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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9 00:00

만날고개의 옛길을 걷다


3월 5일, 오후 2시.

날씨는 봄기운이 완연했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습니다. 
유장근 교수의 마산도시탐방대 열 다섯번째 길, 모두 스무사람 쯤 만났습니다.

오늘 탐방지는 만날고개.
만날재의 전설과 옛 주막, 아기무덤터와 계비, 일제기 군용지 표지석과 일본인 유지들의 사유지 경계석, 그리고 월영마을 옛 신당,,,,
무심코 지나쳤던 만날재에 끝도 없이 펼쳐진 역사의 향연에 일행은 몸을 맡겼습니다.

이 글은 그 중 옛날 월영리에서 만날재로 넘어갔던 오래된 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누구나 만날재공원을 아스팔트 도로를 걸어 올라가지만, 이 길이 뚫리기 전까지 만날재로 가는 유일한 길은 당산마을 한복판의 좁은 길이었습니다.
당산마을은 산복도로 윗쪽 마을 이름인데 마을에 당산나무가 있어서 지으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당산마을은 옛날 월영리 제일 윗쪽 산 밑에 붙어있던 마을로 현재 경남대 뒤 산복도로 위쪽에 붙어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감천 넘어가는 사람들과 감천에서 마산포로 넘어오는 사람들이 목을 축였던 주막과 마을의 안녕을 빌었던 당산목인 수백년된 팽나무가 지난 세월을 말해주고 있는 오래된 마을입니다.

낡고 좁고 오래된 옛길이지만 창신대학 실용미술과에서 길벽화를 장식해 놓아 길이 훤했습니다.





이 길은 옛날 월영리 사람들이 만날재(무학산)를 넘어 감천거쳐 내서로, 그리고 함안으로 다녔던 길입니다.
길이야 함안 아니라 서울까지도 이어지게 마련이지만 굳이 함안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월영리가 조계지였던 시절에 발행한 지도 때문입니다.

아래 그림이 지도의 일부입니다. 1907년 일본인이 제작한 지도인데 이 지도에 대해서는 지난 1월 3일 이미 포스팅한바 있습니다.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9) - 개항이후

지금의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옛 창원군청) 앞에서 만날고개로 올라오는 넓은 길이 이 좁은 골목과 연결되었는데 그 넓은 길에 함안신정(咸安新町)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이 길이 함안으로 이어진다는 뜻인지, 함안 쪽에서 볼 때 가장 가까운 곳이라는 뜻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어쨌든 이곳이 함안과 관련있다는 의미아니겠습니까.



이 길이 만날고개를 넘어 감천과 내서거쳐 함안으로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지도 몇 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다음 지도는 1916년 일본육지측량부가 제작한 1/ 5만 '마산(군사극비)' 지도입니다.



1919년 일본육지측량부가 제작한 1/ 1만 '마산' 지도입니다.



1926년 일본육지측량부가 제작한 1/5만 '마산(조선교통도)' 지도입니다.



1937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서 제작한 1/20만 '마산' 지도입니다.
함안까지 연결되는 길이 전부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림의 함안은 지금의 가야읍이 아니라 당시 읍소재지였던 함안읍입니다.




최근인 1990년대 지도도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지역의 위성사진을 통해 비교해 보겠습니다.<<<



Trackback 0 Comment 2
  1. 임종만 2011.03.09 08:5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네요.
    몰랐던 사료지도를 보니 이 길이 참 중요한 길이었음을 알것 같습니다.
    지금은 현대길에 밀려 명맥만 유지하지만요. ㅎㅎ

  2. 옥가실 2011.03.09 18:1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글을 읽어보면서 느낀 것이지만, 좋은 자료가 참으로 많아요.

    차암... 빨간펜 한곳,

    원문에 산당마을이라고 썼는데, 제가 잘못 알려준 불찰입니다.
    당산 마을입니다.
    산복도로 건너기 바로 직전에 당산 경로당도 있더군요^^

2011.01.03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9) - 개항이후


<일본인이 계획한 신마산의 모습>

-마산전도(馬山全圖)*-
1907년 / 청목항삼랑(靑木恒三郞) / 율원경포당(栗原耕浦堂) / 1 : 4,500 / / 일본국회도서관

 

 

한일병합 직전 시기의 신마산 조계지를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자료입니다.

제목인「마산전도」에서 보듯이, 당시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살았던 지역을 ‘신마산’ 혹은 그냥 ‘마산’이라고 불렀으며 원래부터 한국사람들이 살았던 원마산(마산포)을 ‘구마산’이라 불렀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에 의해 마산 최초로 개설된 중앙에 있는 도로를 진해본통(鎭海本通)으로 표기하는 등 도로의 명칭을 일본식으로 지어 사용하고 있으며 조계지 주변의 산 이름까지 일화산(日和山), 영성둔산(影星屯山) 등 그들 멋대로 지어서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 지도가 제작된 시기에는 아직 개설되지 않고 계획 단계에 있었던 도로까지 표시되어 있습니다.

정확하게 구분을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자료와 비교 분석해보면 산수상통(山手上通)이라고 불렀던 현 제일여고 앞 도로 이북의 지역은 도로가 개설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범례로 토지경매 때 나눈 등급을 표시하여 무색의 토지를 1등지(一等地, A급지), 유색의 토지를 2등지(二等地, B급지)로 표시해 놓았습니다. 이는 다른 자료의 구분과 일치합니다.

그런가하면 그 때까지 경매되지 않았던 토지도 상세히 구분했는데 이에 의하면 제일여고 앞 도로인 고운로 이북의 토지는 그 때까지 미경매지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토지는 등급별로 일련번호를 붙여 놓았습니다.

지도 최상부의 지점은 현재의 만날고개로 연결되는 위치인데 이곳은 무학산 너머에 있는 감천마을과 연결되는 고개입니다.

그곳에「함안도(咸安道)」라는 도로명칭이 적혀있고 함안도 아래의 직선도로, 즉 현재의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구 창원군청) 앞 도로가 「함안신정(咸安新町)」이라는 것을 보아 옛 월영리와 함안의 연결도로가 만날고개를 지나 감천-중리로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월영동에서 걸어서 함안까지 간다면 그 길이 가장 빠를 겁니다.

조계지 역역 안에 있었던 세 개의 하천에 11개의 교량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현 창원천(옛 마산시장 관사 앞)을 일화계(日和溪)로 불렀으며 신월천(깡통골목, 복개)을 신월계(新月溪), 월영천(경남대 앞 광장, 복개)은 월영계(月影溪)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 창원천에는 7개의 다리가 있는데 아래로부터 신월교․무학교․마산교․반룡교․대사교(大使橋) 등 다섯 개의 다리에 명칭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월천에는 세 개의 다리가 있는데 아래로부터 창원교․완월교․웅천교였으며․왼쪽 월영천에 있는 한 개의 다리는 진해교였습니다.
진해교는
현재의 진동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이 때만 해도 진동을 진해라 불렀기 때문에 진해교라고 한 것입니다.

일본인 전중 손(田中 遜)이 설치한 것으로 알려진 4개의 콘크리트 교량은 그 시기와 위치를 보아 창원천에 있는 7개의 다리와 신월천의 3개 중 4개를 개축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중 어느 다리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전중손은 일본궁내대신이었던 전중광현(田中光顯)의 아들입니다.
전중광현은 1906년 한황실 위문대사로 우리나라에 왔던 일본 고관으로 방문 당시 철도용지였던 마산 장군천 상류 일대 35만여 평을 100년 동안 농장으로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통감 이등박문과 임차계약을 하였습니다.
전중손은 바로 그 농장을 물려받은 자인데 그 농장이 월포원입니다.
전중손은 이 외에도 대규모의 가옥임대업과 건설업 및 수 백호의 소작인을 두고 농업경영을 하는 등 일제기에 마산을 호령했던 권력자이자 대부호였습니다.

함안신정(咸安新町)․본정(本町)․중정(中町)이라고 적힌 경남대 평생교육원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세 갈래 길이 개항 초기에 ‘마산의 긴좌(銀座)’라고 불릴 정도로 가장 변화했던 도로입니다.

이 지도를 다른 사료들과 비교 검토해보면 매우 정밀하게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합방 이후 강점기가 진행되면서 개항 초기에 조계지내에 개설된 도로가 없어지거나 형태가 약간씩 바뀌었기 때문에 최초의 조계지 도시구조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자료로서의 가치가 대단히 큰 지도입니다.

위 지도의 현재 모습이 아래 그림입니다. <<<






2010/10/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6) - 개항이후
2010/10/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7) - 개항이후
2010/10/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8) - 개항이후
2010/10/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9) - 개항이후
2010/11/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0) - 개항이후
2010/11/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1) - 개항이후
2010/11/1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2) - 개항이후
2010/11/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3) - 개항이후
2010/11/2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4) - 개항이후
2010/12/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5) - 개항이후
2010/12/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6) - 개항이후
2010/12/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7) - 개항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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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10 14:54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허정도 2011.01.10 16:57 신고 address edit & del

      오 기자, 반갑소.
      근황은 이야기 들었어요.
      필요하면 언제라도 연락주세요.
      가족 모두 새해 좋은일 많이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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