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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5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73) - 강점제3시기

오늘도 재미있는 사진 석 장 소개합니다

23. 구마산공설시장

지금의 부림시장입니다. 1924년 개설된 시장으로 당시 마산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습니다. 특히 마산장날인 매 5일과 10일에는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건물은 연와조와 장가(長家)점포 3채였고 그밖에 아연지붕의 바라크식 건물 여러 동이 있었는데 수많은 노점 상인들이 어울려 저녁시장 시간이면 언제나 크게 붐볐다고 합니다.

 

24. 원동무역주식회사

조선회사령이 폐지되자 1920년 5월 16일 자본금 50만원으로 창립한 마산 최초의 한국인 회사입니다. 이 사진은 1927년 8월에 착공하여 1928년 4월에 준공한 철근콘크리트 2층 현대식 건물로 지은 사옥입니다.

외형이 변하긴 했지만 아직 원형이 남아있으며 건물 앞에는 이 건물의 역사를 말해주는 표지석이 서있습니다.

 

25. 공사 중인 마산공립중학교

마산공립중학교는 1936년 개설한 지금의 마산고등학교 본관입니다. 수년 전에 헐려 없어지고 새로운 건물이 이 자리에 들어섰습니다. 마산공립상업학교(현 용마고, 전 마산상고)가 한국인 위주로 발족한 것과 달리 마산공립중학교는 입학생의 대다수가 일본인이었습니다. 한국인 학생은 친일파 자제이거나 성적이 우수한 극소수의 학생만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헐려 없어진 건물 외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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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4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1) - 강점제3시기

<신포동의 탄생>

1920년대 중반까지 마산의 도시구조는 한국인들이 모인 원마산과 일본인들이 거주한 신마산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두 지역을 연결해야할 중앙지역은 지형적으로도 잘록한 병목형이었을 뿐 아니라 철도용지로 묶여 있기까지 해서 도시발전에 장애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철도용지가 마산부에 불하되어 시가지 형성이 가능해지자 마산세무서․마산부청․경성전기 마산지점․도립마산병원․지방법원 지원․신문사 등 관공서나 공공시설의 건물이 세워지거나 또는 건축예정부지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른바 중앙마산이 공공업무지역으로 재탄생하기 시작한 겁니다.

때를 맞춰 비슷한 시기에 조선회사령도 철폐되자 일본인들이 기회를 놓칠세라 마산의 중앙부 해변에 매축을 계획하게 되어 본 매립이 추진되었습니다.

위치는 현 대우백화점, 어시장, 삼익아파트, 센트럴 아파트단지를 포함한 아래의 넓은 지역입니다.

 

이 대규모 매립공사는 마산매축주식회사에 의해 65,088평 규모로 시행되었는데 그 중 대지는 48,105평이었습니다.

마산매축주식회사(마산시 남성동 221번지)는 오직 이 매립사업 만을 위해 설립한 회사였습니다.

마산매축주식회사에 참여한 사람은 일찍부터 마산에 들어와 미곡상을 하던 송원조장(松原早藏)을 비롯해 서전(西田)양조장 주인 서전목총시(西田木惣市), 대판상선 마산대리점 도본우일(島本宇一)과 부산의 서본영일(西本榮一)과 암전국랑(岩田菊郞) 그리고 일본 고오베에서 사업을 하던 야림치일(野林治一) 등 모두 여섯 명이었습니다.

다음은 매립설계도입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 소장 자료입니다.

 

 

 

매립허가 신청은 1928년 11월 15일하였고 마산부로부터 허가는1929년 6월 14일 받았습니다. 매립공사를 착공한 시기는 1929년 말경이었고 1935년 10월에 준공되었습니다.

마산시사에 의하면 자산동 204번지에서 247번지, 즉 현 자산동 온누리 빌라 남쪽 일대의 임야를 매입한 후 그 흙을 취토(取土)해 공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새로 조성된 토지 48,105평은 신포동 1가 1번지에서 46번지까지의 22,257평과 신포동 2가 1번지에서 113번지까지의 25,848평이었습니다. 당시 기준지가는 평당 1엔30전부터 1엔80전까지였습니다.

이 땅이 현재의 신포동입니다. 일제강점기에 풍정(豊町)이라 불렀던 신포동은 이 매립사업으로 태어났던 겁니다.

이 매립지에는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의 임해창고(臨海倉庫)와 군수․민수용을 다함께 제조하는 대형 장유공장인 환금장유주식회사를 비롯하여 일본광업․질소비료․조선염협 등 대소 기업체들이 입주했습니다.

현재 환금장유 자리에는 삼익아파트가, 옛 의창수산자리는 대우백화점 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산시사와 마산개항백년사 등 그간 편찬된 마산관련 각종 문헌에 의하면 이 신포동 매립지 해변이 월포해수욕장이라고 했는데 이는 사실과 약간 다릅니다.

월포해수욕장은 이쪽이 아니라 1936년-1939년까지 시행된 제2부두와 중앙부두 북쪽 일부였으며 신포동 매립지는 남단에 약간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사실은 여러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1932년 마산공립보통학교에서 발행한 「향토의 교통도(鄕土の交通圖)」입니다.

아래 그림이 「향토의 교통도」의 일부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장군천을 기점으로 좌측이 해수욕장이라고 「월포해수욕장(月の浦 海水浴場)」이라는 명칭까지 정확하게 표기하고 있습니다. 신포동 매립지는 장군천을 기점으로 우측 지역이었습니다.

또 143번째( )로 소개했던 지도 「馬山***」에는 해수욕장 변에 있었던 송림(松林)으로 추정됨직한 나무들이 제2부두와 중앙부두 쪽에 묘사되어 있어서 이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입니다.<<<

 

 

2012/07/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0) - 강점제3시기

2012/08/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1) - 강점제3시기

2012/08/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2) - 강점제3시기

2012/08/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3) - 강점제3시기

2012/08/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4) - 강점제3시기

2012/09/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5) - 강점제3시기

2012/09/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6) - 강점제3시기

2012/09/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7) - 강점제3시기

2012/09/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8) - 강점제3시기

2012/10/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9) - 강점제3시기

2012/10/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0) - 강점제3시기

2012/10/1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1) - 강점제3시기

2012/10/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2) - 강점제3시기

2012/10/2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3) - 강점제3시기

2012/11/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4) - 강점제3시기

2012/11/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5) - 강점제3시기

2012/11/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6) - 강점제3시기

2012/11/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7) - 강점제3시기

2012/12/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8) - 강점제3시기

2012/12/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9) - 강점제3시기

2012/12/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0) - 강점제3시기

2012/12/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1) - 강점제3시기

2013/01/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2) - 강점제3시기

2013/01/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3) - 강점제3시기

2013/01/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4) - 강점제3시기

2013/0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5) - 강점제3시기

2013/01/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6) - 강점제3시기

2013/02/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7) - 강점제3시기

2013/02/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8)- 강점제3시기

2013/02/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9) - 강점제3시기

2013/02/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0) - 강점제3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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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7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7) - 강점제3시기

<강점제3시기의 섬유산업>

1920년 조선회사령이 철폐 후 마산에 들어오기 시작한 산업 중 가장 규모가 큰 분야는 섬유산업이었습니다.

1923년에 설립된 마산조면공장과 1927년에 설립된 태전마산공장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섬유산업의 발전가능성을 간파한 마산상공회의소는 1930년대들어 적극적으로 섬유산업 유치운동을 펼쳤는데 그 결과 조선물산주식회사, 조선신흥방직주식회사 등 대형 섬유공장이 마산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주류양조산업과 섬유산업의 두 축이 마산의 대표산업으로 자리를 잡게된 것입니다.

1930년대 이후 마산에 들어 온 대표적인 두 섬유회사를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1939년 설립된 조선물산주식회사입니다.

오동동 2,200평 부지를 매입하여 건평 1,000평의 공장을 건설한 이 회사는 「낙낙직(樂樂織)」이라고 부른 특수직물을 제조하는 회사로, 일본 오사카의 주식회사 중미(中尾)상점계 회사가 자본금 18만원으로 설립하였습니다.

직기 300대를 설치하고 여자공원 350명을 고용했으며, 외화획득을 목표로 수출용 카펫과 잡화 등 연간 100만원 상당의 제품을 생산했으며 사장은 중미구차랑(中尾久次郞)이었습니다.

해방 후 국회의원과 마산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한태일이 사장을 했던 고려모직의 전신입니다. 한태일은 독립운동가 허당 명도석 선생의 사위이며 시인 김춘수의 동서이기도 합니다.

다음 사진은 해방 직후 찍은 고려모직 모습입니다.

 

다음은 조선신흥방직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1940년에 산호리에 대형공장을 세우고, 직물 누더기를 이용해 재생방직제품을 생산했습니다.

이 공장의 시설은 일본에서도 따르지 못할 정도로 우수한 것이었습니다.

자본금 27만원으로 주식회사로 발족하여 사장에 궁림태차(宮林泰次)가 선임되었고 남여 종업원 500여 명을 고용했습니다. 현 산호동용마맨션 자리에 있었습니다.

일제기에 시작된 마산의 섬유산업 전통은 세계최대규모의 섬유공장 한일합섬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만 지금은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습니다.

다음사은 마산 섬유산업의 마지막 자존심 한일합섬이 없어진 것을 아쉬워하며 마산상공회의소에서 한일합섬 터에 돌비석을 세우고 찍은 기념사진입니다. 비석 바로 오른쪽 밝은 색 상의를 입으신 분이 한일합섬과 창사 때부터 함께한 한일합섬의 산 증인 손춘수 선생님입니다.<<<

 

 

 

2012/07/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0) - 강점제3시기

2012/08/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1) - 강점제3시기

2012/08/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2) - 강점제3시기

2012/08/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3) - 강점제3시기

2012/08/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4) - 강점제3시기

2012/09/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5) - 강점제3시기

2012/09/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6) - 강점제3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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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h.han 2015.02.26 16:1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고려모직 한태일씨는 시인 김춘수씨의 사위가 아니라 동서지간 아닌가요?.....

    • 허정도 2015.03.02 11:14 신고 address edit & del

      아, 실수입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김춘수 시인과는 동서지간이고 허당 명도석 선생의 사위입니다.
      감사합니다

2012.07.23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9) - 강점제2시기

85회부터 시작된 1920년대 마산도시변화에 대한 마지막 포스팅입니다.

일제강점 제2시기인 1920년대는 한국이 일제의 상품시장 및 원료공급지, 특히 식량공급지로 산업구조가 재편되었던 산업수탈기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기만적인 소위 문화정치가 표방되었으며 경제적으로는 산미증식계획이 강행되었고 회사령이 철폐되었습니다.

1920년대의 마산인구는 1920년에 16,165명이었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인구성장의 폭이 조금씩 많아져 1930년에는 25,810명이 되었습니다.

일본인은 1920년 당시 4,172명이던 것이 1930년에는 5,559명이 되어 1920년에 비해 133.2%로 늘어났지만 한국인들은 같은 시기에 169.0%로서 일본인의 증가율에 비해 약간 높았습니다. 

조선회사령 폐지로 마산의 민족자본가들도 회사를 설립하였으며 일본인 역시 기업을 앞세워 원마산으로 많이 진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들이 요인이 되어 1920년대 중반 이후 마산은 원마산의 도로건설과 마산만 해안 전역에 매립공사가 시작되는 등 많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192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원마산 지역의 매립은 박간(迫間)의 매립 때 매립되지 않고 남아있던 동굴강의 일부가 1927년 매립되었고, 1929년에는 오동동일대 해변 1,700여 평이 매립되어 대규모 매립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신마산에도 현재의 경남은행 신마산 지점 건너편 일대 총 10,500여 평이 매립되었고 중앙마산의 해면(현 신포동)도 대규모 매립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처럼 20년대 중반부터 마산은 매립이라는 도시의 대변화가 시작되었으며 이 변화는 해방 때까지 지속됨으로써 도시구조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됩니다.

합방기 이전에 이미 장군천까지 도로가 개설되었지만 건물은 많이 들어서지 않았지만 1920년대 후반에는 철근콘크리트조의 모더니즘 영향을 받은 건물도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건물의 용도는 산업시설과 교육시설 등이 많았습니다. 상수도는 1930년에 처음 사용하였습니다.

1920년대의 특이한 변화는 20년대 중반 이후 신마산과 원마산의 중간 지점인 장군천과 몽고정 사이의 중앙마산에 공공지역을 위주의 새로운 영역이 조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철도용지였던 이곳을 불하하여 가용지로 만들었던 중앙마산의 형성은 마산을 두 지역으로 분절하고 있었던 기현상을 해소해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두 도시가 연담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마산 서쪽 모퉁이에 집중해있던 관공서들이 도시의 중심부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중앙마산의 형성과정은 중앙동2가와 3가에 대규모 도로계획을 입안하여 1927년 총독부의 허가를 얻음으로서 착수되었는데, 허가를 득한 후 이곳을 마산부가 불하를 받아 도로를 개설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원마산은 현재의 추산동과 상남동․교방동 즉 현재의 북마산 쪽으로 범역이 확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원마산 범역 확산의 중요한 이유는 마산과 진주를 연결하는 철도 경남선이 개통된 것과 구마산 역을 중심으로 그 주변 일대가 교통과 유통의 중심기능을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원마산의 상황은 시구개정사업이란 명분까지 갖추어 보다 많은 도로가 개설되었는데 이 과정에 중앙정부의 재정지원까지 있었습니다.

1910년에 이미 개설되어 있던 창동과 남성동 지역의 도로망이 이 때 중성동․오동동․동성동으로 많이 확산되었기 때문에 이 시기를 ‘도로망 확산기’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1920년 기준으로 원마산에서의 일본인 소유 토지는 전체의 35.0%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1930년에는 38.8%로 늘어났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인들의 토지소유는 1920년 62.5%이던 것이 1930년에는 55.2%로 줄어들었습니다. 이 변화는 개인소유의 대지만으로 산정한 결과입니다.

기업과 단체가 사실상 일본인들의 소유였기 때문에 이를 합하면 실제 일본인들의 토지 소유율은 이보다 훨씬 높아집니다.

이런 토지소유율의 변화를 통해 일본인의 원마산 토지 지배는 강점기가 진행될수록 심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일병합 10년이 지난 1920년대,,,,  해안 매립과 중앙마산 개발로 마산의 지도가 완전히 바뀌기 시작하는 시기였습니다.

다음은 1930년 마산지도입니다.

1920년, 1910년, 1899년 개항 당시의  지도와 함께 올리니 비교해보기 바랍니니다. <<<

 

<1930년>

<1920년>

<1910년>

<1899년 개항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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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의 '2차 게재' 중 '강점 제2시기(1920년부터 1930년까지)'가 끝났습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다음처럼 크게 3단계로 나누어 포스팅할 계획이라고 밝힌바 있습니다.

1차 ; 고대부터 개항(1899년)까지

2차 ; 개항이후부터 해방(1945년)까지

3차 ; 해방이후부터 현재까지

 

이미 완료한 '1차 게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고려시대 이전 ------ 9회

조선시대----------- 4회

개항기------------- 12회

합계--------------- 25회 완료

 

'2차 게재'는 다음처럼 구성하기로 했으며 세 번째 순서를 마쳤습니다.

개항부터 경술국치(1910년까지)------------총 32회 (26회부터 57회까지) / 완료

일제강점 제1시기(1911년-1920년)----------총 27회 (58회부터 84회까지) / 완료

일제강점 제2시기(1921년부터 1930년까지)----총 35회 (85회부터 119회까지) / 완료

일제강점 제3시기(1931년부터 1945년까지)

 

'3차 게재' 계획입니다.

산업화 이전시기(1945년부터 1960년대 말까지)

도약 및 전성기(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정체 및 쇠락기(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 본 연재는 마산도시를 연구하면서 확보한 자료를 공유하자는 목적도 있습니다.

혹시 좋은 자료가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2011/11/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86) - 강점제2시기

2011/12/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7) - 강점제2시기

2011/12/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8) - 강점제2시기

2011/12/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9) - 강점제2시기

2011/12/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0) - 강점제2시기

2012/01/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1) - 강점제2시기

2012/01/0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2) - 강점제2시기

2012/01/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3) - 강점제2시기

2012/01/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4) - 강점제2시기

2012/02/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5) - 강점제2시기

2012/02/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6) - 강점제2시기

2012/02/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7) - 강점제2시기

2012/02/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8) - 강점제2시기

2012/03/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9) - 강점제2시기

2012/03/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0) - 강점제2시기

2012/03/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1) - 강점제2시기

2012/03/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2) - 강점제2시기

2012/04/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3) - 강점제2시기

2012/04/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5) - 강점제2시기

2012/04/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106) - 강점제2시기

2012/04/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7) - 강점제2시기

2012/05/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8) - 강점제2시기

2012/05/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9) - 강점제2시기

2012/05/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0) - 강점제2시기

2012/05/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1) - 강점제2시기

2012/06/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2) - 강점제2시기

2012/06/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3) - 강점제2시기

2012/06/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4) - 강점제2시기

2012/06/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5) - 강점제2시기

2012/07/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6) - 강점제2시기

2012/07/0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7) - 강점제2시기

2012/07/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8)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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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7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4) - 강점제1시기

<객주들이 마산포 상권지켜>

1910년대 마산의 시가(市街)는 마산포라 불렀던 원마산과 일본인들의 도시 신마산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마산포는 우천이 아니면 어느 때라도 사람들로 붐볐으며 특히 5․10일 장에는 전(全) 지역이 혼잡할 만큼 사람의 왕래와 상거래가 많았습니다.

산업은 상업이 주(主)였고 다음은 어업이었으며 공업은 아직 초보적 단계였습니다. 1911년이 되어서야 종래 재래식 디딜방아뿐이었던 원마산에 일본인 하목철삼(夏目哲三)이 발동기를 이용하는 정미소를 설립한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일한와사(瓦斯, 가스)전기주식회사 마산지점이 1911년 3월 16일에 설치 허가되어 중앙동 전 마산시청자리에 발전소를 건립, 같은 해 5월 23일 최초로 전기를 송출한 것을 비롯하여 도시의 변화는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최초로 전깃불을 생산한 기념으로 옛 마산시청 뒷마당에 세워 놓은 ‘전기불터’ 기념비 사진입니다.

 


금융기관으로는 1905년 제일은행 마산출장소로 시작하여 1907년 월남동(지금의 월남동 천주교회자리)에 신축 건물로 이전한 조선은행 마산출장소 및 경상농공은행 마산지점이 남성동(현 제일은행 자리, 후에 조선식산은행으로 합병)에 있었고 마산금융주식회사․마산지방금융조합․동척출장소 금융부와 민간 대금업자(貸金業者)도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현 남성동 제일은행 자리에 있었던 조선식산은행마산지점입니다. 1918년에 지었습니다. 뒤에 무학산과 학봉이 보입니다.


다음 두 사진은 1911년 발간된 『마산과 진해만』에 수록된 일한와사전기주식회사마산지점과 경상농공은행마산지점의 광고입니다.

 

특기할만한 것은 대부분의 동종업자들이 끼리끼리 공동의 이익을 위해 조합을 구성하여 운영했다는 사실입니다.
조합종류도 곡물상조합․여관조합․주조(酒造)조합에서 이발업조합․농사(農事)조합․고물상조합 등 모두 16업종으로 다양했습니다.

일제가 한국을 강점한 뒤에도 마산의 한국인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상권을 지켜 나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들이 그들 스스로 개발한 신마산의 상권을 쥐고 있었던 반면, 한국인 자본가들은 원마산 어시장을 중심으로 상권을 지키고 있었는데 이들 대다수는 어시장 객주였습니다.
원마산 어시장은 상인들의 공유재산과 같은 것이어서 원마산 주민의 절반 이상이 어시장 덕에 생계를 꾸려 갔다고 할 만큼 비중이 큰 시장이었습니다.

이처럼 일인들의 침탈 기도를 뿌리치고 어시장 상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조선시대 이래 유지되어 온 객주제도 덕분이었습니다.
객주들은 계 조직을 통해 일본 자본가는 물론 다른 지역의 자본 침투도 굳게 막았습니다.
그런가하면 객주들의 계 조직은 이후 상민조합, 합포사로 이름을 바꾸면서 마산지역 한국인 자본가의 구심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저축조합까지 운영하면서 상권을 유지 강화하였고, 운송업에도 진출하여 역전의 화물운송업을 차지해 곡물무역업(주로 미곡)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진행된 꾸준한 자본축적이 3․1운동 후 조선회사령이 폐지되자 회사 설립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2011/05/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8) - 강점 제1시기
2011/05/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9) - 강점 제1시기
2011/05/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0) - 강점 제1시기
2011/06/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1) - 강점 제1시기
2011/06/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2) - 강점 제1시기
2011/06/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3) - 강점제1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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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6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8) - 강점 제1시기

오늘부터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10년간을 다루겠습니다.
'일제강점 제1시기'로 분류되는 이 시기의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요?

<식민지.... 국토가 변하다>


1910년 8월 22일, 우리나라는 소위 「한국 병합에 관한 조약」에 강제 조인하고 일주일 후인 8월 29일 이를 전 세계에 알림으로써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조약은 “한국 황제폐하는 한국정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 또는 영구히 일본국 황제폐하에게 양여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대한제국’이었던 우리나라의 이름은「한국의 국호를 앞으로는 조선으로 칭함」이라는 칙령 제318호에 의해 다시 ‘조선’이라 불렸고 통치권은 조선총독부가 가졌습니다.


                                                <일한병합 조약문>

이 조약문이 실효를 발한 1910년 8월 29일 일제는 '일한병합축가'와 '일한병합기념가'라는 노래가 실린 國民唱歌 日韓倂合(국민창가 일한병합)이라는 노래책을 인쇄해 나흘 후인 9월 2일 발행 보급하였습니다.

              <'국민창가 일한병합' 소책자와 책 안에 실린 '일한병합축가' 악보>

이처럼 이 땅을 식민지로 만든 일제는 합방하던 해인 1910년 식민학회(植民學會)를 만들고 대학에 식민정책강좌를 설치했습니다.
교과서 수준의 저작이 출판되고 전문적인 식민정책학자가 배출되는 등 식민정책학이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으면서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한반도 지배의 당위성이 정립된 식민학은 학자는 물론 저널리스트․정치가․관료․실업가 등 사회지배계층을 필두로 널리 확산되었고 이에 동조하는 국내세력도 점차 늘어 본격적인 식민지 시대가 열려갔습니다.

한반도 식민통치를 원할히 하기 위한 기반구축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통감부 시대에 착수한 식민화 기초사업, 즉 식민지 지배의 기반구축사업을 본격 추진하였습니다.
토지조사사업을 비롯하여 교통․운수․통신 등의 사회기반시설 및 식민지적 재정․금융체계를 정비하였습니다.
산업에 대해서는 식량 및 원료공급을 위해 원시산업은 육성하고 공업에 대해서는 억제정책을 폈습니다.

한국 내 공업정책은 1910년 12월 조선총독부령으로 발표한 조선회사령에 집약되었습니다.
한국을 일본자본주의를 위한 원료생산지와 상품판매시장으로 육성한다는 의도로 조선총독부가 만든 이 법은 1910년 12월 공포하여 1911년 1월 1일부터 시행하였습니다.
분문 및 부칙 20개조로 되어 있는 조선회사령의 주요 내용은 한국에서의 회사설립 및 한국 외에 설립된 회사가 한국 내에 지점을 설치코자 할 때는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받아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사령에서 허가제를 채택한 표면상의 이유는 한국의 산업을 위한다는 것이었으나 그 본질은 식민지인 한국에 일본 국내공업과 경합되는 근대공업을 억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법령 때문에 1910년에서 1920년 사이 10년 동안은 공업발전의 지표로 삼을 수 있는 도시인구증가율이 연평균 1.6%로 총인구 증가율 2.6%보다 1% 정도 낮았습니다.

'지배는 길에서 시작된다'고 일제는 이 땅에 길부터 뚫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원과 농산물을 손쉽게 가져가고 그들의 상품을 반입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의병운동을 비롯한 항일투쟁을 진압하기 위한 정치군사적 목적도 있었던 긴요한 사업이었습니다. 대륙침략 의도도 숨겨져 있었습니다.

철도건설은 그들이 내심 한반도 식민지화를 결정했을 때부터 시작되었으니 병합 이전부터였고 적극적이었습니다.
경의선 일부를 1899년 최초로 개통한 이후 경부선(1905)․마산선(1905)․경의선과 경인선(1906)․평남선(1910)이 설치되었고, 병합 후인 강점 제1시기(1911-1920)에는 호남선(1914)․함경선(1914)․평양탄광선(1918)․박천선(1919) 등이 건설되었습니다.
그 결과 1919년 철도총연장이 무려 2,197㎞에 달했습니다.

철도 건설과정에서 조선인 소유의 사유지를 철도용지라는 명목으로 약탈하였고, 또한 철도건설공사에는 농민들을 무보수에 가까운 저임금으로 혹사시켰습니다.
일제 자신의 침략과 수탈목적으로 건설된 철도가 피해 당사자인 한국인의 토지와 노동력과 자금에 의해 건설되었던 것입니다.

철도부설과 함께 도로건설공사도 착수하였습니다.
도로 건설에 투입된 자금은 한국 민중의 혈세로 이루어진 총독부의 예산과 지방관청의 예산으로 충당하였고 도로에 사용된 토지(도로용지)는 무상으로 몰수하였습니다.
도로공사에는 민중의 부역노동이 투입되었는데 부역은 도로가 건설된 후에 까지 이어져 매년 봄가을에 도로수선공사의 명목으로 매 호당 수십 명의 부역노동이 부과되었습니다.
병합 전에 14개 노선 1,993㎞의 도로를 뚫었지만 합방 후 더욱 박차를 가하여 1911년에서 1917년까지 7년 동안 공사비 1천만 원을 투입하여 1․2등 도로 34개선, 총 연장 2,600㎞의 도로를 추가 건설하였습니다.

도로 관리를 원할히 하기 위해 병합 직후인 1911년 4월 17일자로 조선총독부령 제51호로 ‘도로기본법’이라고 할 수 있는「도로규칙」을 발포․시행하였습니다.
이 「도로규칙」에서 전국의 모든 도로를 다음과 같이 1․2․3등과 등외의 4개 등급으로 구분하였습니다.

① 1등 도로
구간 :
㉮ 경성을 기점으로 각 도청소재지, 각 사단사령부․여단사령부․요새사령부 ․ 진수부(鎭守府)․요항부(要港部)소재지, 주요 개항장 또는 주요 정거장에 달하는 도로
㉯ 군사상 또는 경제상 특히 중요한 도로
규격 및 관리 :
폭 7m이상, 구배 30분의 1 이하, 곡선부 반경 15m 이상, 총독이 관리함

② 2등 도로
구간 : 
㉮ 도청 상호간 및 도청과 관내 부․군청 소재지간
㉯ 도청 소재지에서 도내 중요지점, 항진(港津) 또는 철도정거장에 달하는 도로
㉰ 도내 또는 인접 도내의 중요지점 및 한진(港津)․정거장 상호를 연결하는 도로
규격 및 관리 :
폭 5.5m 이상, 구배 25분의 1 이하, 곡선부 반경 15m 이상, 총독이 관리함

③ 3등 도로
구간 :
㉮ 부․군․도(島)청 소재지 상호간을 경결하는 도로
㉯ 부․군․도(島)청과 관내 중요지점․항진(港津)․정거장을 연결하는 도로
㉰ 부․군․도(島)내 또는 인접 부․군․도(島)내의 중요지점, 항진(港津)․정거장을 연결
규격 및 관리 :
폭 4m 이상, 구배 20분의 1 이하, 곡선부 반경 11m 이상, 도지사가 관리함

④ 등외 도로 : 상기 이외의 것

이 ‘도로규칙’은 1938년 4월 4일자로 제령 제15호로 발포한 「조선도로령」에 의해 종전의 1․2등 도로를 ‘국도’, 3등 도로를 ‘지방도’, 시가지내 도로 및 등외 도로는 ‘부도(府道, 현 시도)’ 또는 ‘읍면도’로 구분 변경됩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도로구분방법입니다.

                    <파란색에 숫자를 적어 놓은 도로가 국도표시입니다>

이와 같이 강점 제1시기(1911년-1920년)에 일제는 매년 총독부 예산 중 20-30%를 교통부문에 지속적으로 투입하였고, 그 결과 1919년에는 도로 및 철도의 연장거리가 1910년에 비해 각각 2.1배와 1.6배로 늘어났습니다.

일제는 철도와 도로의 육상교통 뿐만 아니라 해운 관리를 위해 항만을 축조하거나 개수하였고 세관 건립을 포함한 항만관련시설도 정비하였습니다.
이미 1906년에 마산을 비롯하여 부산․인천․성진 등 개항장의 항만과 세관의 설비공사를 시작하여 병합 후에도 계속되었고 이 밖의 여러 항구의 항만시설을 정비하였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1910년부터 1918년까지 8년이라는 장구한 세월과 막대한 경비를 들여「토지조사사업」도 실시합니다.
토지조사사업은 식민지의 재편성을 위한 기초 작업이었습니다.
사업의 내용은 토지소유권조사와 토지가격 및 지형조사를 통해 전국토의 지적도를 작성하고 등기제도를 정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점진적으로 성장하고 있던 토지사유권을 법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이지만, 시행 과정에서 엄청난 토지가 저들의 손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처럼 병합 후의 국토변화는 전국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이 변화는 일본의 상품 및 자본의 수출과 원료의 확보를 위한 이른바 시장조건의 정비인 동시에 그 자체가 자본의 본원적 축적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일한병합 직후인 1911년부터 1920년까지를 「일제 강점 제1시기」 혹은 「식민 지배를 위한 기반구축기」로 보는 것입니다.

이 시기 마산의 도시이야기는 다음 포스팅부터 시작됩니다.<<<




2010/10/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6) - 개항이후
2010/10/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7) - 개항이후
2010/10/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8) - 개항이후
2010/10/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9) - 개항이후
2010/11/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0) - 개항이후
2010/11/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1) - 개항이후
2010/11/1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2) - 개항이후
2010/11/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3) - 개항이후
2010/11/2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4) - 개항이후
2010/12/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5) - 개항이후
2010/12/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6) - 개항이후
2010/12/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7) - 개항이후
2010/12/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8) - 개항이후
2011/01/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9) - 개항이후
2011/01/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0) - 개항이후
2011/01/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1) - 개항이후
2011/01/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2) - 개항이후
2011/01/3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3) - 개항이후
2011/02/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4) - 개항이후
2011/02/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5) - 개항이후
2011/02/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6) - 개항이후
2011/02/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7) - 개항이후
2011/03/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8) - 개항이후
2011/03/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9) - 개항이후
2011/03/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0) - 개항이후
2011/03/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1) - 개항이후
2011/04/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2) - 개항이후
2011/04/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3) - 개항이후
2011/04/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4) - 개항이후
2011/04/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5) - 개항이후
2011/05/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6) - 개항이후
2011/05/0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7) - 개항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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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떠돌이들, 좀도둑 전쟁이 끝나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들갔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남아있었다. 좌우갈등의 와중에 있었던 몸이라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고 들은 문씨 같은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가봤자 땅뙈기 ..

기억을 찾아가다 - 22

22.기합, 주먹자랑, 몸단련 중학교시절에도 조금은 의식되었지만 신경을 곤두세울 정도는 아니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그 문제들은 신경의 상당부분을 자극하여 행동거지의 상당부분을 조종하고 지배할 정도로까지 작용했다. 소위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2

지난주에 이어 녹색 기둥의 정원 에서부터 선유도 이야기를 이어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녹색 기둥의 정원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 기둥만을 남겨 만들어진 이 정원은, 선유도 이야기관 의 설명에 의하면 ‘휴식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