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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7) - 개항이후

<다시 생각하는 개항 후 10년>

개항 직후 시작된 이 도시의 생성과 변화를 31회에 걸친 포스팅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던졌어야할 질문을 뒤늦게 던져봅니다.

그들은 왜 '창원군 외서면 월영리와 신월리 해안'을 개항지로 삼았을까요?



근대 마산의 시작은 개항이었고 개항지는 마산포 남쪽 2㎞지점의 월영리와 신월리 일대였습니다.
일본인들은 조계지였던 이곳은 ‘신마산’이라 불렀고 그들이 부른 ‘신마산’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개항지로 선택되었던 월영리와 신월리,,,,, 그곳은 마산도시의 최남단으로 지형상 말단부였습니다.
동쪽은 합포만, 서쪽은 무학산이 막아 북쪽 마산포 쪽으로만 시역의 확장이 가능했던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자연조건이 이러했슴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조계지로 선정되었던 이유는

① 외부와의 연결은 물론 당시에 문물교류 루트로 이용되었던 해로(海路)와의 입지적 조건이 유리하였으며

② 비록 면적은 넓지 않았지만 경사지와 해안평지를 동시에 끼고 있어서, 산업용지는 평지에 두어 해안을 이용하였고 주거용지는 경사지에 배치해 마산만의 경관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었으며

③ 마산포와는 2㎞ 거리였지만 지형적으로는 해안 평지로 이어지기 때문에 향후 도시 확장과정에서 연결이 용이한 지세였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개항지를 결정한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월영리와 신월리를 택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신마산의 입지조건은 시역(市域)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무리한 토목공사가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다를 메우고 산을 깎아 가용부지를 넓혀나간 이 도시의 역사는 이와 같은 태생적 조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또한 매끄럽지 못한 가로망 연결과 지금도 계속되는 매립 등 마산도시의 비효율적인 도시구조도 개항지의 위치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지금에 와서 개항지 결정에 대해 백번 말해봐야 자신의 탄생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부질 없는 줄은 알지만 '만약에,,,' 라는 마음이 없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만약,
마산의 개항지가 지금의 어시장과 남성동 일대인 '마산포' 였다면, 아니면 오산리였던 산호동이나 내륙이었던 양덕동 쪽이었다면 이 도시는 어찌되었을까요?
오늘처럼 이런 모습일까요?
상상할 수 없는 다른 모습이었을까요?

개항 후 10년,,,,
이 시기는 마산이 근대도시로 기틀을 잡기 시작했던 때였으며 서구의 온갖 근대적 문물들이 마산에 선을 보이기 시작했던 대변화의 시기였습니다. <<<


----------------------------------------------------------------------------

이 글로써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의 '2차 게재' 중 '개항(1899년) 이후부터 경술국치(1910년)까지의 시기'가 끝났습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다음처럼 크게 3단계로 나누어 포스팅할 계획이라고 밝힌바 있습니다.

1차 ; 고대부터 개항(1899년)까지
2차 ; 개항이후부터 해방(1945년)까지
3차 ; 해방이후부터 현재까지

이미 완료한 '1차 게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고려시대 이전 ------  9회
조선시대-----------  4회
개항기------------- 12회
합계--------------- 25회 완료

'2차 게재'는 다음처럼 구성하기로 했으며 그 첫번째 순서를 마쳤습니다.

개항부터 경술국치(1910년까지)------------총 32회 (26회부터 57회까지) / 완료
일제강점 제1시기(1911년부터 1920년까지)
일제강점 제2시기(1921년부터 1930년까지)
일제강점 제3시기(1931년부터 1945년까지)

'3차 게재' 계획입니다.
산업화 이전시기(1945년부터 1960년대 말까지)
도약 및 전성기(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정체 및 쇠락기(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 본 연재는 마산도시를 연구하면서 확보한 자료를 공유하자는 목적도 있습니다.
   혹시 좋은 자료가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2010/10/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6) - 개항이후
2010/10/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7) - 개항이후
2010/10/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8) - 개항이후
2010/10/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9) - 개항이후
2010/11/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0) - 개항이후
2010/11/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1) - 개항이후
2010/11/1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2) - 개항이후
2010/11/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3) - 개항이후
2010/11/2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4) - 개항이후
2010/12/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5) - 개항이후
2010/12/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6) - 개항이후
2010/12/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7) - 개항이후
2010/12/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8) - 개항이후
2011/01/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9) - 개항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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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1) - 개항이후
2011/01/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2) - 개항이후
2011/01/3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3) - 개항이후
2011/02/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4) - 개항이후
2011/02/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5) - 개항이후
2011/02/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6) - 개항이후
2011/02/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7) - 개항이후
2011/03/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8) - 개항이후
2011/03/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9) - 개항이후
2011/03/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0) - 개항이후
2011/03/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1) - 개항이후
2011/04/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2) - 개항이후
2011/04/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3) - 개항이후
2011/04/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4) - 개항이후
2011/04/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5) - 개항이후
2011/05/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6) - 개항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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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옥가실 2011.05.09 09:5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벌써 이렇게 진전이 되었나 하면서 놀랍니다.
    가랑비에 둑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계속 기다립니다.

2011.05.02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6) - 개항이후

<한일병합된 1910년 마산 모습>

도시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도시내부의 변화도 많았지만 도시외부의 변화도 있었습니다.

당시 마산에서 외부와 연결되는 길은 크게 세 갈래였습니다.
그 중 하나는 동쪽으로 창원․덕산․김해를 거쳐 부산으로 가는 약 120리 길이 있었는데 바로 지금 진영을 거쳐 부산으로 연결되는 국도입니다. 이 길이 1909년 우마차가 쉽게 통행할 수 있는 신작로로 개수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넓은 길은 없었습니다. 많은 물량을 실어 나를 수레도 없었고,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넓은 도로를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청일과 러일 양 전쟁이 벌어지면서 일본군이 개통시킨 군사도로 경의․경인․경원선이 최초였으며 전국적으로 일반도로가 개설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 였습니다.
그렇게 볼 때, 이 도로의 확장공사는 매우 이른 편이었습니다.

또 다른 길은 서쪽으로 진동을 지나 진주로 가는 140리 길이었습니다.
좁은 오솔길로 여러 개의 험준한 산마루를 넘어야 했던 길이었습니다만 1908년 6월 폭 5m로 확장공사가 시행되어 1911년 3월 완성되었습니다(
朝鮮總督府 官報 第211號, 1911. 5. 16)

세 번째는 북쪽으로 칠원․창녕․현풍․성주를 지나 서울로 연결되는 길이었는데 확장을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다음 그림은 병합 당시(1910년) 마산일대 도시상황을 나타낸 지도입니다.
이 지도는 1899년 직전의 마산일대 지도(2010/08/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7) - 개항기)를 기초로, 개항기 동안 간행된 각종 문헌을 자료로 활용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지도의 아래 쪽 노란 색 칠한 부분이 신마산인데 노란색 중간 쯤 보이는 신월천(현 깡통거리)까지가 조계지였습니다.
하지만 개항 10년 후인 1910년 경, 이미 일본인들은 북쪽 원마산 방향으로 많이 뻗어나왔습니다. 근대식 도로도 현재의 장군천까지 건설되었습니다.

도시 중심에 길게 나있는 검은 선이 1905년에 개통한 철도 마산선입니다.
신마산 쪽에 마산역이, 원마산 인근(현 육호광장)에 구마산역이 있었으며, 이때 난 철로가 현 경남은행 본점 앞 중앙간선도로입니다.

지도처럼 마산포(원마산)와 신마산에만 도시가 형성되었을 뿐, 완월, 자산, 회원, 양덕, 석전, 합성지역 등은 그때까지 자그마한 자연취락이었습니다.

1910년 8월 22일 일제는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같은 달 29일 이 사실을 정식으로 공포함으로써 한반도가 자신들의 땅임을 공식화하였습니다.

이후 일본은 한국사회를 식민지 구조로 재편하였고, 그 과정에서 1911년 1월 1일 진해군항보호를 구실로 마산의 개항장을 폐쇄했습니다.

그러나 개항 당시에도 일본과의 교역 외에 타 국가와의 교역이 미미했던 마산항은 폐항이 된 이후에도 한국산 쌀의 대일 수출과 일제 소비성 물자 및 군수품 수입항으로 계속 활용됨으로써 크게 위축되지는 않았습니다.

개항과 함께 찾아온 인구의 증가와 근대적 도시시설 출현, 일제에 의한 정명변경(町名變更) 등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을 겪으면서 마산포의 도시구조는 급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듯이 성장 일변도의 길을 걸어온 마산도 1911년 진해에 군항이 설치되면서 상황이 변하게 됩니다.

                                          <일제 강점기 때의 진해>

당시 진해 사정과 관련지어 마산도시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두 가지의 자료를 소개합니다.

먼저 평정빈부(平井斌夫)가 쓴『마산과 진해만』의 기록입니다.

‘1911년 1월 마산의 개항이 폐쇄되면서 산업이 위축될 것 같았지만 원마산의 왕성한 교역과 상거래, 진해만 군사시설의 건축, 진해 신시가지의 건설 등에 의해 오히려 폐쇄 전보다 시장이 활발해졌다’ 고 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최근 친일 문제로 시끄러운 장지연의 『마산기행』기록입니다.

‘한 때 번성의 극치를 이룬 마산은 진해에 군항을 설치한 이래 마산의 상인들이 진해 쪽으로 넘어가는 이가 많아 요사이는 오히려 1911년 이후 인구가 줄어들고 점포들도 활기를 과거에 비해 잃었다’
고 한 것입니다.

두 주장은 각각 나름의 근거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개항기 이후 발간된 자료들과 1911년에 시작되는 남성동 해안 매립공사 등을 보면 장지연의 글처럼 마산이 비록 ‘과거에 비해 활기를 잃었다’ 하더라도 마산도시 전체가 크게 위축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2010/10/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6) - 개항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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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비 2011.05.02 10:3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옛날 진해의 모습이 훨씬 정도되고 좋은 것 같네요.

    • 허정도 2011.05.02 20:57 신고 address edit & del

      일제의 진해 건설 초기사진입니다.
      잘 계시죠?

    • blokken 2011.05.13 08:39 신고 address edit & del

      잘 계시죠?

2010.05.26 00:00

어디, 이런 사람 한 번 찾아 봅시다

6.2 지방선거가 절정입니다.
통합 창원시의 미래는 이번 선거에서 선택받는 공직자들에 의해 크게 좌우됩니다.
그만큼 중요한 선거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아래 도시의 시민 소득이 위 도시민 소득의 1/3밖에 안된다면 믿겠습니까?>

60년대 이후 급격히 진행된 인구 도시집중현상은 도시의 양적 팽창이라는 물리적 변화와 함께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도시시설 사이에 해결하기 어려운 수많은 문제를 유발시켰습니다.
도시의 규모가 비대해진 대도시일수록 문제의 정도는 더 많고 더 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도시를 이끌어갈 공직자의 도시인식과 도시에 대한 철학은 다른 어떤 덕목보다 우선 검증되어야할 조건일 수 있습니다.
공직자의 도시철학은 그 도시의 경제 발전과 문화 품격을 상승시킬 뿐만 아니라 당장에 시민생활의 질과도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이미 브라질 쿠리티바의 자이메 레르네르 시장을 통해 세계적으로 검증된바 있습니다. 

도시문제 접근방법에는 두 가지의 큰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도시의 물리적 환경을 양적인 측면에서 공급 조절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도시의 구조적인 문제와 시민의 생활방식 등을 조정하여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믿는 문화주의입니다.

예를 들어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택할 때,
기술주의자는 도로를 넓히거나 지하터널을 뚫고, 문화주의자는 대중교통과 자전거도로의 질을 높이거나 출퇴근 방향을 분산시키는 정도의 차이입니다.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간단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대부분 도시정책이 기술주의적 방법에 치우쳐 있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기술주의자들이 말하는 개발과 성장이 문화주의자의 주장보다 위세 당당하고 발전적인 것 같지만 우리의 도시사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전국에 걸쳐 진행된 '개발을 통한 성장정책'에서 얻은 것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폐해도 적지 않았습니다.
개발이란 이름아래 뒤엉킨 도시는, 사람이 있어야 될 자리를 자동차가 차지했고 자동차가 있어야 될 자리는 건물이 서버렸습니다. 한가롭고 넉넉했던 농촌벌판 그 수평의 한 가운데마저 어느 날 괴기한 아파트가 우뚝 서고 말았습니다.
대다수의 지방자치단체가 자신의 역량과 특수성을 외면한 채 미래 발전계획 모델로서 '인구를 늘이고 공단을 조성하여 지역을 발전시키겠다'는 등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도 바로 이런 개발전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마산의 경우,
무학산과 합포만이라는 천혜의 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환경이 척박한 까닭도 기술주의만 신봉한 도시행정의 탓이 큽니다.

지금은 도시의 외형적 성장보다 생활의 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시대입니다. 배가 고팠던 시절에는 음식의 양을 중시했지만 지금은 양보다 맛과 영양을 찾는 현상과 같은 원리입니다.

주민을 위한다는 행정이 오히려 주민을 소외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도시개발을 했지만 생활환경이 점점 척박해지는 지긋지긋한 도시정책들은 이제 정말 끝내야 합니다.
‘무엇이 공동체를 위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사람 중심의 도시는 이런 것이다’라고 답할 수 있는 지도력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현재의 도시수준에서 실현할 수 있고 변화할 미래의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단순하고 유연하면서 비용도 적게 드는 도시정책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통합시 출발과 함께하는 선거라 더욱 그렇습니다.

개발보다 생활의 질을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

도시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사람,
차의 길보다 사람의 길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어디, 이런 사람 한 번 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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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윤기 2010.05.26 09:1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사진을 보니...좋은 도시를 만드는 것과 소득은 상관이 없는 일이네요.

    늘, 좀 더 부자가 되면 좋은 도시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던데..

    거짓이었군요.

    유념해야겠습니다.

    • 허정도 2010.05.27 17:38 신고 address edit & del

      경제수준이 도시수준과 전혀 관계 없지는 않겠죠.
      하지만 소득이 낮다고 해서 도시환경도 좋지 않을 것이라는 예단은 삼가야합니다.

  2. 푸른옷소매 2010.05.27 13:4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강 옆의 잔디밭에서 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도시를 잠깐 그려 보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도시도 가능할까요?

    • 허정도 2010.05.27 17:41 신고 address edit & del

      마산이야 잔잔한 합포만이 있으니 얼마든지 가능한 일 아닐까요?
      문제는 발상의 전환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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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정전 후의 체험들 Ⅲ - 귀환, 상이군인들 정전 얼마 후에 전장에 갔던 아저씨들이 속속 돌아왔다. 함께 끌려가서(그땐 그렇게들 표현했다) 내내 한 부대에 있다가 함께 돌아온 우용 아저씨와 내 당숙은 상이용사가 되어 돌아..

건축의 외형 - ‘타공판’ (perforated board)

사람이 건축의 외형을 인지하고 기억할 때에 여러 가지 요소들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됩니다.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특정 건물은 가장 부각되는 특정 요소로 기억하게 되는 듯 합니다. 규모나 재질, 기하학적 형태, 조..

2018년 새해인사

새해 인사드립니다. 꿈 꾸는 것과 희망하는 것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해가 되기 바랍니다.

건축의 외형 - ‘액자’ (frame)

미술의 역사 만큼이나 액자의 역사는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회화의 전시, 보존 등을 위한 보조적인 위치에서 출발한 액자는 사진의 등장과 기술의 발달 등으로 현재는 picture frame 만이 아니라 photo frame, d..

기억을 찾아가다 - 11

11. 정전 후의 체험들 Ⅱ - 수학여행 전쟁이 막바지로 갈 때쯤 해선 민간자동차도 많이 다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주로 화물차가 많이 보였는데, 마산 부산 간에만 다니던 버스 숫자도 상당히 불어난 걸 느낄 수 있었다. ..

건축의 외형 - ‘계단’ (Staircase)

오늘은 이전 포스팅들 보다는 조금 더 인공적인 형태라 할 수 있는, '계단' 이라는 주제를 가져와 보았습니다. 계단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 되어, 이미 BC3000년 경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에서부터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

기억을 찾아가다 - 10

10. 정권 후의 체험들 Ⅰ- 깡통문화, 총탄 정전 반대를 외치는 집회와 행진이 전국적으로 있었고 마산에서도 무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궐기대회가 열렸었다는 이야기를 어른들이나 형들로부터 엿들었던 기억은 있으나 거기에 관심을 기울..

건축의 외형 - ‘초승달’ (crescent)

달은 태양과 마찬가지로 여러 문화권에서 신화나 종교와 연결지어서 생각되었습니다. 초승달은 달이 뜨지 않는 삭 다음에 나타나기 때문에 서양권 에서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하여 new moon 이라고도 불리죠. 오늘은 이슬람의 ..

기억을 찾아가다 - 9

9. 한국전쟁기의 학교생활 Ⅲ - 용의검사, 학력경쟁 가교사생활 직후부터 실시된 용의검사는 생활환경이 좋은 도회지 넉넉한 집 아이들에겐 별 부담이 안 되었겠지만, 누추한 환경에서 생활하거나 항상 흙을 묻히고 살아야하는 농촌 아..

건축의 외형 - ‘삼각형’ (Triangle)

피라미드와 삼각형, 그게 그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입체도형과 평면도형 이라는 근본의 차이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접근 또는 적용 방식 또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라미드와 삼각형 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확..

기억을 찾아가다 - 8

8. 한국전쟁기의 학교수업 Ⅱ - 떠돌이 수업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1952년의 학교생활엔 참 변화가 많았다. 담임선생님도 세 번이나 바뀌었고 교실도 다섯 번이나 옮겨 다녔다. 그리고 전입생도 그 해에 갑자기 불어났다.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