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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0 00:00

런던도시이야기 11. 템즈강의 보행로 '밀레니엄 브릿지'

 ♪ 템즈강변에는 20여개의 다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 중 보행자 전용 보행자 전용으로 설치된 다리를 소개할까 합니다. 앞서 소개한 '테이트모던 미술관' 앞에 건립된 다리로 2000년을 맞아 건립된 '밀레니엄 브릿지'입니다. 테이트모던 개관과 함께 템즈강을 기점으로한 마주보고 있는 '세인트 폴 성당'으로 향하는 관광객들의 동선을 고려하여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보행자전용다리로 건립되기는 최초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대미술관이 테이트 모던과 중세의 세인트 폴성당을 연결하는 기능을 하기에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리라는 상징적인 다리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다리의 설계자는 앞서 소개한 '거킨빌딩'과 '런던시청사'를 설계한 영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노만 포스터'입니다. 

 - 밀레니엄 브리지의 특징 : 기존 다리의 개념을 초월한 디자인입니다. 다리 중간에 2개의 Y자형 교각을 설치하여 370미터에 이르는 강건너 제방까지 연결된 구조입니다. 첫째, 중앙부 교각의 거리가 100미터를 넘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일단 교각의 구간길이를 이토록 장스판으로 구상하였다는 자체가 엄청난 발상입니다. 인접한 다리의 주각거리를 감안한다면 거의 상상이 않되는 거리입니다. 두번 째 특징은 교각의 형태입니다. T자형도 아니고  Y자형태로 디자인 하였다는 것은 원경에서 보았을 때 날렵함을 고려한 형태인 것 같습니다. 세번째는 이 지점을 연결하는 구조가 강관에 의한 현수구조(선형 구조재에 의해 메달린 구조)로 해석하였다는 것입니다. 전체의 높낮이 변화가 적은 것을 평면적으로 확장시켜 현수구조를 지탱한 것입니다. 저는 겨우 시공된 형상을 보고 해석이 될 정도입니다. 이러한 구조를 해결할 수 있는 것 역시, 영국의 엔지니어링 기술력이 바탕이 되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이 다리의 구조적인 실험성 때문에 완공당시 흔들림이 심해서 바로 개통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일정기간 보완작업을 거쳐 개통되었다고 합니다.

- 주고적으로 거의 상상하기 힘든 구조입니다. 보행로 부분은 거의 수평에 가까운 파이프구조물이 약 120미터 이상의 스판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브릿지 상세 : 다리 상판 아래으 파이프구조물로 전달된 하중의 일부가 외곽에 펼쳐진 현수구조물로 전달된다)(현수구조상세 : 바닥의 강관과 외곽에 있는 4개의 파이프가 하중을 주각으로 전달하는 역항을 하며, 또한 처짐과 진동을 잡아주는 완충역할을 하고 있다.)(교각부 주변의 현수구조 상세 : 사선부재는 다리의 진동과 처짐을 잡아주는 완충재입니다.) 

- 멀리서 보면 외곽부의 현수구조물이 수평, 수직적으로 완만한 포물선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실제 보행자들은 이러한 하중전달의 메카니즘을 전혀 모르고 이동하고 있겠지요!!!

- 다리 남측 사우스뱅크 방향에 시선을 끄는 뾰족한 건물이 런던에서 가장 높은 '샤드빌딩'입니다.

- 테이트모던 미술관 으로 가기 위해 내려가는 경사로 입니다. 유리난간을 통해 시야을 최대한 개방감있게 처리하여, 반대편에 있는 세인트 폴 성당의 돔 상단 끝 부분이 보이기도 합니다.

- 다리 디자인 및 구조 : 모든 부재는 구조재를 제외하고는 경량화 시켰습니다. 바닥판도 철근콘크리트 스라브 구조가 아닌, 얇은 경량판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주변을 조망하는데 걸리는 부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가장 주요한 디자인 개념은 최대한으로 슬림화하는 것입니다. 중량적으로 시각적인 개념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구조부재를 최소화함은 물론이고, 마감자재로 난간은 철사로, 바닥은 알미늄계열의 박판으로 하여 '경단박소 디자인'의 완결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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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1 08:30

쌍용양회 '싸이로'는 근대산업유산이다!

어는날 갑자기!
사는 곳이 해안도로 근처라 아침마다매 창문을 열면 마주하게 되는 거대한 시설물이 하나있다.
그것은 바로 시멘트를 담아두는 창고와도 같은 곳으로  '싸이로(Silo)'라는 놈이다.
그런데 몇일 전부터 이 싸이로 근처에서 수상쩍은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부터인가 배에 시멘트를 부어 넣는 슈트가 철거되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슈트를 지지하였던 수중 교각들 마저 철거되어 "이제 조 놈의 싸이로는 수명을 다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멘트를 배로 보내주던 슈트가 해체되어 널부러져 있다. 이것을 받쳐주던 수중 교각도 깨끗히 철거되었다.)

쌍용양회 싸이로
- 해안도로변에 있는 쌍용양회의 사이로는 크기는 직경이 약 10미터 정도이고, 높이는 약 50미터 되는 크기로 2개가 세트로 서있다.
- 이 시설물은 지난 77년 현재 마산시 월포동 마산지방해양항만청 옆 자리에 지어져 지금까지 한 자리를 35년간 지켜온 산업시설물이다.
- 이 싸이로의 용도는 대용량의 시멘트를 필요로 하는 곳에 '배떼기'(?)로 보내기 위해 만들어진 출하장이라고 할 수 있다.
쌍용양회 본 산지인 동해에서 이 곳으로 시멘트를 수송하여, 여기에서 다시 경남일원으로 시멘트를 보급한 기지로 사용되어 왔다.
2008년 전경 /경남도민일보 자료사진  
 

쌍용양회 마산공장 이전
- 쌍용양회 마산공장 이전은 서항지구 해양 신도시 개발사업에 따른 것으로 , 이전하는 곳은 바다 건너편 창원시 귀현동 마산항 제5부두 북측에 이미 옮겨져 싸이로가 가동중에 있으며, 해안도로변의 싸이로는 이제서야 용도가 폐기된것 같다.

왜 근대산업유산인가?
- '산업유산'은 근대화과정에서 형성되고 조성되어졌던 항만, 공장, 창고, 수운, 철도, 운송, 광업, 교통시설등이 기능이 저하되고 황폐화됨에 따라 이들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고 생명력을 불어넣은 노력들, 즉 퇴락하여 가는 산업시설들을 대상으로 하여 도시재생기법의 한 유형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들이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 이러한 산업유산은 그 도시의 문화관광과 연계하여 장소마케팅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싸이로의 재탄생을 위하여!
-  쌍용양회 마산사무소에 전화를 해보았더니 다행히 싸이로의 철거계획은 없다고 한다.
- 외국의 경우 이러한 싸이로의 골조를 활용하여(물론 구조적인 보강은 하였겠지요!) 전시관이나 아파트로 사용된다고도 합니다.
- 이와 유사한 예로 화력 발전소 공장과 굴뚝을 박물관으로 재탄생 시킨 대표적인 케이스가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테이트모던 미술관은 발전소건물의 재활용 뿐만 아니라 굴뚝을 상징적 요소로 남겨두었다.)


- 이 싸이로의 철거를 포함한 사용권한이 어느 기관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지역이 수변공간으로 용도가 지정이 된다면, 재탄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리가 생각됩니다.
- 싸이로 내부 공간을 이용한 전망대나, 레스토랑도 가능하 것이며, 공원시설에 적합한 용도로 재활용이 가능한 방법은 얼마든지 현상공모를 통해서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시간성과 장소성이 담겨진 '싸이로의 재탄생'을 기다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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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옥가실 2012.02.07 19:5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다시 보니, 정말 그럴듯한 산업 유산이군요.
    멋진 아이디어입니다.

  2. 싸이로앞아파트주민 2012.02.08 23:0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지역발전에 힘쓰시는 님을 존경하는 한사람으로서 이번엔 정말 이해할수 없는 말씀을 하셔서 한글 적어봅니다. 님의 역사사랑에 대한 마음은 이해하겠는데요 좋은 말씀이기하지만 다른 나라의 좋은 경우들이 우리처럼 주택가였는지 그런 경우도 살펴봐야 할거구요? 얼마나 아름답게 재탄생할지는 모르지만요.....흉물 앞에사는 주민들은 철거하라고 민원이 많습니다. 나보기 이쁘다고 남의 집앞에 세워두는게 얼마나 합리화가 될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시멘트 저장고가 무슨 큰 의미가 있는지 개인적인 취향 이시겠죠? 바로 앞 아파트 분양시에도 철거를 전제로 분양하였고 시에서도 철거로 가닥잡는다면 그렇게 되어야된다고 봅니다.

  3. 허정도 2012.02.09 10:0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하시는 말씀 충분히 이해는 됩니다.

    • 옥가실 2012.02.10 23:00 신고 address edit & del

      주민으로서는 그런 불만이 있을 수 있겠군요.
      하지만, 저는 마산의 바닷가에 서 있는 고층아파트를 볼 때마다, 왜 저 아파트는 많은 시민들이 함께 누려야할 자연경관을 저처럼 독점하나...시내 한복판을 성벽처럼 가두어 두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자그마한 산업 유산이라도 잘 보존하고 활용해서 좀 더 나은 주거환경을 갖고 싶은 것이 조그만 욕심이랍니다. 이 점도 이해하여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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