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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6 00:00

가슴에 들어온 진실 『순이 삼촌』

(제주도에서는 촌수가 먼 친척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삼촌이라 부릅니다)

마산YMCA 회원들과 지난 2월1일부터 4일까지 제주도 여행다녀왔습니다. 이름하여 힐링투어.

고등학교 2학년 때, 하얀 이름표가 달린 새까만 교복을 입고 수학여행을 왔던 첫 경험 후 지금까지 족히 수십 번은 드나들었던 섬입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특별했습니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제주도의 역사와 자연을 온 몸으로 느끼고 접했기 때문입니다.

용눈이 오름과 동백동산습지보호구역, 눈 속의 한라산,,, 다시 본 제주도는 곳곳에서 감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울림을 받은 곳은 너븐숭이4.3기념관과 옴팡 밭 한복판에서였습니다. 특히 옴팡 밭 한복판에서 쩌릿하게 울려왔던 깊은 전율은 오래동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우리 일행이 너븐숭이4.3기념관에 도착했을 때, 가늘게 겨울비가 뿌렸습니다.

너븐숭이는 널찍한 돌밭이라는 뜻의 제주도 말인데 북촌리 일대의 지명이라고 들어 알았습니다.

북촌리는 제주시 조천읍의 동쪽 끝에 자리 잡은 조용한 해변마을로 소설가 현기영의 대표작 『순이 삼촌』의 무대입니다.

이 조용한 마을이 집단학살로 피범벅이 된 날은 1949년 1월 17일(음력 12월 18일)입니다. 북촌리 양민 수백 명을 한날한시에 학살한 역사의 비극으로, 국제법에서 전쟁 중에도 금시기하는 제노사이드(genocide / 집단학살)의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음력 12월 18일, 지금도 그 날 밤이 되면 북촌마을 집집마다 제사상이 차려집니다. 그러니 그날 밤에 벌어진 잔악한 범죄는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의 이야깁니다.

 

우리 집 할아버지 제사는 고모의 울음소리부터 시작되곤 했다. 이어 큰어머니가 부엌일을 보다말고 나와 울음을 터뜨리면 당숙모가 그 뒤를 따랐다. 아, 한날 한시에 이 집 저 집에서 터져 나오던 곡성소리, 음력 섣달 열 여드렛날, 낮에는 이곳 저곳에서 추렴 돼지가 먹구슬나무에 목매달려 죽는 소리에 온 마을이 시끌짝했고 5백위도 넘는 귀신들이 밥 먹으로 강신하는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순이삼촌 중에서)

 

콘크리트를 노출시켜 디자인한 너븐숭이4.3기념관의 외관은 무미했습니다만 그 안에 전시된 내용물들은 쉽게 보기 버거웠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죽은 어미의 젖을 빨고 있는 아기가 그려진 강요배 화백의 대형유화가 우리를 맞았습니다. 그림 위에 ‘북촌리에서’라는 시가 적혀 있었습니다만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가 워낙 강해 시는 채 읽지도 못했습니다.

실내에는 당시의 참상이 담긴 사진을 비롯해 여러 가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소설 『순이 삼촌』의 초판본과 외국어 번역본들도 있었고, 이곳을 다녀간 분들이 색색의 메모지에 감회를 적어 붙인 게시판도 있었습니다. 평화 화해 등의 글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돌아 나오는 코스 오른쪽으로, 검은색 걸개 석장이 내리 걸린 자그마한 방이 있었습니다.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역 깔때기 모양의 둥근 방이었는데 걸개 위에 하얀 글씨로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미처 열 살이 채 안된 아이도 많았습니다.

 준비해 놓은 국화 한 송이 마음모아 올리고 함께 빌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역사의 간지를 용서하라고,,,

기념관을 나온 뒤 한 많은 애기무덤을 지나 옴팡 밭으로 갔습니다. 오륙십 평 남짓한 작은 밭이었습니다. 이름처럼 오목하게 쏙 들어간 이 밭 안에는 ‘순이 삼촌 문학비’가 꾸며져 있었습니다.

그 해 가을, 이 밭에서 난 고구마는 송장 거름을 먹어 목침만큼 굵었고, 이 밭 고구마는 사람 죽은 밭에서 난 거라고 아무도 사먹지 않았다던 바로 그 밭이었습니다.

 

순이삼촌네 그 옴팡진 돌짝밭에는 끝까지 찾아가지 않는 시체가 둘 있었는데 큰아버지의 손을 빌어 치운 다음에야 고구마를 갈았다. 그해 고구마농사는 풍작이었다. 송장 거름을 먹은 고구마는 목침 덩어리만큼 큼직큼직했다.(순이삼촌 중에서)

 

밭 한가운데쯤 ‘순이 삼촌’이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섰고 그 밑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간 순이 삼촌의 석상이 소설의 장면처럼 누워있었습니다. 그 주위에는 소설대목들이 짧게 음각된 크고 작은 장대석들이 나뒹굴어져 있었습니다.

얼핏 보면 잘 정연되어있던 비석들을 누군가가 뽑아 내동댕이친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억울하게 희생된 북촌리 사람들의 주검을 형상화한 것이었습니다.

헝클어진 돌들의 크기와 위치, 비움과 채움의 어울림이 옴팡 밭 그 한 많은 사연을 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총을 쏜 사람들과 총을 맞고 죽어간 사람들 모두 떠나고 없지만 ‘장소의 힘’으로 역사와 기억은 생생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학살현장의 시체더미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후 30년을 고통 속에서 지내다 옴팡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순이 삼촌, 그녀의 삶을 통해 역사의 폭력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파괴시키는지 극명히 보여 주는 소설이『순이 삼촌』입니다.

이 소설은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과정에서 이념의 대립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인간의 폭력성은 어떤 과정을 거쳐 극한 상황에 이르게 되는지, 그리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했던 그 역사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살아있는 역사교과서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군인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부짖는 할머니들, 총부리에 등을 찔려 앞으로 곤두박질치는 아낙네들, 군인들은 총구로 찌르고 개머리판으로 사정없이 휘둘렀다. ····· 군인들이 이렇게 돼지 몰 듯 사람들을 몰고 우리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나면 얼마 없어 일제사격 총소리가 콩 볶듯이 일어나곤 했다. 통곡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4.3항쟁은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나라 현대사의 질곡을 한마디로 말해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자 한국판 ‘홀로코스트’입니다. 거창과 산청을 비롯해 마산의 진전면 곡안리에서도 있었던 가까운 과거의 우리 주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현기영 선생은 이 소설을 발표한 후 공안당국에 끌려가 고초를 많이 당해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까지 수록되었으니 이 또한 역사의 노정 아닌가 싶습니다.

제주도에서 돌아와 이 글 쓰기 직전 『순이 삼촌』다시 한 번 더 읽었습니다. 옛 활자라 부담스러웠지만 여행 직후여서 감동은 전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와 가슴 사이’라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제주 그 통한의 역사에 대한 내 작은 앎은 나의 머리 안에 있었고, 그 앎이 가슴으로 옮겨온 것은 옴팡 밭 한가운데 섰을 때였습니다. 단 두 뼘 밖에 안 되는 거리지만 머리에서 가슴으로 건너오는 데 걸린 시간은 수십 년이었습니다.

가슴에 들어온 진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받은 크고 소중한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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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4 06:00

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


안녕하십니까? 허정도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지상에 숟가락 하나』라는 책은,
제주도가 낳은 소설가 현기영 선생이 자신의 유년기 성장과정을 기억해가며 쓴 글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유년으로 돌아가,
작가 자신이 나고 자란 제주도를 배경으로 어린 시절을 생생하게 재현해냈습니다.

때로는 배꼽을 쥐고 웃다가,
때로는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역사 속에 묻혀간 군상들의 삶을 처연히 엿볼 수도 있는 책입니다.

누구나 소설 한 권씩 쓰며 사는 게 인간 삶이라고는 하지만,
한 사람의 성장기가 이토록 아프고 아름답고 다채로울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책입니다.

작가는 이 소설을 낸 뒤,

글을 쓰는 내내 무척 설레었다고,
행복했다고,
잊었던 유년의 기억을 좇는 시간여행에서 인생을 다시 산 느낌이었다고 하면서,
자신을 키운 것은 부모님만이 아니라 제주도의 자연과 유년의 친구들과 중학시절 독서였다고 했습니다.

어릴 때 친구들 별명이 재미있습니다.

국수 가락처럼 입 밑까지 흘러내리는 누런 코를 단숨에 들이키는 누렁코,

옷이 없어진 줄도 모르고 물에서 놀다가 여자애들 부끄러워 불알만 잡고 뛰는 똥깅이,

키 큰 먹구슬나무를 원숭이처럼 타고 오르는 나무타기도사 웬깅이……….

별명만으로도 모습이 그려지는 이 개구쟁이들이 사춘기 소년이 되기까지 겪은 이야기.

혼자만 아는 비밀이야기일 수도 있는 어릴 때 우리들의 모습,
바로 그 이야깁니다.

「허기」라는 제목의 글 한 대목입니다.

‘배고픈 나는 게를 잡으면, 그 당장 산 채로 입에 넣어 아삭아삭 씹어 먹었다.
깅이는 게의 사투리이자 내 별명이니까, 말하자면 깅이가 깅이를 잡아먹은 셈이다.

고동이나 바위에 붙은 군부, 뱀고동은 돌로 쪼아 바닷물에 헹궈서 먹었다.

게, 고동은 밥이 아니어서 뱃속을 흐뭇하게 해주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라도 없었다면 그 모진 흉년을 어찌 견뎌냈을까.’


본능과 지혜가 만들어 낸 섬 아이의 생존방식아니겠습니까?

어렸을 때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비록 어리긴 했지만 지금보다 순수했고 진실했을 겁니다.

오늘 저녁에는 어린 시절로 달려가 옛 친구들을 만나볼 생각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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