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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0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0) - 개항이후


<병합 전 마산 알려주는 석 장의 지도>

-마산전도**-
1908 / 통감부철도관리국 / 좌동 / / 한국철도선로안내 / 경남대학교 도서관


마산에는 일찍부터(1905년) 철도가 놓였기 때문에 철도를 소개하는 모든 자료에 마산이 수록되어있습니다. 이 지도도 그런 종류 중 하나입니다. 
조잡하게 제작되었지만 당시의 도시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유익한 자료입니다.

특히 신마산과 원마산의 합방 전 도로 사정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마산역사 연구에서 많이 인용되었던 자료입니다. 

장군동 일대의 소위 중앙마산(구 마산시청 일대)에 오랫동안 존재했던 '철도용지'가 이 지도에 글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이 지도가 제작된 1908년에는 계획단계에 머물러 있었던 고지대(현, 문화동 일대)에 까지 도로가 그려져 있으며 조금 과장된 면도 있습니다. 

지도 좌측의 조계지(신마산) 도로건설은 철도 마산선의 출발역이자 종착역이기도 했던 마산 역 (현 중부경찰서 앞 벽산아파트 단지)까지 개설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더 이상 마산포 쪽으로 나가지 않고 장군교 쪽(2시 방향)으로 꺾어서 나가는 사선형 도로가 개설되어 있습니다.
이 시기에 일본인들이 뚫어 놓은 신작로는 거기까지였던 겁니다.

도로가 왜 사선으로 꺾였는지 이상하게 생각되겠지만 장군교에서 원마산(마산포)으로 통하는 옛 길과 연결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구) 마산시청 앞을 지나는 간선도로는 이 때까지 개설되지 않았던 겁니다.

 장군교에서 마산포로 연결되는 도로가 다른 옛 길과 달리 조금 넓게 그려져 있는데 이 도로가 구 크리스탈 호텔 앞을 지나는 현재 길입니다.

이 도로는 마산포에서 진주와 연결되다고 하여 '진주가도'라 불렀고 이 지도가 제작된 1년 후인 1909년 1월 순종의 마산방문 때 지역민들의 알현을 받기 위해 창원부청(남성동 파출소 일대)으로 행차했던 길이기도 합니다.

이 지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때까지 원마산에는 근대적인 도로가 없었고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좁은 길들 만 복잡하게 얽혀져 있었습니다.

지도를 자세히 보면 마산 역에서 해안방향으로 넓은 공지가 점선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1905년 마산선 철도공사 때 마산 역 일대를 매립했는데 그 매립지를 표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점선으로 그린 까닭을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만, 추정해보면 당시 일본군부가 점령했던 이 토지를 일반인이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설령 안다고 해도 군용지 성격의 이 토지를 세밀히 표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지도를 이용해 재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지도 두 개를 추가로 소개합니다. 


<마산전도***>

1908년 / 김준 / 마산시 / / 마산시사사료제1집 내 마산축항지 / 필자


앞의 지도를 이용하여 1964년 마산시사 사료집 제1집에서 재구성한 지도입니다.

위 통감부 지도에서는 원마산 쪽 도로가 비록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가늘지만 복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지도는
원마산 도로를 단선(單線)으로 표시하여 원마산의 도시구조가 신마산에 비해 더 초라하게 보입니다.

통감부 발행 지도와 크게 다른 점은 주요 공공시설인 세관부두․세관지서․마산병원․러시아영사관․경찰서․이사청․소학교․민단사무소․역․그리고 진해교․마산교․창원교 등 교량의 위치가 표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 외 다른 내용은 앞의 지도와 동일합니다.
 

<마산시가도*>

1910 / 상원영(上原 榮) / 마산교육회 / / 향토의조사(鄕土の調査) / 경남대학교 박물관


지도의 표기 시기는 1910년이지만 이 지도 제작은 1933년에 되었습니다.
1933년에 '마산교육회'에서 발간한 『향토의 조사』라는 책에서 '1910년 당시의 마산'을 소개한 자료입니다.
『향토의 조사』는 마산의 자연․산업․문화 등을 소개한 마산소개서입니다.

지도의 내용을 보면 역시 앞의「마산전도**」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지도의 내용도 별로 바뀌지 않았고 글자만 몇 자 다를 뿐이어서 도시의 변화를 정확히 알기에는 부족한 지도입니다.

세 개의 지도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100년 전인 경술국치(한일병합) 시기에 신마산은 인위적인 근대도시로 개발되는 과정이었고 원마산(마산포)은 자연취락으로 생성한 전통도시였다는 사실입니다.

그 특징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신마산에는 당시 일본인이 계획한 직선의 넓은 길 뿐이지만, 원마산이었던 남성동, 창동, 오동동, 동성동, 수성동, 서성동, 부림동에는 수 백년된 골목길들이 형태하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설화와 전설까지 도시의 문화자산이 되는 세상인데,
수백년 동안 마산포 사람들이 걷고 땀흘렸던 마산포의 골목들은 마구 없애도 될만큼 가치없는 것들일까요?
이 오래된 도시의 옛 흔적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 골목들을 올드시티 마산의 문화자산으로 활용할 수는 없는 걸까요?

위 지도에서 나타내고 있는 당시의 마산도시 범역을 현 지도에 표시해 보았습니다.<<<




2010/10/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6) - 개항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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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8 01:16

도시를 가로지르는 녹색길

전국 곳곳에서 용도폐기되거나 이용빈도가 극히 적은 철도터를 활용해 자연친화적인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있다.
마산역에서 마산항에 이르는 임항선도 '그린웨이'라는 큰 구상하에 다양한 사례와 공모등을 통하여 추진중이다.


기차길의 추억

임항선은 어릴적 추억이 제법 깃든 곳이다.
기차가 지나갈때 레일위에 못 같은 쇠붙이를 올려놓고 납작하게 만들어 놀고, 선로위에 깔린 자갈에 붙어있는 금속을 금가루라며 주워서 오곤했다.
하천이나 도로와 교차하는 고가철도를 지날때는 침목사이로 아래가 훤히보여 양팔을 벌려 균형을 잡고 건너며 담력을 키우기도 했다.
좀 커서는 집이있는 회원동에서 시내인 창동까지 걸어갈 때 신호등이 없어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로 이용하곤 했다. 
요새는 철로의 주인인 기차는 일주일에 한번밖에 이용하지 않고, 그 자리를 주민들이 일군 텃밭과 노점하는 상인들,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차지하고 앉았다.






현재까지 임항선 활용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친환경적 일 것, 산책로로 활용 가능할 것, 역사성을 보존할 것 정도의 공통분모는 제시된것 같다.


다른도시는 어떻게?

마산과 비슷한 조건을 가진 광주의 경우 시민이 직접 폐선부지를 가꾸게 하기위해 지역주민, 사회단체, 전문가들이 모여 2002년 3월에 '푸른길운동본부'를 결성해 계획과 설계는 물론 공원조성까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푸른길을 가꾸어 나가고 있다.

이를 위해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일반 시민들에게 다양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지역주민이 푸른길가꾸기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주민위원회를 구성했다.
 100만그루 헌수운동을 전개하며, 시민활동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지원하도록 조례제정과 푸른길의 녹지공간을 확대하고 주변지역과 연결시키는 녹색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시민들이 푸른길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자원봉사 활동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된다.

이런 고민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가 보다.
얼마전 미국 뉴욕의 옛 철길이 주민들의 산책로로 탈바꿈한 기사가 소개되었다.
주민들은 낡고 오래된 고가철도를 철거하지 않고 새롭게 도시에 활력을 넣어 줄 수 있는 공원과 산책로로 만들기로 했다.
당장 보기싫다고 해서 전체를 걷어내고 개발하기보다 그 자체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유지하며 그 위에 녹색을 입히기로 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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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뉴욕타임즈(이하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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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그러나 천천히

주민의 삶고 밀접하게 연관된 이런 사업은 행정기관에만 맡겨서는 안될 일이다.
가시적 성과를 위해 급하게 진행해야할 일은 더욱 아니다.
뉴욕의 경우 공사에만 4년이 걸렸고, 광주의 경우 폐선부지에서 2002 광주비엔날레 공공예술 '프로젝트4 Connection' 진행을 시작으로 꾸준히 시공과 계획을 이어가고 있다.

주민이 참여하여 만든 녹색길이 숨통이 되어 내고향 마산이 활기넘치는 도시로 거듭나기를 희망해 본다.

2009/06/08 - [도시 이야기] - 하천 옆 카페에서 커피 마실날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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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urbandesign 2009.07.28 11:3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마산 몽고정 위를 지나는 철교가 있습니다.
    밑으로 쌩쌩지나는 차량이 훤~히 보이는 그 위를
    엉기적 엉기적 조심스레 건너는 것이 어릴적 친구들과의 담력시험의 무대이었지요.
    철길은 우리사회 도시의 발전에 있어 '시간'과 '공간'을 극복하게 된 견인역할을 해왔다고 봅니다.
    이제는 문화를 통해 도시에게 내어주는 창조적인 전환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

  2. 신삼호 2009.07.28 14:4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아주 삭막한 철길 사례로는
    마산철길 중에 회원동인가요?
    구.공동탁주 앞에 있는 고가철도는 주변환경을 상당히 황폐화 시킨 사례로 볼수 있지요.

    마산 철로의 역사는 마산선이 1905년 개통되었으니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읍니다. 벌써 100년이 지났군요.
    그럼 지금의 레일이 혹시 100년전 제작된 것인지 확인이라도?

  3. urbandesign 2009.07.28 17:2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참에 마산지역의 철도 현황과 그 구간별 특징 등을
    답사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사진으로 현재를 남기는 것만으로도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


    유창현님. 추진한번 해보세요~
    뜨끈뜨끈한 여름날의 철길답사.
    옛추억이... 이글 거립니다.

    • urbandesign 2009.07.29 21:29 신고 address edit & del

      기왕하는것 광복절로 하지요. ^^
      죄송합니다. 8일이 되는 주말은 선약이 있군요.

  4. 허정도 2009.07.29 08:2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기왕 임항선 이야기가 나왔으니 몇 년 전에 쓴 임항선관련 제 글을 한 편 소개하겠습니다.
    딱딱하고 재미가 별로 없습니다.


    〈경부선과 같은 해 개통된 철도 마산선〉


    1899년 마산은 열강에 의해 개항되었다.
    개항장 마산은 러시아와 일본의 야욕이 노골화 되었던 치욕적인 역사 현장이었다.
    이들 두 제국은, 서로 먼저 대한해협의 군사적 요충지를 확보하기 위해 마산을 무대로 갈등을 빚었다.
    러일전쟁 종전으로 세력 다툼이 끝나자 이 도시의 운명은 일본의 손아귀에 들었다.

    마산에 철도가 처음 개통된 것은 바로 그 즈음, 1905년 5월 25일이었다. 경부선 개통과 같은 해였으며 ‘마산선’이라 불렀다.
    원래 마산선은 1904년 1월에 영남지선철도회사가 착공한 마산포와 삼랑진 간 철도였다.
    영남지선철도회사는 한국정부의 외부참사를 지낸 바 있는 부산 태생의 박기종이 황족인 완순군 이재완을 앞세워 1902년 6월 한국정부 농상공부 대신으로부터 설립 허가를 받은 회사다.
    이처럼 한국인에 의해 설립된 철도회사를 일본 군부가 러일전쟁을 빌미로 그 사업권을 강제 접수한 다음, 자국의 중요 인력을 동원하여 개통시킨 것이다.
    이 때 철도노동자와 함께 일본 창기(娼妓)가 이 도시에 들어왔으며 철도건설에 힘입어 한 때 건설 붐이 일기도 했다.

    개통 직후에는 군용철도로 사용하였으나 같은 해 11월 1일부터 민간인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마산선의 종착역이었던 마산 역은 일본인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하도록 조계지 가까운 곳에 설치하였다.
    그러다가 1910년 7월 5일 한국인들이 모여 살던 마산포 인근, 즉 현재의 상남동에 구(舊)마산 역을 개설하였다.
    구(舊)마산 역의 위치는 현재 중앙로의 6호 광장자리인데 개설 후 67년간 사용하다가 1977년 12월 폐쇄되었다.

    철도의 개통은 마산의 도시화를 촉진시켰으며 일본열도와 한반도 내륙을 연결하는 도시기능도 갖게 하였다.
    마산선의 철도건설공사는 전(全) 5공구로 나누어 일본인들에 의해 시행되었는데 이 과정서 한국인들은 단순노무자로만 참여했다.


    〈진주와 호남까지 연결한 철도 경남선〉


    마산선이 개통된 20년 뒤, 진주 방면으로 연결되는 또 하나의 철도가 놓였다.
    경남선이라 불린 이 철도는 사설(私設) 조선철도회사에 의해 마산과 진주를 잇는 대 공사였다.
    1923년 12월 1일 마산과 군북 간을 우선 개통했다가 2년 뒤인 1925년 6월 15일 진주까지 연결되었다.
    당시 사설철도 건설은 자국의 유휴자본을 식민지에 투자함과 동시에 식민지 기반시설을 확충한다는 두 가지 목적으로 일본 정부가 나서 적극 장려한 정책이었다.

    경남선은 마산 역을 시발역으로 북마산, 중리, 산인, 함안, 군북 순의 역이 있었으며 기존의 마산선과 함께 도시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축이 되었다.
    이로 인해 인근 함안․군북의 농촌 지역이 마산 권역으로 편입되었다.
    또한 북마산 역 주변인 상남동과 교방동 지역에 역세권이 형성, 새로운 상권이 생겼을 뿐 아니라 마산을 호남지방과도 연결시켜 주었다.
    철도 건설공사에서 생긴 흙은 마산만 매립공사에 사용하기도 했다.

    1931년,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철도 정책을 변경, 전국의 사철을 국유로 흡수하면서 70㎞ 경남선도 국철로 변했다.
    철도의 명칭도 기존의 마산선과 경남선을 합쳐 경전남부선(慶全南部線)으로 개칭했으며 마산선과 경남선의 시발역이던 마산역은 통합 경전남부선의 중심 역이 되었다.


    〈요요히 남은 격랑의 흔적 임항선〉


    북마산 역 부근에서 소년시절을 보낸 필자는, 설 추석 전날 진주 방면으로 향하는 기차의 그 기이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마치 안이 꽉 차 밖으로 터져 나온 것처럼 기차문 밖에 고향 가는 사람들이 뒤엉켜 붙어 있었다.
    지붕 위에 올라앉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유난히 흰 옷 입은 사람이 많았는데 기차가 출발하면 어린 내 눈에 마치 거대한 사람덩어리가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가족을 떠나 이 도시로 온 그들에게 북마산 역은 고향으로 통하는 큰 문이었다.

    1970년대,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 등에 힘입어 도시지역이 팽창하고 인구가 증가하자 한 때 도시 성장의 상징이었던 두 철도가 오히려 도시 발전을 저해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이에 따라 도심을 관통하던 철도를 변경, 외곽지역에서 도시를 경유하는 형태로 바꾸는 공사가 대대적으로 시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세 역이 없어지고 하나로 통합되었는데 그 결과가 1977년 12월 16일에 개통된 현재의 마산역이다. 이름 하여 ‘삼역통합’이었다.
    이 때 1905년부터 마산을 횡단했던 철도 마산선은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고 철선은 자동차가 다니는 길로 변했다. 부림동과 합성동을 잇는 중앙간선도로다.

    그러나 한 때 경남선이라 불렀던 현재의 임항선 철도는 항만과 내륙을 연결하는 산업용 철도로 사용한다는 이유로 철거하지 않았다.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던 북마산역도 그 때 사라졌다. 하지만 그 번성했던 흔적은 쇠로 만든 육교와 함께 지금도 남아 근대기 이 도시가 겪었던 격랑의 시간들을 회상케 한다.

    도시 복판에 요요히 누워있는 이 두 가닥 쇠길 위로, 지난 세월 얼마나 많은 애환들이 오고 갔을까.

    • 이윤기 2009.07.29 09:25 신고 address edit & del

      출처를 밝히고...사진과 함께 정식으로 포스팅하시지요

  5. 허정도 2009.07.29 16:3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이 글이?
    괜찮다면 류창현씨가 한 번 올려보던지.......

  6. 허정도 2009.07.29 23:1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옛 사진은 없는데''''''

    • 이윤기 2009.07.30 09:05 신고 address edit & del

      몇년전에 마산Y 시민사업위원회에서 수 차례 걸쳐 임항선을 답사하고 만든 '임항선, 80년 역사의 발자취'라는 책에 사진이 여러장 있습니다. 이 글도 그 책에 실렸었지요.

  7. 이인안 2009.07.30 12:0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그 사진은 저희 회사에 있는데요. 필요하면 드리지요..

  8. 전성환 2009.07.30 13:2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허이사장님. 안녕하세요. 전성환입니다. 도시이야기에 관심있어 서핑하다가 블로그발견했네요. 부지런도 하십니다. 쿠리찌바 글과 여기있는 글들 잘 읽었습니다. 저는 지금 미국 인디아나에 있는데 미국 도시계획에 대한 논문 다썼고 귀국준비하고 있습니다. 위 글에 나온 뉴욕사진은 2005년에 뉴욕설계공모전에 나온 그곳이네요. 저도 그곳 설계사진이 하나있는데 임항선과 같이 폐선부지를 새롭게 만드는데 많은 상상력을 주는 사진입니다. 종종 들러겠습니다. 건강하시고요. 한국들어가서 연락드리겠습니다.

    • 허정도 2009.07.30 15:31 신고 address edit & del

      아이구,, 이게 누구신가?
      전 실장 아니요.
      근데 왜 전 실장이 도시계획에 대한 논문을??
      나는 동명이인인 후배인가 해서 한 동안 얼떨떨 했어요.
      아무튼 반갑습니다.
      건강하시죠?
      공부 실컷하고 귀국 하세요.
      마산오시면 도다리 한 접시는 내가 책임질께요.
      보고 싶네요.

    • 이윤기 2009.07.30 16:57 신고 address edit & del

      남의 시간은 내 시간 보다 더 빨리 지나가네요.

      벌써 귀국인가요?

      한국은 대통령 잘못 뽑아 반대할 일, 싸울 일 지천입니다. 얼렁오세요.

  9. 전성환 2009.08.02 13:4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도다리만 사주실건가요? 소주는요??
    뭐 도시계획에 대한 거창한 논문은 아니고요. 공간을 둘러싼 시민의 이해를 높이기위한 활동이 한국시민운동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축을 전공한건아니지만 건축에 관심이 많고요. 이윤기 간사님 지리산도보여행 잘하시고 한국가면 뵙시다.
    차총장님께도 안부전해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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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역사 만큼이나 액자의 역사는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회화의 전시, 보존 등을 위한 보조적인 위치에서 출발한 액자는 사진의 등장과 기술의 발달 등으로 현재는 picture frame 만이 아니라 photo frame, d..

기억을 찾아가다 - 11

11. 정전 후의 체험들 Ⅱ - 수학여행 전쟁이 막바지로 갈 때쯤 해선 민간자동차도 많이 다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주로 화물차가 많이 보였는데, 마산 부산 간에만 다니던 버스 숫자도 상당히 불어난 걸 느낄 수 있었다. ..

건축의 외형 - ‘계단’ (Staircase)

오늘은 이전 포스팅들 보다는 조금 더 인공적인 형태라 할 수 있는, '계단' 이라는 주제를 가져와 보았습니다. 계단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 되어, 이미 BC3000년 경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에서부터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

기억을 찾아가다 - 10

10. 정권 후의 체험들 Ⅰ- 깡통문화, 총탄 정전 반대를 외치는 집회와 행진이 전국적으로 있었고 마산에서도 무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궐기대회가 열렸었다는 이야기를 어른들이나 형들로부터 엿들었던 기억은 있으나 거기에 관심을 기울..

건축의 외형 - ‘초승달’ (crescent)

달은 태양과 마찬가지로 여러 문화권에서 신화나 종교와 연결지어서 생각되었습니다. 초승달은 달이 뜨지 않는 삭 다음에 나타나기 때문에 서양권 에서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하여 new moon 이라고도 불리죠. 오늘은 이슬람의 ..

기억을 찾아가다 - 9

9. 한국전쟁기의 학교생활 Ⅲ - 용의검사, 학력경쟁 가교사생활 직후부터 실시된 용의검사는 생활환경이 좋은 도회지 넉넉한 집 아이들에겐 별 부담이 안 되었겠지만, 누추한 환경에서 생활하거나 항상 흙을 묻히고 살아야하는 농촌 아..

건축의 외형 - ‘삼각형’ (Triangle)

피라미드와 삼각형, 그게 그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입체도형과 평면도형 이라는 근본의 차이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접근 또는 적용 방식 또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라미드와 삼각형 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확..

기억을 찾아가다 - 8

8. 한국전쟁기의 학교수업 Ⅱ - 떠돌이 수업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1952년의 학교생활엔 참 변화가 많았다. 담임선생님도 세 번이나 바뀌었고 교실도 다섯 번이나 옮겨 다녔다. 그리고 전입생도 그 해에 갑자기 불어났다.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