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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7 00:00

스페인 도시이야기 11. 바르셀로나. 성가족 성당

성가족 성당의 건립기

- 1866 : 카탈루냐 지방의 서적상이자 출판인 '호세 보카베리야'에 의해 성가족 봉헌 성당을 짓기로 결정          - 1881 : 일부 기금을 모아서 에이삼플 구역 외곽에 땅을 매입하고, 교구건축가인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빌랴르'에게 설계의뢰                                                                                                                - 1882 : 신고딕 양식의 교회를 설계하여 1882년 성요셉 대축일에 초석을 놓음                                    - 1883 : 지하 납골당 기둥이 반 정도 건립될 무렵, 설계자 빌랴르와 교구와 마찰로 가우디가 공사를 맡으면서 초기의 디자인은 폐기되고, 완전히 새롭게 시작 (당시 가우디 나이 31세) 지하 예배당을 마무리 하는데 4년이 걸렸다.                                                                                                                     - 1906 : 예산사정으로 공사가 지연되는 가운데 성당의 계획이 마무리 되어 지금의 모습인 예수의 '탄생',과 '수난'과 '영광'을 의미하는 세 개의 정면을 기본안이 마무리됨                                                 -1916 :   최종 설계도는 가우디의 협력자인 '후안 루비오 이 벨베르'(1870-1952)가 1915년에 완성하여  (길이 90M,넓이 15M,  높이 45M에 달하는 가운데 홀, 좌우 날개 회랑 높이 30M, 좌우 날개 접점에 높이 170M의 종탐), 1917년에 최종 설계도 발표. 이 때부터 가우디는 작업실을 현장으로 옮겨 인부들과 숙식을 함께 하며 작업                                                                                                                          - 1926 : 가우디 사후, 스페인 내란의 여파로 탄생의 문에 설치된 조각상 훼손 및 지하 가우디 무덤까지 훼손됨                                                                                                                                          - 1936 : 스페인 내전중에 약탈과 방화로 작업을 위한 사진, 석고모형, 문서 등 소실                             - 1938 : 내전이 끝난 후 '프란시스코 데 칸다라' 지휘하래 지하예배당 재건축이 시작                           - 1985 : 건축가 '조르디 보네트'가 감독으로 지명되어 공사 진척이 빨라짐                                          -  2026: 가우디 사후 100주년에 완공예정임

성가족 성당의 구글지도 사진입니다. 건물 좌우측에 공원이, 아래쪽에 상가가 있읍니다. 가장 중요한 아래쪽 출입구는 현재 공사중이며, 좌우측 문으로 출입이 가능합니다. 그나 저나 주출입구앞 계단과 마당이 확보되려면 아래측 상가부지가 통채로 철거되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 평면입니다. 우측출입구가 탄생의 문, 좌측 출입구가 수난의 문, 아래쪽 출입구는 영광의 문으로 이름이 붙어있읍니다. 건물의 평면은 전통적인 십자형태입니다. 상부의 원형이 제대가 놓이는 부분이고 주변에 부속실들이 배치됩니다. 현재 설치된 첨탑은 우측 출입구 부분 4개의 탑이 완성되어 있으며, 좌측은 공사중이며, 중앙부는 외부 골조공사중입니다. 

- 우측면 출입구 부분입니다. 아래의 사진은 1960년에 찍은 사진입니다. 비교해 보면, 좌측의 성당부분 외벽이 추가로 지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거의 100년전에 붙이 석재와 지금의 석재는 세월의 때의 농도가 다른 것을 돌의 색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 모형사진입니다.  기념품 코너에서 찍은 겁니다. 앞으로 지어질 중앙부 출입구 모양을 예상할 수 있읍니다. 좌우측 문에 비해서 폭과 높이가 더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우측면에서 본 모형입니다. 현재의 첨탑은 출입구 상단을 장식하는 4개의 첨탑입니다. 그러나 최종 모형에서 중아부에 설치되는 첨탑과 제대 상단에 설치되는 첨탑이 규모나 높이면에서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교차부에 설치되는 첨탑을 중심으로 주변에 배치된 4개의 첨탑, 다음으로 제대 원형부 첨탑, 출입구 3개소에 설치된 4개씩의 첨탑을 합하면 18개의 첨탑이 완성될 것입니다.

- 후면, 제대부분 모형사진

성당의 공간별 명칭 : 성가족성당은 내외부가 몹시 복잡한 구조이기 때문에 공간별로 구분해서 보는 것이 전체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먼저 외관의 경우 동측에 있는 탄생의 문을 중심으로 하는 우측면을 그리고 좌측의 수난의 문 중심으로 서측면을 그리고 주출입구에 해당하는 영광의 문은 현재 공사중인 관계로 딱히 설명드릴게 없을 것 같읍니다. 실내공간에 들어서서는 평면에서 남북방향으로 주심이 되는 축 방향의 공간을 신랑, 주랑(身, 柱, Nave)라고 합니다. 가장 중심이 되는 축으로 북측면에는 제대가 있는 곳을 앱스(Apse, 後陣)라고 합니다. 성가족 성당은 아래의 평면처럼 내진이 없이 바로 앱스에 제대가 있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신랑 좌우로 측랑(側, Aisle)이 2칸씩 있읍니다. 즉 남북방향으로 5개의 공간이 나란히 있는 것입니다. 좌우 측벽은 외측랑에 해당되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남북축에 직교하는 가로축이 있읍니다. Transept이라고 하며, 굳이 해석을 하자면 익랑(翼廊), 수랑이라고 합니다. 이부분이 좌우 출입구가 설치된 것입니다. 우측이 탄생의 문, 좌측이 수난의 문이 해당됩니다.

1. 탄생의 문 : - 현재 주출입구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3개의 출입구 위에 예수님 탄생을 알리는 조각상들이 즐비해 있습니다.- 첨탑을 올려다 봅니다. 색상과 형태의 이미지가 대자연의 한부분을 보는 기분입니다.- 3개의 출입구 상단을 동시에 본 모습입니다. 실제 아치 상단에 있는 조각상의 모습은 사진을 통해서 확인했습니다.- 중앙 기둥 상부에 예수탄생의모습이 그리고 상하좌우에 이를 축하하기 위한 천사와 연주자들의 모습입니다.- 중앙 기둥에 있는 예수탄생상입니다. 아마 밑에서 보여지는 것을 감안하여 실제 인체스케일을 고려하여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왼쪽 출입구 상단의 조각상입니다. 배경의 동식물 문양이나 인체의 곡선, 옷의 실루엣 등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아치위의 아치을 장식하는 동물의 이빨모양의 형상, 그리고 그 위레 있는 해초모양 즉물적 디자인

2. 수난의 문 : - 좌측의 수난의 문은 현재 열심히 공사중입니다.- 얼핏 보아도 재료의 질감이 '탄생의 문과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처마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가우디가 남긴 수난의 문 스케치입니다. 특별히 처마를 설치한 이유는 남서측의 석양에 조각상이 너무 밝게보이므로 인하여 수난의 의미가 퇴색될 것을 우려한 것이 아닌지---

- 중앙부의 조각상입니다. 수난의 문 조각은 스페인의 현대조각가인 수비라치가 전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왼쪽 출입구 부분은 현재 공사중입니다.- 오른편 출입구 부분입니다. 처마가 깊은 곳의 조각상은 잘 보이지 않는 군요  

예수님의 수난과정을 표현한 조각상들

- 예수님의 수난과정을 표현한 조각상들

 

 

 

 

 

 

  - 탄생의 문 조각이 사실적인 것에 반하여 '수비라치'의 조각은 너무나도 비구상적이어서 묘한 대비를 이루게 합니다. 어쩌면 수난을 과정을 사실적으로 표현보다는 비구상적 표현이 더욱 참혹한 상황을 묘사하기에 적합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3. 주랑(Nave)

- 중심부 천정의 모습입니다. 고측창에서 내려온 빛이 하얀 대리석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려고 합니다.- 제대를 바라본 모스입니다. 중앙부 높이 40미터의 깊이감에 의해 목을 젖혀지게 합니다.- 남측방향의 주랑은 빛이 가득합니다. 해바라기 모양의 천정과 다발기둥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듭니다.- 주랑에서 측랑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측랑의 스테인드 그라스의 노란빛과 주랑의 흰색빛이 묘한 대비를 이룹니다.- 외측랑의 발코니 부분입니다. 유감없이 파동형의 물결이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4. 제대(Apse) : - 중심공간이 제대부분입니다. 저층부분은 후진부분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붉은색, 노란색, 적색의 빛깔고 고창에서 내리쬐는 하얀 빛의 조화가 빛의 향연을 보는듯 합니다.- 제대 옆의 기둥입니다. 최고높이 170미터를 지지할 기둥이니까 크게 당연하겠지요, 지름 2미터 이상은 될 듯--

5. 익랑(Transept) : 탄생의 문에서 들어서서 본 천정의 모습입니다. 정면이 수난의 문 방향입니다.- 천정면의 색상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 보이네요, 흰색에서 갈색으로 변하는 듯, 창문이 격자형이라 약간 이질감이 ---- 문은 청동에 글자 디자인으로 장식되어 있읍니다. 아마 조각까지 통채로 수비라치가 디자인 한듯 합니다. 여러모로 모던한 느낌이 납니다.

6. 측랑(Aisle) : - 주랑 옆의 측랑입니다. 주랑보다 낮지만 주랑의 깊이감을 더해주는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측랑의 외벽부분입니다. 스테인드 그라스의 정연한 모습이 유선형의 천정과 대비를 이룹니다.- 남측 주출입구 옆에 설치된 돌음계단입니다. 계단 주변의 디테일이 볼만합니다.- 외측랑은 복도기능을 합니다. 그리고 발코니부분의 디자인 역시 범상치가 않습니다. 삐죽 뻗은 뿔의 모습, 미역을 널어 놓은 듯한 난간의 모습.

7. 지하전시장- 성당 지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가우디 생전에 현장사무실입니다. - 현장에서 실험한 모형들을 전시라고 있습니다.
- 지하 한켠에 건축가 가우디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가우디의 생애 : 가우디는 31살의 나이에 성가족 성당의 설계를 맡은 후 74살에 세상을 떠나기 까지 성가족 성당과 43년을 함께하였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하루 일과는 일정하여 미사, 아침묵상, 삼종기도, 산책, 고해성사로 이어지는 수도자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천재 건축가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손세관 교수의 표현대로 '아름다음을 건축한 수도자'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 가우디 초상스케치, 그리고 조각상들, 우측 두상은 수난의 문 조각을 맡은 수비라치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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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류창현 2014.02.27 10:2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잘봤습니다. 사진과 설명이 생생하여 마치 제가 다녀온것 같네요.

    • 삼식 2014.02.28 13:44 신고 address edit & del

      읽을만 하다니 다행입니다.
      ㅎㅎ

  2. 박진섭 2014.03.12 12:0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성가족 성당에 대한 미적, 구조학적 가장 훌륭한 자료인 것 같습니다. 문외한인 제가 보아도 즐겁게 느껴집니다. 다음에 시간날 때 좀 더 천천히, 꼼꼼히 볼 생각입니다.

    • 삼식 2014.03.14 09:48 신고 address edit & del

      저가 정리가 않되어서 구분설명하였는데
      보기 좋았다니 다행이네요

2014.02.20 00:00

스페인 도시이야기 10. 바르셀로나와 천재건축가 가우디

● 유럽인과 예술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로 바르셀로나를 꼽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는 지중해성 연안의 기후로 인해 연중 햇살이 가득한 환경적인 조건이 큰 몫을 하였을 겁니다. 그래서 바르셀로나를 지중해의 수도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조건과 함께 예술, 문화, 건축 등 풍요로운 생활여건을 들 수가 있읍니다. 또한 스포츠에서도 빠지지 않군요, 'FC 바르셀로나' 축구팀은 바르셀로나의 역동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단면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보다도 바르셀로나를 더욱 역동적인 도시로 인상지어지는 이유는 20세기 천재들의 활동 거점지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피카소,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랜드마크이자 상징인 성가족 성당을  만든 천재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작품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심가로 현황 : 가운데 부정형 가로망에 의해 형성된 곳이 구시가지이며, 주변 외곽에 격자형으로 확산된 가로망은 1860년 도시계획에 의해 확장된 신시가지에 해당됩니다. 구.시가지에 폭넓게 사선으로 내려오는 녹지축이 그 유명한 람브라스 거리입니다.

스페인의 지중해안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도시로, 스페인 제2의 도시. 로마시대부터 발전한 항구로, 중세 아라곤 왕국시대에는 지중해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의 하나였다. 시내에는 산타 우라리 대성당 (14-15세기)을 중심으로 ‘고딕지구’가 있다. 지중해 연안 최대의 근대도시로서 근대미술 활동이 활발하며,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게르 공원, 카사 미라 등이 있고 또 피카소의 초기 작품을 모은 피카소 미술관이 있다. 마르세유와 마찬가지로 페니키아의 도시를 기원으로 하며, BC 3세기에 이 곳을 지배한 카르타고인이 바르시노(Barcino), 즉 바르카가(家)의 도시라고 명명하였다. BC 201년에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아직도 구(舊)시가지의 중심부에 있는 고딕가(Gothic街:바리오·고티코스)에는 그 당시의 성벽이 일부 남아 있다. 8세기에는 무어인이 점령하였으나, 801년에 샤를마뉴(카를大帝)가 이를 해방하고 지배하였다.
12세기에는 카탈루냐 백작과 아라곤 여왕의 결혼으로 아라곤 왕국이 이루어졌고, 바르셀로나는 그 수도로서 해운·수공업·금융의 중심으로서 번영하였으며, 14세기에는 그 절정에 달하였다. 19세기 말부터는 에스파냐의 사회주의무정부주의 운동의 중심이 되었고, 1936∼1939년의 에스파냐내란 당시에는 공화정부(인민전선정부)의 마지막 거점이 되었다가 1939년 1월에 프랑코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시가의 중심인 람블라로(路)에는 은행·상사(商社)·고급상품점이 줄지어 서 있고, 이 거리의 남단인 항구 부근의 푸에르타데라파스에는 콜럼버스의 기념상이 있다. 이 거리의 서쪽은 19세기까지 건물이 들어찼으며, 동쪽에 있는 중세까지의 도시지역을 포함하여 구시가라 부르는데, 그 주위를 론다스라고 하는 성벽 터전의 대로가 반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그 바깥쪽의 직교상(直交狀)의 시가는 1860년의 도시계획으로 건설된 신시가이다. 바르셀로나의 공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섬유공업(방적업)인데, 19세기 후반부터 발전하기 시작하여 그 영향으로 1845년에 14∼15만 명에 지나지 않던 인구가 1931년에는 100만 명을 돌파하였으며, 화학·금속공업도 가세하여 이베리아반도 제1의 도시가 되었다.  내란 후의 중앙집권화에 따라 한때 마드리드에 그 자리를 빼앗겼으나, 그 후 관개시설이 갖추어진 에브로강(江) 서부의 풍부한 농산물과 피레네의 수력(水力)으로 자동차·항공기 공업, 식품가공업 등이 활발해지면서 번영을 되찾고 있다. 카탈루냐 문화의 중심지답게 인쇄업도 활발하며, 지금도 문화·경제의 모든 면에서 카스틸랴의 중심인 마드리드에 대한 대항의식이 강하다. 

- 카탈류냐 광장과 람브라스 가로 : 위에 사다리형태의 공원이 카탈류냐 광장이며, 아래 가로수에 의해 녹색띠를 형성한 것이 람브라스 가로입니다.

카턀류냐 광장 (Place de Catalunya) : 카탈류냐 광장은 최대의 번화가이자 관광객들의 출발지입니다. 광장에서 남측으로 뻗은 람블라스 거리와 그 주변이 구시가지이고, 북쪽은 그라이사 거리주변으로 신시가지에 해당됩니다. 광장 중심에 대형분수가 있과 주변에는 백화점, 쇼핑센터, 극장 등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광장 외곽에는 자전거 베이가 많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광장으로 갈 수 있는 지하도입구- 광장 주변 인도에서의 거리공연 : 인도의 너비가 10미터는 족히되어 보입니다.- 인도주변에 설치된 노천카페, 이또한 허가를 받고 주어진 시간에만 개장이 가능합니다.-인도폭이 넉넉하니까, 노천카페와 보도공간이 확보가능함.

람브라스 가로 (Las Ramblas) : 바르셀로나의 명물거리이자 유럽에서 가장 사랑받는 번화가인 람브라스 가로는 아랍어로 '돌들의 강'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중세이전부터 바르셀로나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지중해가 시작되는 항구까지 1키로미터 정도 일직선으로 난 거리입니다.- 말 그대로 사람들의 물결, 인파의 열기를 몸소 느낄 수 있는 람브라스가로 시작점 - 가로는 양측에 일방향 편도정도의 차도가 있으며, 중앙부에 넓직한 보행로가 있어서 보행자 중심의 가로로 구성되어 있음. - 중앙부 보행로에 키큰 가로수가 조성되어 있어서 보행로에 풍부한 녹음을 제공해주고 있음. - 탈거리, 볼거리를 제공하는 마차

 - 잘 정비된 가로상점들- 여행의 잔재미를 제공하는 기념품샵 - 이동 및 철거가 용이한 키오스크 - 금강산도 식후경, 주전부리를 제공하는 노상점포

보케리아 재래시장(La Boqueria) :  람블라스 가로 시작점에서 남쪽으로 1백미터 정도 내려가다가, 우측에 보이는 곳이 재래시장 보케리아입니다.  바르셀로나 관광 최고의 명소로 꼽는 다고 합니다. 11세기 고기를 파는 장이 서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렀다고 하네요, 건물은 14세기 수도원성직자들이 사용한 건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보케리아는 카탈란어로 고기를 파는 광장이라는 뜻이며,  수도원이름을 그대로 따 산호세프시장으로보 불린다고 합니다.- 시장입구 : 중앙부에 큰 아케이드형 지붕에 내부 소점포들이 배치되어있는 모습- 말 그대로 입추에 여지없이 밀리는 관광객들- 소점포간에 나름대로 업종과 간판들이 잘 정비된 모습- 이 통로는 과일을 주로취급하는 곳

 - 깜찍하게 잘 정리된 매장전경들 : 말이 재래시장이지, 사실은 관광객들의 가벼운 쇼핑에 적합한 형태의 상품구성으로 사지 않고는 못배기도록 ----

시내가로에서 본 가우디 작품들- 카사 바트요(Casa Batllo) : 당시 뼈로 만든집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리모델링 당시 구조보강을 위해 뼈 모양을 기둥을 세우며 현재의 모습인 해골의 형태가나왔다고 하며, 외벽면의 유리모자잌 장식으로 화려함과 기괴함의 이미지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건물의 소유주가 우리가 즐겨먹는 방망이 사탕 '츄파춥스' 회사라고 합니다.- 카사 밀라(Casa Mila) : 카사 바트요의 후속작품으로 공동주택으로 당시 채석장으로 불리웠다고 합니다. 앞서 소개한 모세라트의 석산과의 영향이 있는것 같습니다. 유려하게 흐르는 곡선은 거대한 유기체의 모습으로 도심에 떡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바르셀로나와 가우디 : 안토니오 가우디의 활동은 한 도시, 곧 바르셀로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있습니다. 이 건축가가 1883년에 태어나 1926년에 생을 마감할 때 까지 개인 저택과 학교, 임대아파트, 공원, 성당 등 자신의 모든 작품을 탄생시킨 곳이 카탈류냐의 수도 바르셀로나였기 때문입니다. 그 중 성가족성당은 가우디가 1883년부터 일한 곳으로 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미완성으로 남아서 현재가지 공사중에 있습니다. 천재건축가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니지만, 알고보면 천재라기 보다는 성직자처럼 헌신하는 구도자처럼 느껴졌습니다. 다음 편에 그의 삶과 성가족성당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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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동추 2014.03.13 17:5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정말 아름다운 도시 입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 삼식 2014.03.14 09:50 신고 address edit & del

      우리네 도시도 잘 가꾸면
      그 못지않게 될 것입니다.

  2. 메시 2014.11.06 17:5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메시는 레알마드리드가 아니라 바르셀로나 소속입니다. 레알에는 호날두가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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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찾아가다 - 25 (마지막 회)

25. 3·15의거에 대한 기억 「그날 나는 ‘극장 구경 시켜주겠다’는 주무돈이란 동네친구의 호의에 끌려 10리 가까이 되는 길을 걸어 ‘시민극장’으로 갔다. 그때 나는 대학입시에 낙방한 직후라 의기소침해 있던 상황이었다. 우..

기억을 찾아가다 - 24

24. 이승만 행사 -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 노인잔치...... 내 고등학교시절의 어느날 동회 서기가 들고온 책자를 잠시 훑어본 기억이 남아있다. ‘한국 정치인 99인집’이란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승만편이 현격히..

기억을 찾아가다 - 23

23. 떠돌이들, 좀도둑 전쟁이 끝나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들갔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남아있었다. 좌우갈등의 와중에 있었던 몸이라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고 들은 문씨 같은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가봤자 땅뙈기 ..

기억을 찾아가다 - 22

22.기합, 주먹자랑, 몸단련 중학교시절에도 조금은 의식되었지만 신경을 곤두세울 정도는 아니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그 문제들은 신경의 상당부분을 자극하여 행동거지의 상당부분을 조종하고 지배할 정도로까지 작용했다. 소위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2

지난주에 이어 녹색 기둥의 정원 에서부터 선유도 이야기를 이어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녹색 기둥의 정원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 기둥만을 남겨 만들어진 이 정원은, 선유도 이야기관 의 설명에 의하면 ‘휴식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