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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07:00

나도향, 김지하 그리고 '산장의 여인'


'마산도시탐방대' 여덟 번째 길이다.
1월 30일 오후 1시 반, 걷기 좋을 정도로 포근한 날씨였다.
우리는 가포로 가기 위해 비움고개를 넘었다.

마산도시의 끝자락인 가포(자복포, 율구미 포함)는 한 많은 땅이다.
110년 전, 조선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을 때 일본과 러시아가 서로 먹겠다고 각축을 벌인 ‘마산포 사건’의 현장이다.
잊혀져가는 굴욕의 역사를 되새기면서 겨울 오후 바닷가를 4시간 쯤 걸었다.



나라 뺏긴 설움만 있는 곳이 아니다.
가포에는 마지막 꺼져가는 심지처럼 생명이 사그라진 가슴 아픈 현장도 있다. 바로 국립마산결핵병원이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에 상이군인요양소라는 이름으로 세운 결핵전문병원이었지만 지금은 한국 최대의 국립특수의료기관이다.

우리는 병원 건너편 숲 속에 있는 ‘산장병동’ 터를 찾아 들어갔다.
이곳은 노래
‘산장의 여인’의 애절한 주인공이 마지막 생을 보낸 곳이다.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그 여인의 가슴 아픈 사연이 겨울 낙엽 밑 어딘가에 숨어 있기라도 하듯 기대를 안고 숲으로 들어갔다.



 <국립마산결핵병원입구(위)과 건너편 '산장병동'이 있던 숲으로 들어가는 길>

울창한 숲 속에는 산장이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작은 건물의 흔적을 여기저기에서 찾을 수 있었다.
카테이지(cottage)라 불렀던 2인용 병사(病舍) 10동과 부속건물들의 흔적이었다. 일제 때 세웠지만 1950년대 후반에 모두 철거된 뒤 남은 잔해였다.
썩을 것들은 이미 썩어 없어지고 수십 년 세월에 이긴 것들만 남아 있었다. 건물의 구조와 규모는 잔해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였다.
사방에 콘크리트 기초가 둘러 진 것으로 보아 입원실이었음직한 자리에 한 아름드리 나무가 자라 서있었다.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외로이 살았던 여인이 떠난 뒤 긴 세월이 흘렀음을 말해주었다.


                             <병사(病舍)와 부속건물의 잔해>

      <한국결핵협회 발간『한국결핵사, 1998년』에 실린 2인병동 카테이지>

지금은 OECD가입국까지 되었지만, 한 때 대한민국은 ‘결핵왕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있었다. 대부분 폐결핵이었다.
결핵은 가난에 의한 비위생적인 생활관습이 주요 원인으로 선후진국을 구별 짓는 사회상징 중 하나였다.

변변한 치료약조차 없었던 시절, 폐결핵에는 맑은 공기가 최고의 약이었다.
하여 물 좋고 공기 좋기로 전국최고였던 마산과 인근에 결핵환자를 위한 시설들이 곳곳에 들어섰다. 6·25전쟁 시기에 절정을 이루었다.
도립마산병원, 국립마산요양소, 마산교통요양원 외에 마산상고 교사(校舍)를 징발해 급히 세운 국립신생결핵요양원, 결핵전문 제36육군병원, 공군결핵요양소, 진해해군병원결핵병동 등이 그것이며 결핵을 전문으로 보는 개인병원도 많았다. 바야흐로 마산은 결핵치료의 메카였다.

결핵은 ‘글쟁이들의 직업병’이라고 불릴 만큼 문인들 사이에 만연되었던 시기도 있었다. 마산결핵병원에도 수많은 문인들이 거쳤고 글자취도 남겼다. 마산문학관 학예사 한정호박사가 정리한 바 있다.

결핵을 앓다 죽은 대표적 문인들로는 최승구, 나도향, 이상, 이광수, 김유정, 임화, 권환, 이용악, 오장환, 현진건, 채만식, 권태웅 등이고,
한 때 결핵을 앓았던 문인들로는 백석, 구상, 박철석, 남윤철, 고은, 이형기, 김지하, 김혜순, 천양희, 박정만, 성찬경 등이다.

일제기에 요양 차 이곳 마산에 왔던 문인은 나도향, 임화, 지하련이었고 광복 후에는 권환, 이영도, 김상옥, 구상, 김지하 등이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밖에도 함석헌, 김춘수, 서정주 등 유명 문인들이 결핵을 매개로 마산을 오갔다.
「이름모를 소녀」로 70년대를 풍미하다 요절한 가수 김정호도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나도향은 가난과 방랑으로 떠돌다 1925년 요양 차 마산에 와서 3개월 동안 노산 이은상의 집에서 식객노릇을 하며 염상섭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의 단편 소설 「피 묻은 편지 몇 쪽」을 남겼다. 그 해는 그의 대표작「물레방아」「뽕」「벙어리 삼룡이」를 발표한 나도향 소설의 절정기였다.
다음 해 그는 스무 넷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했다.

엄혹했던 시절,
김지하는 폐결핵으로 서울시립 서대문요양원과 인천 적십자병원을 거친후 장편 시 비어(蜚語)을 발표, 체포되었는데 폐결핵 때문에 기소되지 않고 마산결핵병원에 강제 연금 당했다.
그 시절 발표한 글이다.

벗들
병든 나를 찾지 마라
나를 찾지 마라
펄펄 내리는 눈 속에 갇힌

머물려거든
매화 봉우리
아조아조 향그럽게 머물고
피우려거든
더욱더 새빨갛게 꽃피워라
동백이여
펄펄 내리는 눈 속에 갇힌

따뜻한 춘삼월에 만나자 벗들
눈겨울 외로움 속에
맑은 향기로 머물었다
매운 꽃으로 들에 홀로 피어났다
춘삼월 그 흔한 바람 속에 흐드러져
수월히 만나자 벗들
어렵게 수소문하여
나를 찾지 마라
병든 나를 찾지 마라
펄펄 내리는 눈 속에 갇힌          -김지하, 「편지」 전문-


마리아가 내게 은단을 보내왔다. 마치 사약을 내리듯이, 독한 느낌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내가 해야 할 일, 그것은 쓰는 일이다. 연필 한 자루와 한 뭉치의 종이, 그것이면 족하다. 나머지는 모두 여기, 그리고 저기에 가득하다.  
                                           
-김지하, 「가포일기」중-


사랑도 친구도 가족도 결핵 때문에 잃어야 했던 그 시절,
가수 권혜경이 부른 ‘산장의 여인’은 전 국민의 심경을 녹아내리게했다.
애절한 노랫말을 쓴 이는 마산사람 반야월이었다. 그는 진방남이란 이름으로 가수로도 활동했다.
그가 가수 진방남으로 불렀던 곡은 ‘불효자는 웁니다’이고,
작사자 반야월로 쓴 노래는 ‘울고 넘는 박달재’ ‘단장의 미아리고개’ ‘소양강처녀’ 등이다.

6·25 직후 반야월은 고향 마산에서 위문단을 만들어 다양한 활동을 했다.
한번은 그가 마산결핵병원 환자위문공연에서 자신의 대표곡 ‘불효자는 웁니다’를 한 곡 뽑았는데, 객석 맨 뒤편에서 하얀 옷을 입은 창백한 얼굴의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이상하다 싶어서 공연 후 사연을 물었더니, 그녀는 병원 건너편 숲속 ‘산장병동’에서 요양 중인 폐결핵환자였다.

꺼져가는 생명의 끈을 부여잡고 쓸쓸히 살아가는 미모의 젊은 여인에 끌려 작사자 반야월은 가사 한편을 남긴다.
이 글을 뒷날 마산결핵병원에서 요양하기도 했고 결국 한쪽 폐를 잘라내기까지 했던 「나그네 설움」「번지 없는 주막」의 작곡가 이재호에게 넘겼다.
「산장의 여인」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채곡채곡 떨어져 쌓여있네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풀벌레만 애처로이 밤새워 울고 있네
행운의 별을 보고 속삭이던 지난날의
추억을 더듬어 적막한 이 한밤에
임 뵈올 그날을 생각하며 쓸쓸히 살아가


나이가 들어 울창하게 숲을 이룬 키 큰 나무들,
가포만에서 불어드는 청량한 바람,
뚜렷이 남아 있는 병사(病舍)들의 잔해,
외롭게 살아갔던 여인이 남긴 애절하고 낭만적인 스토리텔링,
그리고 '산장의 여인'·······.

이만한 볼거리가 없다 싶었다.
애처로이 밤 새워 울었던 풀벌레와 행운의 별을 보며 속삭였던 그날 밤의 추억까지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숲이었다.

마산을 찾는 사람에게,
아니 마산을 찾고 싶도록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근대낭만유산이었다.

               <공용 화장실의 변기 / 건물 구조로 보니 여성용이었다>

                                    <현관 턱으로 보이는 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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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3 09:03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허정도 2010.02.03 23:13 신고 address edit & del

      감사합니다.
      적절히 참여하겠습니다.

  2. 삼식 2010.02.03 18:0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나도향이 1920년대에 이병사에 있었다면,
    과연 결핵 병원의 최초 건립역사는 언제쯤인지요?

    • 허정도 2010.02.03 23:15 신고 address edit & del

      감사.
      나도향은 약 3개월 동안 노산의 집에서 식객노릇을 했습니다.
      지난 번에 나눈 자료에 있더군요.

  3. 김영철 2010.02.04 17:1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마산이 고향인 저로서도 처음 접하는 이야기들이네예.
    가포 결핵병원에 그렇게 슬픈 사연이 많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치 못했습니다.
    마산의 숨은 이야기 계속 부탁 드리겠습니다.

    • 허정도 2010.02.04 17:23 신고 address edit & del

      감사합니다.
      혹시 숨은 이야기 중 알고 계신 것 있으면 연락 좀 주십시오.

  4. 유림 2010.02.05 13:0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매번 참석을 하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기쁨이 참 큽니다.
    가포 탐방도 참 좋았습니다
    비록 신발이 엉망이 되고 온 바지에 도둑놈(?)이 붙어서 귀찮았지만..

    스잔했던 그 숲이 떠오릅니다

    • 허정도 2010.02.05 14:06 신고 address edit & del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튼 도시탐방대 참 좋은 시됴죠?

  5. 조원문 2010.02.05 18:2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가끔 지나는 길인데,,이렇게 알고 보니 정말 새로운 기운이 남닙다,
    회장님 정말로 마산을 많이 배우고 싶읍니다,,

    함께 많은 시간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열심히 노력 하겠읍니다,,,수고 많이 하셨읍니다.

    • 허정도 2010.02.06 10:45 신고 address edit & del

      방문감사.
      내가 늘 신세를 많이집니다

2009.09.15 09:14

34년 전, 배움에 목말라 마산으로 달려갔어요

며칠 전에 ‘청산’이라는 분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름의 이미지가 강해서 당연히 무슨 공적인 편지이겠거니 생각하며 열었더니, 뜻밖에 제 책을 읽은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이순임(가명)이라는 여성이었습니다.

50을 막 넘겼다고 하니 저보다 몇 살 아래인 것 같습니다.

책이 출판되고 난 뒤 독자로부터 여러 번 편지를 받았습니다만, 이번 편지는 여느 것과 느낌이 달랐습니다.

▲ 전국 곳곳에서 학생들이 가져와 심은 한일여고의 팔도잔디



편지 중,

‘34년 전, 배움에 목말라 여기 경기도에서 마산한일여고로 달려갔었어요.’

라는 한 줄의 글이 제 눈을 확 끌어 당겼습니다.

34년 전이면 1975년인데,

그 때는 저도 이 도시 마산에서 살고 있을 때였거든요.

‘……마산한일여고로 달려갔었어요.’

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잘 아는 분도 있겠지만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 한 마디는,

가난 때문에 교육받지 못했던 저 또래의 아이들이 제 시간과 제 몸을 갉아가면서 정상교육을 받았던 그 시절의 기억들을 화-악 떠올려주었습니다. 그 유명한 팔도잔디도 생각났습니다.

지금이야 대학 빼고는 하기 싫어서 안하지 돈이 없어 공부 못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지만, 그 때만 해도 돈 때문에 공부 못한 아이들이 지천이었습니다.

제 처지도 비슷했거든요.

아련하지만 뚜렷한 그 시절 그 추억을 이 한 통의 편지가 생생히 되살려주었습니다.

스무 살 순수를 되찾은 기분이었습니다.

 

편지를 보여주자 아내는,

‘저는 산을 무척 좋아하고 남편은 산에 오르기를 힘들어 합니다.’

라는 마지막 구절을 재미있어 하며 호호 웃었습니다.

제 책에

‘나는 등산을 좋아하지만 아내는 산에 오르는 것을 싫어합니다.’

라는 대목을 빗댄 글이거든요.

 

얼굴도 모르는 분이지만 경기도 의정부 이순임 씨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힘겨웠던 자신의 조건을 당당하게 극복했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며 살아가는 당찬 대한민국 아줌마 일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자신처럼 힘들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나누어주는 분이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순임 씨의 편지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남편과 함께 들린 서점 에서 책을 만났습니다.

지금 반 정도 읽어 나가는데 끝내기가 아쉬운 마음입니다.

1편 2편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는 말이지요.

책속에 나오는 마산의 지명이 더 반갑기도 하고요.

 

34년 전, 배움에 목말라 여기 경기도에서 마산한일여고로 달려갔었어요.

그 3년이 힘들고 괴로웠지만 지금의 나를 지탱해주는 무언가가 있네요.

그곳을 떠나온 지 31년만인 올해, 마산을 하루 다녀왔습니다.

많이 변한 모습이었지만 반가웠어요.

혼자 다녀오는 바람에 그 유명한 아구찜을 못 먹고 온 것이 아쉬움입니다.

그리고 우연찮게 선생님의 책이 제게 왔습니다.

 

책속에 소개되는 책을 몇 권 쯤은 읽었지만

저도 책속에 있는 책은 다 읽어보려고요.

그리고 남편에게 제안을 했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해보자고.....

선생님 말씀처럼,

내 아이들이 다 커버리고 나서는

내 목소리를 들어 본 것이 노래방이나 말 할 때 외에는 없어서 혼자 소리 내어 책을 읽어 본 경험이 있었지요.

그런데 들어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어색하기도 하고

의미가 없다는 걸 느끼고 친구들에게 제안을 했답니다.

우리도 방송에서 하는 것처럼 낭독의 시간을 만나보자고....

물론 친구들이 다 웃었지요.

이제 50을 막 넘기는 중년입니다

아주 좋은 시간을 갖게 해준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 올리고 싶어서 보내드리는 건데

실례가 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저는 산을 무척 좋아하고 남편은 산에 오르기를 힘들어 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날마다 좋은 날 되세요.

경기도 의정부에서 이순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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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털도사 2009.10.12 21:2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청산 글귀가 눈에 보여 염치불구하고 실례하게 됏슴을 우애 용서를 빌꼬합니다만 ,,
    제도 글쓴이 의정부 님의 상황 충분이해 하고 남슴니다..제역시 그런 사연이 잇었음을 허엿턴 좋은팬들이 있었다는 주인공에 감사를 드리면서 ,,,옛 이몸 추억을 회상하면서 고마웟음을 남기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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