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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9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3) - 강점제1시기


마산최초의 근대식 지도

<馬山>

1916년 / 육지측량부 / 조선총독부 / 1:10,000 / / 울산대 도서관

이 지도는 근대적 측량법에 의해서 제작된 최초의 마산 지도입니다.
1916년에 측도하여 1917년에 제판하였고 1917년 6월 25일 인쇄하여 6월 30일 발행하였습니다.
저작권소유자는 조선총독부이고 인쇄 겸 발행자는 육지측량부입니다.

정가(定價)가 십팔전(金拾八錢)이라고 기재된 것을 보아 판매도 했던 것 같습니다.
범례도 지금까지의 것과 달리 각종 시설물은 물론 토지의 상태와 도로의 종류 및 행정구역의 경계까지 세밀히 나누어 표기해 놓았습니다.

본 지도의 제작과정에 관해서 1986년 백서방(栢書房)에서 펴낸 淸水靖夫의 『日本統治機關作製にかかる朝鮮半島地形圖の槪要』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조선의 일 만분의 일 지형도는 주요도시의 대부분에 걸쳐서 작성되었는데 당초에는 45도시, 제2차대전 말기에는 63도시까지 시행되었다. 이것은 일본과 비교해도 놀랄 일로서 당시 일본에서는 6대 도시와 일부의 연습지(演習地) 뿐이었지만 조선에서는 지방정치의 중심지는 물론이고 역사도시, 군사도시는 인구 일만 이사 도시에도 시행되었다.

이것은 한일합방 후 정치적인 예민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민간 도시지도 제작술의 미 발달에 의한 영향도 크다.

일 만분의 일 지형도 제작의 시기는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 그 하나는 오만분일 지형도 측량 때 동시에 행해진 것으로서 1915-1917에 43지구, 1919년과 1920년에 각 1지구가 제작되어 당초의 45도시가 된다.

두 번째는 1929년부터 1938년까지 19지구가 제작되었으며 지방도시에 미치고 있다.

당초는 道路․集落 ; 赤, 水部․水田 ; 靑, 地貌 ; 茶, 植生(森林등) ; 綠, 注記․鐵道․地類記號 ; 黑의 5색 인쇄로서 ‘京城’의 菊判2枚, ‘平壤’의 四六變形判, 진남포, 부산, 마산의 菊判이외는 전부 柾判이었다.

시가지의 확대, 주변부의 도시화와의 관계에서 점차로 圖積을 정판에서 국판 또는 四六판, 2면에서 4면으로 크게 하고 주변부를 포함하게끔 되어있다. 색채는 제2회 수정(주로 1919-1922)이후 植生(森林등)의 錄의 特殊網版을 폐하고 등고선을 녹으로 한 4색인쇄로 하고 대부분은 이대로 제2차대전 종료까지 계속하고 있다.

4색인쇄 중에는 赤版의 集落에 문자가 그대로 겹쳐져서 인쇄되어 있는 것과 문자 밑에 적판이 없이 희게 된 것도 있다.

전자는 희게 묘사한 집에 판상으로 万線을 덮어 놓은 것도 있고 후자는 銅原版上으로 이미 가옥에 万線이 그려져서 原版은 1색으로 완성되고 인쇄과정에서 색판마다 分版한 것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일 만분의 일 지형도는 거의 여기에 해당한다. 더욱이 ‘경성’4면은 4색 인쇄 외에 1색 인쇄도 판매되어 있다.

 

이상의 제작과정 기록을 보면 이 지도는 1:10,000 지형도 제작의 1단계였던 1915년-1917년, 43개 도시에 걸쳐 제작될 때 만들어 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 소개한 1:50,000 「마산(군사극비)」지도 제작 때 동시에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원래는 채색판인데 제가 입수한 것은 흑백 영인본입니다.

지도에서 나타나는 도시공간의 변화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지도를 보면 1910년대 중반까지 변한 마산의 도시공간을 정밀하게 알 수 있습니다. 도시의 가로 및 건물 등의 상황뿐만 아니라 해안선과 작은 선착장에 이르기 까지 조그마한 시설물도 대부분 표기되어 있습니다.

공공건물은 물론 교량 명칭도 대부분 표기되어 있으며 일본인들의 종교시설인 복수사(福壽寺, 현 마산여고 담장 남서쪽 모퉁이 부근), 본파본원사(本派本願寺, 전 KBS방송국자리), 묘국사(妙國寺, 장군교의 북서쪽 모퉁이)와 피병원(避病院) 2개소(신마산은 현 월성초등학교 남쪽, 원마산은 현 성호초등학교 서쪽 환주산 언저리) 및 화장장(火葬場, 현 산복도로 위쪽 완월계곡 남쪽 산기슭) 등도 표기되어 있습니다.

신마산지역의 도시 상황도 상세하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지도와 내용상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보아 한일병합 후 도시공간의 변화가 별로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지도에서도 장군천까지는 신마산 도시가 확장되었으나 장군천 이북은 지방법원지청과 전기회사만 있을 뿐 원마산까지 아무 시설도 없습니다.

구도로(옛 크리스탈호텔 앞 도로)변에 몇몇 건물이 있을 뿐인데 이것으로도 신마산과 원마산(마산포) 두 도시의 연담화는 아직 요원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지도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내용은 원마산의 변화인데 일본인 박간(迫間)에 의한 남성동 매립과 최초의 근대식 도로가 개설된 것이 정확히 나타난 것입니다.

매립지에는 이미 우편소라는 이름으로 건물도 들어서 있으며 이 밖에 몇몇 건물이 더 표기되어 있습니다.

박간이 남성동 해안을 매립한 후에도 동굴강은 매립되지 않다가 1927년에 일부 매립되고 1935년 매립 때 완전히 자취를 감춥니다.
이런 상황이 반영되어 이 지도에 동굴강이 본 모습으로 형태를 드러내고 있으며 신마산에서 원마산의 중심부까지 연결되는 도로와 원마산 중심부 일대의 근대식 직선도로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한편, 원마산 도시 영역은 아주 미미하지만 북쪽 방향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삼각형의 원마산 외곽선 형태 는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1910년대의 마산도시구조 변화는 이 지도로 인해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마산도시변천사를 알려주는 정말 귀중한 자료입니다.

위 지도를 현재 위성사진으로 옮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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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3 10:11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0) - 개항기


오늘부터 개항기 때 제작된 마산지도를 소개하겠습니다.
지도의 기본정보 표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는 지도의 제목이며 제목 아래에 표기한 것이 지도의 기본 정보입니다. 표기 순서는「제작연도 / 제작자 / 발행처 / 축척 / 수록처 / 소장처」순입니다.
기록이 불가능한 부분은 해당 칸을 비워「/ /」로 표기하는데 지도제목이 동일한 경우에는 지도명칭 뒤에「*, **, ***」를 붙여 구분하겠습니다.


<馬山浦 及 附近, 마산포 및 부근>

1899년 / 上野亮 外 / 일본해군 / 1 : 49,054 / / 일본국회도서관


일제는 일찍부터 마산을 자신의 식민지 주요 거점으로 눈독 들여왔었습니다. 그러므로 원산․부산 등과 마찬가지로 마산지역의 측량과 지도제작도 진작 시작되었습니다.

이 지도는 일제가 침략을 목적으로 한반도를 측량하기 시작한 직후 제작된 것입니다. 근대적 측량법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마산관련지도로 추정됩니다.

표기내용과 축척, 제작시기 등을 미루어 지난 주 올린 글에서 소개한「군용비도(軍用秘圖)」의 초기도면으로 보입니다.

지도의 왼쪽 상부가 마산포인데 도면의 명칭처럼 진해, 웅천까지 마산포 근방 해안을 상세히 표기한 지도입니다.
오른쪽 상부에 별도로 그려놓은 것은 거제도 지세포 항을 확대한 지도입니다.

마산포부분만 확대하여 옮겨보겠습니다.


지도 상부에 짙게 표시된 삼각형 지역이 마산포입니다.

이 지도에 의하면 1899년 마산의 도시상황은 마산포(원마산)의 영역인 남성동을 중심으로 성립한 일단의 자연발생 취락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산포(원마산) 남서쪽으로 약 2km 떨어진 소위 신마산에 일본인들이 새로운 도시, 즉 각국공동조계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는데 위치는 지도의 좌측중앙부입니다. 가늘게 직선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두 곳 사이에 위치한 중앙부(마산포와
신마산의 중간 부분인 현 자산동․중앙동 그리고 장군동 일대)는 논밭으로 이어진 채 인가(人家)가 거의 없었습니다.

원마산 외에는 오산이라 불렀던 용마산 아래의 현 산호동에 마을이 있었으며 북쪽으로 교방동 및 회원동 그리고 현 봉암교 아래의 봉암동에도 마을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양덕과 합성 쪽에도 이 당시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이 지도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외에도 환주산 근처에 성호동과 자산동, 그 남쪽으로 완월동․신월동․월영동 쪽의 마을도 잘 그려놓고 있습니다.

무학산에서 마산만으로 흐르는 하천은 교방천과 회원천․척산천(尺山川)․장군천․창원천이 표기되어 있는데 특이한 것은 장군천이 현재처럼 직선으로 마산만과 연결되지 않고 휘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지도상의 장군천 하구는 마산선 철로의 기점이었던 마산 역 자리입니다.
1905년 이후에 제작된 자료들과 관련해 볼 때
장군천은 1905년 일본군에 의해 마산철도와 마산 역이 건설될 때 지금처럼 직선화된 것 같습니다.

각국거류지라고 표기되어 있는 조계지 내의 세관․일본영사관과 함께 나타나고 있는 건물은 개항과 함께 개설된 우편국을 말하는 것으로서 1899년 당시에는 임대건물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봉암동 쪽입니다.
지금의 창원공업단지에 표현되어 있는 염전인데 구전으로 전해오던 봉암의 대규모 염전이 이 지도가 정확하게 그 실체를 표기하고 있습니다.
지도의 오른쪽 상부에 바둑판처럼 격자로 그어 놓은 것이 염전 표시인데 이 염전은 해방 이후까지 존속하여 1947년에 미군이 촬영한 항공사진에도 나타납니다.

보는 것처럼 이 지도에는 진해만을 중심으로 마산포 부근의 해안선․수심․지형 등이 비교적 정밀하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특히 간석지의 경계까지 상세히 표기해 놓아서, 매립 등으로 사람의 손이 닿기 전에 존재했던 천연상태의 마산포 해안 원형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로 보입니다.

이 지도는 일본 국회도서관에서 찾았습니다.
지도를 보는 순간, 그리고 이 지도가 1899년 제작되었다는 기록을 보는 순간, 저는 전율했습니다.
너무나 상세하고 정확한 지도의 내용에 놀랐고, 다음은 1899년이라는 시기와 제작자가 일본해군이라는 점에 또 놀랐습니다.

1899년에 제작했다면 비밀리에 한반도 곳곳에 들어와 측량한 시기는 그 보다 몇 년 전일 겁니다.
1899년은 마산이 개항된 해이기도 하지만 을사조약 6년 전, 경술국치 11년 전인데 이미 그 때 한반도의 해안을 이렇게 샅샅이 조사해 놓았다는 사실에 놀랐던 겁니다.

조선을 식민지 삼겠다는 야욕이 한 눈에 확인되는 이 지도를 보면서 '이렇게 치밀하고도 은밀하게 준비한 일제의 야수를 벗어날 길이 없었겠구나'라는 자조감도 들었습니다.


아래 그림은 위 지도에 표기된 부분의 현재상황입니다.



끝으로 이 지도를 조금 더 확대해 현재 마산시내의 시설물들 위치와 비교해보겠습니다.
3.15의거 탑 바로 앞이 바닷가였고, 대우백화점은 바다 한 복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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