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0.12.27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8) - 개항이후

<자복포에서 펼친 일본의 야욕>

-한국마산포 대일본제국 전관거류지 평면도-
1902년 5월 / 일본정부 / 한일양국정부 / 막대축척 / 마산포일본전관거류지협정서 / 규장각



마산의 일본전관거류지가 확정된 후 그 협정서에 첨부된 지도입니다.
자복포, 즉 구 한국철강 주변 일대가 상세하게 측량하여 표시되어 있습니다.

35회에 포스팅한 일본의 육군중포병대대(현재의 월영동 아파트 단지, 구 국군통합병원)가 옮겨오기 전의 자복포 일대를 세밀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입니다.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자복포의 해안선이 상세히 나와 있을 뿐아니라, 범례를 만들어 도로, 가옥, 구거, 묘지 등까지 잘 표시되어 있어서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월영리에서 율구미로 이어지는 옛길도 세밀하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토지의 소유도 러시아인소유지, 일본정부소유지, 일본인 박간방태랑(迫間房太郞) 소유지, 한국인소유지로 구분해 놓았으며 면적표까지 만들어 도로 및 구거의 면적 외에 토지 소유자별 면적까지 평방미터와 평방평 단위로 기재해 놓았습니다.

이 지도만 보아도 당시 일본이 러시아를 견제하고 마산을 집어 삼키기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우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도 왼쪽 아래에는 창원감리 한창수와 일본영사 판전중차랑(坂田重次郞)의 인장이 있습니다.

이 지도의 표지글입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자복포 부근의 원래의 모습입니다.
이 지도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가 다시 살려야 할 것은 없을까요?
잃어버린 우리 모습의 한조각이라도 다시 찾을 수 있는 도구로 이 지도를 사용할 수는 없을까요?

위 지도의 현재 모습이 아래 그림입니다.
붉은 점이 동일한 지점입니다.<<<





2010/10/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6) - 개항이후
2010/10/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7) - 개항이후
2010/10/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8) - 개항이후
2010/10/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9) - 개항이후
2010/11/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0) - 개항이후
2010/11/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1) - 개항이후
2010/11/1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2) - 개항이후
2010/11/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3) - 개항이후
2010/11/2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4) - 개항이후
2010/12/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5) - 개항이후
2010/12/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6) - 개항이후
2010/12/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7) - 개항이후


Trackback 0 Comment 0
2010.12.06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5) - 개항이후


<마산에 들어온 일본군대>

일본 신사(神社)가 우리 민족을 정신적으로 위압했다면, 물리력으로 우리를 억누른 것은 일본의 군대와 경찰이었습니다.

일본군대의 마산진출은 1905년 마산선 철도가 건설될 때 쯤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진출은 1909년 7월 일본육군의 중포병대대(重砲兵大隊)가 진해에서 마산 월영동(현 월영동아파트단지)로 이전한 것과 같은 해 12월 대구헌병분유소(大邱憲兵分遺所)을 신마산에 설립한 일입니다.
이 글은 월영동에 주둔했던 「육군중포병대대」에 대한 내용입니다.

러시아와의 각축기에 일제는 율구미와 자복포 일대(현, 월영동 아파트 단지 및 구 한국철강 부근 일대)를 그들의 전관거류지로 확정했다가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나고 을사조약이 체결될 즈음 이 지역은 군용지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가 1908년부터 본격적인 병영 건설에 착수하여 1909년 7월 완공, ‘진해만 요새사령부’와 ‘진해만 중포병대대’가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그후 1913년 '진해만 요새사령부'는 진해 좌천리로 이전해 가고 중포병대대는 해방 때까지 이곳에 주둔합니다.

아래 사진이 당시의 중포병대대 전경입니다.
첫째 사진은 앞면, 둘째는 뒷면, 셋째는 정문입니다.

두번 째 사진의 산은 지금의 해운동 주공아파트단지이고 산 왼쪽에 일렬로 선 건물은 군용관사인데 관사 앞 길이 지금의 월영동 아파트단지 입구 도로입니다.

 




저 사진 속에 보이는 벚나무들이 잘 자라 현재의 월영아파트단지를 조성할 무렵에는 둥치가 아름드리였고 꽃도 그렇게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남아 있었다면 장관일텐데,,,,
기계톱에 잘려나간 고목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현재 사진입니다.
뒤에서 찍었습니다.



다음 그림은 중포병대대가 들어오기전인 1899년의 이 지역 지도와 들어온 후인 1910년대에 제작된 1/20,000 지도를 비교입니다.
구 한국철강 부지의 일부가 그 당시 이미 일부 매립되어 군용지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16에 일본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1/10,000 지도에 표시된 같은 위치의 지도와 현재의 위성사진입니다.
붉은 점이 동일한 위치인데 자세히 보면 당시의 해안선 따라 도로가 나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군대 주둔은 식민지 무단통치수단이었던 터라 월영동에 똬리를 튼 중포병대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919년 3월 독립운동 때 이 부대는 마산인근의 만세시위현장 곳곳에 투입해 시위 군중을 진압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3월 19일 함안군 함안읍 장날 의거, 3월 20일 함안군 군북면 의거, 3월 28일 마산의 진동 고현시장 의거 등입니다.

마산중포병대대병들의 훈련 장면입니다.


 

해방 후에도 이곳은 군사용지로 이용되었습니다.
해방 2개월 후인 1945년 10월 8일, 미 40사단 산하 2개 대대병력이 이곳에 들어와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주둔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군정 말기인 1948년 5월 20일 조선경비대 제15연대가 이곳에서 창설되었고 5월 30일에는 제1차 모병이 여기서 있었습니다.

당시 모병을 위한 마산지역의 실력자 간담회가 열렸는데, 장소는 일본인이 운영했던 요정 ‘망월루’였고 15연대장, 미군사고문, 경찰서장, 부윤(지금의 시장)대리, 마산지역의 각 청년단장 등이 참석하였다고 합니다.

15연대의 주요임무 중 하나가 ‘폭동진압’이었습니다.
1948년 10월에 발발한 여순사건 진압에 출동하여 열다섯 명이 전사했으며 1949년 4월 거제민중봉기에도 투입되었습니다.

일본군과 미군을 거친 이곳은 한국전쟁 중 대한민국 국군의 의무부대로 변신합니다.
그 시작은 1950년 12월 수도육군병원이 서울에서 옮겨오면서 부터였지만 본격적인 변신은1952년 9월 27일 부산 동래에서 육군군의학교가 이곳에 옮겨오면서 부터였습니다.

육군군의학교는 11월에 완월초등학교, 다음 해인 1953년 5월에 마산중학교를 인수하여 3천명 규모의 본격적인 의무교육을 시작하여 1963년까지 11년간 총 84,969명의 의무관련 교육수료자(군의관, 간호장교, 위생병)를 배출하였습니다.
육군병원과 공군병원 마산분원 등 많은 군 관련 병원들도 이곳을 거쳐 갔습니다.

지금은 조용한 아파트 단지로 변했지만,
수도육군병원(1950년, 1952년부터 1963년까지는 육군군의학교도 함께 운영)→36육군병원(1953년, 1954년 육군의무기지사령부가 이곳에서 창설되어 9년간 활동)→26육군병원(1968년)→국군마산통합병원(1971년)→국군마산병원(1984년)을 거쳐 1993년 진전면 임곡리로 이 병원이 이전되기까지 이 터는 우리나라 국군의무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아파트 단지 한쪽에 국군의무병과요람지지(國軍醫務兵科搖籃之址)라고 새겨진 국군의무사 기념비석이 남아 있습니다. 수치스러워 그랬는지 식민지 시대의 역사는 적어 놓지 않았습니다.

기념하는 글 마지막 부분에는
“지금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옛 병영물은 보이지 않지만 국군의무부대의 역사가 서려있는 이곳이 온 국민의 가슴 속에 오래토록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100년 전 일본군 중포병대대로 시작된 월영동 아파트단지 터,,,,
해방 후에는 미군이 점령했고 정부수립 뒤에는 국군병원을 거쳐 지금은 아파트단지로 변했습니다.

기구했던 자신의 궤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본중포병대대가 판 연못과 그들이 심은 듯한 고목 몇 그루, 그리고 이 땅이 군용지였음을 보여주는 표지석만 남아 저 터의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표지석 손의 주인은 경남대 유장근 교수입니다.<<<



2010/10/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6) - 개항이후
2010/10/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7) - 개항이후
2010/10/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8) - 개항이후
2010/10/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9) - 개항이후
2010/11/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0) - 개항이후
2010/11/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1) - 개항이후
2010/11/1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2) - 개항이후
2010/11/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3) - 개항이후
2010/11/2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4) - 개항이후

Trackback 0 Comment 3
  1. 팬저 2010.12.21 22:5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잘보았습니다. 마산중포병대대병들의 훈련 장면에 나오는 포의 경우 280미리 유탄포로 러일전쟁 당시 뤼순항 전투에서 유력을 발휘하여 일본이 승리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는 포입니다. 280미리 유탄포는 1884년 이탈리아 군사고문의 의견을 듣고 개발을 시작하여 1887년에 제식화가 된 화포라고 하는데 주로 해안포로 사용되었는데 1940년 이후까지 사용했던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1920년대가 접어들면서 280미리 유탄포의 경우 구식이라 천대를 받게 됩니다.

    이 유탄포의 경우 진해로 들어오는 길목인 가덕도 외양포에도 설치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놈을 마산에도 설치했다고 하니 놀라운데요. 외해가 아닌 내해에 설치를 했다고 하니까요?

    러일전쟁 직후 유탄포를 설치했을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1904년 이후 마산에 부대가 설치된 후 사진을 찍었다고 보았을때 1910~12년 사이로 보입니다.

  2. 팬저 2010.12.21 22:5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모형으로는 보았는데 중포병대의 모습의 사진은 처음봅니다. 마산중포병대대의 포기지의 경우 사방으로 높게 쌓은 흙이 보이는데 저런 방식의 경우 가덕도 외양포에도 있더군요. 방식이 비슷한 것으로 보입니다.

    외양포뿐만 아니라 부산에도 포부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똑 같은 280미리 유탄포이고 조선뿐 아니라 일본 전역에도 이런식으로 포부대를 건설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훗가이도 하코다테에도 280미리 유탄포를 설치하였는데 포기지가 외양포와 같네요.

    일본이 요새를 건설한 것을 보면 1차대전후 도쿄만, 대마도, 이키, 진해만이고
    2차대전시 도쿄만, 시모노세키, 유라, 마이즈루, 츠가루, 사세보, 나가사키, 진해만, 대마도, 이키, 풍예, 뤼순, 대련, 료고 만, 나진, 모토타카, 법호도, 고웅, 아미미오시마, 치치지마 인데 1, 2차 대전 모두 진해만이 포함됩니다. 얼마나 일본이 진해만을 공들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 허정도 2010.12.22 00:22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저는 군사문제에 대해 문외한이라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만 팬저님의 박식함에 대해서는 혀가 내둘러지네요.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0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2 농촌 주택개량사업은 새마을운동 시작 다음 해인 1972년부터 전개되었으며 담장이나 지붕 등의 부분적 보수와 개량으로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관리들은 초가지붕이 비위생적이고 아름답지 못..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9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1 196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농촌은 전쟁으로 입은 농토의 피해와 농촌인구의 감소 등으로 아직 근대화의 영향을 받지 못한 채 재래식 농경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거환경 또한 전쟁피해..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8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3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주택 시장은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개발과 성장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지어진 단독주택은 대부분 도시 한옥과 양식이 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7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2 1960년대는 한국사회의 큰 전환기였다. 4·19혁명과 5·16쿠데타에 따른 정치적 격변을 겪었고, 소위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제반 개발이 계획적으로 유도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6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1 1945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주체적인 주거문화를 창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지만 경제 사회적 제반 여건이 불비하여 주체적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5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 2 일제하의 중·상류계층의 주택 유형으로는 양식주택과 절충식(개량식)주택·개량 한옥·문화주택·공동주택·영단주택 등을 들 수 있다. 양식주택은 서양식주택을 말하며, 절충식 주택은 과도기적 상황에..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4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시기까지 - 1 구한말(舊韓末)까지도 조선 사람들이 살았던 보편적인 주거 유형은 한옥이었다. 1882년 그리피스(W. E. Griffis)가 쓴 한국에 관한 역사서 『은자의 나라 한국』에는 당시 전통 한옥을..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3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3 조선시대는 우리나라 주거문화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기이다. 반상(班常)을 철저히 구분한 신분사회였기 때문에 신분에 따라 주택의 크기나 형태를 규제하는 가사규제(家舍規制)가 있었다. 신..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2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2 주거사(住居史)에서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지표는 구들의 시작이다. 한국 주거문화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구들은 난방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인 동시에 지상주거로의 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 / 조선시대 이전

오늘부터는 <경남지역 주거변천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6~7년 전에 『경남도사』에 싣기 위해 간략히 쓴 글인데 출판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블로그에 올립니다. 어차피 공유하기 위한 글이니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동남부에 ..

기억을 찾아가다 - 25 (마지막 회)

25. 3·15의거에 대한 기억 「그날 나는 ‘극장 구경 시켜주겠다’는 주무돈이란 동네친구의 호의에 끌려 10리 가까이 되는 길을 걸어 ‘시민극장’으로 갔다. 그때 나는 대학입시에 낙방한 직후라 의기소침해 있던 상황이었다. 우..

기억을 찾아가다 - 24

24. 이승만 행사 -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 노인잔치...... 내 고등학교시절의 어느날 동회 서기가 들고온 책자를 잠시 훑어본 기억이 남아있다. ‘한국 정치인 99인집’이란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승만편이 현격히..

기억을 찾아가다 - 23

23. 떠돌이들, 좀도둑 전쟁이 끝나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들갔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남아있었다. 좌우갈등의 와중에 있었던 몸이라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고 들은 문씨 같은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가봤자 땅뙈기 ..

기억을 찾아가다 - 22

22.기합, 주먹자랑, 몸단련 중학교시절에도 조금은 의식되었지만 신경을 곤두세울 정도는 아니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그 문제들은 신경의 상당부분을 자극하여 행동거지의 상당부분을 조종하고 지배할 정도로까지 작용했다. 소위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2

지난주에 이어 녹색 기둥의 정원 에서부터 선유도 이야기를 이어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녹색 기둥의 정원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 기둥만을 남겨 만들어진 이 정원은, 선유도 이야기관 의 설명에 의하면 ‘휴식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