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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9 00:01

일제 강점기 신마산 혼마치(本町)

 

오래된 사진 한 장을 소개한다.

아래 것은 같은 장소에서 찍은 현재 사진이다. 위 사진을 현재와 비교하기 위한 사진이다.

 

 

1910년대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산 월남동 1가(현 3.15대로) 사진이다. 당시에는 혼마치(本町)라 불렀던 중심거리였다.

현 경남은행 신마산지점 앞 쯤에서 월영광장 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이다.

두 사진을 비교해보면 지난 100년간 얼마나 도시가 많이 변했는지 알 수 있다.

사진의 길 왼편이 바다인데, 지금의 해바라기 아파트가 앉아있는 블럭이다. 나중에는 일본인들이 저 해안가에 버드나무를 심기도 했다. 저 바다는 1926년 매립되어 사라진다.

오른쪽 도로변의 일본식 건물들은 규모가 상당히 크다. 대부분 목조였고 3층건물도 있다. 도로는 비포장이었다. 길 양쪽을 줄지어 선 나무 전봇대가 인상적이다.

사진의 배경이 되는 뒷산은 무학산과 이어진 대곡산 줄기이다.

옛 사진에서 오른쪽 도로변으로 저 멀리 건물 한채를 자세히 보면 단층인데 층고가 높은 건물이 있다.(왼편 해안이 끝나는 지점 쯤. 벽체가 검게 보임) 지금 월남동 성당이 앉아 있는, 당시 일본제일은행 마산출장소 건물이다. 잘 생긴 건물이었다.

사진의 곳은 '신마산'이다.

조계지로 개항된 땅 신마산은 일본인들이 붙인 지명이었다. 자신들이 새로 건설한 마산이라는 의미였다. 

반면 전통도시 마산포는 구마산이라 불렀다. 낡고 오래되었다는 의미였다.

마산포 주민들은 이를 못마땅해 했다.

하지만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일이었다. 강점기 내내 그렇게 불리었고 그 관습이 지금에 왔다.

·(·) 속에 담긴 뜻은 오래 전에 사라졌지만 생명력 강한 지명은 아직 살아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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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4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61. 은행

61. 은행

 

이곳에 제1착으로 은행이 설치된 것은 일본 굴지의 재벌인 삽택영일계(澁澤榮一系)의 제일은행 출장소. 현재 신마산 진일기계 제작소 건너편에 있는 천주교당(현 월남동 성당-옮긴이) 자리이다. 물론 한일합병 전이며 그곳이 조선은행 출장소가 되었다.

 

<제일은행 마산출장소 신축 기념 사진 / 1907년>

<위 제일은행이 있었던 마산월남동 성당>

 

그 뒤에 조선식산은행 출장소로서 8·15 후에 구마산 지점으로 합병되었는데 조선은행 출장소 시절에는 조선인 행원이라고는 칠원인 김성현 단 한 사람뿐이었다.

1911년경에 식산은행(현 제일은행) 후정(後庭) 서북 모서리에 목조 평옥(平屋)의 농공은행 마산지점이 설치되었으며 노폭은 현재대로였으나 신작로로 확장되면서부터 현재 건물로 신축했었다.

그래서 은행이라고는 일본인들의 독점 경영하는 것뿐으로 조선인 상인들은 부득이 이 은행 외에 거래할 곳이 없었다.

1918년 여름에 부산에 본점을 둔 조선인 경영의 경남은행이 마산에 지점을 설치했으니 장소는 구 동인의원 자리이며 초대지점장은 마산 재판소 서기를 지낸 김장환이었다. 개점 초에는 상당히 은진(殷賑)하더니 자금 관계인지 개설 4,5년만에 철수하였다.

그 다음으로 신마산에 현재 창원군 농협 구판장 자리에 목조 2층의 상업은행 지점이 설치되고 뒤에 상공회의소 건너편에 신축 이전하였다.

상업은행 전신은 순 조선인으로서 출자 조직된 천일은행(天一銀行)인데 현재 국내 은행 중에서는 최고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일정 때 두취(頭取, 은행장)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박영철이다.

박 두취가 마산지점에 순시를 왔을 때 지점 구마산 이전설에 약기(躍起)한 신마산 일본인 유지가 총동원되다시피 해서 이전 반대 정진(情陳) 소동도 있었으나 6·25를 기하여 오행당 약국 일부로 가이전했다가 현 사옥에 자리 잡은 것이다.

상은(商銀) 마산지점도 개점 초에는 조선인 행원은 문봉상 단 한 사람 뿐이었으며 이 문봉상으로 하여 구마산 상가에는 도움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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