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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8 04:3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4) - 개항이후

<마산에도 차이나타운이?>

1910년 경, 일본인들은 마산포의 땅을 얼마나 차지했을까?

사실을 알기 위해 복원도에 나타난 모든 땅의 소유관계를 사정토지대장으로 확인해보았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붉은 색 표기를 한 토지가 당시 일본인들이 소유하고 있던 부지입니다.

 

한일병합 직후에 한국인들의 오랜 터전이었던 마산포에 일본인들이 이처럼 많은 땅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기존의 여러 문헌에서는 '비록 일본인들이 신마산은 차지했으나 주민들의 반일의식 때문에 마산포에는 쉽게 진출하지 못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위 도면을 보면 이런 주장들에 의구심이 생깁니다.

마산포 주민들의 반일의식과 달리 마산포 요지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사람들 중 적지 않은 분들이 일본인들에게 토지를 매도하여 결과적으로 일본인의 원마산 진출을 가능하게 하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글에서 일본인의 마산포 진출여부에 대해 더 깊이 따져보지는 않겠습니다만, 토지소유권의 측면에서는 이 시기에 이미 마산포가 일본인들에 의해 심각하게 침해당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토지소유권이야말로 일본인들이 얼마나 마산포에 진출했는가를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자료니까요.

주목할만한 사실은, 개항당시 마산포에 살았던 산본호장(山本好藏)과 송원조장(松原早藏)이 각각 부림동 18번지와 남성동 67, 76, 135, 151, 153, 154, 155번지의 7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사실은 일본인들이 마산포에 터를 잡기 시작한 시기가 한일병합기보다 헐씬 이른 개항기
였던 것 아닌가라고 추측해볼 수 있는 구체적 사례이기도 합니다.
2010/10/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7) - 개항이후

그림에서 보듯이
일본인 소유 토지는 수성동을 중심으로 서성동과 남성동 서편, 즉 마산포의 서쪽에 많았고, 상대적으로 상업성이 약하고 소규모 필지가 많은 북동쪽에는 많이 없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주로 차지한 이 땅들은 그들의 거류지인 신마산과 연결되는 방향이기도 하지만 당시 가장 중심지였던 조창부근과 해안인접토지들로서 중요 상권 대부분이 이미 일본인들에게 넘어갔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토지 소유상황을 필지와 면적으로 구분 정리해보았습니다.

      구분        필지수         비율(%)        면적(        비율(%) 필지평균면적
 정부,마산부            5           0.4       5,783.54            3.4       1,156.71
   기업, 단체           10           0.9       1,299.18            0.8         129.92
     일본인          271          23.4     53,228.14           31.4         196.41
     중국인           18           1.6       2,105.79            1.2         169.99
     한국인          853          73.7    107,051.13           63.2         125.50
       합계        1,157        100.0    169,467.77         100.0         146.47

이 중 기업소유 10필지는 마산금융주식회사 4필지, 역시 일본인 소유의 조선농사주식회사 4필지, 합자회사마산정미소 2필지인데 모두 일본인들의 창설하여 운영했던 회사였으므로 일본인 소유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국유지는 조창(漕倉)이 있던 현 남성동 제일은행 일대의 부지입니다.

총 1,157필지 중 일본인 소유 토지는 개인 271필지(23.4%), 기업 10필지(0.9%)로 전체 281필지(24.3%)였습니다.

심지어 일본인들이 밀집해 있었던 수성동은 전체 111필지 중 62필지(55.9%), 면적으로 전17,877.69㎡ 중 11,814.81㎡(66.1%)까지 되었습니다.

일본기업과 개인이 소유하고 있었던 토지는 모두 281필지(24.3%), 면적은 54,527.32㎡( 32.2%)였으며 각 필지의 단위 면적은 전체 평균치 이상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한국인 소유의 토지는 국유지를 제외하고 853필지(73.7%), 면적은 107,051.13㎡(63.2%)였습니다.

일본인과 함께 중국인들도 마산포 토지를 제법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보라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중국인 소유지인데,
총 18필지(1.6%), 면적은 2,105.79㎡(1.2%), 단위면적은 평균치 정도였습니다.
마산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중국집 '쌍흥관'이 그 때부터 중국인 소유의 토지였습니다. 바로 초록색 조창부지의 아래편 땅이 옛 '쌍흥관' 터입니다.

중국인 소유 토지는 대부분 부림동과 창동의 경계를 이루는 도로(옛 경남은행 부림동지점 앞 길)를 중심으로 노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곳은 당시 번화했던 거리였습니다.
이런 현상은
 1882년에 체결된「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이후 조선에 대거 진출한 청국상인(淸國商人)들이 마산으로도 상당히 진출했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십시오.
보라색 땅들이 모두 특정한 거리에 집중해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입니다만, 혹시 그들이 이 거리에서 차이나타운을 꿈꾸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백년 전 마산에 들어왔던 중국인들이 말입니다.<<<




2010/10/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6) - 개항이후
2010/10/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7) - 개항이후
2010/10/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8) - 개항이후
2010/10/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9) - 개항이후
2010/11/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0) - 개항이후
2010/11/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1) - 개항이후
2010/11/1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2) - 개항이후
2010/11/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3) - 개항이후
2010/11/2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4) - 개항이후
2010/12/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5) - 개항이후
2010/12/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6) - 개항이후
2010/12/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7) - 개항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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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3) - 개항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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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7 09:59

300만명이 굶주리며 죽어가던 그때 뭘했냐고 묻는다면?


안녕하십니까? 허정도입니다.

오늘은 이 시대의 글 꾼 황석영의 『바리데기』라는 소설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소설의 소재는 북한의 참상을 배경으로 쓴 뿌리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글 솜씨가 워낙 뛰어난 까닭에 책장이 잘 넘어갑니다.


 

소설의 전반부에서는 주인공 바리를 통해 식량부족으로 겪는 북한의 참혹한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90년대 중반, 대한민국의 지척에서 삼백만 명이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죽어간 바로 그 시기입니다.

한 대목 보겠습니다.


 

‘미이 언니와 두만강에 나갔다가 사람이 천천히 떠내려 오는 걸 보았다. 어린애를 업은 채 앞으로 처박힌 아낙네의 시체였다. 아기와 엄마가 함께 죽은 것이다. 나중에 그 강변에는 더 많은 시체들이 떠내려 오곤 했는데 맞은편 중국인 마을에서는 자기네 기슭에 닿으면 장대로 밀어내곤 했다.’

 


 

‘칠월 말부터 시작된 폭우는 팔월 중순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산비탈에 심은 옥수수며 남새밭들은 모조리 쓸어내려갔고 철길과 도로는 곳곳이 무너지고 끊겼다. 라디오방송에서는 나라 전체가 물구덩이 속에 잠겼다고 말했다. 홍수가 넘친 들판과 시 변두리에 시체들이 둥둥 떠다녔다.’

 


어떻습니까?

저의 경험과 상식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잔혹한 굶주림이었습니다.

 

이런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바리는 할머니를 따라 두만강을 건너고 중국을 거쳐 홀로 런던으로 가는 밀항선을 탑니다.

런던 차이나타운의 밑바닥 생활을 견디어낸 바리는 희망을 꿈꾸며 파키스탄사람과 결혼합니다.

그러나 희망 앞에 또 다시 9·11테러와 영국 지하철 테러가 터지면서 소설은 미래의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둘러싸인 인간세상의 위태로움을 예감하며 끝이 납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한 대목 소개합니다.

바리가 런던에서 생활하면서 한 독백입니다.

'수많은 도시들과, 찬란한 불빛들과, 넘쳐나는 사람들의 활기를 보면서, 우리가 그렇게 굶주리며 죽어가고 있었을 때 이들 모두가 우리를 버렸고 모른 척한 것에 대해 섭섭하고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나라 밖에서 내 나라 말이 통하는 유일한 나라, 북한.

같은 민족인 우리는 언제쯤이나 함께 살 수 있을까요.





 ※ 책 읽어주는 남자 9월 16일 방송입니다.


바리데기 - 10점
황석영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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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유아시아방송 2009.10.02 03:1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잘 읽었습니다. :) 이 글 링크를 자유아시아방송 Delicious account에 추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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