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0.11.24 00:00

남해안 경관 더 늦기전에 지켜야


통합 창원시의 발전방향에는 ‘해양문화 중심도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아시아해역환경관리협력기구(PEMSEA-팸시)가 주관하는 「2012년 제4차 동아시아 해양회의」 개최도시로서 당연한 비전입니다.
이 회의에는 동아시아국가의 해양관련 장관, 교수, 전문가 등 2,000여 명이 참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지난 19일(금) 오후에 CECO에서 「남해안 선벨트 한중해양도시의 국제협력 방안」이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주최는 「국회 남해안시대를 위한 의원 연구모임」과 「경상남도」였고, 「창원MBC」와 「경남발전연구원」이 주관하였습니다.



이런 류의 행사가 늘 그렇듯이 인사말이 참 길었습니다. 국회의원과 광역단체장 등 내노라 하는 여섯분의 인사말 때문에 개회된지 40분이 지난 뒤에야 본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본 행사는 박양호 국토연구원장의 ‘남해안 선벨트시대의 국가발전’이라는 기조강연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최점봉 중국연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한중 해양도시 교류의 필요성’이라는 제목으로, 남기범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가 ‘남해안선벨트 해양문화중심도시 육성전략’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기조발제를 하였습니다.




오후 4시에 시작한 토론회는 두 발제가 끝나자 6시가 되었습니다. 토론자 일곱 명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한 시간이었습니다.

최덕철 경남대 대외부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에는 임은순 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부 교수, 강정운 창원대 행정학과 교수, 유장근 경남대 인문학부 교수, 박병희 순천대 경제학과 교수, 경남발전연구원 정재희 박사, 창원시 정재홍 해양개발사업소장이 참여했고 저도 말석에 끼어 한마디 했습니다.

모든 토론자들이 자신의 전공에 따라 관광, 행정, 역사, 경제 등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저는 남해안의 해안경관관리에 대해 간략한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평소 생각해오던 것이었습니다.

도다리 잡고 홍합만 따면서 살아간다면 그까짓 경관 아무 상관없지만,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남해안의 미래를 기대한다면 해안경관은 절대필수조건입니다.

중국 산동성의 칭타오와 웨이하이나 옌타이를 여행한 분들이 한결 같이 그 도시의 경관에 찬사를 보내는 사실을 예로 들면서, 자연경관이 더 우수한 우리 남해안의 경관이 그 도시들 보다 못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인정하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만,
우리의 해안경관은 ‘사람에 의한 파괴’의 연속이었고 ‘무제한 인정되는 경관(건조물의 형태와 색채 등)사유권’의 남발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현실을 비판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해안건조물에 대한 법과 행정은 ‘짓느냐, 못짓느냐’에 대한 잣대만 남아 있습니다.
‘○○보호구역’에는 ‘공장이나 식당을 지을 수 없다’  혹은  ‘주거시설이나 체육시설은 지을 수 있다’는 식의 규정이 연안관리의 전부입니다.
'무엇을' 으로만 법이 작용하고 '어떻게'에 대해서는 아무 통제가 없는 셈이죠.

주변자연경관과 ‘어떤 형태로, 어떤 색깔로’ 조화시켜 건축하느냐의 문제는 법에서 규정하지 않고 전적으로 집주인 의지에 달려있으며, 이런 현실이 천혜의 해안경관을 파괴하는 주범이라고 의견을 밝혔습니다.

대안 없이 비판만 한다는 핀잔을 들을까봐 몇 마디 덧붙였습니다.
중앙정부는 중앙정부대로, 도는 도, 시군은 시군대로 해안경관을 지키고 관리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 인허가에 적용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와 경상남도에서는 각 지역의 특성(예를 들어 자연경관지역, 항만지역, 어촌지역, 친수공간지역, 해수욕장지역 등)에 맞는 경관 가이드라인과 규정을 만들거나 우수경관지역 지원제도를 마련해야 하고,
기초지방자치단체(시와 군)에서는 입지관리 및 경관심의관리제도를 도입하고, 인센티브, 세부 가이드라인, 지구지정 등을 통해 경관을 관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민관협의체 도입도 검토해볼만한 제도라고도 권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간혹 육지에서 바라보는 경관에 대해서는 제약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다에서 바라보는 경관에 대해서는 아무도 어디서도 통제하지 않습니다.
해안경관을 지킬 장치가 어디에도 없다는 말입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해양국가들과 미국이나 캐나다 처럼 국토의 면적이 넓은 나라에서는 지형적 여건이나 생활방법 및 산업구조가 우리와 달라 해안을 따라 주거지나 생활기반시설을 만드는 경우가 잘 없습니다.
따라서 해안경관 훼손문제가 심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해안 가치에 대한 인식부족과 오래된 생할방식, 개발지상주의, 개발주체의 탐욕 등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해안경관관리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안할 수 없는 것이 해안경관관리입니다.

통합창원시의 마산 구산면의 아름다운 자연해안선 한 번 보시죠.


아래 사진은 거제도의 한 팬션마을과 지중해의 마을입니다.
건물 짓는 비용은 거제 팬션마을이 훨씬 더 들어간 것 같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제 눈에는 을씨년스럽게 형태와 색깔이 제각각인 우리 해안마을과 아주리빛 바닷물과 잘 어울리는 지중해 마을이 확연히 비교됩니다.

마을공동체의 합의 없이 지중해 저런 경관이 가능할까요?
아무 규제 없이 한 마을을 저리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요?

밑의 사진은 저 소박하고 아름다운 마을 한복판에 나있는 길입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와 주조색(하얀)과 보조색(파란)의 단순한 컨셉이 돋보입니다.



제 사진도 한장 올려보았습니다.



‘경관이 밥 먹여 주냐?’라는 분도 있습니다만 그 분들에게 이렇게 답하고 싶네요.
‘경관이 밥 먹여준다’ 고요.

소득 3만 불을 바라보는 지금은 아름다운 경관이 곧 자산입니다.
아름다운 풍광 속에 사는 사람은 그 삶도 아름다울 겁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절경의 남해안, 지금이라도 지켜야 합니다.

통합시의 마산 구산면,,,,
가 보셨나요?

부드럽고 차분한 리아스 식 해안,,,,
차마 '자산'이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순수 자연의 속살입니다.

그 해안,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름답게 가꾸면서 즐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Trackback 0 Comment 2
  1. 삼식 2010.11.24 00:4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가시적인 경관뿐만 아니라
    장소가 가지고 있는 역사문화경관의 발굴(?)도
    이 못지 않을것 같습니다.
    다큐에서 들은 얘기중에서
    '관광객을위한것이 아니라 여기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경관'조성이 우선되어야 할것 같습니다.

    • 허정도 2010.11.24 17:21 신고 address edit & del

      사실 경관이 좋아지면 가장 해피해지는 사람은 지역주민이죠. 옳은 말씀.

2010.03.15 04:00

3·15를 통합시 정신으로 하자는데


오늘, 3월 15일.
이승만 독재에 저항, 부패한 절대 권력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마산시민의 위대한 승리를 이루어낸 3·15의거 50주년 기념일이다.
이 나라 민주항쟁의 효시요, 민주주의의 초석을 세운 자랑스러운 날이다. 마침 정부에서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의미가 더 깊어졌다.

                                        <3·15의거 기념탑>

매년 기념일을 전후해 크고 작은 행사들이 있었지만 올 해의 행사는 더 풍성하다.
뮤지컬, 드라마, 열린 음악회에 메이저 언론의 집중조명도 받는다.
좋은 일이다. 마산시민들 모두 자랑스럽고 환영할만한 일이다.
여기서도 3·15, 저기서도 3·15를 말하니 3·15의거기념사업회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필자도 내심 흐뭇하다.

이틀 전 3월 13일 토요일 오후에는 50년 전 시위를 재현하는 거리상황극까지 있었다.
마산의 고등학생 천여 명이 참여해 의거 당시의 상황을 재현, 선배들이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걸었고, 50년 전 선배들이 외쳤던 그 날의 함성을 다시 외쳤다.
백주대낮에 반정부시위를 극으로 재현하는 현장의 최종 집결지는 3·15기념탑 옆이었다.

화강석 탑신이 초봄 햇빛을 흠뻑 받아드리고 있었다.
어제도 오늘도 말없이 서있는 하얀 탑을 보자 잊고 있었던 그 때 일이 떠올랐다.

80년 대였다.
5공 군사독재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마산YMCA청년회원들은 3월15일이면 이 탑 앞에 모여 참배를 했다.
하지만 그들의 참배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 때는 그랬다. 그런 시절이었다.
은밀히 계획하여 군사작전을 하듯 참배를 시도했지만 무사히 마친 적은 없었다.
그것은 반정부, 반국가적 행동이었다.

정치가를 소망하던 김호일 전 국회의원의 남루한 조화가 3·15를 조롱하듯 밤 낮 가리지 않고 한 달 이상씩 탑 앞에 서있던 때였다.

3·15기념탑 참배가 반국가 행위였던 시절,,,,, 오래된 일이 아니라 아직 기억이 생생하다. 그랬다. 그 때는 그랬다.

- 3·15를 통합시 정신으로 하자는데 -

의거의 도시 마산이 자랑스럽다고 한다.
그래서 3·15정신을 통합창원시의 정신으로 하자고도 한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 도시 마산의 가까운 과거를 지울 수 없다.
부정과 부패가 넘실거렸던 마산의 아픈 추억들,,,,, 의거는 단지 과거의 사건이었을 뿐이었다.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정치지도자들의 불법과 파탄과 독선이 50년 전에 외쳤던 자유 민주 정의를 무참하게 뒤덮었던 기억들.

3·15정신을 통합시의 정신으로 하자는 주장에는 이견이 없다.
좋은 생각이다. 백번 찬성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주장이나 생각만으로 3·15 정신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과연 3·15 정신이 통합시의 정신이 될까? 정말 그렇게 될까?
진정 통합된 108만 도시의 정치지도자들과 그들을 뽑은 시민들이 자유와 민주와 정의의 가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일상에서 그 의미를 발현시킬까? 3·15는 너무 오래동안 잊고 있었던 먼 옛날의 일인데,,,,.
혹시 또 다시 부패한 지도자가 뱉어내는 화려한 언변의 노리개로 3·15가 전락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어렵더라도 시작해야할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3·15 정신이 다시 이 도시에 넘쳐흐르도록,,,, 말로만이 아니라 문화와 의식 그리고 선거에서 3·15의 의미가 통합시민들 가슴속에 되살아날 수 있도록.

통합의 첫걸음을 떼는 순간이다.
국가기념일이 된 3·15의 50주년이고 창원진해와 도시통합도 되었으니 3·15 정신을 세 도시 통합과정에 적용, 작은 실천이라도 하면 어떨까.

통합시청사도 좋고 인센티브도 좋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도시공동체 아닌가?
지역과 집단의 이기심이 준동되면 혼란 외에 아무 것도 없을 터.
모든 것 내어 놓고 독재에 저항했던 선배들의 대의를 생각하자.
부분에 앞서 전체를 생각한 것이 3·15정신 일 터.
진정 3·15가 통합시의 정신이 되기를 원한다면 모든 것 내어 놓고 전체를 바라보자.
전체가 살아야 부분도 산다.
통합시가 살아야 마산도 살고 창원도 살고 진해도 산다.<<<


                                     <3·15 당시 시위 상황극 >

Trackback 0 Comment 0
2010.01.04 00:00

통합시의 성패는 우리 손에 달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

올 7월이면 마산 창원 진해 세 도시가 하나의 도시로 변합니다. 그 때는 나도 100만 도시의 시민이 됩니다.

외국에 나가서는 ‘Korea, 대한민국’이 내 정체성을 가장 잘 설명해 주듯이, 나라 안에서는 ‘마산’ 이 그렇습니다.
'허정도는 마산사람이다' 만으로 상대방은 나의 많은 것들을 이해해 버립니다.

도시는 그런 것입니다.
그 도시가 자신이 태어난 곳일 때는 정도가 더 심합니다.

그래서 나는 ‘마산’이라는 도시가 서서히 없어질 것이라는 사실이 마냥 기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통합은 현실이 되고있습니다.



통합이 되면 마창진 세 도시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될 것입니다.
규모에 걸 맞는 도시 인프라와 도시 경쟁력이 생길 수도 있고, 보다 나은 생활환경도 기대됩니다.

하지만 세 도시가 합쳐지면서 잃는 것도 생길 겁니다. 본래 기회와 위기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니까요.
해서, 통합을 두고 옳다 그르다 식의 단순 평가는 의미가 없습니다.
잃을 것은 줄이고 얻을 것은 늘려나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시기일 뿐입니다.

통합이 옳은지 그른지는 결과가 말해줄 것입니다.
행정을 책임진 사람과 그를 선택한 사람들이 말 그대로 멸사봉공하면 옳은 통합이될 것이고, 이기심과 아집만 내세우다보면 그 반대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통합시의 성패는 우리 손에 달린 셈입니다.

통합을 통해 늘어나는 '지역총생산규모, 인구, 면적, 정부지원금' 등에 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나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규모의 경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만으로는 통합시의 미래를 끌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도시의 규모를 나타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규모로 말하자면 지구상에 우리 통합시보다 큰 도시는 수두룩합니다. 하지만 그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규모 때문에 행복감이 높아졌다는 말을 저는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통합을 일러 세계적 추세 운운하기도하지만 그건 정말이지 최근 도시변천사를 폭넓게 이해 못해서 하는 말입니다.

규모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현실의 눈을 가릴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행정실패를 도시규모 탓으로 돌려버리는 면죄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도시경쟁력에서 규모가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세계 어디에도 인구 4-50만 도시가 규모가 작아 문제된 적은 없었거든요.
다시 한번 되새기고 싶습니다.
통합만되면 세 도시가 발전될 것이고, 그로인해 우리 삶의 수준도 높아지리라는 막연한 환상과 기대는 버려야 합니다.

문제는 내용의 변화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이 통합시는 새 패러다임으로 열어야 합니다.
낡은 수단으로는 결코 새 도시의 밝은 미래를 열지 못합니다.
통합이 세 도시를 위한 특단의 조치라면, 통합시의 비전도 시대정신에 맞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개발에 의한 외형확장'이 곧 도시발전이라 믿었습니다.
그 결과,
도시행정을 담당했던 공직자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민도,
도시는 그저 ‘뚫고 짓고 넓히고 세우기' 만 하면 좋아지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양적인 성장보다는 질적인 성장을 추구해야할 때입니다.
산업이 도시를 끌어갔던 시대에서 도시가 산업을 끌어가는 시대, 즉 도시의 수준이 도시의 발전을 끄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배고픈 시절에는 밥공기의 크기를 보지만 배가 불러지면 쌀밥 보리밥을 따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오두막에서 맑은 물만 바라보고 살자는 말이 아니라 맑은 물이 돈이 되는 시대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선진국가 선진도시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도시를 확장하기보다는 삶의 질을 높이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도시 속에서 시민들이 누려야할 수준 높은 가치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처럼 도시의 이상적인 가치와 그 가치를 상승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무관심하면 통합된 100만 도시도 곧 퇴보하고 말 것입니다.

이제는 변해야 합니다.
시대정신과 시대수준에 따라 우리의 통합시도 변해야 합니다.

이상적인 도시라면,
교육 문화 직업 의료 놀이 휴식 건강 등 인간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자족되어 생활만족도가 높아야 합니다.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여 지속가능한 미래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런 변화의 체험이 공감되어야 지금의 통합이 옳았다고 평가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통합시의 새로운 비전은 도시발전방향을 정확하게 수립하는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한 도시의 발전방향은 그 도시의 사회적 자연적 조건에서 비롯됩니다.

마창진 세 도시 각각 가진 것은 무엇이며 부족한 건 무엇인가?
버릴 것은 무엇이며 키울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내세워야 다른 도시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난 뒤 '이 도시는 어디로 가야될지' 길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만약
거북이라면,
'토끼와의 경주는 산이 아니라 바다에서 해야 이길 수 있다'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이길 수 있는 것을 키우는 것'
이것이
도시정책의 핵심입니다. <<<


Trackback 0 Comment 13
  1. 유림 2010.01.04 09:1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막연히 도시가 커지면 더 좋지않나하는 눈에 보이는 것에만 잘되었다 했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참 어렵네요..
    통합시의 갈 길을 잘 잡아가야 할텐데
    기대만큼... 시민들의 노력과 참여도 필요하지 않나 싶네요

    괜히 저 혼자 기대한 것처럼 부끄러워집니더..ㅎ

    • 허정도 2010.01.04 10:11 신고 address edit & del

      규모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규모자체가 도시의 질을 높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근데 많은 사람들이 마치 합쳐만 놓으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처럼 말하고 있어서 경각심을 울리는 차원에서 써보았습니다.
      새해 복 계속 많이 받으세요.

    • 유림 2010.01.04 20:02 신고 address edit & del

      맞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길을 잘 닦아서 가야될 사람들이 어깨가 무척 무거워보입니다..

      선배님도 계속 복 받기 고고싱 입니다^^
      사모님이 주신 팥시루떡 잘 먹었습니다 ㅎㅎ

  2. 이인안 2010.01.04 12:5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글 잘 읽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허정도 2010.01.04 13:30 신고 address edit & del

      방문 감사.
      새로 태어날 아이까지 포함해 네 가족 올해 행복하기 바랍니다.

  3. 임마 2010.01.04 13:4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새해백두 잘읽고 갑니다.
    공감되는 글이군요^^*

    • 허정도 2010.01.04 13:59 신고 address edit & del

      감사합니다.
      올해 좋은 일 많이 있기 바랍니다.

  4. 말뫼 2010.01.08 14:4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장차 공식기구에서 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그에 앞선 민간전문가들의 논의가 먼저 필요하다고 봅니다. 통합시의 각권역으로서의 세 도시의 현실을 살피는 것과 통합결정 전 각각 별개의 도시로서 그 현실 문제를 살피는 것은 분명 크게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예를들면, 통합차원으로 논의 하다 보면 다른 두 도시 보다는 마산의 도시문제가 그 이전 보다 더 심각하게 부각 될 것이며, 현실적으로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되고, 가장 큰 난제가 될 공산이 크다고 봅니다.

    통합시의 각 권역으로서 각 도시의 현실문제 부터 제대로 풀어 헤쳐 보고, 장차 물리적 공간환경적 도시통합의 기본방향에 대한 논의로 확대해 나가는 전문가들의 논의로 시민들의 도시통합 기본방향에 대한 인식을 집중시키는 일이 우선 필요하다고 봅니다.

    • 허정도 2010.01.08 15:25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깊은 식견입니다.
      저도 마산문제가 복잡하게 전개될 것이라는 견해에 공감합니다.
      또한 세 도시가 한 도시로 변한다지만 하나의 도시라는 시각을 너무 강하게 가지면 안 된다고 봅니다.
      세 도시이면서도 한 도시, 한 도시이면서도 세 도시라는 특수한 잣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5. 미경 2010.01.08 21:2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블로그의 여러 글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남의 일처럼 무관심 했던 일들이 조금씩 나의 문제, 우리아이들의 문제로 다가옵니다. 자주 오겠습니다~^^

    • 허정도 2010.01.09 09:20 신고 address edit & del

      좋게 봐주어 고맙습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습니다만 깊은 고민을 계속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6. woodam 2010.02.20 06:5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우선 한숨부터 나옵나다.
    한 가정이 그렇듯이 모든 가족이모여 자주 회의를 하는 가정은 행복합니다.
    하물며 한 도시뿐만 아니라 국가의 일도 국민들의 소리에 귀를 귀 울여야한다고보는데
    내고장 내고향의일에 더욱 관심을 갖지못한 제자신 을 돌이켜봅니다.
    살기바쁘다고 현실에 매달려 숨가쁘게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보게합니다.
    이렇게 오랜세월을 내고향 마산을 지키며 살아오신 회장님께 응원 을보냅니다.
    인생의 길목에서 우리모두 잠시쉬어가며 고향 과 마산 을 다시한번 새겨봅시다.
    회장님! 옛날 부르던 그대로 회장님이라 부를께요.
    항상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많은 고향소식 전해주세요.
    NY 에서 이렇게 고향소식 들으며 많이 안타깝네요.

    • 허정도 2010.02.20 07:55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갑긴 합니다만, 누구신지 몰라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블로그 왼쪽 상단의 profile에 보면 제 이메일 주소가 있습니다.
      이메일로 연락 한번 주십시오.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4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4 아파트의 대중화는 주거설비의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아파트 사용자들은 첨단시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주방시설에서 비롯되었다. 주부의 가사노동을 줄여줄 뿐 아니라 세련된 디자인과..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3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3 2002년 말 우리나라 주택 보급률은 100%를 넘었다. 1인 가구를 포함하는 신주택보급률 역시 2008년에 100%를 상회(100.7%)함에 따라 주택의 양적 공급이 부족한 상태는 아니라고 볼 ..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2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2 오늘날 우리나라 도시들을 뒤덮고 있는 아파트 홍수의 시작은 1988년에 시작한 ‘주택 2백만 호 건설’이다. 이 사업은 전년도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내놓은 공약이었다. 2백만 호..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1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1 1960년대 이후 계속된 인구의 도시집중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에 비해 택지가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을 낳았다. 이런 현실은 필연적으로 주거의 집단화와 고층화를 요구하였고 그 해답으로 등장한 것이..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0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2 농촌 주택개량사업은 새마을운동 시작 다음 해인 1972년부터 전개되었으며 담장이나 지붕 등의 부분적 보수와 개량으로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관리들은 초가지붕이 비위생적이고 아름답지 못..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9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1 196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농촌은 전쟁으로 입은 농토의 피해와 농촌인구의 감소 등으로 아직 근대화의 영향을 받지 못한 채 재래식 농경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거환경 또한 전쟁피해..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8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3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주택 시장은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개발과 성장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지어진 단독주택은 대부분 도시 한옥과 양식이 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7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2 1960년대는 한국사회의 큰 전환기였다. 4·19혁명과 5·16쿠데타에 따른 정치적 격변을 겪었고, 소위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제반 개발이 계획적으로 유도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6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1 1945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주체적인 주거문화를 창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지만 경제 사회적 제반 여건이 불비하여 주체적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5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 2 일제하의 중·상류계층의 주택 유형으로는 양식주택과 절충식(개량식)주택·개량 한옥·문화주택·공동주택·영단주택 등을 들 수 있다. 양식주택은 서양식주택을 말하며, 절충식 주택은 과도기적 상황에..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4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시기까지 - 1 구한말(舊韓末)까지도 조선 사람들이 살았던 보편적인 주거 유형은 한옥이었다. 1882년 그리피스(W. E. Griffis)가 쓴 한국에 관한 역사서 『은자의 나라 한국』에는 당시 전통 한옥을..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3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3 조선시대는 우리나라 주거문화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기이다. 반상(班常)을 철저히 구분한 신분사회였기 때문에 신분에 따라 주택의 크기나 형태를 규제하는 가사규제(家舍規制)가 있었다. 신..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2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2 주거사(住居史)에서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지표는 구들의 시작이다. 한국 주거문화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구들은 난방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인 동시에 지상주거로의 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 / 조선시대 이전

오늘부터는 <경남지역 주거변천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6~7년 전에 『경남도사』에 싣기 위해 간략히 쓴 글인데 출판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블로그에 올립니다. 어차피 공유하기 위한 글이니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동남부에 ..

기억을 찾아가다 - 25 (마지막 회)

25. 3·15의거에 대한 기억 「그날 나는 ‘극장 구경 시켜주겠다’는 주무돈이란 동네친구의 호의에 끌려 10리 가까이 되는 길을 걸어 ‘시민극장’으로 갔다. 그때 나는 대학입시에 낙방한 직후라 의기소침해 있던 상황이었다.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