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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4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1) - 강점제3시기

<신포동의 탄생>

1920년대 중반까지 마산의 도시구조는 한국인들이 모인 원마산과 일본인들이 거주한 신마산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두 지역을 연결해야할 중앙지역은 지형적으로도 잘록한 병목형이었을 뿐 아니라 철도용지로 묶여 있기까지 해서 도시발전에 장애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철도용지가 마산부에 불하되어 시가지 형성이 가능해지자 마산세무서․마산부청․경성전기 마산지점․도립마산병원․지방법원 지원․신문사 등 관공서나 공공시설의 건물이 세워지거나 또는 건축예정부지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른바 중앙마산이 공공업무지역으로 재탄생하기 시작한 겁니다.

때를 맞춰 비슷한 시기에 조선회사령도 철폐되자 일본인들이 기회를 놓칠세라 마산의 중앙부 해변에 매축을 계획하게 되어 본 매립이 추진되었습니다.

위치는 현 대우백화점, 어시장, 삼익아파트, 센트럴 아파트단지를 포함한 아래의 넓은 지역입니다.

 

이 대규모 매립공사는 마산매축주식회사에 의해 65,088평 규모로 시행되었는데 그 중 대지는 48,105평이었습니다.

마산매축주식회사(마산시 남성동 221번지)는 오직 이 매립사업 만을 위해 설립한 회사였습니다.

마산매축주식회사에 참여한 사람은 일찍부터 마산에 들어와 미곡상을 하던 송원조장(松原早藏)을 비롯해 서전(西田)양조장 주인 서전목총시(西田木惣市), 대판상선 마산대리점 도본우일(島本宇一)과 부산의 서본영일(西本榮一)과 암전국랑(岩田菊郞) 그리고 일본 고오베에서 사업을 하던 야림치일(野林治一) 등 모두 여섯 명이었습니다.

다음은 매립설계도입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 소장 자료입니다.

 

 

 

매립허가 신청은 1928년 11월 15일하였고 마산부로부터 허가는1929년 6월 14일 받았습니다. 매립공사를 착공한 시기는 1929년 말경이었고 1935년 10월에 준공되었습니다.

마산시사에 의하면 자산동 204번지에서 247번지, 즉 현 자산동 온누리 빌라 남쪽 일대의 임야를 매입한 후 그 흙을 취토(取土)해 공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새로 조성된 토지 48,105평은 신포동 1가 1번지에서 46번지까지의 22,257평과 신포동 2가 1번지에서 113번지까지의 25,848평이었습니다. 당시 기준지가는 평당 1엔30전부터 1엔80전까지였습니다.

이 땅이 현재의 신포동입니다. 일제강점기에 풍정(豊町)이라 불렀던 신포동은 이 매립사업으로 태어났던 겁니다.

이 매립지에는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의 임해창고(臨海倉庫)와 군수․민수용을 다함께 제조하는 대형 장유공장인 환금장유주식회사를 비롯하여 일본광업․질소비료․조선염협 등 대소 기업체들이 입주했습니다.

현재 환금장유 자리에는 삼익아파트가, 옛 의창수산자리는 대우백화점 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산시사와 마산개항백년사 등 그간 편찬된 마산관련 각종 문헌에 의하면 이 신포동 매립지 해변이 월포해수욕장이라고 했는데 이는 사실과 약간 다릅니다.

월포해수욕장은 이쪽이 아니라 1936년-1939년까지 시행된 제2부두와 중앙부두 북쪽 일부였으며 신포동 매립지는 남단에 약간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사실은 여러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1932년 마산공립보통학교에서 발행한 「향토의 교통도(鄕土の交通圖)」입니다.

아래 그림이 「향토의 교통도」의 일부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장군천을 기점으로 좌측이 해수욕장이라고 「월포해수욕장(月の浦 海水浴場)」이라는 명칭까지 정확하게 표기하고 있습니다. 신포동 매립지는 장군천을 기점으로 우측 지역이었습니다.

또 143번째( )로 소개했던 지도 「馬山***」에는 해수욕장 변에 있었던 송림(松林)으로 추정됨직한 나무들이 제2부두와 중앙부두 쪽에 묘사되어 있어서 이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입니다.<<<

 

 

2012/07/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0) - 강점제3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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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0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7) - 강점제2시기

<마산포와 신마산이 연결되다 - 중앙마산의 형성>

1) 중앙마산이 철도용지로 된 원인

마산포와 신마산의 중앙부가 1920년대까지 도시형태를 띠지 못하게 된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이 일대가 러일전쟁 직전인 1904년 일본의 군용철도용지로 수용당한 뒤 1920년대까지 변하지 않고 그 상태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1904년 2월 10일 일본은 러시아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기 위해서 러시아와 국교를 단절하고 선전포고를 하여 러일전쟁을 시작합니다.

이 전쟁에 앞서 일본은 마산에 있는 우체국과 전보사 및 율구미에 있던 러시아 해군육상사령부의 시설을 압수했습니다. 그리고 1904년 9월 1일, 군용철도 마산선의 건설공작대가 마산에 입항했습니다.
러일전쟁 수행을 위해 한국 조정을 강압하여 의정서를 체결했기 때문입니다.

삼랑진 - 마산 사이의 철도공사는 의정서 제4조의 내용에 준한 사건입니다.

1904년 2월 23일자로 조인된 한일의정서 제4조는

제3국의 침해에 의하여 혹은 내란으로 인하여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과 영토의 보전에 위험이 有할 경우에는 대일본제국정부는 곧 臨機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며, 대한제국정부는 右 대일본제국정부의 행동이 용이하도록 십분 편의를 공여할 것.
대일본제국정부는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군략상 필요한 지점을 수시로 수용할 수 있을 것.

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일의정서 체결 직후 찍은 사진과 한일의정서>


이 한일의정서는 그 조문 모두가 어처구니없는 구절들이지만 특히 이 제4조는 가장 악랄한 내용입니다.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과 영토의 보전에 위험이」있다, 혹은 없다의 판단이나「臨機 필요한 조치」의 범위,
즉「어느 정도의 행위가 필요한 조처의 범위인가」의 판단,
그리고 수시로 언제나 수용이 가능한「군략상 필요한 지점」의 위치나 범위의 판단도 모두 일본만이 할 수 있는 일방적 규정이었습니다.

또한 이 의정서가 러일전쟁을 전제로 한 것인데,
이 협정 어디에서도 시한에 대해서 규정하지 않고 있어서 일본은 이 의정서 조문만으로 한국 도처에 그들의 군사기지를 무제한으로 주둔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뿐만 아니라 같은 해에 이어서 자행된 여러 조치들,
즉 5월 30일과 31일의 「대한방침 및 대한시설강령」, 9월 24일의 「長谷川 훈령」, 6월의 「한국에 있어서의 군사적 경영요령」 등에 의해 몇 해 안 가서 서울 용산에 주둔군사령부와 사단이 설치되었습니다.


그리고 회령․함흥․원산․강계․평양․춘천․대전․대구와 함께 마산에도 이른바 「긴요한 지점」이란 핑계로 대규모의 군사기지가 설치되었던 겁니다.
이 때 진해는 일본 해군의 군항으로 개발되었죠.

1905년 일본군부가 일본육군 군용지로 강제 수용한 마산의 토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용도 면적(평)  수용액(원)  수용일자 
 병영부지 9,000  2,700  1907. 9. 3 
 수도용지  91,376  2,982 1909. 3. 30 

이 표의 토지는 중앙마산지역의 철도용지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수용 동기가 동일하다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강점의 큰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중앙마산의 철도용지 수용입니다.

철도용지로 수용된 중앙마산지역의 범위는, 북으로 원마산의 경계인 몽고정 부근, 남으로 조계지의 경계인 신월천, 서쪽으로 진주가도, 동으로 해안선까지의 전(全) 지역입니다.

철도용지구역을 찾아내기 위해 정부기록보존소의 문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1920년에 펴낸 축척 1/3,000「마산부 시구개정 일부평면도 (馬山府市區改正一部平面圖)」에 표기되어 있는 철도용지의 경계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경계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서 사정지적도에 나타나는 지목과 재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1904년에 발간된 '마산포 군용정차장 부지'라는 제목의 도면을 구했습니다. 마산도시재생TB센터 연구진을 통해 얻은 귀중한 자료입니다.
앞의 「마산부 시구개정 일부평면도 (馬山府市區改正一部平面圖)」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음 자료입니다.
아래 것은 현재 지도에 표기한 것입니다.
현재 지도는 해안매립이 많이 진행된 이후라 앞의 것과 많이 다릅니다.<<<



 



2011/10/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0) - 강점제1시기
2011/10/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1) - 강점제1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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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6)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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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3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6) - 강점제2시기


<마산포와 신마산이 연결되다 - 중앙마산의 형성>

오늘부터는 ‘중앙마산의 형성과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중앙마산’이란, 20세기 초에 존재했던 마산의 두 도시, 즉 옛 부터 자연발생적 취락으로 발전해온 '원마산(마산포)'과 일본인들이 건설한 조계지 '신마산'의 중간 지역을 말합니다.
두 도시 사이에는 약 2㎞ 정도의 이격공간(離隔空間)이 있었는데, 이 범위 안에 조성된 혹은 조성될 도시공간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보면 대략 마산합포구청(구 마산시청)에서 부터 3.15의거탑까지를 말합니다.


사실 마산포(원마산)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리 잡은 신마산(조계지)은 태생 때부터 이미 마산포와의 도시연담화가 예정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각국공동조계지의 위치를 결정할 때부터 연담도시를 의도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항 직후부터 원마산 방향으로 서서히 도시영역을 확장해간 일본인들은 합방 때인 1910년경에 이미 조계지의 북쪽 경계인 신월천을 훨씬 넘어서 장군천까지 진출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1920년대의 마산도시를 알 수 있는 각종 자료를 보면 1920년대 초기까지 일본인이 개설한 신설도로는 장군천의 장군다리까지였습니다.
건물도 마산 역에서 장군천으로 이어지는 사선형(斜線形) 도로 위쪽에만 들어서 있습니다.
그러다가 1920년대 중반이 되면서 서서히 건축물들이 장군천 주변에 들어서기 시작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선형 도로는 다음의 도로입니다.



원마산과 신마산 두 도시가 이렇게 나누어지게 되었던 원인은 보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설명이 가능합니다.
러일전쟁기에 맺어진 치욕적인 한일의정서에 의해 강탈당한 철도용지, 즉 신마산과 원마산 사이에 있는 지금의 완월동․장군동․중앙동 일대인 중앙마산지역을 일본 군부가 군사용 철도용지에 편입시켰기 때문입니다.

이 때 결정된 철도용지는 강점기 후 변화하는 두 도시의 연결을 차단했으며 이로 인한 주민들의 불편도 컸습니다.

이런 상황이 1920년대 중반 이후에 와서야 변하기 시작합니다.
철도용지가 해제되고 중앙마산이 관공서 건물이 군집(群集)하는 공공업무지역 성격의 도시로 형성되었던 겁니다. 
말하자면 나누어져 있던 두 도시가 연결되기 시작한 것이죠.

이러한 중앙마산변화의 전(全) 과정을 다음 포스팅부터 설명하려 합니다.
당시 나온 각종 지도와 문헌 자료를 이용하여 분석 판단할 것입니다.

중앙마산변화의 핵심은 이 지역을 철도용지로 묶는 과정과 그것을 푸는 과정입니다.
철도용지로 묶는 과정은 이런저런 자료가 있어서 비교적 쉽게 정리가 되었습니다만 해제과정은 자료가 많지 않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정황을 참고해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글쓰는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주부터 싣겠습니다.

1) 중앙마산이 철도용지로 된 원인
2) 중앙마산이 철도용지로 강점되는 과정
3) 각종 문헌에 나타나는 중앙마산의 철도용지
4) 문헌을 통해본 당시상황과 중앙마산의 도시계획
5) 중앙마산의 형성과 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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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2 농촌 주택개량사업은 새마을운동 시작 다음 해인 1972년부터 전개되었으며 담장이나 지붕 등의 부분적 보수와 개량으로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관리들은 초가지붕이 비위생적이고 아름답지 못..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9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1 196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농촌은 전쟁으로 입은 농토의 피해와 농촌인구의 감소 등으로 아직 근대화의 영향을 받지 못한 채 재래식 농경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거환경 또한 전쟁피해..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8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3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주택 시장은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개발과 성장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지어진 단독주택은 대부분 도시 한옥과 양식이 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7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2 1960년대는 한국사회의 큰 전환기였다. 4·19혁명과 5·16쿠데타에 따른 정치적 격변을 겪었고, 소위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제반 개발이 계획적으로 유도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6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1 1945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주체적인 주거문화를 창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지만 경제 사회적 제반 여건이 불비하여 주체적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5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 2 일제하의 중·상류계층의 주택 유형으로는 양식주택과 절충식(개량식)주택·개량 한옥·문화주택·공동주택·영단주택 등을 들 수 있다. 양식주택은 서양식주택을 말하며, 절충식 주택은 과도기적 상황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