 성찰적 풍격을 위한 묘역 >
 건축가가 생각하는 묘역의 장소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장소는,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었던 같은 시대 속에서 나의 존재가 다른 이들의 풍경이 되었음을, 그래서 같은 공동체를 만들었음을 기억하는 장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모두가 보편적 가치를 만들었음을 기억하는 장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결국 우리 자신의 성찰을 구하는 장소로, 성찰적 풍경(meta landscape)으로 만들었음을 기억하는 장소기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마무리하였습니다.
 - 훌룡한 집을 짓는 건축가는 그 공간(장소)를 통해 연출될 주인공의 정체성 파악이 우선!
 - 가시적인 형태 구축보다 공간(장소성)에 대한 의미부여의 중요성을 느끼게 합니다.

(검은 박석하나가 집한채이며, 흰색박석은 골목길, 그리고 마을에 2개의 하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 스스로 추방된 자의 고귀한 가치를 찾는 풍경이 되기를   >>
- 이 묘역 조성은 유홍준, 승효상, 황지우, 안병욱, 정기용, 임옥상, 안규철로 구성된 '작은비석 위원회'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 이 외에도 묘비명은 신영복선생과 지관 스님, 최가철물의 최홍규사장, 금강석재의 윤태중사장, 동인 E$C의 김천식사장, 그리고 박석에 새긴 1만 5천명의 추모의 글귀에 의해 완성되었답니다.
- 그리고 정연선 선생은 주변 조경을 뒷산에서 흘러내려오는 소나무를 뒤 배경으로 하여 비파나무를 겻들였다고 합니다.
- 건축가 승효상은 묘역'소석원'에 대한 바램으로
'누구든지 자기 존재의 의미에 대해 묻고자 할 때, 그로 인해 고독하고 적막할 때 여기를 찾아 월대 위에 서서 추방된 자의 고귀한 가치를 찾는 풍경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나는 세속적인 제도권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하였는지?
그렇치 않으면 스스로를 추방시킬 대상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합니다. <<<




* 소개된 사진은  'C3' 314호(2010년 10월호)에서 인용하였습니다.
Trackback 1 Comment 2
  1. 옥가실 2011.01.20 14:2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음...
    건축가가 설명해 주니,
    공간의 의미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고맙습니다.

  2. 삼식 2011.04.08 11:3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방문감사합니다.
    그리고 정확한 지적까지 해주시니,
    봄이 오니
    또! 그날이 생각나는군요.

2010.09.22 00:00

건축가 정기용과 '진해 기적의 도서관'

한가위 즐겁게 보내십시오! ^^

며칠 전, 어린이전용도서관인 '진해 기적의 도서관'에 다녀왔습니다.
MBC '느낌표'가 탄생시킨 '기적의 도서관'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겁니다.

시민단체에서 주관한 도시문제토론회 당일, 진해도시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살피다가 도서관에 들렀습니다. 



건물도 훌륭했지만 건물보다 더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이 작은 도서관이 사용되고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도서관 내부에 흐르는 짙은 사람냄새에 놀랐습니다.
책을 읽는 아이의 모습과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너무 오랜만에 보았습니다.
낡은 흑백사진처럼 기억에만 남아 있는 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장면을 '기적의 도서관'에서 오랜만에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컴퓨터와 TV  앞에만 앉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내 기우가 편견이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기뻤습니다.
진해의 한 언저리 '기적의 도서관'에서 기적이 솟고 있었고 희망의 싹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도서관을 설계한 이는 건축가 정기용 선생입니다.
그와 나 사이에 개인적 인연은 없습니다.
나는 그를 알지만 그는 나를 모릅니다.
나는 그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지만 그는 나의 존재조차 모릅니다.
나는 그와 관계가 있지만 그는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내가 정기용을 처음 알게된 것은 저널에 그의 작품이 소개되면서였습니다.
하지만 정기용이라는 이름이 내 머리에 각인된 것은 한 권의 책 때문입니다.
열화당에서 출판한 '이집트 구르나 마을 이야기'라는 번역서 때문입니다.
오래 전 이야깁니다.

그 책은 '구르나'라는 작고 가난한 마을에 바친 이집트 카이로 대학 건축과 교수이자 세계적인 흙건축가 '하싼 화티'의 자서전입니다.
두 번 읽었고, 이집트를 여행할 때 직접 '구르나 마을'을 찾아 가보기도 했으며, 대학원 세미나 때 요약해 발표한 적도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건축을 공부한 정기용은 역자서문에서 이 책을 일러 '70년대 유럽의 건축학도들이 마치 건축성경처럼 읽었던 책'이라고 했습니다.
내용도 철학도 없이, 그저 크고 사치스러운 것들만 쫓는 한국 대학의 건축교육을 비웃듯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싼 화티는 나에게 건축가가 사회 속에서 존재해야할 가치를 심어주었습니다.
건축가의 존재이유와 건축가의 사회적 사명에 대해서 가르친 그는, 젊은 건축가였던 나를 깊은 감동에 빠뜨렸습니다.
모든 것이 건축가 정기용, 그의 덕분이었습니다.

'진해 기적의 도서관'을 찾아간 것도 이 도서관의 설계자가 정기용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축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그의 건축세계를 음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대했던대로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잘게 잘라 놓은 아기자기한 공간들이 좋았고, 자유롭게 앉고 누워 책을 잡을 수 있도록 유도한 장치들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자연광을 받되 직사광선을 피했고, 권위와 형식 대신 호기심과 편안함이 흐르는 인간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씁쓸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건축가에 대한 이야깁니다.
도서관을 소개하는 자료에도, 홈페이지에도, 도서관을 구경한 뒤 쓴 여러 글들에서도, 이 아름다운 도서관을 디자인한 건축가가 누군지 말하지 않은 점입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도서관 홈피였습니다.
아래 표가 홈피의 도서관 연혁부분입니다.

                           
도서관 홈피에서 건축가를 꼭 밝힐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건설회사는 밝히면서 건축가를 말하지 않는 무지한 현실이 너무 씁쓸했습니다.
내가 건축가라서가 아닙니다.
'앙드레 김' 대신 봉제사를 알리는 무지가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소문에 건축가 정기용 선생은 투병 중이라 합니다.
가까운 김해에 그가 설계한 '김해 기적의 도서관'이 건축 중입니다.
지난 봄 착공식에 바바리 코트 차림으로 참석했는데 매우 수척해보이더라는 말을 전해들었고, 그 후로 한 번도 직접 내려오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내 눈에 비친 그는 '자연과 인간의 상생'에 자신의 건축을 던진 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남긴 그의 작품들에서 내가 받은 메시지입니다.
최근 들어 생태건축이 각광 받는 현상을 보면, 그는 분명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의 건축가입니다.

위대한 건축가가 오래 머문다는 것은 한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크게 유익한 일입니다.
그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Trackback 1 Comment 8
  1. 포세이동 2010.09.23 17:2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추석 잘 쇠셨는지요. 잘 읽었습니다.

    • 허정도 2010.09.23 22:13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추석 잘 지내셨죠?
      날씨가 선선해져 참 좋습니다.
      좋은 계절에 좋은 일들 많이 생기시기 바랍니다.

  2. 김종국 2010.10.01 13:5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공감합니다.
    우리와 동떨어진 디자인으로 넘쳐나는 시대에
    진실함이 사라지고 있어 슬픕니다.

    • 허정도 2010.10.01 18:48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튼 정기용 선생의 건축가정신은 배울 점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3. 연희 2010.12.31 20:3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일민미술관에서 정지용선생님의 <감응>전시를 보고왔어요. 넘 넘 좋은 전시였답니다. 이렇게 한번도 글을 남겨본적이 없는 저였는데....너무 좋았기에 그 분의 이름과 건축에대한 생각을 생각하며 몇자 적어봅니다. 그 어떤것 보다 삶이 우선이라고...나무는 많이 배우지도 않았는데 열매를 맺고 곤충들의 놀이터가 되고....정지용선생님을 전혀 알지 못하지만 작품을 통해 그 분을 알고 싶어졌습니다. 책을 사서 읽어보려구요...

    • 허정도 2011.01.01 11:22 신고 address edit & del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정기용 선생의 책을 읽어 보신다니 반갑군요.
      '사람 건축 도시'를 권하고 싶습니다.

  4. 안상범 2012.03.13 13:3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우연히 ........
    뭐, 다 인연이 있어서이겠지요마는
    정기용선생의 작품을 써핑하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가아는 허정도 건축가님이 맞으신다면 제이름도 아실것이기에
    설명 드리지 않습니다.

    자는 캐나다에 있습니다.
    마침 제가 조선일보에 블러그를 하나 가지고 있지요.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아뭏턴 반갑습니다.
    부디 좋은집 많이 설계 하십시요.
    세월이 좋아 지면 뵈올날 있겠지요?
    그날 만 기다립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요.


    http://blog.chosun.com/blog.screen?userId=arkitect

    • 허정도 2012.03.13 13:51 신고 address edit & del

      안 형, 이게 얼마만입니까, 건강하시죠?
      캐나다 있다는 이야기는 풍문에 들었습니다.
      이렇게라도 만나니 참 반갑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내려온 뒤부터 지금까지 고향 마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안 형, 늘 평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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