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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0 00:00

한국 100명산이야기 22 : 부처님이 누워계시는 대륜산

3월 25일 토요일 아침  메트로시티 정문과 후문을 통과하여 학봉산악회 대원 5명이 새벽6시 30분에 출발했습니다.

새벽녁에 출발한 터라 섬진강 휴게소에서 유부우동과 준비해 온 충무김밥으로 아침요기를 했습니다.

예상대로 두륜산에 도착하니 10시입니다.

비오는 것을 예상했지만 막상 산행을 하려니 발걸음이 무거운 것은 비옷 무게때문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내려와서 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비옷을 갈아입고

10시 반에서야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 출발인증샷 : 떨더름한 표정을 지은 사람들이 몇 있습니다.

 

- 대흥사 일주문입니다. 생각외로 고찰이었습니다. 백제때에 세워진 사찰로 규모도 범어사나 통도사 몾지않게 큰 사찰이었습니다. 비가 오는 관계로 한적하였습니다.

대흥사 배경의 두륜산은 부처님이 누워계신 형상이라고 합니다. 우중이라 사진으로 닮을 수는 없었으나, 사진으로 본 설명은 그리보였습니다.

 

- 사찰의 역사를 상징하는 부도탑(스님의 사리탑)과 각종 기념비

 

 

- 사찰 아래를 내다보며 : 외부공간이 시원시원하게 넓었습니다.

 

 

- 요사채 전경 : 경사면을 적절하게 활용한 건물 배치가 자연스러웠습니다. 낮은 담장과 조경을 통해 프라이버시도 확보하는 배치기법이 돗보였습니다.

 

- 비를 맞으며 산행을 하다보니 체력이 고갈되어~ 간식을 먹으며 처져있는 모습

 

- 9부능선 도착 : 12시에서야 경사면을 지나쳤습니다. 바둑이 바위가 우리를 반겨줍니다.

 

 

- 두륜봉에서 인증샷 대열 : 우리의 원로 대장님

 

 

- 비장한 표정의 드론대장님 : 이번에 가지고 오려고 했는데, 얼마전 연습중 추락하여 몹시 상심한 듯~~

 

- 둘레길 대장님 : 지난번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삐친 발까락 때문에 아직 고생중이라서~~~

 

 

- 보급대장님 : 보급품 조달 및 운전까지 맡아서 고생을 표정이 역력~~

 

                                             - 난생첨 비옷입고 등산했음, 헉헉~~

 

 

- 저기가 고지인데 : 일기가 고르지 못한 관계로 하산을 결정하였습니다.

 

 

- 아쉬움을 달레며 : 인증샷 - 하산한다는 결정에 기분이 좋은 표정

 

- 비오는날 충무김밥 : 비를 맞으며 빗물, 땀물 섞인 된장국물과 충무김밥, 맛은~~

하산 후,  파전과 도토리묵으로 1되짜리 막걸리 한통을 비우고 완도로 급히 향하였습니다. 2시에 출발~!

 

- 3시에 도착해서 도선료를 지불하고 4시에 '청산아일랜드'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 청산도행 배는 카페리호입니다. 절반이 주차공간이고 나머지가 승객실입니다.

 

내려서 섬 북측을 아주 천천히 드라이브 하였습니다. 중간에 포구를 구경하다가 단체로 사진촬영온 팀들과 만났습니다. 사진을 찍어소 보내주기로 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보내주겠지 하면서 기다려보니다.

우리의 숙소인 슬로시티여행자센터로 향하였습니다. 숙소는 별채로 된 방과 거실, 욕실이 있는 방가로였습니다. 여장을 풀고 식사하려 선창가로 나왔습니다.

인터넷에 소문난 집 *녀횟집으로 갔습니다.

이곳의 명물, 전복을 한접시 시켰습니다. 술이 술술들어갔습니다.

 

- 한접시당 가격을 달리하였습니다. 비싼게 큰놈을 골라서 준것 같았습니다.

 

 

청산도에서 두번째로 유명한 것이 홈삼이라고 합니다. 붉은 해삼을 말합니다.

한마리가 1키로정도 됩니다. 키로당 2만5천원정도입니다. 먹을만 했습니다.

식사는 우럭매운탕으로 하였습니다. 가격이 조금 쎄긴 했지만 해산물과 쏘주에 쩐 속을 짝 풀어주었습니다.

잘 먹고 숙소에 도착해서 가지고 온, 개인 술을 풀었습니다. 와인과 30년산 발렌타인이 있었으나, 피곤해서 몇잔 하지 않고 쫙 뻣듯이 주무셨습니다.

 

● 3월26일 아침 7시에 기상하여, 마을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아침밥은 일찍 준비해 달라고 앴으마,  8시 반쯤에야 된다고 합니다. 슬로시티라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1시간을 산책하고서야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는 스로시티 여행자센터에서 제공하는 아침정식입니다.

1인분에 1만원이며 사전에 예약해야 가능합니다.

 

- 생선과 전복찜 1마리, 섬에서 자라는 나물, 그리고 김국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별도로 말리지 않고 채취한 채로 국을 만들었답니다. 시원 짬쪼롬한 맛이 괜찮았습니다.

- 식사후 9시 쯤에 출발했습니다.

 

- 고인돌이 있는 산책로에서 본 노거수 입니다. 걷기 좋은 길을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조금만 표식을 따라 가면 다양한 풍광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 청산도의 키워드는 '서편제'입니다. 이 동네에서 촬영을 하였다고 합니다. 초입에 들어서자 서편제의 노랫가락이 영화속으로 이끄는 듯합니다.

 

 

- 이곳은 수군이 진을 치고 왜적에 대항했던 수군기지였다고 합니다.

 

- 신발의 의미 : 바삐가지 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무거운 돌신을 신고 천천히 다니라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는 예술작품입니다. 청산도에서 딱 어울리는 것 같네요~~

 

- 청산도의 해변 외곽에 쌓은 성벽들이, 지금은 걷기 좋은 길로 변신하였습니다.

 

- 동네 아주머니들이 만들어서 제공하는 쑥전, 막걸리와 더불어 입을 축였습니다. 마을기업에 일조를 한다는 의미로~~

 

- 선창에 12시에 도착해서 1시배를 기다리며 식사를 하였습니다.

간단하게 전복죽으로~~

전복죽의 맛은?, 비밀입니다.

 

- 대합실에 배를 기다리며~

대합실 옆에 마련된 특산품 판매매장에 마련된 선술집입니다. 3만원에 해산물을 한접시 담아 줍니다. 소주 한잔으로 청산도의 추억을 각인시켜 봅니다.

 

완도항에 도착하고도 바빳습니다.

해창주조장과 다산초당에 들르는 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창주조장은 지난날 일인이 경영한 청주공장인데, 막걸리 공장으로 현재까지 운영된다고 합니다.

100년전의 건물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볼만한 곳이었습니다.

막걸리 도수가 독특하게 일반적인 6도 외에 12도짜리가 있었습니다. 거의 소주도수에 가까웠습니다. 진한 맛은 좋치만, 한번에 쭉 들이키는 목넘김의 맛을 느낄 수 없어서 저는 6도짜리가 좋았습니다.

시음주를 종류별로 하다보니 어찔한 느낌이 왔습니다. 공짜 낮술에 어질 어질~~

 

 

● 해장주조장 옆의 근대기 건물들

주인장의 소개로 살펴본 주조장 옆의 창고건물입니다.

오랜 세월의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어 있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겉은 시뻘건 녹물이 끼어 있지만 속살은 신비로웠습니다.

 

-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창고 : 일찌기 대한통운 창고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전에 일본인들이 지은 목조창고로 사용하다가, 해방이후 대한통운에서 사용한 듯 합니다.

 

- 실내전경 : 요즘 보기 드문 목제트러스 구조입니다. 100년이 지났지만 구조제의 성능에는 전혀 이상이 없는듯 합니다. 근대목구조 전시장으로 사용하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원형이 잘 남아있습니다.

 

- 트러스의 접합부는 중심에서 좌우 로 배치하였으며, 꺽쇠로 사용하여 대공과 빗대공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부재가 원형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 벽기둥과 트러스 접합부 : 트러스와 기둥사이 사선재를 사용하여 강성을 높혀주고 있습니다.

 

 

- 벽면부 상세 : 구조제와달리 벽면에 세로 및 가로 부재를 두고 흙벽으로 마감하였습니다. 요즘 보기 드문 구법입니다.

 

- 출입문 디테일입니다. 견고하게 하려고 철판을 덧된 디자인이 정겹습니다.

 

해창주조장 창고를 보면서

해창주조장 건물은 원래의 형태에서 증축을 하면서 원형이 변형된 상태이긴 하나, 원형을 복구하는데는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창고건물은 원형이 너무나 잘 보존되어 있는 건물입니다. 겉보기에 녹이 쓴 모습으로 인해 허접해 보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구조제가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조사하여 근대건축물로 등록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전국에 이만한 근대기 건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인근에 있는 대학교의 건축과 교수님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다산초당을 향하여

해창주조장에서 각자 필요한 술을 주문하고 나서, 다산 초당으로 향하였습니다.

● 다산초당을 보면서

정약용선생님이 유배를 가지 않았다면, 흠흠심서 등 그 많은 책을 저술할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가져봅니다.

만약 조정에 있어서 제대로 정치를 하였다면, 나라를 그 꼴로 만들이 않았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암튼 유배지에서 보낼 암담한 시간에 저술로서 활용했다는 것이 대단한 발상인것 같습니다.

허대장님 왈, "만약 그 시대에 정약용이 영국의 옥스포드나 캠브릿지 대학에 다녔다면 더 훌륭한 세계적 위인으로 컷을 것이다"

충분히 동감이 가는 얘기 입니다.

우리 드론대장님도 동감을 하였습니다.

곧 저술에 들어가리라 생각합니다.

 

하여,

이번 투어는 단기간에 너무 많은 내욜들을 소화하려다 보니, 소화불량이 걸리는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내적으로 뭔가 채위진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다음 산행 6월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뵙길 바랍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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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동추 2017.04.21 09:2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엄청난 여행을 하셨네요~ 몸을 잘 추스리세요. 다음을 위해서 ~

2016.12.29 00:00

한국 100명산이야기 21 : 비파와 거문고 형상의 비슬산

국가적으로 우환이 많았던 병신년을 마무리 하기 위해,  대구시 달성군 현풍에 있는 비슬산을 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아침 9시에 양덕동에서 모여 곰탕으로 유명한 현풍으로 향하였습니다. 현풍의 산업단지라 할 수 있는 '대구테크노폴리스'가 한창 조성중에 있었습니다. 단순한 공단이 아니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과 대규모 주거단지 및 대학 캠퍼스 이전계획까지 포함된 대규모 신도시 건설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암튼 공단을 통과하여 우리는 산행출발지인 유가사로 향하였습니다. 

 

 瑜伽寺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827년(신라 흥덕왕 2) 도성()이 창건하였다. 889년(진성여왕 3) 원잠()이 중창하였으며, 1047년(고려 문종 1) 학변()이, 1452년(조선 문종 2) 일행()이 각각 중수하였다. 전성기에는 3천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하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 1682년(숙종 8) 도경()이 대웅전을 보수하였고, 1729년(영조 5) 취화()와 파봉(), 1760년 보월(), 1776년 밀암(), 1797년 낙암()이 각각 중수 또는 중창한 바 있다. 1976년부터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른다. (출처 : 네이버 지식)

 

 

- 일주문의 위용 : 사찰의 대문에 해당되는 일주문을 통해 사찰의 위세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 사찰 마을 풍경 : 인근 민가는 대부분 식당이나 민박집 등이었습니다.

 

유가사에 출발 : 유가사에 도착시간은 10시경, 경내에 둘러보고 10시 30분에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 출발에 앞서 기념샷!

 

- 산행을 하면서, 비슬산의 유래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산의 형세가 비파와 거문고와 같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행중에 그 모양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 산행코스는 가장 근거리 코스를 정하였습니다. 지도상 좌측 유가사에서 우측 능선삼거리를 거쳐서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인데, 등산책에는 1시간 30분 소요시간을 예상하지만, 우리는 2시간 가까이 걸려 12시 반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비슬산 :  

산 정상의 바위모양이 신선거문고를 타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비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최고봉은 천왕봉(:1,084m)이다. 종래의 최고봉은 대견봉()이었으나, 2014년 10월 국가지명위원회에서 천왕봉으로 변경했다. 남쪽으로 조화봉(:1,058m)·관기봉(:990m)과 이어지며, 유가사() 쪽에서 올려다 보면 정상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바위 능선이 우뚝 솟아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

 

- 연리지(連理枝) : 뿌리가 다른 나무가지들이 서로 엉켜 한나무 처럼 자라는 것을 뜻하는 말이죠, 근데 이녀석은 지면에서 독수리 오형제처럼 가지를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이 독특했습니다. 돌이 많은 산에 와송들이 많은 것을 감안하면 지질과 관계가 있는듯 합니다.

 

정상에서 : 12시 반쯤, 정상인 천왕봉에 도착해서,

- 오랫만에 펼쳐 본 100산 원정 현수막입니다.

 

 

- 최근 드론에 푹 빠진 김국장님!!!

 

-우리들의 보급대장. 학만님? 조난에 대비한 비상식량을 항상 조달함.

 

- 지역의 온갖 일에 관심이 지대한 대장님, 그리고 1인 원로회의 의장님~~~

 

- 죽기전에 100산을 다 가고픈 백산원정대장~~~

 

- 점심으로 충무김밥과 담아 온 위스키로 한기를 날려보냅니다.

 

- 식후에 바라본 주변 풍경 : 구름에 의한 성운층이 발 아래 보입니다. 해발이 천고지 정도이니~~

 

- 하산길은 급경사길을 선택했습니다. 경사가 엄청났습니다. 올라갈 때 이길은 도저히~~

정상에서 3.3키로미터 입니다. 하산시간은 1시간   반정도 걸렸습니다.

 

하산하면서: 100산 원정이 매월 원정하기에는 무리이고, 1년에 4번정도, 분기별로 한번씩 간다면 앞으로 남은 80개 산은 20년걸린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암튼 이렇게라도 하자는 제안에 모두들 동의를 하였습니다.

앞으로 20년 뒤라는 말에 ~~

그 나이들어서 가게될런지 하는 심정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려면 갈 때 까지 가 보는 것이지요!

암튼 계절별로 한번씩 가게 되는 것 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 200년 가까이 된 국사당 건물 : 올라갈 때 못본 건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딱 보기에도 제법 세월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는듯 보입니다.

局司堂/ 국사당은 사찰 경내를 수호하는 외호신장을 모신 곳이다.

서낭당, 장군당, 영신당 등의 신당보다 한 단계 높은 신당으로 ‘상당’이라고도 불렀다.

원시 신앙의 구심점인 천신 신앙에서 발생한 것으로 하늘과 가까운 높은 산정에 국사를 모셔 놓고 지역 수호신으로 섬겼다.

이러한 원시 신앙이 뒤에 들어온 불교, 유교와 타협하면서 발전하여 온 것으로 여겨진다.

사당 내부 천장에 "동치십일년(同治十一年)"이라 정확한 목소들이 남아 있는것을 보아 1827년에 재작된 건물로 추정 하고 있다. 

내부에는 소박한 제단이 있고 그 위에 위패가 하나 놓여 있다.

"봉청비슬산내국사지신위(奉請琵瑟山內局司之神位)"라고 쓰여있으며, "가람신(伽藍神)"을 모신 곳임을 알수 있었다. [출처] [대구 비슬산] 24-1 유가사와 여름철 계곡도 좋은 수성골 산행길....|작성자 순돌이

 

- 국사당의 위용 : 정면 1칸, 측면 1칸의 소규모 건물이지만 정면 초익공 장식과 측면에 외출목의 굴도리 장식이 집의 격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하벽 막돌 쌓기의 무심한 듯한 모양이 친금함을 더해줍니다.

 

학봉산악회 일년을 마루리 하며

- 산림청에서 정한 '한국 100명산'을 탐방하기 위하여 지난 2013년 5월에 '학봉 100명산 탐방대'가 발족하였습니다.

매월 한번씩 간다면 계산상 8년 4개월 소요됩니다. 하지만 혹한기와 혹서기를 빼고 1년에 10회 정도를 예상하고 10년 정도면 가능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딱 2번밖에 가지를 못하였습니다.

그 동안 느슨했던 몸과 마을을 다잡아서 1년에 철따라 4번씩만 간다면~

정유년 2017년부터 시작하면 2037년에 마무리 될 수 있습니다.

학봉대원님들!!!!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병신년 굿 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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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3 00:00

한국 100명산이야기 20 : 눈구경 하러 간 덕유산

때 늦은 산행일지한해를 보내기 아쉬워 현풍의 비슬산에 갔었다. 비슬산 일지를 쓰려다 보니 앞선 덕유산 일지가 빠트린 것을 늦게사 확인하고 이렇게 적게되었습니다.

덕유산 산행일지를 빠트리게 된 변명같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산행을 마치며 오면서 참여한 대원들이 몹시 피곤해 하였습니다. 하여 앞으로 산행하기 어렵겠다는게 의견이 모아져 "앞으로는 100산 원정이 힘들겠다."고 판단하고 이럴꺼면 써서 뭐하겠노! 하는 심정에  제껴 버린 것입니다. 늦게나마 정신이 돌아와서 산행에 참여한 대원들을 생각해서 때 늦은 일지를 쓰게 것입니다. 아울러 기억을 토대로 적은 일지이기에 약간의 착오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4월의 눈구경 : 작년초에 태백산에서 본 눈구경이 좋아서 눈구경을 설산을 보러 2월부터 가자고 했으나, 대원들이 고령화가 심화되어 눈산은 위험할 것이라는 이런 저런 핑계에 의해 늦춰지다가, 아진 잔설이 남아있다는 덕유산을 확인하고 4월 2일에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덕유산행이 결정된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가 리프카에 의해 정상을 코앞에 둔 9분 능선까지 수월하게 산행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학봉대원 4명과 비봉대원 2명이 더해진 6명의 대원들이 눈구경하러 덕유산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 곤돌라 승강장에서 출발기념 샷 : 신나 하는 모습들~~

* 곤돌라에서 : 폰 삼매경하는 큰 대장, 주변 살피는 여대장

 

* 곤돌라 하차장에서 : 9부 능선쯤 되는 곳입니다. 전망탑과 식당 및 편의점이 즐비한 곳으로 여기서 부터 30분 정도 산행하면 정상에 도착하게 됩니다.

당시 기억으로 눈이 제법 남아있었는데, 정작 설산 풍경은 사진에 담지 못했군요, 아쉽네요

 

 

* 정상에서 인증샷 : 정상의 봉우리는 향적봉입니다. 해발이 자그마치 1,614미터입니다.

오공환님, 김국장님, 신삼호님, 구경희님, 큰대장님, 학봉대장님 폼잡고 있습니다.

 

*원로원 겸 고문관 역할을 하는 허대장님

 

* 작업의 고수 김국장님~

*언제나 달달한 느낌의 오공환님

 

* 정상부 주변 풍경들

 

* 정상부에서 내려다 본 덕유산 주변 풍경들

 

 

마무리 하며 : 숙제를 미루지 말자

- 사진위주의 설명정도로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절대 산행일지는 미루지 않기로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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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7 00:00

한국100명산 12 : 심산유곡을 품은 백운산

 ♪ 오랜만에 100산을 가게되었습니다. 학봉산악회의 원정지 선정은 100산 중, 한반도를 기준으로 좌우 공히 한번씩 하는 관계로 지난번에 합천 가야산을 간터라 이번에는 전라도쪽 산을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코스를 고르다 보니 전남 광양에 있는 백운산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정상부 높이는 1,218미터로 높기는 하지만 출발지역의 고도가 높은 관계로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은 코스인 것 같았습니다. 암튼 지난 5월 이후 3개월만에 100산을 출정하게 되었습니다. 최근들어 학봉대원들이 여름방학 중인데도 바쁜것 같습니다.  특히 자녀들 케어관계로 빠지는 분도 계시고, 기타 출장관계 등으로 미루고 미루다가 도저히 않되겠다는 결론에 이르러 '비봉산악회'와 공동 출정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우리 산악회에서 권하여 만든 비봉산악회는 창원지역에 사는 대원들 위주로 지난 4월에 결성된 산악회입니다. 서로가 대충 하는 입장이라 별 어려움없이 산행을 같이 하기로 하였습니다.  

창원에서 진틀마을까지 : 여느대와 마찬가지로 315아트홀에 7시 30분에 집결하여 (딸랑 2명) 출발하였습니다. 비봉대원들은 7시반에 창원에서 집결하여 동시에 출발하여 섬진강 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각 출발을 하였습니다. 두 차해서 합친 인원이 5명입니다.  휴게소에 도착해서 우동과 라면으로 요기를 하였습니다. 다시 출발해서 진틀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도착시간은 10시 출발한지 2시간 반만에 출발지에 도착했습니다. 이 마을을 선택한 이유는 초보회원들이 있는지라 가장 단거리 코스를 고르게 되었습니다. 지도상에는 1시간 반정도면 된다고 하길래 선택한 코스입니다. 도착해서 보니 등산객들의 모습이 그다지 많지 않을 걸로 보아 그리 인기있는 코스는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단지 '짧다는 것' 하나만 보고 선택한 코스였습니다. 진틀마을에 오기까지는 해발이 제법되는지라 (400미터 정도) 오는 중에 엄청난 계곡을 지나 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오는 중 계곡주변에 엄청나게 많은 펜션을 보고 놀랐습니다. 인근에 자연휴양림도 있는 것으로 봐서 이곳은 등산객보다는 캠핑 및 휴양지로 좋은 코스인 것 같았습니다.

♬ 진틀마을에서 백운산 정상까지 :  10시 7분경에 정상을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얼마지 않아 병암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여기까지 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아서 지도에 없는 차도가 새로 생겼나 봅니다. 등산코스는 물이 철철흐르는 계곡을 따라 연이어졌습니다. 당연히 돌밭을 걷게 되었습니다. 돌밭정도가 아니라 돌산을 지나는 듯이 만만치 않은 코스였습니다.(등산로는 물반 돌반인 길을 지나게 됩니다. 발바닥 생골드는날!)

 - 다행히 협곡 주변에 나무가 많은 관계로 그늘길이 제공되는 것은 다행으로 생각했습니다. 암튼 65데시빌 이상이 되는 물소리 굉음을 들으면서 헉헉거렸습니다. 아마 몸이 풀리기까지는 30분정도 걸린다고 보기에 쉬지도 않고 30분정도를 아무 생각없이 돌만보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이 시간이 제일 힘든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올라오는 대원들의 자세에서 힘든 모습이 역력합니다.) (땅만 보고 걷다가 오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저너머에 정상이 있다는 것을 상상해보았습니다.)(간혹 이런 흙길이 나오면 몹시 반가웠습니다. 발바닥 식히는 코스)(오늘도 역시 보급대장 임보급대장이 비상식량을500미리리터 봉지 하나씩을 제공하였습니다. 옥수수, 초코렛, 양갱, 캔디 등등 심지어 비타민씨까지, 쉬는시간에 떨어진 체력 보강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대원들이 억지스런 미소가~~ 사실 엄청 힘든상황인데 사진찍느라고 입을 헤벌쩍 ~~~)

- 정상에 도착하니 시간이12시 반이었습니다. 지도상에는 1시간 반, 현지 이정표상에는 2시간이 코스를 우리는 2시간 20분에 걸쳐 도착했습니다. 참고로 학봉대원들의 산악시간에 할증을 20프로 정도 더 봐야할 것 같았습니다.(급해서 깜빡한 탐방깃발을 들고 다시 한컷 했습니다. 이 때는 누가 욕을 했습니다. "웃어라 XX놈아!" 빵 터졌습니다.)(사진에서 보듯이 정상부는 워낙 가팔라 엉덩이 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주변에 평지를 향해 내려와서 간식을 ~~쩝쩝쩝) (간식은 보급대장 하사품인 한봉지 가득합니다. 그리고 과일을 파커통에 넣어온 대원, 떡을 가져온 대원이 있어 풀어 놓으니 푸짐합니다.)

♬ 정상에서 하산길 : 간식을 거뜬히 해치우고 1시 10분에 베낭을 다시 메었습니다. 정상에서 좌측으로 신선대를 경유해서 하산하는 코스는 거리상 3.6키로이며 하산길은 한시간 반정도 예상을 하지만, 우리는 2시간 정도로 잡았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경사도 심할뿐 아니라 암벽에 가까운 지형이었습니다. 올라갈  때와 마찬가지로 하체 관절꺽기가 연속되었습니다. 헉헉헉~~~~, 1시간 정도 내려오니 계곡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물소리가 우리는 반기는 것 같았습니다. 진틀 삼거리 입니다. 암튼 경사가 심한 난코스를 마쳤다는 안도감과 함께 모두들 개울가로 갔습니다. 세수하고 발씼고 상승한 체온을 내리느라 모두가 여념이 없는 것 같스니다. 절반이상 남았건만 기분은 다온듯 합니다.

(물가 주변에는 쓸만한 나무가 만핬습니다. 이만하면 기둥으로 쓰기엔 ~~훌륭할 것 같습니다.)(하늘 높이 약 20미터는 되어 보입니다. 20미터나 되는 나무를 기둥으로 쓰려면 제법 큰 집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아름드리 나무 : 내려오는 중간에 본 나무의 수관 너비는 20미터는 족히 도리 것 같았습니다. 학생 한크라스 정도는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높이는 그닥 크지 않은 나무입니다. 바같부분 가지가 땅에 닿을 듯 처진 모습입니다.)

- 문제의 배관 : 하산시 계울근처에 검은 전선관이 여러가닥 보였습니다. 저것은 분명히 급수관일 것이다, 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상류의 맑은 물을 집에서 먹기 위해 집마다 개별로 설치한 배관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 배관은 직경 15미리 정도로 급수배관으로 쓰는 용도가 아닌 전선용 배관처럼 보여서 이것은 급수용은 아니다 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타면 무엇일까? 하고 고민 중에 내린 결론은 이것은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여 집으로 집결시키는 송수관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소득사업으로 고로쇠 수액을 통해 농가소득을 얻는다는 계시판을 보고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그렇타면 이것은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로쇠액 채취가 일년 사시사철 채취하는 것도 아닌데 연중 배관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면 내부에 대장균이 발생한 가능성과 함께, 위생상의 문제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렇타면 소비자들은 이것을 알고나 먹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분명히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타면 이것을 어찌한다???

- 2시 50분쯤 병암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진틀마을 500여미터를 앞에 두고 있는 마을인데 닭굽는 냄세가 숯불연기와 함께 우리들의 시청각을 자극하였습니다. 그냥갈 우리가 아니죠, 바로 한마리 콜하였습니다. 오기 전에 알기로 이 동네는 닭숫불구이가 유명하다는 얘기을 들은지라 바로 물가에 위치한 평상 한켠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집닭을 통채로 잡은 한마리와 두릅, 열무김치, 절인 양파등 밑반찬이 일품이었습니다.)(집닭을 통채로 잡아서 내장과 창자부위까지 한마리를 간장저림하여 내놓은 모습입니다. 숯불과 구색이 맞는듯 합니다.)

- 닭 한마리, 막걸리 한통, 소주 2병, 맥주 1병을 다섯명이 나눠먹었습니다.

- 식당 평상가에는 인공으로 조성한 계곡내 자연풀장이 있었습니다. 얘들이 놀다가, 옆 테이블에 아줌마가 한잔 술에 열기를 참지 못하고 풀에 뛰어 들었습니다. 이에 고무된 조대원도 뛰어들었습니다. 용기기 대단합니다!!!

(하산기념 단체사진을 백운산을 배경으로 한컷~~)

♣  산은 힘들었지만, 입이 즐거우니 고단한 하루의 기억이 눈녹듯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5시에  백운산 자락을 뒤로 하고 창원으로 향했습니다. 창원에 도착하니 7시쯤, 저녁노을이 사라진 즈음~~ 다음 산행이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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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5 00:00

한국100명산 10. : 조계산. '태백산맥'의 배경지

♪ 100명산을 시작한지 만 1년만에 10번째 산행을 하게되었습니다. 이번 원정지는 전남 순천에 있는 조계산입니다. 조계산 정상 장군봉을 기점으로 좌우에 송광사와 조계사가 위치하여 횡단하는 코스는 두 사찰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 조계산입니다. 그리고 태백산맥으로 너무나 유명한 조정래 선생님이 태어난 곳이 조계산 선암사입니다. 그의 대하소설 '태백산맥'과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조계산은 소설 '태백산맥'의 중요무대의 배경이 된 곳입니다. 한국동란 이후 빨치산의 총사령부가 있었던 지리산으로부터 확산된 전남 서부지역과 연결되는 통로로서 조계산이 당시 빨치산의 거점이며 통로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계산은 우리민족의 아픈역사가 남아있는 산이기도 합니다. 

♬ 5월 3일 토요일 아침 7시 30분에 315아트문화센터 주차장에 집결하였습니다. 오늘도 열외1명 없이 6명 모두가 함께 하게되었습니다. 아침은 섬진강 휴게소에서 우동과 준비한 충무김밥으로 가볍게 해결했습니다. 연휴를 이용하여 봄을 만나러 떠나는 사람들이 흥겨움이 휴게소 마당을 부산스럽게 하는 것 같습니다. 순천은 작년에 순천만 조성된 생태공원 박람회를 통해 생태도시로의 이미지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인접한 여수의 엑스포 박람회와 더불어 새로운 생태관광코스로 거듭나는 것 같았습니다.

선암사에서 장군봉까지 : 선암사에서 장군봉까지는 약 2.7키로미터로 1시간 30분 정도 소요시간을 예상하고 10시 20분에 출발하였습니다. - 주차장에서 선암사까지는 1키로미터 정도입니다. 사부작히 걷기 좋은 길입니다.

- 선암사가는 중간쯤에 돌기둥 2개가 좌우에 서있습니다. 일종의 문주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측은 조계산 선암사라는 글귀가, 좌측은 禪敎兩宗大本山이 적혀있습니다.

 - 얼마지 않아 유명한 승선교가 보입니다. 반원아치의 돌다리로 유명한 곳이죠, 우리일행은 일부러 하천가로 내려가서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 승선교 뒤로 보이는 누각(강선루)가 살짝 보이는 것이 백미인데 주변의 녹음이 울창하여 누각의 다리부분만 살짝 보여서 아쉽게도 그림에서 보던 장면을 촬영할 수 없었습니다. 얘가 보물로 지정되었어 있다고합니다. - 단체사진 한팡

강선루(降仙樓)입니다. 이름을 풀이하자면 이 누각으로 신선이 내려왔다가, 昇仙橋를 통해 신선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일주문에 앞서 이러한 누각이 설치된 것은 특별한 경우인 것 같습니다. 보고 싶은 선암사는 하산길에보기로 하고, 장군봉을 향하였습니다. 출발과 함께 시작된 경사도는 도대체가 쉴틈을 주지않고 연거푸 경사면으로 이어졌습니다. 

- 12시 35분에 장군봉에 도착했습니다. 2시간하고도 15분이 지났습니다. 얼추 2시간 이상을 걸었습니다. 우리 학봉대원들 체력이 예전만 못한 것 같습니다. 1시간 반 거리를 2시간 이상이나 걸리다니!!!

- 일단 기념사진 촬칼, 정상이라고 하기에 너무 협소하였습니다.

- 오늘 점심은 능선변에 있는 보리밥집에서 먹기로 하였습니다. 각자 가져온 간식 메뉴가 다양합니다. 충무깁밥, 쑥떡,  야관문주, 그리고 보급품 한봉다리가 끝내줍니다. 보시겠습니까? 놀라지 마십시오

- 이 간식은 학봉산악회 보급대장님 하사품입니다. 간식이 아니라 낙오시 하루정도 버틸 수 있는 비상식량이 될 정도입니다. 

그 유명한 보리밥집입니다. 조계산 가는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보리밥집입니다. 등산로 이정표에 기재될 정도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집입니다.

- 보리밥집 전경입니다. 원조라고 합니다. 즉 한군데가 옆에 새로 생긴모양입니다. 맛이비슷하겠지만 원조라는 집에 들렀습니다. 노란깃발을 보고 찾아갔습니다.

 - 막걸리 한사발에 보리밥에 온갖 나물들, 그리고 비빈 보리밥을 상추에 얹어서 된장 쓱싹하여 먹는 맛이 일품입니다.

선암사 경내를 둘러보았습니다.

《선암사사적기()》에 따르면 542년(진흥왕 3) 아도()가 비로암()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875년(헌강왕 5)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신선이 내린 바위라 하여 선암사라고도 한다. 고려 선종 때 대각국사 의천()이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 거의 폐사로 방치된 것을 1660년(현종 1)에 중창하였고, 영조() 때의 화재로 폐사된 것을 1824년(순조 24) 해붕()이 다시 중창하였다.
6·25전쟁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20여 동의 당우()만이 남아 있지만 그전에는 불각() 9동, 요() 25동, 누문() 31동으로 도합 65동의 대가람이었다. 특히 이 절은 선종()·교종() 양파의 대표적 가람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와 쌍벽을 이루었던 수련도량()으로 유명하다.
주요문화재로는 보물 제395호인 삼층석탑 2기가 있으며, 대웅전은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어 있다. (heen8659님의 블로그에서 인용)

- 일주문입니다. 기둥 사이가 1칸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가운데 공포가 여럿히 설치된 다포식 처마장식입니다. 처마는 공포와 서까레가 2단으로 형성된 겹처마 입니다. 왜이렇게 화려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범종각입니다. 종을 보호하는 건물입니다. 정면 측면 3칸씩입니다. 처마장식은 기둥위 간단하게 익공으로 처리하였습니다.

- 대웅전 전경입니다. 대웅전 다운 위용입니다. 현재 보수공사중입니다. 처마에 단청을 칠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기존의 서까레와 노후화한 부재를 갈아 끼워진 상태입니다. 목부재가 어느 정도 건조가 되면 단청을 하게 될 것입니다.

- 대웅전 앞 삼층석탑입니다. 신라시대 9세기경에 지어진 탑으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불국사 석다탑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 대웅전 옆의 요사채입니다. 요사채의 지붕개량공사는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절집에서 보기좋은 느낌의 색상은 목재면에 바래진 수채화빛 색상입니다.

- 대웅전 경내전경입니다. 삼층석탑을 위시하하는 듯한 연등의 행렬이 보기 좋습니다.

- 요사채의 고무신 : 가지런한 고무신과 색이 바란 목재문살, 누런 서까레가 황토벽면색을 닮아가는듯 합니다.

- 담장너머 처마선 : 얕은 담장은 고래등 같은 지붕선과 처마선을 살포시 받아줍니다.

  

- 문살의비례 : 요사채 전경입니다. 정연한 기둥사이내에 창호의 크기에 따라 나뉘어진 가로 선과 세로선의  비례가 아름답습니다. 

- 문꼴로 봐서 창고인 듯 합니다. : 창고의 품위! 

 - 장경고입니다. 불교경전을 보관하는 도서관이죠, 건물 기능에 비해 장식이 과다한 것 같습니다.  

 - 선암사 경내가 아름다운 이유 : 건물주변 공간을 구획하는 담장에 의해 외부 공간을 풍요롭게 하는 것 같습니다.

- 한국불교 태고종의 업무를 보는 종정원 : 나무 옹이와 못자욱 마처 아릅답게 보입니다. 

- Y 디자인의 결정체 : 석재 함지박에 물을 길는 두가닥 물줄기와 물족자를 보관하는 지붕을 이고 있는 새총모양의 나무기둥 

- 화장실의 위용 : 이처럼 럭셔리한 화장실이 있을까?, 그래서 이름도 뒤깐입니다. 출입구 박공면의 위용이 엄청납니다.  현재 지붕 공사중입니다.

- 선암사는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선암사 관람평은 무척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건물이 제각각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지어진 시기나, 건물의 용도가 다르니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완만한 경사지를 잘 이용한 부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형의 높이차에 따라 건물과 담장 그리고 조경에 의해 외부공간을 잘 분리하였습니다. 전체가 다 보이지 않고 필요한 부분, 예를 들면 지붕의 처마선만 살짝 보면서 경내를 회유하게 됩니다. 보일듯 말듯한 공간을 돌아다니면 건물의 특정부분들이 그림처럼 다가옵니다. 어떤 곳에서는 처마의 서까레 부분이 어떤 곳에서는 담장의 쌓여진 돌들의 조합에 의한 비례가, 또 어떤 곳에서는 500년된 매화가 하나의 주인공처럼 등장하게 됩니다. 이상으로 학봉산악회 열번째 등반보고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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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5.15 17:20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013.06.26 10:19

한국100명산. 1. 낙타등 같은 지리망산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늘어나게 된 가장 큰 이유중 하나가 등산에 있다고 봅니다.

유독 우리나라에 등산인구가 많은 까닭은 쉽게 돈들이지 않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등산관련 아웃도어 의류 및 용품이 대형매장 매출에 지대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면 등산바지, 등산티. 심지어 등산화를 신은 사람들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 주변에는 이런 분들이 계셔서 저는 금면 초부터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토요일 모여서 무학산 둘레길을 3시간 정도 걷는 팀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걷는 속도들이 빨라서 따라가기 숨이 헉헉차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서너달 하고 보니 빠른 속보를 감당할 만한 체력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꼭 같은 코스를 매번 가는 것에 대한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딴데 한번 가보입시더'라고 졸라 적석산도 한번 가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서 아예 한달에 한번씩 다른 산으로 원정을 가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나의 제안에 대해 "들어온지 얼마 안된 사람이 너무 나데는 것 같다"는 핀잔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그 일이 있고난 얼마 후 한국의 '100명산 수첩'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제안을 했습니다. "한달에 한번씩 해서 1년에 10번, 그것을 10년하면 한국의 100명산을 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요

이 제안에 반응은 시큰둥하였으나 달리 반대할 명분이 없는지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한국 100명산 탐방대'의 첫 대상지는 통영의 아름다운 섬 사량도에 있는 지리망산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 지난주 토요일 아침 7시반에 산복도로에서 집결하여 통영 가우치 항으로 향하였습니다.

 도착하여 9시 배를 타고 사량도 상도에 9시35분에 내렸습니다. 지리망산을 종주하는 코스를 가기 위해서 다시 버스를 타고 돈지에 내려서 사량초등학교 돈지분교옆을 지나 지리망산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초입에 마치 마산 팔용산의 돌탑과 같은 곳을 지나 정상을 향하였습니다. 이산이 악산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흙보다는 거의가 삐죽삐죽한 암반코스가 많다는 것입니다.

정상은 해발 400정도로 급격한 경사면을 따라 얼마지 않아 7부 등선쯤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바라본 해안의 경관이 퍽 아름다웠습니다.

- 돈지항 포구주변의 풍경입니다.

-원봉에서 바라본 가마봉과 옥녀봉 사이의 봉우리 입니다.

- 특히 여성들이 무서워 하는 구름다리 입니다. 이러한 다리 2개를 지나야 옥녀봉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사다리를 타고 이 봉우리를 지났다고 합니다.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건너편에 보이는 곳이 삼천포입니다.

 

- 지리망산의 형태적 특징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마치 낙타등과 같다고 할 수 있읍니다. 해발 400미터내외의 봉우리 4개를 상하 오르내리기를 반복해야 종주할 수 있는 코스입니다. 또한 바위가 많은 악산이기에 튼튼한 등산화와 장갑이 필수품입니다.

- 지리산 정산에서 한 컷 찍었습니다. 앞으로 10년간 무사산행을 기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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